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흙속의연꽃

누구도 나의 안전을 보장하지 않는 시대에

담마다사 이병욱 2022. 11. 14. 09:36

누구도 나의 안전을 보장하지 않는 시대에



사람들은 흔히 이런 말을 한다. "사람이 양심이 있어야지."라고. 여기서 양심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국어사전을 찾지 않더라도 어떤 말을 의미하는지 막연하게 알고 있다.

양심은 착한마음을 뜻하는 한자용어이다. 긍정적 언표로 표현 된 것이다. 수행적 용어로 말한다면 빠알리어 '히리'가 된다. 히리는 우리말로 부끄러움을 뜻한다. 아비담마식으로 말한다면 내적 두려움에 대한 것이다.

내적 두려움이 있다면 외적 두려움도 있을 것이다. 이는 빠알리어로 '옷땁빠'라고 한다. 한자용어로는 수치심이라고 하고 우리말로는 창피함이 된다.

양심과 수치심, 히리와 옷땁빠, 부끄러움과 창피함은 같은 말이다. 그래서 다음과 같은 등식이 성립된다.

1)부끄러움=양심=히리(hiri)=慚(참)

2)창피함=수치심=옷땁빠(ottappa)=愧(괴)

악행을 저질렀을 때 양심의 가책을 받는다면 부끄러운 것이다. 그런 부끄러움에 대하여 빠알리어로 히리(hiri)라고 하고, 한자어로는 ‘참(慚)’이라 하고, 또 양심이라 한다. 이렇게 내적으로 스스로 수치심을 느끼는 것을 부끄러움이라 한다.

악행을 저질렀을 때 누군가로부터 비난을 받을 것이다. 또한 언제 발각될지 몰라 두려워할 것이다. 이처럼 외부의 시선을 의식하여 두려워하는 것을 창피함이라 한다. 그래서 창피함에 대한 빠알리어는 옷땁빠(ottappa)라고 하고, 한자어로는 ‘괴(愧)’라 하고, 또 수치심이라 한다.

자신의 행위에 대한 내적 두려움은 부끄러움이고, 자신의 행위에 대한 외적 두려움은 창피함이다. 만일 사람이 부끄러움과 창피함을 모른다면 어떻게 될까?



“수행승들이여, 이와 같은 두 가지 밝은 원리가 있다. 두 가지란 무엇인가? 부끄러움을 아는 것과 창피함을 아는 것이다. 수행승들이여, 이와 같은 두 가지 밝은 원리가 세상을 수호할 수 없다면, 어머니나 이모나 외숙모나 선생의 부인이나 스승의 부인이다라고 정의할 수 없을 것이고, 세상은 염소, 양, 닭, 돼지, 개, 승냥이이처럼 혼란에 빠질 것이다. 수행승들이여, 이와 같은 두 가지 밝은 원리가 세상을 수호하므로, 어머니나 이모나 외숙모나 선생의 부인이나 스승의 부인이다라고 정의할 수 있는 것이다.” (It.36)



부끄러움과 창피함을 모르는 사람은 짐승같은 사람이다. 왜 그런가? 이는 경에서 "어머니나 이모나 외숙모나 선생의 부인이나 스승의 부인이다라고 정의할 수 없을 것"이라고 한 것에서 알 수 있다.

양심과 수치심이 없는 사람은 도덕적 관념이 없는 사람이다. 그래서 "염소, 양, 닭, 돼지, 개, 승냥이이처럼"처럼 "어머니나 이모나 외숙모나 선생의 부인이나 스승의 부인"을 취하는 것이라고 했다.

부끄러움과 창피함을 모르는 사람들로 가득하다면 이 세상은 어떻게 될까? 약한 자는 먹히고 강한 자가 잡아먹는 약육강식의 세상이 될 것이다. 그래서 부처님은 부끄러움을 아는 것과 창피함을 아는 것에 대하여 이 세상을 수호하는 두 가지 원리라고 했다.



“남을 화내게 하고, 이기적이고,
악의적이고, 인색하고, 거짓을 일삼고,
부끄러움과 창피함을 모르는 사람이 있다면,
그를 천한 사람으로 아십시오.” (stn133)



수타니파타에 있는 가르침이다. 부끄러움과 창피함을 모르는 것에 대하여 천한 사람이라고 했다. 그런데 천한 사람은 양심과 수치심이 없기 때문에 "남을 화내게 하고, 이기적이고, 악의적이고, 인색하고, 거짓을 일삼는다."는 것이다.

종종 뉴스에서 친딸을 성폭행 했다는 소식을 접한다. 사람들은 짐승만도 못한 사람이라고 비난할 것이다. 그렇다면 양심이 마비되고 도무지 수치심을 모르는 자들이 이 사회의 지도자가 되면 어떻게 될까?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의 시대가 되어 혼란에 빠질 것이다. 강한 자가 약한 자를 잡아 먹는 약육강식의 세상이 되기 때문에 누구도 나의 안전을 보장해 주지 않는다. 각자도생해야 한다.

어떤 이는 에스엔에스상에 불만을 토로 한다. 그는 현정부의 실정을 거친 표현으로 비판하면서 "니미럴"이라는 말로 마무리 한다. 이런 태도는 바람직 하지 않다. 스스로 품위를 손상하는 말이다. 그럼에도 이렇게 말하는 것은 어떤 이유일까?

비속어 "니미럴"이라는 말은 "니기미"라는 말과 같다. 모두 어머니와 붙어 난 자식을 뜻한다. 개와 같은 축생에서나 볼 수 있다. 현정권에 대하여 부끄러움과 창피함을 모르는 약육강식의 축생집단으로 본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또 다시 야만의 시대가 되었다. 정의롭지 않은 자들이 정권을 잡았을 때 짐승의 시대가 되지 않을 수 없다. 야만의 시대에 살아남으려면 각자도생해야 한다. 그리고 깨어 있어야 한다.


부끄러움(양심)과 창피함(수치심)은 우리 사회를 지탱하는 두 개의 기둥과도 같다. 사찰순례 하다보면 일주문을 보게 된다. 어느 정도 규모가 있는 중급 이상 사찰에서 볼 수 있다. 그런데 일주문은 기둥 두 개로 지탱된다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이 세상을 지탱하는 일주문과 같은 선법은 무엇일까? 그것은 부끄러움과 창피함을 아는 것이다.

양심과 수치심이 무너지면 세상도 무너진다. 야만의 시대를 물리치려면 유권자의 현명한 판단이 있어야 한다. 오로지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자신의 기득권 유지를 위해서 정의롭지 않은 집단을 선택 했을 때 짐승의 시대가 된다.



“수행승들이여, 뭇삶들은 세계에 따라 관계를 맺고 어울린다. 믿음이 없는 자는 믿음이 없는 자와 관계를 맺고 그들과 어울린다. 부끄러움을 모르는 자는 부끄러움을 모르는 자와 관계를 맺고 그들과 어울린다. 창피함을 모르는 자는 창피함을 모르는 자와 관계를 맺고 그들과 어울린다. 배움이 없는 자는 배움이 없는 자와 관계를 맺고 그와 어울린다. 게으른 자는 게으른 자와 관계를 맺고 그들과 어울린다. 새김이 없는 자는 새김이 없는 자와 관계를 맺고 그들과 어울린다. 지혜롭지 못한 자는 지혜롭지 못한 자와 관계를 맺고 그들과 어울린다.”(s14.17)



2022-11-14
담마다사 이병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