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을 외면하는 미학(美學)은
일요일 아침 일터에 가는 길에 낙엽이 뒹군다. 플라터너스 넓적한 잎파리가 인도에 수북하다. 마치 시체를 보는 것 같다.
누가 낙엽 밟는 소리가 좋다고 했는가? 누가 낙엽 태우는 냄새가 좋다고 했는가? 누가 낙엽을 인플레이션 지폐와 같다고 했는가? 그날 10월 29일 이태원에서 젊은이들이 낙엽처럼 널부러져 있었다.
플라터너스 낙엽은 푸대자루에 담겨 있다. 아무렇게나 방치 되어 있다. 생명기능이 끝난 사체자루를 보는 것 같다. 병원 복도에서 흰푸대자루에 담겨 널부러져 있는 수십구의 사체자루를 보는 것 같다.
왜 찔렀지? 왜 쏘았지? 오월 광주의 그날이 오면 대학생들은 그렇게 외쳤다. 노래를 만들어 불렀다. 그러나 왜 찔렀는지, 왜 쏘았는지, 트럭에 싣고 어디 갔는지 밝혀지지 않았다.
죽은 자는 말이 없다. 산 자는 침묵한다. 그들은 그날 밤 왜 그렇게 도로에 널부러져 있었을까? 젊음의 열기가 죽음으로 몬 것일까? 국적불명의 서양 귀신놀이 때문일까? 왜 그날 죽어야만 했을까?
세월호 때 아이들은 살고자 했다. 가만 있으면 틀림없이 구하러 올 줄 알았다. 그러나 구조대는 끝내 오지 않았다. 전국민의 슬픔이 되었다. 아직도 아이들이 왜 죽었는지 모른다.
젊은이들은 왜 죽었을까? 골목 그 비좁은 공간에서 150여명이 죽었다. 사태 파악을 하지 못한 지도자는 뇌진탕으로 죽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세월호 때 여대통령의 상황에 맞지 않는 말이 연상된다.
한번 바닥에 누운 자는 일어날 줄 모른다. 그들은 어디로 갔을까? 죽음의 순간 짧은 일생이 파노라마 쳤을 것이다. 오래 살지 않아 악업은 많지 않았을 것이다. 안전한 나라에서 태어나 천수를 누리기를 바란다.
삶과 죽음은 한순간에 있다. 오늘 살아 있어서 이 세상을 본다. 현실을 외면하는 미학(美學)은 위선이다. 산 자들이 해야 할 일이 있다. 안전한 나라를 만드는 것이다. 정의로운 나라를 만들어야 한다. 살아 남은 자들에게 남겨진 사명이다.
2022-11-13
담마다사 이병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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