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떠나는 여행

타인은 나를 비추어 보는 거울

담마다사 이병욱 2022. 10. 18. 08:29

타인은 나를 비추어 보는 거울

 


전화를 받으면 이름이 뜬다. 스마트폰 주소록에 이름을 등재해 놓았기 때문이다. 이름만으로 부족해서 상호도 써놓는다. 그것도 부족해서 그 사람의 특징도 써놓는다. 스마트폰시대에 볼 수 있는 현상이다.

전화 벨이 울렸을 때 "오랜만입니다."라고 말한다. "여보세요?"라고 말하면 실례가 된다. 번호가 뜨는 전화나 가능한 것이다. 한번이라도 만난적 있다면 그 사람의 특징과 함께 주소록에 등재해 놓는다. 천명 가까이 되는 것 같다.

그사람하고 거래한지 꽤 오래 되었다. 오륙년 된 것 같다. 어쩌다 한번 연락이 와서 일을 해주었다. 반갑게 응대했다. 그렇다고 새로운 일을 맡기는 것은 아니다. 수정하는 것이라고 했다. 사무실로 찾아 오겠다고 했다.

그사람은 나이가 많다. 처음 만났을 때 60대처럼 보였다. 지금은 거의 70이 넘은 것 같다. 그럼에도 현역에서 일하는 것을 보면 불가사의하다. 그렇다고 큰 일을 하는 것이다. 소일거리 하는 것 정도로 보인다.

오랜만에 보니 세월이 흘렀음을 알 수 있다. 마치 도인처럼 수염을 길렀는데 노화현상이 역력하다. 그 나이에 일을 하는 것이 안쓰러워 보였다. 혹시 나도 젊은 사람들에게 안쓰러운 이미지로 보이지 않을까 염려되었다.

이 일을 언제까지 해야 할까? 상대하는 사람들 대부분이 젊은 사람들이다. 이공(20)도 있고 삼공(30)도 있다. 그들 앞에서 실수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그들은 그들 또래를 상대하고자 할 것이다. 그럼에도 아버지뻘 되는 사람과 상대하려니 부담 있을 것이다. 가장 좋은 것은 그들 연령대의 직원을 두는 것이다. 그러나 직원을 두고 일할만한 처지가 못된다. 그러다 보니 2030들과 함께 일할 수밖에 없다.

나보다 나이 든 사람을 접하니 나 자신을 비추어 보는 거울처럼 보였다. 나이 들어서까지 이런 일을 한다는 것이 어울리지 않는 것 같다. 은퇴해서 조용히 쉬며 사는 것이 맞을 것도 같다. 그래야 좀더 어른스러울 것 같다. 아직도 현업에서 일하는 모습이 젊은 사람들에게는 안쓰럽게 보일 것임에 틀림없다.

그사람이 요청한 것은 작은 수정이었다. 그러나 원본파일이 없다. 수년전 랜섬에 걸려서 모두 파괴되어 버렸다. 새로 해야 한다. 그러나 시일이 문제가 되었다.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궁리를 하면 문제가 해결된다. 쪽보드를 만들어 주기로 했다. 설계하는데 한시간도 걸리지 않는다. 무상으로 해 준다고 말했다. 그러나 내심 보상을 기대했다. 아무리 간단한 것이라도 일은 일인 것이다. 최소한 점심값 이상은 바랬다. 그러나 그런 기대는 여지없이 깨졌다. 그 사람은 "감사합니다."라는 말 한마디로 끝냈다.

나이가 들수록 베푸는 삶을 살아야 한다. 아주 작은 것이라도 베풀고자 할 때 감동받는다. 그럼에도 나이 들었다고 권위만 세우려고 한다면 꼰대 소리 들을 것이다.

그사람을 만나고서 두 가지를 생각하게 되었다. 하나는 나이 들어 현역으로 있는 모양새가 그다지 좋아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나이에 걸맞게 유유자적하는 삶이 필요할 것 같다. 또 하나는 베푸는 삶이다. 나이가 들어 욕망으로 산다면 보기가 좋지 않다. 나이에 걸맞게 베푸는 삶이 요청된다. 그사람을 보면서 나도 다른 사람에게 인색하게 하지 않았는지 생각해 보았다.

일을 했으면 보상이 따라야 한다. 비즈니스는 주고 받는 것이다. 받기만 하고 주는 것이 없으면 거래가 되지 않는다. 자선사업단체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간단한 수정에 대해서 무상으로 해준다고 말했지만 보상을 바랬다. 최소한의 비용이다. 만약 내가 이일을 해주지 않았다면 어떻게 됐을까? 커다란 곤경에 처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감사하다'는 말로 끝낸다면 비즈니스의 기본이 되어 있지 않다.

말이라도 보상을 언급했다면 그만두라고 했을 것이다. 그사람의 행위를 보면서 나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다. 나도 그런 적이 없는지 생각해 본 것이다. 타인은 나를 비추어 보는 거울이다.

 


2022-10-16
담마다사 이병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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