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평화불교연대

노인도 열정 있으면 청년

담마다사 이병욱 2022. 8. 21. 21:39

노인도 열정 있으면 청년


노인과 청년의 구분은 무엇일까? 그것은 열정으로 판가름 날 것 같다. 열정이 없다면 노인이고 열정이 있다면 그는 청년의 기상을 가졌다고 할 것이다.

지금은 새벽 4 50분 사람들이 대웅전에 모여 앉아 있다. 대부분 조용히 앉아 좌선을 하고 있다. 밖에는 스님이 도량석을 돌고 있다.

 


새벽법회는 5시에 시작되었다. 한사람도 빠짐없이 대웅전에 모두 모였다. 칠정례를 하고 반야심경을 합송했다. 새벽 5 20분부터는 선방에서 참선을 하고 있다.

 


연합수련회 둘째날이다. 어제 2022 8 20()부터 안성 죽산에 있는 활인선원에서 정평불과 신대승의 일박이일 연합수련회가 열리고 있다. 참석인원은 모두 23명이다. 남자는 13명이고 여자는 10명이다. 정평불은 13명이고 신대승은 10명이다.

정평불과 신대승은 재가불교단체이다. 여러 재가단체가 있지만 함께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생각하는 것이 같기 때문일 것이다. 지향하는 이념은 다를지라도 한국불교의 미래를 걱정하는데 있어서는 뜻을 함께 한다.

어제 오후 4시 이전에 활인선원에 도착했다. 일부는 승용차로 오고 대부분은 서울 남부터미널에서 출발했다. 일부는 죽전 시외버스터미널에서 택시를 타고 선원에 도착했다.

 


선원은 꽤 넓다. 대웅전과 선방이 있고 숙소동이 있다. 여러채 건물이 있어서 마치 미얀마 위빠사나 명상센터를 보는 듯 하다.

 


오후 4시부터 프로그램이 시작됐다. 방기연 선생이 공동체 놀이인 마음열기를 진행했다. 참여자 모두 커다란 선방에 모여 여러가지 놀이를 했다.

실로 오랜만에 놀이를 해봤다. 신입사원 연수시절이래 처음인 것 같다. 둥그렇게 모여 손을 잡고 함께 일어서기, 꼬인 팔을 풀기 등 다양한 놀이를 했다. 사람들의 마음을 열기에 충분했다.

 


공동체놀이 특징은 무엇일까? 한마디로 마음의 빗장풀기라고 볼 수 있다. 자신만의 마음의 빗장을 단단히 채우고 있는데 공동체놀이를 통해서 무장해제 시켜 버린 것이다.

 


공동체놀이 클라이막스는 서로 바라보기인 것 같다. 서로 두 명이 마주 앉아서 상대방의 눈을 바라보는 것이다. 상대의 눈에서 나의 모습을 본다. 이것이야말로 눈부처보기이다. 정평불 정평법회 때 눈부처 바라보기를 하는데 이곳에서도 실행한 것이다.

공동체놀이는 마음을 여는 것이다. 어떻게 해야 마음의 문을 열 수 있을까? 그것은 파트너에게 자신의 자랑할만한 것이나 후회할만 것을 말하는 것이다. 상대방은 잘 경청해 주며 맞장구 쳐준다. 참석자 모두에게 했으므로 한시간 이상 걸렸다. 소감을 말하는 시간에 "무장해제 당한 것 같았습니다."라고 말했다.

저녁 공양은 6시부터 시작 되었다. 사찰음식전문가 유병화 선생이 수고해 주었다. 제철에 나오는 식재료를 이용한 웰빙식단이었다. 공동체놀이로 힘이 들어서일까 허기진 배에 양껏 먹었다.

 


저녁시간에는 이윤정 선생이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그룹을 만들어 세 가지를 토론 했다. 이는 '내가 생각하는 불교는 무엇인가, 내가 하고 싶은 불교는 무엇인가, 정평불과 신대승이 함께 만들어 나가는 불교는 무엇인가'에 대한 것이다. 토론한 것을 대표자가 발표했다.

다양한 의견이 있었다. 한국불교 현실에서 이런 토론이 과연 한국불교를 변화시킬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이다. 그럼에도 재가불교단체에서 한국불교 현실에 대해서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다는 사실은 한국불교가 아직 죽지 않았음을 말해주는 것 같다.

 


토론에서 시민보살학교 이야기가 있었다. 미래 한국불교를 이끌어 갈 재가의 인재를 양성해 보자는 것이다. 고령화된 재가불교단체에서 앞으로 5, 10년후 한국불교 미래를 이끌어 갈 새싹을 심어 놓자는 것이다.

저녁 토론이 끝났다. 다음은 친교의 시간이다. 저녁 9시 반부터 차담이 시작되었다. 차기를 준비 했다. 카톡방에 혹시 장농에 묵혀져 있는 차가 있으면 가져 오라고 했다. 효과는 대단했다. 다섯 종류의 차를 가져 왔다. 그 중에서 함안에서 온 노귀남 선생이 가져 온 하동녹차로 시작했다.

 

 

유병화 선생이 팽주가 됐다. 능숙한 솜씨로 차를 만들었다. 사람이 많아서 배달조도 있었다. 하동녹차 다음에는 자스민차를 마셨다.

친교를 하는데 있어서 차담만한 것이 없다. 차를 주고 차를 받는 행위가 마음을 열게 만든다. 차가 떨어지면 또 부어준다. 이렇게 하다 보면 이야기는 끊임이 없다. 서로 구분이 없어졌다. 정평불과 신대승이라는 단체는 이름으로만 있을 뿐이다. 이 순간만큼은 한마음이 된 것이다.

참선은 새벽 5 20분에 시작해서 6시에 끝났다. 참선이 끝나고 예정에 없던 요가를 했다. 활인선원 주지 혜오 스님이 지도했다. 40대 스님이라고 한다. 전라도 억양의 스님이다.

요가는 6시부터 30분간 진행 되었다. 갖가지 동작의 요가를 했다. 굳었던 몸이 풀어지는 것 같다. 며칠전 허리통증이 있었는데 효과를 본 것 같다. 주지스님은 오늘 배운 요가를 집에서 실천해 보라고 당부한다. 요가가 끝나고 사람들은 울력 현장으로 갔다.

 


3
년만에
수련회를 가졌다. 수련회다운 수련회이다. 프로그램에 따라 한치의 오차도 없이 진행되었다. 마치 연수원에서 연수받는 것 같다. 이제까지 이런 수련회는 처음인 것 같다

참여자들은 나이가 많다. 60대가 가장 많다. 놀랍게도 40대가 한명 있었다. 전반적으로 사회가 고령화 되고 있는데 재가단체도 이와 다르지 않는 것 같다.

나이가 들면 어른 노릇하려 한다. 집안에서 자식과 손자가 있어서 어른이다. 어른 행세만 하려 한다면 꼰대라는 소리 들을 것이다. 어른 행세만 하려 한다면 아무것도 하려 하지 않을 것이다. 고립된 삶을 살기 쉽다.

나이가 들수록 친구가 있어야 한다. 눈만 뜨면 밥만 먹으면 밖으로 나가야 한다. 밖에 나가 친구를 만들어야 한다. 그리고 우정을 쌓아야 한다. 이렇게 본다면 친구만들기와 우정을 쌓는데 있어서 수련회보다 좋은 것은 없는 것 같다.

사람은 열정이 있어야 한다. 열정이 없으면 죽은 목숨이다. 한시절 열심히 산 사람들이 모였다. 모여서 마음의 문을 열었다. 함께 놀이하고, 함께 밥을 먹고, 함께 차를 마셨다. 단체는 다르지만 한마음이 되었다. 다음에 만날 때는 반가울 것 같다. 일생에 이런 날이 몇번이나 있을까?


2022-08-21
담마다사 이병욱

 

 

 

 

 

친절한 주지스님

 

 

활인선원 일박이일 수련회를 마쳤다. 정평불과 신대승이 함께 한 이번 수련회는 일생에서 길이 남을만하다. 재미있었다. 물론 즐기기 위한 수련회는 아니다. 한국불교의 방향에 대하여 토론해보고자 하는 것이 주된 목적이었다. 그러기에 위해서는 먼저 한마음이 되어야 할 것이다.

 

성격이 다른 두 재가단체가 결합되기는 쉽지 않다. 각 단체마다 추구하는 이념과 단체 고유의 정체성이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힘을 합하면 힘이 배가 된다. 그런데 정평불과 신대승은 이미 몇 차례 함께 한 적이 있다는 것이다. 정평법회를 함께 했었고, 눈부처학교를 함께 했었고 이번에 수련회도 함께 하기에 이르렀다.

 

두 단체 구성원들은 서로 모른다. 일부 사람들은 안면이 있을 수 있다. 서로 모르는 사람들이 어떻게 한마음이 될 수 있을까? 그것은 놀이로 가능하다. 함께 한바탕 신나게 놀아 보는 것이다.

 

술래잡기놀이가 있었다. 문답식으로 이루어지는데 빈 자리에 앉기 게임이다. 놀이를 하면 할수록 마음의 빗장은 풀어진다. 한바탕 웃고 나면 마음의 무장은 해제된 것이나 다음 없다.

 

파트너를 바꾸어 가며 자신의 속마음을 털어 놓는 놀이도 있다. 22명이 참여했다면 자신을 빼고 21명과 대면하게 되는 것이다. 눈동자 바라보기도 있고 안마해주기도 있다. 한바퀴를 돌면 남성과 여성 할 것 없이 파트너가 바뀐다. 평소 소원했었던 사람들도 이 놀이를 통하여 관계 개선이 이루어질 수도 있을 것이다.

 

공동체놀이로 마음의 문이 모두 열렸다. 모두 친구가 된 것이다. 한바탕 신나게 놀고 나니 모두 친구가 된 것이다. 수련회이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놀이를 지도한 방기연 선생의 역할이 컸다.

 

모임이란 무엇일까? 싸우기 위해서 모이는 모임은 없을 것이다. 모임은 화합의 모임이어야 한다. 더 좋은 것은 정진의 모임이 되어야 한다. 정진의 모임에는 수련회보다 더 좋은 것은 없는 것 같다.

 

잠자는 시간을 빼고 모두 함께 했다. 공동체놀이, 한국불교방향 토론회, 새벽예불, 새벽 참선, 아침요가, 울력, 산행을 함께 했다. 일박이일이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무엇보다 주지스님이 있어서 가능했다.

 

스님에 대한 이미지가 있다. 대개 차가운 느낌이다. 정을 잘 주지 않는 것 같다. 그것은 수행자이기 때문일 것이다. 스님들에게 자비심을 기대할 수는 없는 것일까?

 

자비없는 불교를 상상할 수 없다. 자비는 없이 지혜만 있다면 어떻게 될까? 차가운 느낌일 것이다. 마치 감정이 없는 에이아이(A.I) 같다. 수행자가 날카로운 지혜만 있고 자비가 없다면 에이아이와 다를 바 없을 것이다.

 

활인선원 주지스님은 친절하다. 사십대로 전라도 억양의 스님이다. 미황사에서 오래 있었다고 한다. 금강스님 제자라고 볼 수 있다. 훌륭한 스님 밑에 훌륭한 제자가 있는 것 같다.

 

활인선원 주지 혜오스님은 자상하다. 찾아 온 사람들을 마치 손님 대하듯 하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 넒은 선원을 혼자 관리한다는 것이다. 농사도 홀로 짓는다. 그 정도 규모의 선원이면 스님이 5명 정도는 살아야 할 것이다. 그럼에도 공양주 보살도 없고 일하는 처사도 없다. 마치 북치고 장구치듯이 혼자 다한다.

 

스님은 넓은 도량을 혼자 관리한다. 수련회 사람들을 지도하기도 한다. 이렇게 일인다역을 할 수 있는 것은 자비의 마음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자비의 마음이 없다면 나홀로 지내며 편하게 살 것이다.

 

오늘 새벽참선이 끝나고 요가를 했다. 스님은 30분 동안 갖가지 동작의 요가를 가르쳤다. 한번도 쓰지 않은 근육을 쓰게 되자 여기저기서 아구구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러나 시원했다. 스님이 하라는대로 했더니 되는 것이었다. “요가는 이렇게 하는 것이다.”라는 것을 보여 주는 것 같았다. 이것도 자비의 마음 때문일 것이다.

 

스님과 차담시간이 있었다. 오전에 산행이 끝난 다음에 다실에 모두 모였다. 1시간 반 동안 이어진 차담이었다. 차에 대하여 이야기했는데 듣다 보니 이제까지 차에 대하여 파편적으로 알고 있었던 것이 정리되는 것 같았다.

 

우롱차로 시작했다. 차맛은 밋밋했다. 그러나 이는 시작에 불과하다. 차츰 강도를 높여 갔기 때문이다.

 

스님의 말은 끊임없이 이어졌다. 다도에 대한 얘기도 했다. 누구나 알고 있지만 다시 들으니 그렇게 해야만 할 것 같았다.

 

차를 마실 때 어떻게 마셔야 할까? 아무 생각없이 마실 수 없다. 찻잔을 소주마시듯이 마셔서는 안된다는 것은 상식이다. 그런데 이번에 한가지 배운 것이 있다. 그것은 차를 마실 때 찻잔의 바닥이 상대방에게 보여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두 손으로 마신다. 왼손으로 바닥을 가리며 마시는 것이다.

 

흔히 이런 말을 한다. 차 마시는 것에 대하여 물고문한다는 것이다. 상대방이 따라주는 차를 계속 마시다 보면 화장실에 자주 왔다갔다 하는데 이를 물고문 당한다고 말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차를 마시기 싫을 때 어떻게 해야 할까? 찻잔을 들고 있으라고 한다. 찻잔을 들고 있으면 차를 따라주지 못할 것이다.

 

갖가지 종류의 찻잔이 있다. 어느 것이 가장 좋을까? 스님에 따르면 백자가 최상이라고 한다. 같은 조건이라도 백자에 담겨진 차맛이 더 좋음을 말한다. 마치 같은 밥이라도 플라스틱그릇보다는 사기그릇에 담아 먹는 것이 더 맛있는 이치와 같다는 것이다.

 

스님은 차에 대해서 끊임 없이 이야기 했다. 전에 들어보지 못한 이야기가 많다. 마치 영업비밀을 모두 털어 놓는 것 같다. 스님은 꿀팁을 하나 더 알려 주겠다고 했다. 그것은 차 마시는 시간에 대한 것이다.

 

흔히 이런 말을 한다. 손님이 왔을 때 커피를 마시면 30분이면 족하지만 차를 마시면 3시간을 마실 수 있다는 말이다. 커피는 다 마시면 일어나야 하는 개념이다. 물론 리필도 있지만 마시면 일어나야 하기 때문에 30분 이야기하는 것으로 보는 것이다. 그런데 차는 주거니 받거니 하기 때문에 차가 매개가 되어 끊임없이 대화를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일까 귀한 손님이 왔을 때 커피보다는 차를 내 놓는 것 같다.

 

주지스님에 따르면 차를 마시고 싶다면 4시간 마실 요량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4시간인가? 그것은 4시간이 되야 맛있는 차를 맛볼 수 있음을 말한다. 최상의 맛을 가진 차는 마지막에 나온다는 것이다.

 

차를 마시다 보면 똑 같은 차를 계속 마실 수 없다. 바꾸어야 주어야 한다. 그래서일까 처음부터 좋은 차를 내놓지 않는다고 한다. 차츰차츰 단계를 높여 가다가 4시간 되었을 때 가장 아끼는 차를 내놓는다고 한다. 그래서 차맛을 보려거든 4시간 마실 요량으로 임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것이 최상의 차를 맛볼 수 있는 꿀팁이라고 했다.

 

차를 마실 때 예절이 있다. 기본 예절은 지켜야 하는데 더 중요한 것은 공감하는 것이라고 했다. 예를 들어 차 맛 어떻습니까?”라고 물었을 때 맛있습니다.”라며 칭찬해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 더 맛있는 차, 더 귀한 차를 얻어 마실 수 있다고 말한다.

 

차에 대한 이야기는 끝이 없었다. 여러 가지 종류의 차가 선보였다. 우롱차로부터 시작해서 녹차, 발효차를 마시고 마지막으로 홍차를 마셨다. 맛이 각각 다 달랐다. 어떤 차는 속이 시원했다. 마치 몸속에 있는 오염물질이 내려가는 듯 개운했다.

 

좋은 차의 조건은 무엇일까? 이에 대하여 스님은 다섯 가지 맛을 말했다. 이는 단맛, 쓴맛, 신맛, 짠맛, 떫은맛을 말한다. 이 다섯 가지 맛이 조화롭게 엮여야 좋은 차라고 했다. 그런데 차를 다 마시고 났을 때 단맛이 나는 차가 좋다고 했다. 단맛이 나면 침이 고이는데 좋은 차는 계속 우려도 단맛이 난다고 한다.

 

흔히 차담한다고 말한다. 이는 차를 마실 때 상대가 있음을 말한다. 그런데 초의선사의 다신전(茶神傳)에 따르면 혼자 마실 때가 가장 좋다고 한다. 이는 상식을 깨는 것 같다. 차담이라 하여 차는 상대가 있어서 마셔야 가장 차마시기 좋은 상태로 알고 있으나 혼자 마시는 차가 가장 마시기 좋은 상태라는 것이다.

 

차를 혼자 마신다. 차를 혼자 마실 때 차를 음미하며 마신다. 차를 마시면 마음이 차분해지기 때문에 여유를 마신다고도 볼 수 있다. 이렇게 나홀로 마시는 차가 최상이라고 한다. 다음으로 벗이 왔을 때 둘이서 마시는 차가 좋다고 한다. 세 명이면 어떨까? 주지스님은 다신전을 인용하여 셋이서 마시면 다신이 흩어집니다.”라고 말했다.

 

주지스님과 차담하면서 차에 대하여 상식적인 지식을 알게 되었다. 무엇보다 차담에 대한 것이다. 차는 혼자 마시는 것이 최상이지만 차담하게 되면 두 명이 좋다고 한다. 세 명이서 차를 마시면 다신이 흩어진다고 했다. 이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아마 분위기와 관련 있는 것 같다. 세 명이서 마실 때 주의력이 분산되기 때문일 것이다.

 

일박이일 수련회를 마쳤다. 함께 모여 놀이를 하고 토론하고 좌선하고 산행하고 차를 마시는 인연은 매우 소중한 것이다. 백번천번 온라인에서 보는 것 보다는 한번 만나는 것만 못하다. 하물며 일박이일 수련회는 어떠할까?

 

불자들은 사찰순례다닌다. 단체로 사찰순례하면 삼사 또는 이사 순례한다. 대개 당일코스가 대부분이다. 그런데 당일코스 백번하는 것 보다 일박이일 한번 하는 것만 못하다는 것이다. 이제까지 백번 이상 사찰순례를 단체로 다녔지만 잘 기억에 나지 않는다. 그러나 일박이일 한 것은 기억에 또렸하다.

 

남자들은 대방에서 함께 잤다. 너른 방에서 열 명 이상 잔 것이다. 어떤 이는 환경이 바뀌면 잠을 잘 자지 못한다고 말한다. 이런 이유로 일박이일 수련회나 성지순례를 기피하는지 모른다. 그러나 한방을 쓴 인연을 매우 깊다. 다음에 만나면 반갑게 맞을 수 있기 때문이다.

 

정평불과 신대승이 함께 했다. 이번 수련회를 통해서 하나가 된 것 같다. 여러 재가불교단체도 수련회를 통해서 하나의 마음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이와 같은 수련회가 성공적으로 된 것은 주지스님의 협조가 크다. 주지스님이 헌신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친절하고 자비로운 스님 같다.

 

 

2022-08-21

담마다사 이병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