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흙속의연꽃

폴론나루와 폐허에서

담마다사 이병욱 2022. 12. 14. 08:53

폴론나루와 폐허에서

백문이 불여일견이라고 했다. 백번 천번 듣고 읽는 것보다 한번 보는 것만 못하다. 여행이 그렇다. 현장에서 직접 체험한 것과 읽은 것과는 차이가 있다.

스리랑카 성지순례 둘째날 오후에는 폴론나루와로 갔다. 미힌탈레에서 이동한 것이다. 이동하다 보니 지대가 점점 높아져 가는 것 같았다. 폴론나루와는 중부의 내륙 지대가 높은  곳에 있었던 것이다.

폴론나루와에 가려면 입장료를 내야 한다. 외국인에게는 25불을 받는다. 시기리야와 함께 25불 받는 곳은 스리랑카에서 딱 두 곳뿐이라고 한다.

입장료를 지불하자 전문 가이드가 붙었다. 그는 툭툭을 가지고 있었다. 툭툭을 타고 중세도시의 유적을 둘러 보는 것이다.

툭툭에는 무려 네 명 탔다. 뒷좌석에는 운전기사 가미니와 김형근 선생과 내가 탔다. 서로 엉덩이를 부딪칠 정도로 비좁았다. 그럼에도 툭툭은 힘이 좋았다. 거침없이 도로를 달렸다. 마침내 중세도시 입구에 이르렀다.

가이드는 자신을 '폴라'라고 했다. 그는 꽤 학식이 있는 것처럼 보였다. 영어로 폴론나루와에 대해 대강을 설명했다. 발음을 또박또박 알아듣기 쉽게 설명했다. 그러나 영어가 짧아 알아듣기 힘들었다. 앞으로 두 시간 동안 자신과 함께할 것이라고 말했다.

두 시간 동안 참으로 여러 곳을 둘러 보았다. 여행과 관련된 책으로 보았을 때는 감이 잡히지 않았다. 실물을 직접 접하니 각인 되는 것 같다. 그래서 책만 보지 말고 현장에 가라고 했을 것이다.

현장에서는 오감으로 본다. 눈으로만 보는 것과의 차이일 것이다. 그러나 스리랑카 중세역사에 대해서 너무 무지하다 보니 겉보기에 지나지 않았다.

유적지에 갈 때마다 열심히 사진을 찍었다. 특히 안내판을 놓치지 않았다. 유물에 대한 대강이 써있기 때문이다. 대부분 11세기에서 12세기 때에 대한 것이다. 설명문을 찍고 그 다음에 유적을 찍었다. 이렇게 해야 나중에 볼 때 정리가 된다.

스리랑카는 중세 때 슬픈역사를 지니고 있다. 이민족의 지배를 받았기 때문이다. 인도대륙에서 촐라왕조가 침입한 것이다. 그때 1500년 고도 아누라다푸라가 파괴되었다. 그리고 지배를 받았다.

스리랑카는 결국 촐라왕조를 물리쳤다. 그리고 중세의 영화를 누렸다. 그 중심지가 폴론나루와이다. 그런데 다시 하번 촐라왕조에 의해서 파괴 되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지금 파괴된 유적만 보게 되었다.

어느 것도 항상하지 않다. 끊임없이 변하기 때문에 무상하다. 이민족의 침입이 아니더라도 무상의 원리에 의해 파괴된다. 옛것이 폐허로 나타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인지 모른다. 그럼에도 돌로 된 것은 천년만년 간다. 폴론나루와 유적도 그렇다.

유적지에는 붉은 벽돌만 보인다. 그런데 벽돌로 만든 불상도 파괴 되었다는 사실이다. 머리가 없는 불상을 보면 알 수 있다. 그런데 기적적으로 온전한 불상도 있다. 돌로 만들어 졌기 때문일 것이다. 그것도 잘 부서지지 않는 재질의 돌이라면 천년 아닌 만년은 갈 것이다.

돌로 된 것은 남아 있다. 그러나 돌 이외의 것은 불타버리고 파괴되었다. 지붕을 나무로 만들었다면 돌로 된 지지대는 남았지만 나무로 만든 것은 사라지고 없다. 이렇게 철저하게 파괴되어 수백년동안 정글에 방치된 채 있었다.

극동에서 찾아 온 나그네가 유적지 앞에 섰다. 그 옛날 이곳의 영화를 떠 올려 본다. 유적을 보니 참으로 위대했다. 그 옛날 스마트폰도 없던 시절에 어떻게 이런 구조물을 만들어 낼 수 있었을까?

가이드는 이것저것 설명했다. 그러나 영어가 짧아 잘 알아 들을 수 없다. 그럼에도 핵심을 가르는 말 한마디에 고개를 끄덕인다. "이곳은 왕의 침실 입니다.", "이곳은 대신들 회의 장소입니다."와 같은 말이다.

폴론나루와는 크게 왕궁유적과 불교유적으로 나눌 수 있다. 특히 불교유적은 아누라다푸라를 이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파괴된 아누라다푸라를 재건하려고 했을까 커다란 다고바가 이를 말해준다. 스리랑카에서 세 번째로 큰 불탑이 이곳 폴론나루와에 있는 것이다. 높이가 60미터라고 한다.

폴론나루와는 한적하다. 여러모로 아누라다푸라와 비교된다. 왜 그런지 가이드에게 물어 보았다. 지방이 다르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러나 결정적인 것이 있다. 그것은 보리수로 본다.

어디를 가나 보리수가 있다. 그러나 아누라다푸라에 있는 보리수만 못하다. 같은 보리수라 하여 다 같은 보리수가 아닌 것이다. 최초로 전래된 보리수는 신앙이 되기에 충분한 것 같다.

유적지에서 사람 보기 힘들다. 너무 넓어서 그런 것일까? 차량으로 이동하지 않으면 볼 수 없을 정도로 넓다. 이럴 때는 툭툭이 큰 역할을 하는 것 같다. 그 너른 지역을 걸어서 다닌다면 며칠 걸릴 것이다.

불탑 다고바에는 순례자도 보이지 않고 꽃공양도 보이지 않는다. 그럼에도 파괴되지 않고 천년을 버텨 왔다. 말 없이 그 자리에 서 있다. 순례자는 그 모습에 경외한다. 또한 외경으로 바라본다. 한바퀴 오른쪽으로 돌면서 그때 당시를 생각해 보았다. 그때 사람들도 이렇게 탑돌이 하고 있었을 것이라고.

목조는 불타버리고 벽조는 파괴된다. 그러나 돌에 새겨 놓은 것은 천년만년 간다. 불상이 대표적이다. 천년이 되었어도 불상은 의연히 그 자리에 있다. 명상하는 부처님을 말한다.

부처님은 명상해서 진리를 발견했다. 진리는 항상 그 자리에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부처가 출현할 때마다 진리가 발견되었다. 그런 진리를 접하고 있다. 건물은 파괴되고 사람도 사라졌지만 수행승들이 목숨걸고 지킨 진리는 그대로 남아 있다.

부처님 진리를 찾아서 여기 중세도시에 오게 되었다. 본 것은 붉은 벽돌의 잔해와 돌로 된 기둥뿐이다. 그러나 진리가 있기에 안심이다. 누군가 진리에 눈을 떴을 때 진리는 결코 파괴되지 않는다. 폴론나루와 폐허에서 명상하는 부처님을 보았다.

2022-12-14
담마다사 이병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