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흙속의연꽃

담불라 석굴사원에 꽃공양을

담마다사 이병욱 2022. 12. 16. 07:20

담불라 석굴사원에 꽃공양을

수행자라면 감각기관을 잘 단속해야 한다. 그래서 초기경전을 보면 한적한 숲으로 가라고 했다. 숲에 가면 세상과 차단되기 때문에 저절로 감관이 단속될 것이다. 그러나 숲에도 소음이 없지 않을 수 없다. 소음에서 완전히 해방될 수는 없는 것일까?

천장사에 가면 혜월동굴이 있다. 사람 하나 들어갈 정도의 작은 동굴이다. 잠시 앉아 보았다. 동굴 특유의 정적이 있다. 그러나 앞이 터져 있어서 새소리가 크게 들려 왔다. 그럼에도 느낌은 강렬했다. 왜 수행자들이 동굴에서 살았는지 어렴풋이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예로부터 수행자들은 동굴을 좋아 했었던 것 같다. 전세계적으로 동굴을 수행처로 한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이는 수많은 동굴수행처가 증거가 될 것이다. 그것은 아마도 동굴이 주는 아늑함 때문일 것이다. 자신의 내면을 보기 쉬운 것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일까 무위상윳따에서는 열반에 대하여 동굴처럼 안은한 것이라고 비유적으로 설명했다.

동굴은 적멸의 이미지가 있다. 그래서인지 전세계적으로 동굴수행처를 볼 수 있다. 스리랑카도 예외가 아니다. 담불라 석굴사원도 그 중의 하나일 것이다.

순례팀은 시기라야에서 담불라로 향했다. 2022년 12월 14일 두 번째 일정이다. 평지는 끝나고 점점 깊은 산중으로 들어 갔다. 보이는 것은 초록의 바다이다. 열대의 야자수가 이국적이다.

지금 한국은 한겨울이다. 에스엔스를 보니 눈이 왔다고 한다. 그러나 이곳 날씨는 덥다. 초여름 날씨에 가깝다. 반팔차림이 많다. 날씨가 더워서 조금만 걸어도 땀이 난다. 더구나 계단을 오르면 땀이 줄줄 흐른다. 그러나 그늘에 있으면 추운줄 모른다. 동굴도 그럴 것이다. 이런 이유로 동굴이 훌륭한 수행처가 되는 것인지 모른다.

동굴에 들어 가면 소음에서 해방된다. 크고 깊은 동굴일수록 정적만이 있게 될 것이다. 정적은 어쩌면 불교에서 추구하는 적멸에 가까운 것일지 모른다. 그런데 열대지방에서 동굴은 뜨거운 더위에서 해방된 공간이라고도 볼 수도 있다는 것이다. 동굴에 있으면 선선하기 때문에 최적의 수행조건이 된다. 담불라 석굴도 이런 조건을 잘 만족하는 것 같다.

성지에 가면 공양을 해야 한다. 스리랑카 불자들은 꽃공양을 한다. 꽃 이외 다른 것은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인지 성지에는 꽃을 파는 가게가 있고 꽃을 파는 노점상이 있다. 담불라 계단 올라가는 길에도 꽃파는 노점상이 있었다.

할머니가 꽃을 팔았다. 순례자에게 꽃을 팔아 생계를 유지하는 것 같다. 꽃을 샀다. 꽃을 사라고 권유한 것이 직접적 동기가 된다. 보시함에 돈을 넣는 것도 좋지만 더 좋은 것은 꽃공양일 것이다. 스리랑카 국화에 해당되는 수련을 다섯 송이 샀다.

스리랑카에서는 꽃공양이 일반화 되어 있다. 불자들이 흰 옷을 입고 꽃을 들고 가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모습 같다. 그래서 불단에는 온통 꽃만 보인다. 수련을 비롯하여 갖가지 꽃이 울긋불긋하다.

스리랑카에서 꽃공양 전통은 오래전부터 있었던 것 같다. 불탑이나 불상 앞에는 반드시 돌로 된 공양대가 있는데 바로 이것이 꽃공양의 증거일 것이다. 담불라 석굴사원에도 예외없이 꽃공양대가 있고 꽃공양을 하고 있다. 천년전부터 내려온 전통이고 앞으로도 계속될 것 같다. 그것은 부처님 가르침대로 살고자 노력하기 때문일 것이다. 실제로 경전에서는 꽃공양 이야기가 종종 나온다.

꽃을 받아들자 느낌이 달랐다. 더 경건해지는 것 같았다. 두 손에 꽃을 들었으므로 조심스럽게 걷지 않을 수 없었다. 왜 성지에 가면 흰 옷을 입어야 하고 꽃공양을 해야 하는 것인지에 대해서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동굴은 꽤 넓었다. 두 번째 동굴은 이삼백명 수용할 수 있을 정도로 크고 넓다. 자료를 보니 폭이 52미터이고 깊이가 25미터라고 한다. 이런 정도의 천연동굴이 깊은 산중에 있었던 것이다. 무더운 열대지방에서 수행하기 최적의 조건을 갖추었다고 볼 수 있다.

동굴에는 크고 작은 불상으로 가득하다. 벽과 천정에는 불화가 빠짐없이 그려져 있다. 기원전부터 시작된 것이다. 어느 시대 수행자가 이곳에 머물다 떠났고 또 새로운 수행자가 일생을 살았을 것이다. 그때마다 동굴에서는 예불소리가 그치지 않았을 것이다. 광장처럼 너른 공간에서는 설법도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적멸을 맛보기 위한 수행도 했을 것이다.

남들이 그렇게 하는 것처럼 불단에 꽃공양을 했다. 그리고 합장하며 고개를 숙였다. 옛날부터 수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했을 것이다. 그들은 어떤 마음으로 공양할까?

성지에 가면 순례자를 볼 수 있다. 거의 대부분 꽃공양을 한다. 꽃이 없으면 보시함에 돈을 넣으면 될 것이다. 마음으로만 공양하는 사람도 있다. 어떤 형태로든지 불탑이나 불상에 예배하는 것을 보면 아름답다.

자야망갈라가타가 있다. 스리랑카에서 오랜 옛날부터 구전되어 오는 게송으로 예불문이자 동시에 수호경이다. 모두 아홉 게송으로 이루어져 있다. 여덟 게송은 부처님의 승리에 대한 것이다. 아홉 번째 게송은 유통분이다.

승리의 게송에 해당되는 여덟 게송에는 말미에 후렴구가 있다. 그것은 "부처님의 위대한 승리와 행운이 저에게 (또는 그대에게) 임하길 바라옵니다."라는 말이다. 스리랑카 불자들은 이런 마음으로 공양하는 것 아닐까?

2022-12-15
담마다사 이병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