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후기

지하철노선도와 강리도

담마다사 이병욱 2022. 11. 25. 21:27

지하철노선도와 강리도

 


꿈은 이루어졌다. 오늘 오후 택배로 강리도를 받았다. 그제 주문한 것이다. 실사 도면이다. 캔버스천에 실사한 것으로 오돌토돌한 것이 천의 느낌이 난다. 테두리는 비단 문양을 넣었다. 족자 형태이다.

강리도는 본래 실사이즈는 가로가 170센티가량 된다. 세로는 150센티가량 될 것이다. 벽에 걸어 놓기는 너무 크다. 가로를 110센티로 하고, 세로를 104센티로 하여 주문 했다. 위와 아래 그리고 좌우에 비단 문양을 넣어 고급스럽게 보이도록 했다. 족자 모양이다. 족자닷컴에 의뢰했다.

이번에 족자 형태로 만든 강리도는 1480년대 모사된 것이다. 오리지널 강리도는 1402년에 제작 되었다. 그러나 오리지널 강리도는 사라졌다. 그 대신 1480년대 모사된 강리도가 류코쿠 대학에 보관되어 있다. 이를 류코쿠본이라고 한다.

 


류코쿠본 강리도는 우리 선조들이 제작한 것이다. 어떤 연유로 일본으로 건너 갔는지 알 수 없다. 인진왜란 때 약탈해 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현재 강리도는 네 종류의 모사본이 있다. 류코쿠본, 혼코지본, 텐리대본, 혼묘지본이다. 오리지널 강리도에서 모사 되었기 때문에 비슷비슷하다. 한국이 크게 그려져 있는 것이 특징이다.

네 종류의 강리도에서 류코쿠본이 가장 오래 되었다. 그리고 가장 아름답다. 이에 대하여 '1402 강리도'의 저자 김선흥 선생은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류코쿠대학 소장본은 가장 오래된 것이지만 보존상태가 양호하며 고색창연한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근래에 일본에서 디지털본을 만들었는데, 아닌게 아니라 장구한 세월을 머금은 아름다움으로 은은히 빛난다."(1402 강리도, 44쪽)

 


류코쿠본 강리도 디지털본은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에 전시되고 있다. 이에 대하여 김선흥 선생은 고색창연한 아름다움이라고 했다. 더구나 은은하게 빛난다고 했다. 그런 강리도를 마주하고 있다.

어렸을 때부터 지도보기를 좋아 했다. 사회과부도에 있는 지도책을 보면 가슴이 뛰었다. 미지의 세계는 어떤 곳일까 궁금해 했다. 자연스럽게 세계사에 대해서도 관심 갖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지리와 세계사 과목은 거의 만점을 받았다.

고지도도 관심 있었다. 90년대 초반 프랑크푸르트 마트에서 고지도를 여러 장 샀다. 대항해 시대 고지도로 15-16세기 지도를 말한다. 액자로 만들어 거실에 걸어 놓았다.

세계고지도는 유럽 사람들이나 만든 것인줄 알았다. 그런데 놀랍게도 우리나라에서도 세계고지도를 만들었다는 사실이다. 작년 김선흥 선생이 오마이뉴스에 기고한 것을 보고 알았다. 조선이 건국된지 10년만인 1402년에 제작된 '혼일강리역대국도'를 말한다. 줄여서 강리도라고 한다.

강리도는 유럽에서 대항해시대가 시작되기도 전에 작성되었다. 놀랍게도 아프리카의 모습이 오늘날 보는 것과 유사한 형태로 그려져 있다. 더구나 유럽도 그려져 있다. 그리고 전세계 도시이름이 빼곡히 적혀 있다. 그래서 역대국도라고 한다.

우리선조는 어떻게 세계지도를 만들게 되었을까? 이는 13-14세기 팍스몽골리카와 관련 있다. 동서양이 서로 교류함에 따라 아랍의 지도도 우리나라로 흘러 들어오게 되었을 것이다. 여러 지도를 모아서 하나의 세계지도를 만든 것이다.

우리나라에는 세계적인 문화유산이 많다. 그러나 강리도는 아직 알려져 있지 않다. 최근에야 알려졌다. 그런데 네 종류의 모사본은 모두 일본에 있다는 사실이다. 아마 이런 이유로 잘 알려져 있지 않은 것 같다.

강리도는 한국이 자랑할 수 있는 세계적인 문화유산이다. 디지털 시대를 맞이 하여 고색창연한 강리도를 마주하게 되었다. 류코쿠본이 비록 1402 강리도의 모사본이기는 하지만 1480년대에 모사 되었기 때문에 540년 된 것이다. 비단에 그려진 것으로 가로폭만 170센티에 이른다.

 


고색창연하게 은은하게 빛나는 강리도를 족자로 만들었다. 가로가 110센티로 본래 사이즈보다 작지만 글자는 보인다. 돋보기로 보면 윤곽이 나타난다. 이집트 파로스등대도 보이고 무등산도 보인다.

 


강리도는 한국이 지나치게 크게 그려져 있다. 중화주의에 도전하는 것처럼 보인다. 인도는 어디에 붙어 있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작다. 일본은 바다 저쪽 귀퉁이에 쳐박혀 있다. 한반도의 십분의 일도 안되는 사이즈이다.

 


강리도는 실측한 것이 아니다. 그렇다면 왜 이렇게 어떤 지역은 크게 그리고 또 어떤 지역은 작게 그렸을까? 한정된 공간에 미지의 세계를 다 표현할 수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이에 대해서 '1402 강리도'의 저자 김선흥 선생은 이렇게 설명했다.

"강리도는 독자적인 방식으로 천하를 재구성한 것이므로 각 지역의 산술적 크기에 속박되지 않았던 것이다. 이런 면은 전근대적이라 할 수도 있겠지만, 수학적 정확성을 가치의 척도로 삼지 않은 포스트모더니즘 또는 해체주의와 상통하는 특징으로 볼 수 있다."(1402 강리도, 105쪽)

저자는 강리도의 언밸런스에 대하여 일종의 포스트모더니즘 또는 해체주의로 보았다. 마치 교통수단 노선도를 연상케 한다.

전철노선도는 본래 실측을 바탕으로 해야 할 것이다. 실제로 지도에 전철노선도를 표기해 놓은 것도 있으나 거의 대부분 기능위주로 되어 있다. 방향만 맞게 표현되어 있고 정거장은 거리와는 무관하다.

지하철노선도는 실측과 무관하다. 버스노선도 이와 다르지 않다. 이와 같은 노선도도 일종의 포스트모더니즘 또는 해체주의라고 볼 수 있다. 강리도도 이와 다르지 않다.

 


지금으로부터 30년 전에 유럽에서 사온 고지도를 아파트 거실에 걸어 두었다. 서양화나 동양화, 또는 서예 작품보다 더 가치 있는 것으로 보았다. 그런데 놀랍게도 우리나라에서 1402년에 세계지도를 만들었다는 사실이다. 그것도 전철이나 지하철, 버스 노선도를 보는 것처럼 해체주의적 기법을 사용했다.

1402 강리도를 족자형태로 만들어 사무실 벽에 걸어 두었다. 고색창연하고 은은하다. 손님이 오면 돋보기를 이용하여 보여 주면서 설명하려고 한다. 꿈은 이루어졌다.

2022-11-25
담마다사 이병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