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흙속의연꽃

"이렇게 통제 했으면 사고 안났을꺼 아냐?" 태평로 추모제 현장에서

담마다사 이병욱 2022. 11. 6. 07:59

이렇게 통제 했으면 사고 안났을꺼 아냐?” 태평로 추모제 현장에서

 


역사는 반복되는가? 세월호에서 끝나는 줄 알았다. 또 다시 추모를 하고 추모제가 열렸다. 이번에는 이태원 할로윈 참사에 대한 것이다.

이태원은 비극의 발생지로 침울 했다. 무거운 공기를 느꼈다. 사람들은 한결같이 표정이 어두웠다. 어떻게 이렇게 비좁은 길에서 그 많은 젊은이들이 죽었을까?’에 대한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해밀턴 호텔 작은 길은 세월호의 맹골수도와 같은 곳이다.

 


이태원에서 시청으로 이동했다. 시청에는 합동분향소가 있다. 세월호 때도 있었다. 대통령이 매일 아침 분향하는 곳이다. 한번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매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마치 매일 천도재 하는 것 같다. 한번 했으면 됐지 매일, 그것도 거의 일주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누가 시킨 것일까?

시청분향소는 관에서 만든 것이다. 그래서일까 사람들이 그다지 많은 편은 아니다. 사람들이 무더기를 이루어 분향 하는데 금방금방 한다. 사람들 긴장감도 덜한 것 같다. 분향소에는 사진도 없고 이름도 없다. 꽃만 있다. 사람들은 꽃들에게 조의를 표하는 것 같다. 관제분향소의 한계를 보는 것 같다.

 


분향소 문구를 보았다. 이태원 참사 희생자를 추모한다는 문구이다. 처음에는 '사고'라 했고 '사망자'라고 했을 것이다. 여론이 좋지 않자 도중에 '참사' '희생자'로 바꾼 것 같다. 근조라는 문구도 한문으로 크게 써 있다. 그들의 방침대로라면 아무런 글씨도 없어야 한다. 근조리본을 뒤집어 달라는 공문이 이를 말해준다.

시청분향소에서 분향하지 않았다. 관제분향소에서 추모할 마음이 나지 않았다. 그대신 추모제가 열리는 태평로로 향했다. 태평로는 시청 남쪽사거리에서 남대문에 이르는 길이다.

 


태평로에 사람들로 가득했다. 오후 5시부터 추모제가 시작 되었는데 차로 반이 할당되었다. 경찰이 집회를 불허할 것이라고 해서 충돌을 우려 했다. 사람들이 압도적으로 많으니 우려한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경찰들은 폴리스라인을 설치하고 통제했다. 경찰은 자극하지 않으려는 듯 했다. 안전에 우선을 두는 것 같았다. 사람들이 밀려 들면 폴리스라인을 확장해주곤 했다. 처음 두 개 차로 였는데 갈수록 확장되어 네 개 차로가 되었다. 시청 남쪽 사거리에서부터 남대문 가까이에 이르기 까지 사람들로 가득했다.

 


이태원 할로윈 참사 추모제는 4개 종단 의식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원불교부터 시작하여 차례로 불교, 천주교, 개신교 순으로 45분 가량 진행되었다.

 


태평로 추모제에서 불교는 없었다. 왜 그런가? 4개 종단 중에서 가장 짧게 했기 때문이다. 어느 스님이 올라와서 반야심경 한번 독경하는 것으로 끝났다. 원불교에서 염불하듯이 여법하게 꽤 오랫동안 진행하는 것과 대비 되었다. 무엇보다 천주교와 개신교와 명확하게 비교 되었다.

어제 11 5일 태평로 추모제에서 불교의 의식을 보면 사람들을 실망시키기에 충분했다. 고작 반야심경 한번 하고 끝난 것이다. 성의가 없는 것처럼 보였다. 광장의 수많은 사람들이 이런 장면을 보고서 어떤 생각이 들었을까? 이럴 때 비속어를 쓰지 않을 수 없다. 한마디로 불자인 것이 쪽 팔렸다.

불교에서는 따로 추모제를 가졌다. 조계사에서 추모제가 열린 것이다. 이른바 관제 추모제라고 볼 수 있다. 아마 자승전총무원장이 시켰을 것이다. 그래서일까 대통령 부부가 참석했다. 대통령은 그 자리에서 사과를 했다. 자승이 멍석을 깔아준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자승은 대선을 앞두고 승려대회를 열었다. 국힘 후보에게 힘을 실어주기 위해서였다. 그래서인지 기호 2번이 당선 되었다. 이렇게 본다면 자승은 윤의 당선에 결정적 역할을 한 것이다. 이번에는 관제 추모제를 열어서 윤 부부의 이미지 세탁을 해준 것이다.

어제 태평로 추모제에서 불교는 없는 것이나 다름 없었다. 그것도 중요도가 세 번째였다. 마치 종교에도 서열이 있는 것 같다. 추모제에서는 개신교, 천주교, 불교, 원불교 순이었다. 추모제에서 불교는 3등 종교에 지나지 않았다.

천주교 신부는 꽤 길게 이야기 했다. 미카엘 신부는 미사를 드리면서 말했다. 목소리에는 힘이 힘이 있었다. 그리고 분노가 실려 있었다. 신부는 "이제 이들을 끌어내야 합니다."라고 말했다. 또한 "윤석열은 퇴진하라!"라고 외쳤다. 4개 종단에서 이렇게 직설적으로 말한 것은 천주교 신부밖에 없었다.

 


개신교 목사도 수위가 높았다. 홍주민 목사는 "왜 죽었는지 모르는데 애도할 수 있습니까?"라며 물었다. 목사는 "이제 교회가 결정적 역할을 해야 될 때 입니다."라고 말했다. 또한 목사는 윤석열 일당을 심판하자고 말했다. 목사는 "이제 다시 원점에 섰습니다."라고 말하면서 촛불이 들불처럼 일어나 태워버리자고 했다.

목사는 기도와 찬송을 했다. 찬송할 때 '주여 함께 하소서'를 불렀다. "오 주여 이제 여기에 함께 하소서"라며 반복했는데 사람들은 숙연해지는 것 같았다.

 


오랫만에 촛불을 들었다. 2016년 광화문촛불이후 6년만이다. 다시는 촛불들 일이 없을 줄 알았는데 또다시 촛불을 든 것이다. 촛불혁명으로 수립된 정부에서 더 잘했더라면 촛불 들 일 없었을 것이다.

문재인 정권이 원망스러웠다. 대체 그들은 주어진 5년동안 무엇을 했었나? 이런 꼴 보자고 그들을 밀어 준 것일까? 차가운 아스팔트 바닥에서 촛불을 든 사람들이 애처로워 보이기도 했다.

후미에서 작은 소란이 있었다. 남대문이 보이는 끝자락이다. 어느 여성 자원봉사자가 흥분한 것이다. 폴리스라인 확장과 관련된 것이다. 경찰은 적극적 대응을 하지 않았다. 사람들 숫자가 적었다면 공권력 행사를 했을 것이다. 그때 어떤 사람이 "이렇게 통제 했으면 사고 안났을꺼 아냐?"라며 버럭 소리 질렀다.

 


태평로 추모제는 5시부터 6시까지 봤다. 다음날 행사 준비 때문에 일찍 자리를 떴다. 사람들은 아스팔트 바닥에 앉아 차분히 경청했다. 지하철 입구에서는 계속 사람들이 쏟아져 들어 왔다. 외국인이 촛불을 들고 있는 것도 봤다. 사람들이 늘어나면 폴리스라인은 계속 확장되어 태평로 전차선을 사용하게 될 것이다.

 


사람들이 분노하기 시작했다. 이전과는 다른 양상인 것 깉다. 4대 종단에서 참여한 것이다. 특히 천주교 움직임이 예사롭지 않다. 이날 천주교 신부는 윤석열 퇴진 등 가장 과격한 발언을 했다. 그리고 천공의 말을 망발이라며 희대의 종교사기꾼이라고 말했다.

 



또다시 촛불을 들었다. 다시는 촛불 들 일이 없을 줄 알았는데 또다시 든 것이다. 역사는 반복되는 것일까? 이태원 참사에서 세월호를 본다. 똑 같은 일이 반복되고 있다.

흔히 역사는 발전한다고 말한다. 요즘 상황을 보면 역사는 후퇴하고 있다. 다시 이명박 박근혜 시절로 회귀한 듯 하다. 그때도 촛불을 들었는데 지금도 들고 있다. 대체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


2022-11-06
담마다사 이병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