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잘못 뽑은 죄로
가만 있을 수 없었다. 오늘 토요일 오후 용산으로 향했다. 이태원역을 목표로 했다. 한번 가봐야 할 것 같았다. 도대체 어떤 구조이길래 그토록 많은 사람이 죽었을까?
지하철에 젊은 여자들이 많다. 머리가 긴 것이 전형적인 한국의 딸들이다. 측은한 생각이 들었다. 같은 또래 애들이 죽었다.
나이 든 사람, 노인들의 모습이 추해 보였다. 젊은이들은 피어 보지도 못하고 죽었는데 천수를 누리고 있다고 생각하니 은근히 부아가 치밀었다. 어른들, 기득권 세력들의 이기심 때문에, 공명심에 희생당한 것 같았다.
지하철을 탄지 한시간만에 현장에 도착했다. 현장은 의외로 좁다. 어떻게 이 거리에 10만명이 모였을까? 도저히 상상이 되지 않는다. 그야말로 발 디딜 틈도 없이 포개져 있다면 가능할 것이다.
분위기는 스산했다. 오후 4시 햇살은 강렬했지만 참사가 난 골목에는 아우성과 비명이 들리는 듯하다. 비좁은 통제구역 안에는 유품이 어지러이 널려 있다.
해밀턴호텔 앞에는 추모 꽃다발로 가득하다. 추모의 글도 수없이 붙어 있다. 그러나 사진이 없다. 이름도 없다. 누가 죽었는지 알 수 없다. 다만 외국인 사진은 보인다. 아마 친구나 지인이 가져다 놓았을 것이다.
이태원 할로윈 사태는 사고인가 참사인가? 정부에서는 참사대신 사고라고 지침을 내렸다. 희생자 대신에 사망자라고 했다. 그래서일까 곳곳에 국힘 플레카드를 보면 이태원 사고라고 표기 되어 있다. 책임을 회피하기 위한 것이다. 그런데 현장에서는 참사라고 했고 희생자라고 했다. 현장에서까지 사고라고 말 할 수 없었을 것이다.
추모의 글을 보면 울분으로 가득한 것도 있다. 글을 보니 "미안해. 대통령 잘못 뽑은 죄. 너희들이 희생됐다. 진심으로 사죄한다. 2022-11-05"라고 쓰여 있다. 참사가 발생한 것에 대해 대통령을 잘못 뽑은 것이라고 했다. 이 사회의 시니어가 대리사과한 것으로 본다.
추모의 글을 보면 미안하다는 말이 많다. 지켜 주지 못해서 미안한 것이다. 세월호 때 이런 말이 많았다. 8년이 지난 후에 똑 같은 말이 반복되고 있다. 그토록 혹독한 시련을 겪었음에도 똑같은 일이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역사는 발전하는 것일까? 봉건제에서 민주제로 이행 되어 왔기 때문에 역사가 발전적으로 굴러 온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비관적이다. 아무리 제도를 잘만들어 놓아도 인간에게 갈애와 탐욕이 있는 한 무용지물이 된다. 미국에서 트럼프가 출현한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중국에서는 시진핑이 장기집권에 들어 갔다. 한국에서는 자격이 없는 자가 대통령이 되었다.
인간에게 탐욕이 남아 있는 한 똑같은 일이 반복된다. 욕망을 소멸한 사람들만의 세상이 오지 않는한 욕계에서 낙원을 만들기 힘들다. 어떻게 해야 할까? 욕망의 세계로부터 벗어나야 할 것이다.
지하철을 타고 가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 세상은 원한으로 가득한 세계라고. 왜 그런가? 억울하게 죽은 사람들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이번 만은 아닐 것이다. 유사 이래 이 땅에서는 수많은 억울한 죽음이 있었다. 원한 맺힌 땅이라 해야 할 것이다. 원귀들의 땅이라고 볼 수 있다.
"수행승들이여,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대들이 오랜 세월 유전하고 윤회하는 동안 사랑하지 않는 사람과 만나고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지면서, 비탄해하고 울부짖으며 흘린 눈물의 양과 사대양에 있는 물의 양과 어느 쪽이 더 많겠는가?”(S15.3)
2022-11-05
담마다사 이병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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