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나두라 광장에 서서
갈레에서 파나두라 가는 길이다. 해안도로를 따라 갔다. 스리랑카 서남해안이다. 기후가 온화하고 풍광이 좋아서인지 서양사람들이 눈에 많이 띈다. 혜월스님에 따르면 한달살이, 두달살이 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관광객과 현지인의 차이는 극명하다. 서양사람들은 거의 벗은 몸으로 다닌다. 남녀가 탄 오토바이가 지나 간다. 남자는 웃통을 벗은 상태이다. 유럽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치안상태가 좋은 것도 이곳에 머무는 이유가 된 것 같다.
현지인들 시장도 곳곳에서 볼 수 있다. 우리나라 옛날 시골 오일장터와 유사하다. 어느 나라이든지 장이 서는 곳은 활기가 넘친다.
파나두라는 콜롬보 남단에 있다. 이곳은 파나두라 논쟁으로 유명하다. 1873년 불교와 기독교의 사상논쟁이 있었다. 이 대론에서 불교가 승리했다. 그렇다면 왜 이 논쟁이 중요할까?
스리랑카는 유구한 역사를 가진 불교국가이다. 기원전부터 불교를 종교로 했다. 그 결과 스리랑카 각지에 수많은 불교유산이 있다. 그런데 물질적 유산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정신적 유산도 있다.
스리랑카는 빠알리 삼장의 나라이다. 또 스리랑카는 청정도론의 나라이다. 빠알리 삼장과 청정도론을 읽어 보면 정신문명의 진수를 맛볼 수 있다.
물질문명은 얼마나 발전될지 모른다. 스마트폰을 보면 알수 있다. 그러나 정신문명은 정점에 도달했다. 이는 부처님이 무상정등각을 이루었기 때문이다.
부처님은 더이상 깨달을 것이 없는 경지에 이르렀다. 불교도들은 이런 경지를 추구한다. 스리랑카에서도 최상의 경지를 추구해 왔다. 청정도론을 보면 열반에 이르는 경지에 대하여 써놓았다.
스리랑카는 서세동점 시대에 해상제국주의 국가에 먹잇감이 되었다. 그들은 배를 타고 와서 총과 대포로 점령했다. 그렇다고 스리랑카 정신세계까지 점령한 것은 아니었다.
여기 주먹이 센 깡패가 있다. 힘으로는 당해낼 수가 없다. 여기 제국주의가 있다. 역시 힘으로는 당할 수 없다. 그렇다고 정신세계까지 빼앗기지는 않는다. 스리랑카가 그랬다.
영국은 스리랑카를 기독교 국가로 만들고자 했다. 학교에서는 바이블을 가르쳤다. 공무원을 뽑을 때는 기독교를 믿는 사람만 뽑았다. 수백년 동안 그렇게 했다. 그래도 불교는 무너지지 않았다. 왜 그랬을까? 교리에 있어서 비교대상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요즘 내가 하는 말이 있다. 불교보다 더 훌륭한 종교가 있으면 그쪽으로 가겠다고 말했다. 아직까지 불교 보다 더 나은 종교를 보지 못했다. 스리랑카에서도 그랬을 것이다.
1873년 파나두라에서 불교와 기독교의 사상논쟁이 있었다. 논쟁을 하면 결과는 뻔하다. 단지 불교가 우월한 것을 확인시켜 주는 것에 지나지 않았을 것이다.
파나두라 광장에 섰다. 지금으로부터 150년 전인 1873년에 이곳에서 세기의 대론이 있었다. 광장에는 그때 당시의 상황을 묘사한 벽화가 있다. 또한 광장에는 구나난다 스님 동상이 있다. 한 손을 들고 교리를 설명하고 있는 모습이다. 마치 부처님 수인을 보고 있는 것 같다.
벽화를 보면 불교측 사람들은 당당한 모습이다. 반면에 기독교측 사람들은 당황스러운 모습이다. 승부는 이미 결정난 것이나 다름없다.
영화 7인의 사무라이가 있다. 두 사람 사이에 결투가 벌어졌다. 고수가 보기에는 칼을 뽑기 전에 이미 승부는 난 것이나 다름 없었다. 실력차이가 너무나도 분명했기 때문이다. 이미 한사람은 죽은 목숨이다. 파나두라에서 불교와 기독교의 대론도 그랬을 것이다.
스리랑카에서 구전으로 전승되어온 게송이 있다. 자야망갈라가타이다. 부처님의 여덟 가지 승리에 대한 게송이다. 이 중에는 외도에 대한 승리의 게송도 있다. 자이나교와 브라만교에 대한 승리의 게송을 말한다. 모두 니까야를 근거로 한 것이다.
니까야를 보면 부처님이 외도와 대론하는 장면을 종종 볼 수 있다. 모두 부처님의 승리로 끝난다. 왜 그럴까? 연기법에 근거한 무상, 고, 무아의 가르침을 당해낼 수 없었기 때문이다. 파나두라 논쟁도 이런 맥락에서 파악된다.
2022-12-18
담마다사 이병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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