담마의 거울

나는 싸우지 않는다

담마다사 이병욱 2022. 8. 4. 07:20

나는 싸우지 않는다


열대의 밤이다. 잠은 오지 않고 잡생각만 난다. 끈적끈적해서 불쾌하다. 이럴 때는 샤워해야 한다.

샤워하고 나니 상쾌한 기분이 되었다. 내면적 샤워도 해야 한다. 암송하는 것보다 더 좋은 것은 없다. 경행하면서 빠다나경을 암송했다.

몸과 마음이 깨끗해졌다. 청정한 상태가 되니 이전 행위가 부끄러워졌다. 악하고 불건전한 마음에 지배 되었던 것이다.

마음이 더러워진 상태에서는 악하고 불건전한 마음에 지배되기 쉽다. 악마의 영역에 있는 것이다. 탐욕, 분노와 같은 불선법을 말한다.

탐욕도 없고 분노도 없다. 청정한 마음 상태가 되었을 때 거울을 보는 것 같다. 깨끗하게 닦여진 거울이다. 청정한 마음은 마음의 거울과 같다. 마음의 거울에 비추어 보면 보인다. 부끄럽고 창피했던 것들이 보인다.

며칠 빡세게 일했다. 밤낮으로 초분을 다투며 매진했다. 납기를 맞추어 주고자 했다. 나흘밤나흘낮으로 일했다. 주말도 없었다.

 


일에 대한 댓가는 무척 낮다. 하청수준보다 더 낮다. 충분한 보상이 이루어지지 않은 것이다. 마음속에서 분노가 일어 났다. 그러나 표출해서는 안된다.

고객과 싸워서 이길 수 없다. 이 세상에서 가장 어리석은 자는 고객과 싸우는 사람이다. 고객 하자는 대로 해 주어야 한다. 을은 고객이 요구하는 바를 충실히 이행해야 한다. 고객의 마음이 되어야 한다.

고객은 돈을 주고 일을 맡긴 사람이다. 일을 맡긴 사람은 이것저것 요구할 수 있다. 마음에 들지 않으면 다시 하게 할 수 있다. 이 과정에서 인내를 필요로 한다. 설령 충분한 보상을 받지 못했을지라도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 주어야 다음을 기약할 수 있다.

고객을 감동시켜야 한다. 생각했던 것보다 더 주면 감동할 것이다. 내가 약간 손해 보는 듯한 느낌이 들었을 때도 고객의 마음을 움직이게 할 수 있다. 그래야 다음에 또 일감을 줄 것이기 때문이다.

소탐대실할 수 있다. 작은 이익을 취하려 하다가는 망할 수 있음을 말한다. 고객과 싸우면 망한다. 다음에 주문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분노는 파괴적으로 작용한다. 현명한 자라면 화를 내지 말아야 한다. 한번 화를 내면 엎질러진 물이다. 이전 샹태로 복원하기 힘들다.

행하고 나서 후회할 때가 있다. 눈물을 흘릴 정도라면 크게 잘못된 것이다. 이 모두가 마음이 오염되었기 때문이다. 불선법의 힘이 너무 강해서 알면서도 행하는 것이다. 행하고 나서 후회한다.

다툼이 있을 때 어떻게 해야 할까? 분노의 마음이 일어났을 때 어떻게 해야 할까? 가르침에 답이 있다.

"
세존이시여, 저는 이와같이 '내가 나의 마음을 버리고 이 존자들의 마음을 따르면 어떨까?'라고 생각합니다."(M128)

아누룻다 존자가 부처님에게 말한 것이다. 세 명의 수행승이 살고 있는 곳에 부처님이 방문하자 이렇게 말한 것이다. 상대의 마음이 되고자 하는 것이다.

모임에는 세 가지 모임이 있다. 불화의 모임, 화합의 모임, 최상의 모임을 말한다.

불화의 모임은 서로 다투는 모임을 말한다. 경에서는 "그들은 논쟁을 일삼고, 서로 입에 칼을 물고 서로가 서로를 찌릅니다. (A3.93)라고 했다. 이런 모임에 향상이 있을 수 없다. 머물러 있어서는 안되고, 붙잡더라도 떠나야 한다.

화합의 모임은 어떤 것일까? 이는 "그들은 친절하여 다투지 않고, 우유와 물처럼 융화하며 서로 사랑스런 눈빛으로 지냅니다." (A3.93)라는 가르침으로 알 수 있다. 이런 모임에 향상이 있다. 쫓아 내더라도 머물러 있어야 한다.

최상의 모임은 어떤 것일까? 이는 "그들은 멀리 여윔을 선호하고, 도달하지 못한 것을 도달하려 하고, 실현하지 못한 것을 실현하기 위해 정진합니다." (A3.90)라는 가르침으로 알 수 있다. 정진의 모임이 최상의 모임임을 알 수 있다.

흔히 승가를 화합승가라고 말한다. 수행공동체에서는 화합해야 한다. 어떻게 화합해야 하는가? 우유와 물처럼 화합하라고 했다. 우유와 물은 잘 섞이기 때문이다.

기름과 물이 되어서는 안된다. 가름과 물의 관계는 불화의 모임과 같다. 입에 칼을 물고 서로가 서로를 찌를 때 화합이 되지 않는 기름과 물의 관계라고 볼 수 있다.

우유와 물의 관계가 되어야 한다. 부부사이에도 직장에서도 모임에서도 우유와 물의 관계가 되어야 한다. 우유와 물은 서로 섞이기 때문이다.

화합의 모임에서 조건이 있다. 이는 "내가 나의 마음을 버리고 이 존자들의 마음을 따르면 어떨까?"(A3.93)라는 가르침으로 알 수 있다. 화합에 있어서 이것 이상 좋은 것은 없을 것이다. 구체적으로 다음과 같이 설명되어 있다.

"
세존이시여, 그래서 저는 제 마음을 버리고 이 존자들의 마음을 따랐습니다. 저희들의 몸은 여러 가지이지만 마음은 하나입니다. 세존이시여, 저희들의 몸은 다 다르지만 마음은 하나입니다."(M128)

참으로 놀라운 말이다. 자신의 마음을 버리고 상대방의 마음을 따르기로 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세 명이 똑같이 이런 말을 했다는 것이다. 이런 모임에 불화가 있을 수 없다. 우유와 물처럼 섞일 것이다. 화합의 모임이다. 그래서 화합승가라고 한다.

모임은 화합하기 위해서 있다. 모임은 싸우라고 있는 것이 아니다. 화합에서 더 나아가야 한다. 최상의 모임, 정진의 모임이 되어야 한다. 이는 "그리고 세존이시여, 저희들은 닷새마다 밤을 새며 법담을 나눕니다."(M128)라는 말로 알 수 있다.

그가 지혜로운지는 토론을 해보면 알 수 있다. 수행승들이 밤새워 담마토크(법담)했을 때 깊이가 드러날 것이다. 그 중에 한명은 배울 점이 있을 것이다. 그래서 부처님은 최상의 모임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
수행승들이여, 최상의 모임이란 무엇인가? 그 모임 가운데 장로수행승이 사치하지 않고, 태만하지 않고 탈선을 멍에로 꺼리고 멀리 여읨을 선호하고 도달하지 못한 것에 도달하고, 성취하지 못한 것을 성취하고, 실현하지 못한 것을 실현시키기 위해 열심히 정진한다. 그의 후계자도 자각적으로 본 것을 따라 한다. 그들도 사치하지 않고 태만하지 않고 탈선을 멍에로 꺼리고 멀리 여읨을 선호하고 도달하지 못한 것에 도달하고, 성취하지 못한 것을 성취하고, 실현하지 못한 것을 실현시키기 위해 열심히 정진한다. 수행승들이여, 이것을 최상의 모임이 한다.”(A3.93)

최상의 모임에 핵심이 있다. 그것은 닮고자 하는 사람이 있는 것을 말한다. 스승이 될 수도 있고 도반이 될 수도 있다. 그래서 "그의 후계자도 자각적으로 본 것을 따라 한다."라고 했다.

모임에 가면 반드시 본받을만한 사람이 있다. 그 사람과 같이 되고자 하는 것이다. 그 사람을 보기 위해서 모임에 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정진의 모임에서 볼 수 있다. 이런 모임이 최상의 모임이다.

부처님 가르침은 승가에만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모임에도 적용할 수 있고 가정에서도 적용할 수 있다. 화합의 모임의 경우 부부사이에도 적용할 수 있다.

부부사이는 어떤 사이인가? 가깝고도 먼 사이라고 볼 수 있다. 극과 극이 될 수 있다. 가깝게 지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부처님의 화합의 가르침을 그대로 적용하면 된다.

부부화합은 먼저 나의 마음을 버려야 한다. 그리고 상대방의 마음을 따라야 한다. 이렇게 했을 때 다툼이 일어날 수 없다. 이는 "몸은 다 다르지만 마음은 하나입니다."(M128)의 상태와 같은 것이다. 일심동체가 되는 것이다.

일심동체라 하지만 동체가 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일심은 가능하다. 신체가 합체한다고 해서 일심이 되는 것은 아니다. 신체가 합체하지 않아도 일심은 가능하다. 서로 상대방의 마음이 되는 것이다. 이를 일심사상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일심사상은 고객에게도 적용할 수 있다. 고객의 마음이 되어 보는 것이다. 고객이 무엇을 요구하는지, 심지어 고객의 심리상태까지 파악하는 것이다. 나의 마음을 버리고 고객의 마음이 되면 고객과 싸울 일이 없을 것이다.

요즘 싸우지 않는다. 옛날에는 많이 싸웠다. 자신을 내세웠을 때 싸움이 난다. 자신을 내려 놓으면 싸울 일이 없다. 더 나아가 상대방 마음이 되면 화합하게 된다. 부부사이도 그렇고 모임도 그렇다. 고객과의 관계도 그렇다.

일심은 될 수 있으나 동체는 될 수 없다. 일심이체나 일심삼체는 될 수 있다. 마음이 하나가 되었을 때 다툼이 있을 수 없다. 무쟁(無爭)하려거든 나의 마음을 버리고 상대의 마음을 따라야 한다. 나는 싸우지 않는다.


2022-08-04
담마다사 이병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