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평화불교연대

다시는 2등국민으로 살지 말라고

담마다사 이병욱 2022. 12. 26. 09:35

다시는 2등국민으로 살지 말라고

 


유튜브에서 종종 일제시대 때 영상을 본다. 혼마치도리, 즉 본정통이라 하여 명동의 일본인촌 거리를 보면 일본의 축소판처럼 보인다. 그들이 주인 노릇, 상전 노릇하던 시기가 있었다. 지금도 그 흔적은 남아 있다.

 


정평불 12월 정진산행은 남산으로 잡았다. 오늘 남산 산행은 역사 탐방이 되었다. 주로 일제 강점기 시절 흔적에 대한 것이다. 지금은 사라져서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은 것도 있고, 주춧돌과 같은 흔적만 남은 것도 있고, 지금까지 건물로 남아 있는 것도 있다.

오늘 정진산행에는 열 명 참여했다. 정평불 공동대표 김광수 선생을 비롯하여 산행대장 최연 선생, 그리고 노광희, 사기순, 박태동, 이건백, 임종미, 조현덕, 정재호, 필자가 참여했다. 지하철3호선 동대입구역에서 만나서 산행은 시작 되었다. 가장 먼저 가본 곳은 박문사터이다.

 


박문사는 이토 히로부미를 기리는 사찰이었다고 한다. 지금의 호텔 신라 자리에 있었다. 지금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해방된지 87년이 지났다. 해방당시를 기억하는 사람들은 많지 않을 것이다.  백년만 지나면 기록으로만 알 수 있다. 이렇게 역사탐방 하듯이 "이곳에 박문사가 있었습니다."라고 해서 알게 될 뿐이다.

 


산행팀은 남산을 향해 갔다. 남산 꼭대기에 팔각정이 있다. 본래 목멱사가 있던 자리라고 한다. 그러나 조선신궁이 아래쪽에 들어서면서 옮겼다고 한다. 신궁에서 절 할 때 목멱사에 하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라고 현다. 현재 인왕산 국사당이 목멱사의 후신이 된다.

 


가장 흥미로운 것이 있다. 그것은 조선신궁이다. 최연 선생에 따르면 일본을 제외하면 아시아 최대의 신사였다고 한다. 종종 남아 있는 사진으로도 확인된다. 예전의 식물원이 있던 자리에 있었다.

 


남산 식물원은 없어졌다. 그 자리에는 신궁 주춧돌이 남아 있다. 박문사의 경우 아무런 흔적도 찾을 수 없지만 신궁 만큼은 흔적이 남아 있다. 시에서 역사찾기 하는 것 같다.

 


현재 신궁발굴작업을 하고 있다. 치욕의 역사를 후손에게 알리려는 듯 하다. 이제는 자신이 있어서 그런 것 같다. 한국은 더이상 예전의 한국이 아니기 때문일 것이다.

 


일제 강점기 시절에 한국사람들은 의무적으로 신궁에 참배 했었던 것 같다. 이는 박완서 작가의 자전적 성장소설인 '그 많던 싱아를 누가 다 먹었을까'에서도 확인된다. 그때 당시 작가는 신궁참배에 대해서 설명해 놓았기 때문이다.

오늘날 조선신궁에 대해서 아는 사람들은 그다지 많지 않다. 설령 위치를 안다고 해도 누군가 설명을 해주지 않으면 지나치기 쉽다. 이번에 새롭게 알게된 사실은 신궁계단이 그대로 남아 있다는 것이다.

신궁계단은 두 군데가 남아 있다. 구어린이회관 방향에 있는 서쪽계단이 그것이다. 또하나는 북쪽계단이다. 남쪽계단도 있었으나 지금은 사라졌다. 예전에는 이런 사실도 모르고 남산에 올라 갔었다. 어쩌면 치욕의 계단인지 모른다. 계단만큼은 흔적을 지울 수 없었던 것 같다. 후세를 위해서 '치욕의 계단'이라 이름 붙이면 어떨까?

 


산행팀은 통감부가 있던 자리로 갔다. 리라초등학교 앞에 있다. 지금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그러나 지금 흔적찾기를 하는 것 같다. 펜스를 치고 공사를 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더구나 '국치길'이라 해서 팻말까지 만들어 놓았다.

 


남산 아래에는 곳곳에 일제강점기 때 흔적이 있다. 서울학교 교장이기도 한 역사탐방가 최연 선생은 먼 곳을 가리킨다. 천년은 되어 보이는 커다란 나무가 있다. 그곳에 통감부 관사가 있었다고 한다. 지금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없지만 나무는 남아 있다. 옛날 사진에도 그 나무가 보인다고 한다. 나무는 모든 것을 알고 있을 것이다.

해방후에 일본 흔적 지우기가 있었던 것 같다. 박문사와 조선신궁은 철저히 파괴 되었다. 존재 자체가 혐오시설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모두 종교시설과 관계가 있다. 그러나 상업시설과 문화시설은 살아 남았다. 미츠코시 백화점과 명치좌가 그것이다. 현재의 신세계백화점과  명동예술극장을 말한다.

남산 산행겸 역사기행을 했다. 오후 2시부터 5시까지 세 시간동안 강행군을 했다. 영하의 날씨였지만 계속 걷다 보니 땀이 났다. 저녁에는 정평불 송년회가 남대문시장에서 있었다.

 


송년회가 끝나고 계속 역사탐방을 했다. 신세계백화점과 명동예술극장을 보기위함이다. 일제강점기 때 지어진 백년 가까이 되는 건축물이다. 신세계백화점은 크리스마스날을 맞이 하여 빛의 향연이 있었다. 명동예술극장 앞에는 영하의 날씨에도 불구하고 젊은 사람들로 가득했다.

 


산행팀은 계속 나아갔다. 동양척식주식회사와 식산은행이 있던 자리로 가보았다. 지금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해설사가 말해주지 않으면 알 수 없다.

동양척식은 식민지 수탈기관이었다. 우리 자원과 농토를 빼앗은 곳으로 원성이 높았다. 현재 외환은행 본점 자리에 있었다. 지금은 하나은행으로 바뀌었다.

 


동양척식 자리에 나석주 열사 동상이 있다. 열사는 동양척식을 폭파하려 했었다. 실패하자 건너편에 있는 식산은행을 폭파하고자 했으나 실패 했다. 식산은행은 식민지 시절 총독부의 산업정책을 뒷받침하던 은행이었다. 역시 식민지 수탈기관이라고 볼 수 있다. 현재 롯데백화점 자리에 있었다.

 

롯데백화점은 연말을 맞이하여 빛의 향연을 벌이고 있다. 신세계백화점 빛의 향연과 함께  사람들에게 볼 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 자리가 악명 높은 수탈의 현장이라는 사실을 모르는 것 같다.

 


역사는 흐른다. 그러나 산천은 변함없다. 남산은 일제시대 때나 지금이나 그모습 그대로이다. 사람과 건물만 바뀌었을 뿐이다.

내가 1930년대 일제시대 때 살았다면 어땠을까? 우리나라는 일본이었고 국어는 일본어였을 것이다. 이는 최근 유튜브에서 본 영화 '수업료'(https://youtu.be/XRMI02EXmN4)에서도 확인된다.

영화 수업료는 일제강점기 때 만들어진 영화로 1940년에 개봉되었다. 영화를 보면 그때 당시 현실이 어땠는지 짐작케 한다. 초등학교 일본인 선생이 나오고 학교에서는 일본어로만 이야기한다.

영화를 보면 학생은 일제가 지배하는 현실을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일반민중도 이와 다르지 않다. 일본인들이 절과 신사를 만들어 참배하게 해도 당연한 것으로 생각했을 것이다. 일본인들이 백화점을 이용하고 극장을 드나들었을 때 역시 당연하게 여겼을 것이다. 영화에서 보는 것처럼 한국사람과 일본사람은 서로 소가 닭보듯, 닭이 소보듯 했을 것이다.

일제강점기 때 한국인은 2등 국민이었다. 아마 2등 국민임을 당연하게 생각했을지 모른다. 이런 사실을 자각한 사람은 독립운동을 했을 것이다. 그러나 대다수는 현실에 순응하며 살았다고 본다.

세월이 흘렀다. 사람들은 남산에 박문사가 있었고 조선신궁이 있었는지조차 모른다. 그러나 남산은 모든 것을 알고 있다. 그리고 "다시는 2등국민으로 살지 말라!"라고 말해 주는 것 같다.

2022-12-26
담마다사 이병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