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흙속의연꽃

다시 일상으로 돌아와서

담마다사 이병욱 2022. 12. 20. 18:53

다시 일상으로 돌아와서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다. 귀국해서 짐을 정리하고 난 다음 일터로 갔다. 칠일간의 공백이 있다. 그 사이에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날씨가 춥다. 어제까지만 해도 따뜻한 나라에서 반팔을 입고 있었다. 불과 하루만에 딴나라에 온 것 같다. 그러나 내나라이다. 환지본처한 것이다.

모든 것이 그대로이다. 일주일 공백으로 변한 것은 별로 없다. 그러나 생명 있는 것들은 변한다. 알라카시아에 새 잎이 하나 났다. 알라카시아는 본래 잎이 몇 개 되지 않는다. 불쑥 튀어 나온 새 잎을 보자 옥동자가 탄생한 것 같다.


행운목꽃은 어떻게 되었을까? 떠나기 전에 꽃대가 나왔기 때문에 절정을 맞이하여 시들어 있을 줄 알았다. 그런데 이제 꽃대가 나올 만큼 나와서 이제 절정을 맞이 하고 있다.


품질문제가 발생하고

메일을 열어 봤다. 새로운 주문은 보이지 않는다. 그대신 품질문제가 발생했다. 메인 고객사로부터 온 것이다. 하나는 실크인쇄가 잘못된 것이고, 또 하나는 수량이 잘못된 것이다.

품질문제가 발생되면 고스란히 손실로 이어진다. 실크인쇄 잘못된 것은 한글자에 지나지 않기 때문에 넘어가기로 했다. 고마운 일이다. 손실이 생기지 않기 때문이다. 그대신 신용이 추락했다. 이런 일이 자주 발생되면 업체를 바꾸어 버릴 것이다.

수량이 적게 들어 온 것이 있다고 한다. 확인해 보이 정말 그렇다. 확인하고 또 확인한다고 했건만 실수를 발견했을 때 맥 빠진다. 이럴 경우 추가제작 해주는 수밖에 없다. 그것도 빨리 조치해 주어야 한다. 손실이 발생하긴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신용이다.

세상을 살다 보면 실수가 없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실수가 반복되면 능력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믿을 수 없는 사람으로 평가 받는 것이다. 그래서 실수하지 않기 위해서 눈에 불을 켠다. 그럼에도 실수가 발생했을 때 맥 빠진다.

품질사고나 났을 때는 재빠르게, 발 빠르게 대응해야 한다. 그리고 실수한 것에 대해서 솔직하게 잘못을 인정하고 재발방지를 약속해야 한다. 그러나 무엇보다 고객감동이다. 고객에게 하나 줄 것을 두 개 주면 감동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고객만족을 넘어 고객흡족이 되어야 한다. 그래야 커트되지 않고 관계가 오래 유지될 수 있다.

커피 같은 홍차

업무와 관련된 일을 처리했다. 그리고 차를 마셨다. 이번 스리랑카 순례에서 사온 홍차를 말한다. 그때 스리랑카 고원지대에 있었던 담로(Damro) 차를 말한다. 우롱티를 샀다.


우롱티 맛은 어떨까? 다기에 두 수픈 넣고 뜨거운 물을 넣었다. 곧바로 우린 것을 커피잔에 담았다. 맛을 보니 홍차맛이다. 이번 순례 기간 중에 늘 맛보던 것이다. 대만의 우롱차 맛을 기대했으나 무너졌다.

홍차는 색깔이 빨간 것이 특징이다. 그래서 홍차라고 했을 것이다. 그런데 마시다 보면 특유의 맛이 있다는 것이다. 비행기를 탔을 때 커피를 마실 것인지 차를 마실 것인지 물어 보는데 바로 그 차맛이다.

이번 순례에서 확인한 것이 있다. 그것은 스리랑카 홍차는 사실상 커피나 다름 없다는 것이다. 왜 그런가? 스리랑카에서는 홍차에 설탕을 타서 마시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녹차가 있다. 중국의 보이차도 있다. 녹차나 보이차에는 설탕을 타 마시지 않는다. 그리고 식사할 때 함께 마시지도 않는다. 그러나 스리랑카 홍차는 식사할 때도 마신다. 이로 알 수 있는 것은 녹차와 홍차는 다르다는 것이다. 홍차는 차라리 커피에 가깝다. 이번 순례에서 확인 한 것이다.

홍차를 세 통 샀다. 한통에 100그램이다. 스리랑카 차밭이 있는 고원지대에서 산것이다. 그런데 세 통 300그램에 5,700루피이다. 우리나라 돈으로 환산하면 16,000원이다. 녹차 가격과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저렴하다.


스리랑카 순례 기간 중에 홍차를 매일 마셨다. 그리고 틈만 나면 마셨다. 이동하다가도 마셨다. 이동 중에 혜월스님이 “저기서 차나 한잔 마시고 갑시다.”라고 말하면 차를 세우고 마셨다.


홍차를 자주 마시다 보니 이제 홍차에 익숙해졌다. 홍차 특유의 맛과 향에 매료 된 것이다. 밋밋하다고 느낄 때는 설탕을 넣으면 된다. 그래서 홍차를 마시다 보면 홍차인지 커피인지 구별되지 않을 때도 있다.


커피는 자극이 강하다. 또한 가격도 비싸다. 이는 열매를 추출하여 만들기 때문이다. 그러나 잎을 이용하여 대량생산하는 홍차는 가격이 저렴하다. 더구나 맛과 향이 있어서 풍미도 있다. 이번 순례를 통해서 홍차의 맛을 제대로 본 것 같다.

보리수를 신앙 대상으로 삼는 것은

이번 스리랑카 순례는 12월 12일 월요일부터 12월 18일 일요일까지 일주일동안 진행되었다. 실로 많은 것을 보았다. 스리랑카 일주를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운전기사 가미니에 따르면 이번 순례기간 중에 1,467키로미터를 기록했다고 한다.


스리랑카는 작은 섬나라이다. 그러나 아기자기하게 볼 거리가 많다. 그리고 문화유산도 풍부하다. 이는 불교의 역사가 2,300년이나 되기 때문이다. 어느 곳을 가든지 불상이 있고 불탑이 있고 보리수가 있다.

스리랑카 시골마을에 가면 불상을 볼 수 있다. 사람들의 왕래가 많은 대로 사거리에 불상이 있는 것이다. 또한 저 멀리 구릉진 언덕 정상에는 흰색의 불탑이 있다. 불탑은 사방 어느 곳에서나 보이기 때문에 지역에서 랜드마크 역할을 안다.

스리랑카에는 곳곳에 사원이 있다. 사원을 구성하는 세 가지 요소가 있는 것임을 알았다. 불탑과 보리수와 불상이다. 이중에서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것은 보리수인 것 같다.


스리랑카 사람들은 왜 보리수를 소중하게 여길까? 그것은 보리수를 부처님과 동일시하기 때문이다. 이는 무불상시대와도 관련이 있다.

무불상 시대가 있었다. 부처님 입멸후 오백년의 시기에 해당된다. 이 시기에는 오로지 부처님을 상징하는 것만이 신앙의 대상이 되었다. 부처님의 정각을 이루었을 때 깨달음의 나무라 일컬어지는 보리수가 대표적이다. 그래서 보리수 사방에 있는 불상을 보면 사마디 불상이다. 삼매에 든 모습의 불상을 말한다.

스리랑카에서 보리수와 쌍벽을 이루는 것이 있다. 그것은 불탑이다. 마치 그릇을 거꾸로 엎어 놓은 형상이다. 산치대탑이 오리지널일 것이다. 이와 같은 불탑을 다고바라고 하는데 오로지 스리랑카에서만 볼 수 있다.


스리랑카 사람들은 불탑도 신앙의 대상이다. 이는 부처님의 사리가 있기 때문이다. 부처님 그분을 형상화 하지 않고 사리를 부처님처럼 대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래서 사리탑 사방에는 네 기의 불상이 있고 또한 공양단이 있다. 거의 대부분 꽃공양을 한다. 불탑에 있는 불상은 사마디 불상이다. 눈을 감고 삼매에 있는 부처님상이다.


스리랑카 불교에서 법당은 세 번째라고 볼 수 있다. 보리수가 첫 번째 신앙의 대상이고, 두 번째는 불탑이다. 법당은 세 번째라고 볼 수 있다. 왜 그럴까? 아마 그것은 부처님 그분을 하나의 조형물로 만드는 것에 대한 한계가 있을 것으로 보기 때문일 것이다.

이번 순례 마지막 날에는 태국에 갔었다. 비행기 환승으로 인하여 낮시간에 여유가 생긴 것이다. 그래서 방콕시내 관광을 했다.

방콕시내에서 놀란 것이 있다. 그것은 국왕과 국왕의 부인 사진을 이곳저곳에서 볼 수 있다는 사실이다. 식당에서도 볼 수 있다. 마치 국왕을 숭배하는 나라 같다.

방콕에서 국왕부부 숭배를 보았다. 국왕을 부처님보다 더 위에 놓은 것 같았다. 과연 국왕부부는 완전한 인간일까? 아라한 정도의 사람이라면 수긍할 것 같다.

무불상시대에서는 감히 부처님 형상을 만들 생각을 하지 못했다. 부처님처럼 위대한 분을 인간의 모습으로 만드는 것은 불가능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대신 부처님을 상징하는 보리수, 불탑, 족적 등을 신앙의 대상으로 삼았다. 그럼에도 법당에 가면 불상이 있다.

법당의 불상은 눈을 뜨고 있는 형상이다. 이는 보리수와 불탑에서 볼 수 있는 사마디형 불상과 다르다. 마치 중생을 자비의 눈으로 내려 보는 것 같다. 그런데 법당에는 와불이 많다는 것이다. 이는 무엇을 말할까? 일종의 차별화로 본다.


보리수와 불탑의 불상은 사마디형이다. 그러나 법당에는 와불이 빠지지 않는다. 건물 안에 있는 불상은 눈을 뜬 불상이 있고 또한 와불이 있는 것이다. 이런 사실을 이번 순례에서 발견했다.

한국불자들은 절에 가면 법당부터 간다. 법당에서 불상에 참배하는 것이다. 탑이 있기는 하지만 우선순위에서 한참 밀린다. 그러나 스리랑카에서는 보리수와 불탑이다. 그 중에서도 보리수가 가장 큰 신앙대상이 되는 것 같다.

보리수는 생명이 있다. 불탑과 불상은 생명이 없는 구조물에 지나지 않지만 보리수는 살아 있는 것이다. 그래서일까 스리랑카 불자들은 보리수를 잘 관리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고 있는 것 같다. 이른바 성수라고 하여 보리수에 물 주는 것도 일종의 신앙의 표시이기 때문이다.

스리랑카 어느 사원에 가도 보리수는 있다. 보리수가 있다는 것은 부처님 가르침이 살아 있다는 것과 같다. 만일 사원에 보리수가 없다면 이를 어떻게 봐야 할까? 부처님의 정법이 사라졌다고 보아야 한다. 이런 이유로도 보리수를 신앙 대상으로 삼는 것이 아닐까?

글을 36개 썼는데

이번 스리랑카 순례에서 매일 글을 썼다. 하루에도 여러 개 썼다. 순례하고 나면 이동중에 써서 올렸다. 밤에 잠 자기 전에도 쓰고, 잠자고 난 다음 새벽에도 썼다. 하루에 두세 시간 밖에 못 잔 것 같다. 어쩌면 이런 것도 구도여행이라 해야 할 것이다.

이번 스리랑카 순례에 대하여 구도여행이 되고자 했다. 무언가 하나라도 얻는 순례가 되고자 했다. 즐기는 여행이 아니라 깨달음이 있는 여행이 되고자 했다. 그래서 틈만 나면 글을 썼다. 쓰다 보니 36개를 썼다. 나중에 책이 될 것이다. 글과 사진이 있는 스리랑카 성지순례기가 책으로 한권 되는 것이다.

인연복이 있어서

오늘 귀국했다. 그리고 소감을 썼다. 수많은 격려의 댓글을 받았다. 과분한 칭찬을 받는 것 같다. 어느 페이스북친구는 이번 순례에 대해서 “인연복이 있는 것 같습니다.”라고 코멘트를 남겨 놓았다.

이번 순례에서 혜월스님과 함께 했다. 스리랑카 사람으로 구산스님 제자이다. 혜월스님과 일주일을 함께 한 것은 일생일대에 있어서 최대의 수확이라고 본다. 페이스북 친구 말대로 인연복이 있어서일 것이다.


인내하고 온화한 마음으로
수행자를 만나서
가르침을 서로 논의하니,
이것이야말로 더 없는 축복입니다.”(Stn.265)



수타니파타 망갈라경(축복의 경)에 실려 있는 게송이다. 재가자가 수행자를 만나서 법을 듣는 것은 인연이 있어야 한다. 그래서 때에 맞추어 가르침을 듣는 것에 대해서 더 없는 축복이라고 했다. 그런데 더 나아가 수행자와 가르침을 논의 한다면 이를 어떻게 보아야 할까?

혜월스님과 일주일을 함께 했다. 이렇게 한 것은 스님의 자비심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바쁜 일정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한국에서 온 재가자 두 명에게 일주일이라는 시간을 내 준 것이다.

혜월스님과 다니면서 법에 대해서 들었다. 그리고 법에 대해서도 토론했다. 그러다 보니 생각이 정리되는 것 같았다. 몰랐던 것도 알게 되었다. 스님에게 들은 것은 그날그날 그때그때 기록을 남겨 두었다. 이번 순례에서 혜월스님과 일주일 함께 한 것은 일생일대 대사건이고 더 없는 축복이다.


2022-12-20
담마다사 이병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