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흙속의연꽃

술집이 보이지 않는 불국토

담마다사 이병욱 2022. 12. 20. 18:48
술집이 보이지 않는 불국토

 

지금시각 오후 8시 42분, 게스트하우스에서 홍차를 마시고 있다. 저녁밥은 도시락으로 간단히 때웠다. 샤워도 끝냈다. 지상에서 가장 편안한 자세로 오늘 하루를 결산한다.
아침 8시부터 일정은 시작되었다. 스리랑카 중앙에 있는 고원 누와라엘리야에서부터 이곳 남단 해안에 있는 이릿사(Irissa)까지 12시간 이상 걸렸다. 도중에 코끼를 만나고 기리웨하라 사원에 들렀다. 그리고 동남해안에서부터 남단 해안 마따라에 이르렀다. 내일은 갈레를 보고 콜롬보에 간다.
역사는 기록하는 자의 것이라고 한다. 개인사도 기록을 남기면 역사가 된다. 오늘 있었던 일을 회상하며 글과 사진을 남긴다면 이것도 역사가 되는 것이다.
고원지대는 추웠다. 해발 1800미터가량 되는 누와라엘리야는 초봄같았다. 아침에 산책했을 때 "호"하고 부니 입김이 나왔다. 이 정도면 아마 영상 4-5도 되리라고 본다.
가이드 가미니에 따르면 누와라엘리야는 '리틀 런던'이라고 한다. 이곳이 영국 식민지 시절에 휴양도시였음을 말해 준다. 날씨가 선선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일까 이곳에는 부자들의 별장이 많은 곳이라고 한다.
어떻게 이 높은 곳까지 오게 되었는가? 그것은 동남해안에 있는 기리웨하라 사원과 서남해안에 있는 갈레에 가기 위해서이다. 캔디에서 두 곳을 가려면 반드시 이 고원을 통과해야 한다. 그래서 고원 도시 누와라엘리야에서 하루밤을 머물게 되었다.
차를 이용한 성지순례를 하고 있다. 이런 순례는 처음이다. 패키지 여행도 아니고 배낭 여행도 아니다. 이런 여행을 뭐라고 불러야 할까? 아마 렌트 여행이라 해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운전기사를 동반하는 여행은 뭐라고 불러야 할까?
일제 혼다 승용차에는 네 명이 탑승했다. 운전기사 가미니가 운전석에 앉고 혜월스님이 운전석 옆좌석에 앉았다. 김형근 선생과 나는 뒷좌석에 앉았다.
최상의 조건을 갖춘 순례가 되었다. 한국말을 유창하게 하는 혜월스님이 있어서 든든했다. 혜월스님은 운전기사와도 대화하고 우리와도 대화했다.
호텔예약은 기사가 담당했다. 혜월스님은 먹거리 담당과 같다. 식사 때가 되면 먹거리를 챙겨준다. 목이 마르면 노점에서 코코넛 주스를 마시게 해준다. 길을 가다 힘들면 카페에서 차 한잔 마시고 간다. 우리는 아무것도 할 것이 없다. 마치 우리가 VIP가 된 것 같다.
즐거운 순례가 되었다. 왜 그런가? 끊임없이 떠들었기 때문이다. 차로 이동중에 아름다운 풍광을 보며 끊임없이 이야기를 쏟아 내었다. 주로 스리랑카와 담마에 대한 것이다.
스리랑카에는 술집이 보이지 않는다. 소도시이건 시골마을이건 술집을 보지 못했다. 이는 한국과 매우 대조되는 현상이다. 이와 관련하여 혜월스님이 재미 있는 이야기를 해 주었다. 어느 한국인이 스리랑카에 왔는데 '술 한잔 마실데 없다'라고 불만을 토로 했다는 것이다.
참으로 불가사의한 일이다. 어떻게 거리에 술집이 없을 수 있을까? 당연히 모텔이나 러브호텔도 보이지 않는다. 생활에 필요한 생필품 가게만 있는 것 같다. 아마 오계와 팔계를 지키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불자가 되려면 삼귀의 해야 한다. 다음으로 오계를 지켜야 한다. 오계에는 불음주계가 있다. 취기가 있는 것을 삼가는 학습계율을 지키는 것이다. 부처님 가르침대로 살고자 하는 불자라면 당연히 실천해야 하는 것이다.
스리랑카 불자들은 신심이 깊다. 이는 순례중에도 확인 되었다. 더구나 포살일에는 절에 가서 하루 종일 불공도 드리고 법문도 듣는다. 더구나 붓다데이 주간에는 정육점 문을 닫고 도축은 금지된다고 한다. 이런 환경때문에 술집을 보기 힘든 것 아닐까?
스리랑카는 가난한 나라이다. 국민소득이 우리나라에 훨씬 못 미친다. 스리랑카 사람들 수만명이 한국에서 이주민 노동자로 살고 있기도 하다. 그렇다고 문화적으로 가난한 나라는 아니다.
스리랑카에서 개를 자주 본다. 애완견은 볼 수 없다. 개같은 개를 본다. 대부분 주인없는 개이다. 그런데 외부인이 보기에는 개팔자가 상팔자로 보인다. 누구도 개를 학대하지 않는다. 그래서인지 사람은 개보듯하고 개는 사람보듯 하는 것 같다.
견격이 존중되는 사회는 훌륭한 사회이다. 애완견을 기르는 것과는 맥락을 달리 한다. 개를 목줄로 묶어 놓지 않음을 말한다. 목줄이 없기는 소도 마찬가지이다. 원숭이도 간섭하지 않는다. 모두 닭보듯 하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사람을 무서워 하지 않는다. 견격과 우격이 존중되는 사회가 스리랑카인 것 같다.
견격과 우격이 존중되는 사회는 선진국이라고 말할수 있다. 견격과 우격을 존중하는 나라라면 당연히 인격도 존중될 것이다.
스리랑카 사람들을 관찰해 보았다. 바쁜 것이 없는 것 같다. 모든 것을 천천히 하는 것 같다. 비록 물질적으로는 풍요롭지 않지만 정신적으로는 만족한 삶을 사는 것 같다. 이런 모습에서 정신적 풍요를 본다.
술집이 없고 생명을 소중히 여기는 나라라면 문화대국과도 같다. 스리랑카는 불교문화 선진국 같다.
차는 엘라에 이르렀다. 천혜의 경관을 자랑한다. 깍아지른 듯한 장쾌한 바위산이 있다. 높이가 수백미터나 되는 폭포도 있다. 열대밀림만 있는 줄 알았는데 장대한 협곡도 있었던 것이다.
협곡의 엘라를 벗어나면 드넓은 평야가 전개된다. 어느 곳에서도 공장을 볼 수 없다. 그래서 국토가 청정한 것 같다. 하늘은 푸르고 흰 뭉게구름은 피어 있다. 초록의 대지에는 생명력이 넘친다. 마을마다 불탑이 있고 거리에는 불상이 보인다. 이곳이야말로 불국토가 아닌가 생각된다.
2022-12-16
담마다사 이병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