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행기

이제 다시 악마에게 정복당하지 않으리

담마다사 이병욱 2022. 10. 8. 07:54

이제 다시 악마에게 정복당하지 않으리

 


지금 시각은 4 30, 내 예상과 맞아 떨어졌다. 더 일찍 일어 났을 것이다. 지상에서 가장 편한 자세로 사유한 시간을 합하면 4시 이전에 일어난 것이다.

새벽시간은 온전한 내 시간이다. 누구도 건드리지 못하는 나만의 시간이다. 아침 6시까지에 한한다. 새벽 4시대가 가장 좋다. 새벽 3시대는 너무 빠르고 새벽 5시대는 너무 늦다. 나는 새벽형 인간이라 볼 수 있다.

속이 좋지 않았다. 어제 저녁 과식한 것이다. 속이 꽉 찬 듯한 느낌이다. 시간 지나면 해결 되는 것이다. 아침을 굶으면 해결된다. 불편한 속을 제압해야 한다. 나에게 가장 좋은 것은 약을 먹는 것이다. 옥수수 끓인 물에 십년환 열 알가량 먹으면 즉효약이다.

십년환은 나에게 있어서 진기약과 같은 것이다. 율장에 따르면 진기약은 수행승들의 필수약품이었다. 탁발할 때 늘 가지고 다니던 상비약품이었던 것이다. 일종의 소화제이자 위장약이라고 볼 수 있다. 그래서 "출가는 진기약을 기초생활수단으로 삼는다."(Vin.I.58)라고 했다.

출가자는 탁발식, 분소의, 나무밑 처소와 함께 진기약을 네 가지 기초생활 수단으로 삼았다. 이와같은 네 가지에 대해서 "그것에 대해서는 목숨이 다할 때까지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Vin.I.58)라고 했다. 진기약의 중요성을 알 수 있다.

탁발하여 삶을 영위하는 수행승들은 주는대로 받아 먹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재가자들이 음식을 할 때 남는 음식을 나누어 주기 때문에 가리지 않고 받아 먹는 것이 관행이었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인지 종종 식중독도 일으켰다고 한다. 그래서 필수약을 항상 가지고 다녔는데 율장이나 경장에 종종 등장하는 것이 바로진기약인 것이다.

진기약은 어떤 것일까? 진기약은 주석에 따르면, 소의 오줌에 미로발란 나무의 쓰디쓴 열매를 재어서 썩힌 것이라고 한다. 탁발할 때 음식을 먹다보면 식중독 같은 병이 걸릴 수 있는데 진기약을 사용하면 잘 낫는다고 한다. 그래서 진기약은 출가자의 사대필수품 중의 하나로서 치료제나 강화제로 사용한 것이다.


"
아름다움에 탐닉하여
감관을 수호하지 않고
식사에 알맞은 분량을 모르고
게을러 정진이 없으면
바람이 연약한 나무를 꺽어 버리듯,
악마가 그를 쓰러뜨리리."(Dhp.7)


가르침(Dhamma)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어떻게 이렇게 삶에 들어맞을 수 있을까? 어제 실수한 것은 음식절제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음식에 적당량을 모르고 과식한 것이다. 그결과 속이 불편했다.

밥을 많이 먹지 않는다. 밥 한공기가 고작이다. 아침은 반공기에 지나지 않는다. 소식하다 보니 위의 사이즈가 줄어든 것 같다. 한공기 이상 먹으면 반드시 탈 난다.

어제 해남에서 꿀고구마가 도착했다. 맛을 보기 위해서 하나를 에어프라이어로 구웠다. 이미 포만한 상태에서 하나를 다 먹었다. 이로 인하여 탈 났다.

오늘 새벽 어제 저녁 있었던 일을 복기해 보았다. 과식했던 것이 주된 이유가 된다. 버리기 아까워서 먹은 것도 해당된다. 가장 근본적으로는 탐욕이다. 음식절제가 안된 것이다. 음식에 적당량을 모른 결과 악마에게 정복당한 것이다.

부처님 가르침에 따르면 다섯 악마가 있다. 주석에서는 (1) 신으로서의 마라(devaputta-m
āra), (2) 번뇌로서의 마라(kilesa-māra), (3) 오온으로서의 마라(khandha-māra), (4) 업으로서의 마라(kamma-māra), (5) 죽음으로서의 마라(maccu-māra), 이렇게 다섯 종류의 악마가 있다. 이 중에서 번뇌로서의 마라, 오온으로서의 마라, 업으로서의 마라는 자신과 관련이 있다. 자신의 내면에 악마가 있다는 것이다.

오온이 왜 악마일까? 이는 경전적 근거가 있다. 먼저 부처님은물질도 느낌도 지각도, 형성과 또한 의식도 내가 아니고 나의 것이 아니니 이렇게 거기서 탐착을 벗어나네”(S4.16)라고 말씀 했다. 오취온, 오온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나라는 것이다.

우리는 오취온적 존재이다. 오온에 집착되었기 때문에 오취온적 존재로 태어난 것이다. , , 치로 세팅 되어서 태어난 것이다. 그래서 부처님은 이렇게 탐착에서 벗어나 안온하게 모든 얽매임을 뛰어넘은 자는 어떠한 곳에서 찾더라도 악마의 군대가 발견할 수 없네.”(S4.16)라고 했다. 이는 무엇을 말하는가? 오온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났을 때 악마의 군대에서 벗어났음을 말한다. 결국 오온이 악마인 것이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오취온이 악마라는 말이다.

오온에 집착된 존재는 악마의 군대에게 정복당한 것이다. 부처님은 악마의 군대와 싸웠다. 요즘 매일 새벽 암송하고 있는 빠다나경이 그것이다. 경에서는 "내게는 패해서 사는 것보다는 싸워서 죽는 편이 오히려 낫다.”(Stn.440)라고 했다.

 


부처님은 악마의 군대와 싸워서 이겼다. 악마의 군대, 마라세나는 어떤 것일까? 이는 빠다나경에서 명확하게 드러난다. 부처님이 "그대의 첫 번째 군대는 욕망, 두 번째 군대는 혐오라 불리고"(Stn.438)라고 말한 것으로 알 수 있다.

악마의 군대에는 모두 팔군이 있다. 그것은 욕망(k
āmā), 혐오(arati), 기갈(khuppipāsā), 갈애(tahā), 권태와 수면(thīnamiddha), 공포(bhīru), 의심(vicikicchā) 그리고 위선과 고집(makkho thambho)을 말한다. 마음의 오염원이 바로 악마의 군대인 것이 분명하다.

부처님은 마음 내부에 있는 오염원과 싸웠다. 이는 번뇌로서의 마라(kilesa-m
āra)에 해당된다. 번뇌로 번역된 낄레사는 오염원이라고도 하는데 열 가지가 있다. 이는 탐욕(lobha), 성냄(dosa), 미혹(moha), 자만(māna), 사견(diṭṭhi), 의심(vicikicchā), 해태(thīna), 들뜸(uddhacca), 도덕적 부끄러움 없음(ahirika), 도덕적 두려움 없음(anottappa)을 말한다. 부처님은 이와같은 열 가지 오염원, 즉 열 가지 악마의 군대와 싸워서 이긴 것이다.

음식은 탐욕과 관련 되어 있다. 탐욕으로 먹을 때 탈 나게 되어 있다. 위의 한계를 무시했을 때 괴로움이 따른다. 이는 다름아닌 맛에 대한 갈애에 따른다.

맛에 대한 갈애가 일어 났을 때 악마에게 정복당한 것이나 다름 없다. 악마는 내면에도 있는 것이다. 열 가지 오염원도 악마이고, 오온에 대한 집착도 악마이다. 더 나아가 세세생생 윤회하게 하는 '업으로서의 마라(kamma-m
āra)'도 악마에 해당된다.

악마는 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다. 악마는 자신의 마음에도 있다. 악마는 번뇌로서 악마도 있고, 오온으로서 악마도 있고, 업으로서 악마도 있다. 파우스트에서처럼 과도한 성취를 추구하는 것도 악마에게 정복당한 것에 해당된다.

부자나 빈자나 하루 세 끼 먹는다. 부자라고 하여 그 부에 걸맞게 열 끼, 백 끼 먹는 것은 아니다. 그대신 다른 것으로 보상이 이루어질 것이다. 그것은 과소비로 나타난다.

부자는 가난한 자들이 할 수 없는 것을 하는 사람들이다. 남들이 삼겹살 먹을 때 한우를 먹고, 남들이 소주를 마실 때 와인을 마시고, 남들이 국내여행을 할 때 해외여행을 가는 것이다. 더 나아가 도박을 하고 마약을 하게 된다. 음식에 대한 절제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탐욕에 대한 절제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악마의 군대에게 정복당하게 될 것이다.

진기약과 같은 십년환을 먹어서일까 속이 편안하다. 문제는 과식이었다. 위는 작은데 무리하게 밀어 넣은 것이 탈 난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몸은 매우 민감한 것이다.

음식에 적당량을 알아야 한다. 음식절제가 이루어져야 한다. 그래서 부처님은 음식절제는 감관의 수호와 항상 깨어 있음과 함께 깨달음의 기본이 되는 세 가지 원리중의 하나라고 했다. 결국 늘 사띠하는 것이다.

사띠에 여러가지 뜻이 있지만 근본적으로 기억을 의미한다. 당연히 부처님 가르침을 기억하는 것도 사띠에 해당된다. 가르침을 실천하여 체험을 했다면 이것도 사띠에 해당된다. 법의 맛을 알았을 때 법의 맛을 기억하는 것도 사띠인 것이다.

어제 탐욕이라는 악마와 싸워 패배 했다. 과식으로 몸이 불편 했을 때 "식사에 알맞은 분량을 모르고"(Dhp.7)라는 가르침이 크게 다가왔다. 항상 부처님 가르침을 기억한다면 악마에게 정복당할 일이 없을 것이다.

몸은 악기와도 같은 것이다. 지나치면 탈 난다. 비파줄은 너무 팽팽하지도 않고 느슨하지도 않게 해야 소리가 잘 난다. 조화롭게 해야 소리가 잘 나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몸도 조화로워야 편하다. 그래서 사띠해야 한다.

사띠는 마치 음식에 양념 치는 것과 같다. 사띠는 조정자와 같다. 사띠를 하면 늘 조화롭다. 부처님의 말씀을 늘 기억하고 법의 맛을 기억 했을 때 몸과 마음은 편안해질 것이다. 이제 다시 악마에게 정복당하지 않으리.


2022-10-08
담마다사 이병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