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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권 담마의 거울 2015 III, 나도 작가일까?

담마다사 이병욱 2022. 8. 6. 09:04

67권 담마의 거울 2015 III, 나도 작가일까?

 

 

매일 글을 쓰고 있다. 하루도 빠지지 않고 글을 쓰고 있다. 이를 의무적 글쓰기라고 말한 바 있다. 일상에서 보고 듣고 느낀 것에 대한 것이다. 경전을 근거로 한다. 작성된 글은 블로그와 페이스북에 동시에 올리고 있다. 나도 작가일까?

 

오늘 아침 페이스북에서 어느 평론가의 글을 보았다. 시와 소설을 평론하고 있는데 권위가 있어 보인다. 한번 글을 올리면 공감이 천회 가량 되는 것 같다. 아무리 잘 쓰려고 노력해도 백회 달성하기가 쉽지 않는데 천회라니! 참으로 놀라운 권위를 가졌다.

 

평론가는 무명의 작가를 발굴하여 세상에 알리는 것 같다. 기성작가나 유명작가의 글보다는 알려지지 않은 작가의 글을 소개함으로 인하여 무명작가에게 도움을 주는 것이다. 이런 평론가에게 블로거도 작가일수 있을까?”라는 댓글을 달았다.

 

어느 스님은 나를 지칭할 때 작가라고 말한다. 대중법회 때도 작가라고 소개했다. 블로거도 작가일수 있을까? 작가라는 타이틀은 시인이나 소설가에게 붙여주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인터넷에 잡문이나 쓰는 블로거도 작가라고 부를 수 있을까?

 

평론가는 놀랍게도 블로거도 작가라고 했다. 평론가는 그럼요. 이제 등단의 의미가 없잖아요? 블로그든 페북이든 자기 글을 쓴다면 작가지요.”라고 답글을 써 놓았다.

 

평론가의 글을 보고 고무 되었다. 그래서 감사합니다. 저도 작가이군요. 이제 자신 있게 작가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라고 글을 남겼다.

 

한번도 작가라고 생각한 적이 없다. 작가는 등단을 해야 작가라는 타이틀을 다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런데 작가 중에서도 시인이 근사하게 보였다. 다들 시인이라고 하는데 나도 시인이 되어 보고 싶었다.

 

어느 해인가 안양아트센터(구안양문예회관)에서 시화전이 열렸다. 안양지역 문인들이 주최한 것이다. 사무실 가까이 있어서 점심시간에 감상했다.

 

시화전 안내자가 있었다. 안내자에게 어떻게 하면 시인이 될 수 있습니까?”라며 물어 보았다. 이에 안내자는 먼저 카페에 가입하라고 했다.

 

카페에 가입했다. 가입해서 똑 같은 질문을 던졌다. 그랬더니 어떤 사람이 시인이 되기 쉽지 않다고 말했다. 등용문을 통과해야 된다고 했다. 진입장벽이 있음을 알았다. 아무나 시인이 될 수 없었던 것이다.

 

블로그에 수백개의 시가 있다. 몇 년에 걸쳐 쓴 것이다. 그러나 경전에 있는 게송에 비하면 유치하기 그지 없다. 이런 것을 들이대면서 시인이 되고자 했다.

 

시인 타이틀 다는 것이 근사해 보여서 시인이 되어 보고자 했다. 그러나 진입장벽이 높아서 포기 했다. 그런데 평론가에 따르면 이제 등단의 의미가 없어 졌다고 했다. 누구나 글을 쓴다면 작가라고 했다.

 

신춘문예는 우리나라밖에 없다고 한다. 일본에서도 신춘문예는 폐지 되었다고 한다. 글을 쓰면 누구나 작가라고 했다. 책을 냈다면 작가임이 증명된 것이나 다름 없을 것이다.

 

한국적 현실에서 작가가 되려면 신춘문예라는 등용문을 통과해야 하는 것 같다. 페이스북에는 수많은 시인과 소설가 등 작가를 볼 수 있는데 그들은 등용문을 통과했기 때문에 시인이나 소설가라는 타이틀을 붙여 주었을 것이다.

 

작가도 작가나름일 것이다. 일류작가가 있는가 하면 삼류작가도 있다. 등단해서 시나 소설을 발표하지 못해도 작가라는 타이틀을 붙여 주는 것 같다. 마치 한번 해병이면 영원한 해병이라는 말을 연상케 한다. 작가의 진정한 의미는 어떤 것일까?

 

용어는 협의가 있고 광의가 있다. 열반을 예로 들 수 있다. , , 치가 소멸된 상태를 열반으로 본다면 이는 협의적으로 본 것이다. 평화로운 상태를 열반으로 본다면 이는 광의적으로 해석한 것이다. 비구는 구족계를 받은 출가수행자를 의미한다. 이는 협의적으로 해석한 것이다. 그런데 청정도론에 따르면 윤회에서 두려움을 보기 때문에 수행승이라고 한다.(Samsara bhayam ikkhati bhikkhu)”(Vism.1.7)라고 했다. 이는 비구를 광의적으로 해석한 것이다.

 

작가도 협의적 의미가 있고 광의적 의미가 있다. 등용문을 통과했다면 협의적 의미의 작가가 될 것이다. 인터넷에 글을 쓴다면 누구나 작가라고 할 수 있는데 이는 광의적으로 해석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인터넷에 매일 글을 쓰고 있다. 그것도 장문의 글이다. 블로그와 페이스북에 잡문을 쓰고 있는 자도 작가일까? 그런데 평론가는 작가라고 해주었다. 더구나 책을 낸다면 작가임이 분명하다는 취지로 답글을 써 놓았다. 이 말에 매우 고무되었다.

 

이제까지 수십권 책을 냈다. 그러나 출판사에서 낸 것은 아니다. 문구점에 인쇄와 제본을 의뢰하여 만든 것이다. 두 권만 제작한다. 보관용이다. 그럼에도 책을 냈다고 말하는 것은 책의 형식을 갖추었기 때문이다.

 

책을 낼 때는 목차와 서문을 쓴다. 이전에 쓴 글을 카테고리별로 시기별로 모아 책의 형태로 만든 것이다. 이를 PDF로 변환하여 블로그에 올려 놓는다. 누구나 다운 받아 놓을 수 있도록 해놓은 것이다. 이런 것도 책이라고 볼 수 있을까?

 

이번에 67번째 책을 만들었다. 책 제목을 ‘67 담마의 거울 2015 III’라고 했다. 통산 67번째 책으로 2015115일부터 1228일까지 두 달동안 담마에 대하여 쓴 것이다. 모두 28개의 글로 245페이지에 달한다. 참고로 목차를 보면 다음과 같다.

 

 

목차

 

1. 젊었을 때 출가는 타당한가

2. 압빠마다(appamāda)와 사띠(sati)는 동의어

3. 칠일(七日)이면 깨달을 수 있을까?

4. 신출가(身出家)와 심출가(心出家)

5. 금강경 여대비구중천이백오십인구 근거는?

6. 성철스님 백일법문 서문을 보면

7. 약난생약태생약습생약화생에 대하여

8. 금강석처럼 단단한 지혜로 벼락이 내려치듯이

9. 분노를 품고 있지 않은 욕설

10. 아라한의 미소

11. 곡차를 마심으로 인한 해악 여섯 가지

12. 여섯 가지 재물의 파멸문

13. 탁발이 사라진 한국불교에서

14. 꽉 움켜쥔 스승의 주먹

15. 좋은 친구 구별하는 방법 서른 두 가지

16. 부처님 가르침은 십이처로 이해해야

17. 무너짐의 지혜

18. 눈먼 봉사가 길을 인도하듯이

19. 올바른 질문에 올바른 대답이

20. 아침이 되면 꿈에서 깨듯이

21. 빗나간 견해 에고와 참나

22. 진리를 보는 자는 나를 보고 나를 보는 자는 진리를

23. 머물 것인가 건널 것인가

67권 담마의 거울 2015 III_220806.pdf
2.03MB

 

과거에 써 놓은 글이다. 카테고리별로 시기별로 묶어서 책의 형태로 만든 것이다. 이런 것도 책이라고 볼 수 있을까?

 

평론가에 따르면 자기 글을 쓰면 작가라고 했다. 이는 작가의 의미를 광의로 해석한 것이라고 본다. 그러나 작가라고 볼 수 없다. 등용문을 통과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책을 냈다고는 하지만 책이라고 볼 수 없다. 출판사에서 나온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블로거도 작가라고 볼 수 있을까? 평론가는 그럼요.”라며 인정해 주었다. 광의로 해석한 것이라고 본다. 협의로 해석한다면 작가가 아니다. 만일 작가라고 떠벌리고 다닌다면 작가를 사칭한 자가 될 것이다. 나는 작가일까?

 

 

2022-08-06

담마다사 이병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