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의 적 폭탄음 무개차
"부릉부릉 우당탕퉁탕" 무개차의 폭탄음이 요란하다. 안양로에서 정지해 있다가 신호가 바뀜과 동시에 쏜살같이 달아난다. 마치 분노한 자가 큰소리를 고래고래 지르는 것 같다. 사람들은 무개차가 저 멀리 달아날 때까지 혀를 차며 쳐다 본다. 마음속으로 분노가 일어났을 것이다.
종종 길거리에서 무개차를 본다. 거의 대부분 젊은 사람들이 몰고 다닌다. 그들은 무슨 돈이 그렇게 많아 고급 외제차를 타고 다니는 것일까? 그들은 어떤 배경이 있길래 안하무인 격으로 거칠게 차를 모는 것일까?
한번 부정적 이미지가 형성되면 좀처럼 바꾸기 힘들다. 무개차의 폭탄음 소리를 들었을 때 모든 무개차는 그럴것이라고 생각한다. 무개차에 타고 있는 자들은 재벌2세나 3세 등 부자집 자제들로서 망나니같은 자들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소음에 민감하다. 대로변 아파트에 살다 보니 갖가지 자동차 소음에 시달린다. 아파트가 이중 유리창으로 되어 있기 때문에 덜하지만 폭탄음은 피해갈 수 없다. 대체 폭탄음은 어떤 차종이 내는 것일까?
대부분 차는 폭탄음을 내지 않는다. 대로변에 수많은 차가 지나가지만 견딜만한 이유가 된다. 그러나 요란한 폭탄음이 나면 불선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하다. 대체 어떤 것들일까? 어느날 대로에서 관찰해 보니 폭탄음차는 오토바이, 견인차가 주범임을 알 수 있었다. 특히 오토바이가 주범이다.
요즘 배달의 시대이다. 배달은 초분을 다툰다. 그러다 보니 정지했다가 출발할 때 요란한 폭탄음 소리를 낸다. 이와 같은 폭탄음은 이중 유리창도 뚫는다. 동시에 불쾌를 야기한다. 이보다 더한 것이 무개차 폭탄음이다.
폭탄음을 내는 오토바이나 견인차, 무개차는 공공의 적이다. 사람들에게 불쾌를 야기 했다면 불선업을 짓는 것이 된다. 업의 법칙은 피해갈 수 없다. 반드시 불선업의 과보가 따를 것이다. 특히 무게차가 그렇다.
주는 것 없이 받기만 하는 자들이 있다. 무개차를 타는 자들이 그렇다고 볼 수 있다. 재벌 2세 또는 3세거나 돈 많은 부자집 자식들일 것이다. 부모가 부자이기 때문에 돈을 물쓰듯 쓰는 자들이라고 볼 수 있다.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폭탄음을 내며 내빼듯 도망 갔을 때 혐오를 야기한다.
부자들은 불로소득자이기 쉽다. 정상적인 노력으로는 큰 부를 이루기 어렵다. 돈이 돈을 벌기 때문에 불로소득이 된다. 그런 부는 사회가 있기 때문에 형성된 것이다. 이 사회를 떠나서 부가 형성될 수 없다.
부동산 투기나 주식투기로 부를 이룬 불로소득자들이 있다. 정당한 부가 아니기 때문에 부끄러움과 창피함을 알아야 한다. 그럼에도 부를 누리려고만 한다면 총에 맞아 죽을 것이다. 이 세상에 눈총보다 더 무서운 것이 없기 때문이다.
폭탄음을 내며 질주하는 자들은 자신의 부가 아닐 것이다. 부모의 돈이다. 한평생 자신의 힘으로 벌지 못한 자가 쓰기만 하는 세월, 즐기기만 하는 세월을 보냈다면 어떻게 될까? 아무런 공덕을 지은 것이 없으니 선처에 나기 힘들다. 빛에서 어둠으로 가는 사람이 될 것이다.
거리에서 좌판노점상을 본다. 특히 버스정류장에서 야채를 파는 할머니들을 본다. 그들은 주기만 하는 사람들 같다. 돈 주고받기를 빼면 오로지 주는 사람처럼 보인다는 것이다. 돈 주고 받기를 빼면 식당 주인도 주기만 하는 사람 같고, 구두닦이도 닦아 주기만 하는 사람처럼 보인다.
돈 주고받기를 빼면 부자들은 받기만 하는 사람, 가져가기만 하는 사람처럼 보일 것이다. 또한 서비스만 받는 사람처럼 보일 것이다. 주기만 하는 사람은 어둠에서 빛으로 가는 사람이 되기 쉽고, 받기만 하는 사람은 빛에서 어둠으로 가는 사람이 되기 쉽다.
이 젊음과 건강과 이 삶은 항상 그대로 유지 되지 않는다. 젊음은 늙음에 종속되고, 건강은 질병에 종속되고, 삶은 죽음에 종속되고 만다. 부자라고 해서 천년만년 가지 않는다.
부는 털리는 것으로 끝난다. 초기경전에 따르면 재물은 불에 타버려서 사라지고, 도둑이 가져가서 사라지고, 왕이 몰수해 가서 사라지고, 악의적 상속자가 빼앗아가서 사라진다. 부는 일시적 소유에 지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부를 즐기는데만 쓴다면 빛에서 어둠으로 가기 쉽다.
폭탄음을 내며 달아나는 무개차가 있다. 사람들에게 불쾌를 야기 했다면 운명은 정해져 있는 것이나 다름 없다. 사람들에게 기쁨을 주기는 커녕 불선심을 자극했다면 커다란 불행이 닥칠지 모른다. 그래서 부처님은 감각적 쾌락의 욕망에서 재난을 보라고 했다. 폭탄음 무개차에서 불쾌와 연민이 교차한다.
2022-10-18
담마다사 이병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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