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흙속의연꽃

커피를 선물받았는데

담마다사 이병욱 2022. 12. 28. 09:27

커피를 선물 받았는데



종종 선물을 받는다. 두 달 전에는 하동에서 차를 선물 받았다. 하동에서 차를 재배하여 생산하고 유통하는 페친(페이스북친구)이 보내 준 것이다. 무려 세 봉지를 보내 주었다. 세 달 전에는 나주에서 페친이 차를 보내 주었다. 지역특산품 차이다. 나주 페친은 안면이 있다.

이번에는 강남 페친이 커피를 보내 주었다. 그것도 한박스를 보내 주었다.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벌써 세 번째이다. 이렇게 막 보내 주어도 되는 것일까? 과연 나는 받을 자격이 있는 사람일까?


이 세상에 공짜 싫어하는 사람은 없다. 공짜라면 양잿물도 마신다고 하지 않던가? 하물며 선물은 어떠한가? 어쩌면 공짜와도 같은 것이다. 그렇다면 왜 공짜로 선물하는 것일까? 무슨 대가를 바라는 것일까? 어떤 뇌물 성격의 선물일까? 전혀 그렇지 않다. 나는 영향력 있는 인물이 아니기 때문이다.

나는 누구인가? 모임에 가면 종종 자기소개 시간이 있다. 처음 보는 사람, 새로 온 사람 앞에서 의례적으로 자기소개하는 시간이 있다. 그때 나를 어떻게 소개해야 할지 난감할 때가 있다. 직장이 있는 것도 아니고 지위가 있는 것도 아니다.

나는 자영업자이다. 더 이상 직장을 다닐 수 없어서 어쩔 수 없이 선택한 것이다. 아무리 개떡같은 직장이라도 월급만 주면 정년 때까지 다녔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나라 기업에서 정년 때까지 가는 역사를 가진 데는 드물다. 대개 창업한지 몇 년 되지 않는 곳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회사는 내것이 아니다. 제아무리 잘나고 똑똑하고 지위가 있어도 퇴출로서 끝난다. 대부분 직장인들의 삶이 그렇다. 공직에 있지 않는 한 신분보장이 되지 않는 것이다. 정년까지 가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보아야 한다.

사십대 중반에 ‘사오정’이 되었다. 더 이상 쓸모 없는 사람이 되었을 때 퇴출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인지 모른다. 무엇으로 먹고 살아야 할까? 사십대 가장은 난감했다. 실업급여가 떨어질 때까지 잡히지 않았다. 십개월이 지나자 다급해졌다. 이제 정말 아무데서도 나올 데가 없었다.

거의 2년 방황했다. 이것저것 해보려 했다. 기술노가다도 생각해 보았다. 안테나 설치나 랜 설치하는 힘든 작업을 말한다. 체력적 조건이 따라 주지 않았다. 결국 과거에 했던 인쇄회로기판(PCB) 설계업으로 정착되었다.

사업을 시작한지 16년 되었다. 직장생활한지 20년 되었으므로 점차 근접해 가고 있다. 개인사업을 하면서 더 이상 회사를 옮겨 다닐 필요가 없었다.

이전에는 일이년이 멀다 하고 옮기던 때가 있었다. 회사에서 사업을 접으면 옮기지 않을 수 없었다. 이런 것이 정신적인 트라우마가 된 것 같다. 새로운 직장환경에 적응하지 못해서 쩔쩔매는 꿈을 꾼다.

현재 한 장소에서 내리 15년째 있다. 사업을 시작하고 1년 되었을 때 임대한 작은 사무실이다. 이전에는 공동사무실을 사용했다. 오피스를 공유한 것이다.

일은 일감이 있어야 일을 한다. 일이 없을 때는 무엇을 해야 할까? 글을 썼다. 글을 쓰면 시간이 잘 갔다. 무엇보다 착하고 건전한 생활이 되었다. 마음이 더러우면 글을 쓸 수 없기 때문이다. 탐욕이 가득한 마음에서 글은 나오지 않는다.

글을 쓰면 쓸수록 탐욕이 옅어져 가는 것 같았다. 부자가 되겠다는 욕심을 버렸다. 자연스럽게 주식을 손절했다. 주식은 욕망으로 하는 것이기 때문에 나에게 맞지 않았다. 부동산에 대해서도 관심을 끊었다.

일터에 가면 오전은 글쓰기로 보냈다. 매일 쓰다 보니 글이 축적되었다. 일년, 이년, 삼년이 되자 인터넷에 글이 깔렸다. 검색만 하면 일등으로 걸렸다. 그러자 사람들이 관심을 갖게 되었다.

사람들은 대체 어떤 인간인지 궁금했던 것 같다. 필명으로만 썼기 때문이다.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은 “혹시 스님 아닙니까?”라는 말과 “혹시 교수 아닙니까?”라는 말이다.

글은 스님이나 학자가 쓰는 것일까? 일인사업을 하는 자영업자가 글을 썼을 때 견제도 많이 받았다. 어떤 스님은 노골적으로 무시했다. 재가불자가 “같잖게” 글을 쓴다는 것이다. 어떤 학자 역시 대놓고 무시했다. 자신의 이론에 대한 도전으로 받아 들였다. 그러거나 말거나 내 스타일대로 썼다. 빚진 것이 없기 때문에 걸리는 것도 없었다.

모임에서 자기소개할 때 블로거라고 말한다. 그래서일까 어떤 사회자는 나를 소개할 때 ‘불교계의 파워블로거’라고 말한다. 싫지는 않은 말이다. 자영업자라고 소개하는 것보다는 나은 것 같다.

나는 파워블로거일까? 아직까지 한번도 미디어 다음에서 이런 칭호를 붙여준 적은 없다. 그저 매일 블로그에 글을 올리는 블로거일 뿐이다. 그럼에도 글은 때로 파장을 일으킬 때도 있다. 현실에 대해서 비판하고 권위에 도전했을 때이다.

즉문즉설로 유명한 스님이 있다. 스님의 윤회관에 문제가 있어서 지적했다. 파장은 만만치 않았다. 일파가 만파가 된 것 같다. 어떤 원로 학자는 이에 대해서 토론하자고 했다. 글을 본 사람들은 각자 자신이 생각하는 윤회관을 얘기했다. 이렇게 본다면 블로거의 영향력은 있는 것이다.

글을 쓰는데 있어서 걸림이 없다. 본래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출발했기 때문이다. 남들처럼 불교 경력이 20년, 30년, 40년이 된 것이 아니다. 고작 18년 밖에 되지 않았다. 2004년에 수계 받음으로써 정식으로 불자가 되었기 때문이다.

남들처럼 불교활동을 오래 한 것도 아니다. 대불련 출신도 아니고 대불청 출신도 아니고 어떤 불교단체 출신도 아니다. 불교활동을 한 것은 2015년부터 했다. 고작 7년 밖에 되지 않았다. 불교계로부터 빚진 것이 없다. 그래서 자유롭게 쓴다.

글은 매일 쓴다. 글 쓰는 것이 취미이고 낙이다. 생활화가 되어 있어서 가능한 것이다. 글도 쓰고, 니까야도 읽고, 게송도 외우고, 경을 암송하고, 행선도 하고, 좌선도 한다. 모임에도 적극 참여한다. 토요일이 되면 촛불대행진에도 참여한다. 물론 일감이 있으면 일을 한다. 이것이 일인사업자의 삶이다.

글은 어떤 식으로든지 영향을 주는 것 같다. 커피를 보내 준 페친에게도 영향을 준 것 같다. 페친은 커피를 무려 세 종류를 보내 주었다. 원두 한 봉지, 분쇄커피 한 통과 분쇄커피 한 곽을 보내 주었다. 그리고 스파게티도 보내 주었다. 아마 이탈리아 식품관련 사업을 하기 때문일 것이다.


페친은 선물을 한박스 보내 주었다. 이번이 세 번째이다. 지위도 없는 블로거에게 왜 이렇게 관심 보이는 것일까? 대가를 바라고 보낸 것은 아닐 것이다. 나는 아무것도 해줄 것이 없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페친은 엽서도 보내 주었다. 친필로 쓴 것이다. 내용은 다음과 같다.



“이병욱 선생님

스리랑카 순례기는 페북을 통해 잘보았습니다. 지난 한해 한결같은 활동에 박수를 보냅니다. 다가오는 새해에도 더욱 건강, 건승, 성불 하시길 바랍니다.

coffee 절구질 하심에 조금 간소화 의미에서 드립용 커피를 조금 담았습니다. 부디 맛있게 드십시오.

임진규 드림”



커피를 절구질하여 마시고 있다. 절구질하면 입자가 다양하다. 맛도 다양할 것이다. 이를 ‘절구커피’라고 하여 종종 글을 쓴 바 있다. 그런데 페친은 이런 모습이 안되 보였던 것 같다. 절구질하는 수고를 덜도록 분쇄된 커피를 보낸다고 써 놓았다.

선물은 주어서 기쁘고 받아서 기쁜 것이다. 주는 자나 받는 자나 모두 즐거운 것이 선물이다. 그래서 선물은 원한 맺힌 자의 마음도 녹일 수 있는 것이라고 했다.

청정도론에 자애수행이 있다. 자애수행 최종단계는 주는 것이다. 백번천번 자애의 마음을 내는 것보다 한번 선물하는 것만 못하다는 뜻으로 받아 들였다. 이는 발렌타인데이나 화이트데이가 있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페친이 선물한 것은 글을 보았기 때문일 것이다. 글을 보고서 아름다운 마음을 낸 것이다. 이렇게 글을 쓰는 것은 아름다운 마음을 내준 것에 대한 감사의 표시이다. 무엇보다 아내가 좋아하는 것 같다. 그러나 경계해야 할 것이 있다. 글이 암시가 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매일 아침 커피로 하루일과를 시작한다. 오후에는 차를 마신다. 차와 커피를 보내 준 사람들의 아름다운 마음에 감사 드린다. 아무것도 아닌 일개 블로거에게는 과분한 처사이다. 더욱더 열심히 노력해야겠다.



2022-12-28
담마다사 이병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