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성지순례기

8. 공항에서 혜월스님을 만나고, 스리랑카 성지순례기 4 콜롬보 공항

담마다사 이병욱 2023. 1. 2. 11:30

8. 공항에서 혜월스님을 만나고, 스리랑카 성지순례기 4 콜롬보 공항

 


어제 수완나품 공항에서 김형근 선생을 만났다. 김형근 선생은 사흘 전에 먼저 태국에 와 있었다. 이번 여행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함께 할 여행도반이다. 수완나품 공항에서 비행기는 2022 12 11일 오전 8 40분에 출발했다. 태국 현지시간이다.

스리랑카항공 비행기는 탈만 했다. 저가항공의 비행기하고는 달랐다. 비록 이코노미 클라스에 지나지 않지만 좌석도 넓직하고 의자도 뒤로 젖혀지고 비행정보도 알 수 있었다. 무엇보다 무선충전이 되는 것이었다. 저가항공의 열악한 환경과 비교하면 호텔급이다.

이 세상은 돈이 지배하는 세상이다. 이에 대해서 김형근 선생은 비행기 좌석에서 확연히 드러난다고 했다. 돈이 없는 사람은 이코노미 클라스에 타고 여유 있는 사람은 비즈니스 클라스에 타기 때문이다. 아주 돈 많은 부자는 퍼스트 클라스에 탄다. 돈이 궁한 사람은 저가항공을 탈 것이다.

세상은 급에 따라 대우가 달라진다. 이코노미 클라스와 비즈니스 클라스는 좌석의 넓이뿐만 아니라 먹는 것에서도 차별화가 이루어진다. 그런데 이코노미와 저가의 차이는 매우 극명하다는 것이다. 좌석의 비좁음도 있지만 먹는 것에 있어서 차이가 결정적이다.

저가항공에서는 기내식이 제공되지 않는다. 다만 요청하면 물만 제공될 뿐이다. 이에 반하여 이코노미는 비행시간이 짧이도 기내식이 제공된다. 이번 방콕-콜롬보 스리랑카 항공이 그랬다. 후식으로 커피나 차도 제공된다. 저가 비해서 대우 받는 것 같다. 하물며 비즈니스나 퍼스트는 어떠할까?

 


돈이 지배하는 세상이다. 돈에 의해서 그레이드가 나누어지는 세상이다. 돈 앞에 인격이나 학식은 무력하다. 제아무리 고결한 인격자라도 돈이 없으면 저가항공에 몸을 싣고 마치 닭장 속의 닭처럼 꼼짝하지 않고 먼 길을 가야 한다. 그렇다고 저가를 폄하하는 것은 아니다. 저가는 저가 나름대로 역할이 있기 때문이다.

김형근 선생과 앞좌석에 앉았다. 김형근 선생도 이번 스리랑카 순례는 처음이라고 했다. 마침 혜월스님의 스리랑카 귀국이 있어서 혜월스님의 귀국에 맞추어 기획했다고 한다. 혜월스님은 스리랑카 사람으로 미국 엘에이(LA)에서 포교활동하고 있다. 구산스님의 외국인 제자 중의 한사람이다.

방콕 수완나품 공항에서 콜롬보 카투나야케 공항까지는 3시간 가량 걸린다. 카투나야케는 스리랑카 대통령 이름이다. 인천에서 수완나품까지는 6시간 이상 걸렸는데 거의 절반에 해당되는 시간이다. 지도로 보아서도 절반거리에 해당된다.

 

한국에서 태국 가는 길은 멀다. 그러나 태국에서 스리랑카 가는 길은 멀지 않다. 어쩌면 우리가 이웃나라 일본에 가는 것처럼, 태국에서는 스리랑카가 이웃인지 모른다. 마치 마실 다니는 것 같은 거리라고 생각된다.

옛날부터 태국과 스리랑카는 교류가 있었다. 비록 인도양이라는 거대한 바다가 있기는 했지만 오히려 바다가 육지보다는 교류하기에는 더 유리했었던 것 같다. 몬순기에 바람이 불면 스리랑카에서 태국까지 2주 걸린다고 한다.

스리랑카와 태국과는 불교의 교류가 매우 활발하게 일어났다. 스리랑카에서 태국으로 테라와다불교를 전달해 주고, 스리랑카에서 계맥에 끊어 졌을 때는 태국에서 율사 스님들을 파견해서 계맥을 복구시켜 주기도 했다. 이는 스리랑카와 미얀마 사이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였다.

 

테라와다불교를 리드하는 세 나라가 있다. 스리랑카, 미얀마, 태국을 말한다. 흔히 스리랑카에 대하여 교학의 나라라고 말하고, 미얀마에 대하여 수행의 나라라고 말하고, 태국에 대해서는 계율의 나라라고 말한다. 그러나 이는 편의상 분류방법이다. 실제로는 혼합되어 있다.

 

스리랑카, 미얀마, 태국을 테라와다불교 삼국이라고 한다. 그런데 이 삼국은 스리랑카를 중심으로 하여 중세시대 때부터 교류가 있었다는 것이다. 그것도 인도양이라는 대양을 사이에 둔 교류를 말한다. 이른바 대양항해를 이용한 교류이다.

 

스리랑카에서 동남아시아로 테라와다불교가 전해진 것은 12세기의 일이다. 위키백과에 따르면 “1165년부터 1180년까지 미얀마에 상좌부 불교를 전파하였다.”라고 했다. 이는 스리랑카에서 불교 중흥기에 해당되는 폴론나루와 시기를 말한다.

 

스리랑카에서는 종종 불교의 계맥이 단절되기도 했다. 대부분 외세의 침략에 의한 것이다. 그때마다 미얀마와 태국에서 계맥을 복원시켜 주기도 했다. 계맥을 전승해 준 곳에서 역으로 계맥을 전승 받은 것이다. 대양을 가로질러 서로 주고 받은 것이다.

 

마성스님의 불교평론 글에 따르면, 스리랑카에서 미얀마 승가에 수계법을 전수해 주었다. 이때가 스리랑카 빠라끄라마바후 6(1410~1468) 왕의 통치기간이다. 미안마에서는 버고 왕조 시대의 담마제디 왕 때이다. 미얀마 승가에서 스리랑카로 장로비구들을 파견했응게 스리랑카 대사파(Mahavihara)로부터 수계법을 배워 오게 한 것이다. 그때가 1476년이다. 이는 미얀마승단을 정화하고 쇄신하기 위한 것이었다.

 

스리랑카에서 포루투갈의 침략으로 계맥이 단절되었다. 그때 미얀마에서는 역으로 스리랑카에 계맥을 전수해 주어서 계맥을 복원시켜 주었다. 그때가 스리랑카 위말라다르마수리야 1(1592~1604) 왕의 통치 시기에 해당된다.

 

스리랑카에서 태국으로 계맥의 전수도 이루어졌다. 이는 스리랑카 부와나이까바후 4(1302~1346) 왕의 통치 시기에 해당된다. 미얀마에 계맥을 전수해 준 것보다는 한세기 가량 빠르다. 그때 당시 태국에 승가를 설립했다. 그런데 스리랑카에서 계맥이 단절되었을 때 태국에서 계맥을 복구시켜 주었다는 사실이다. 1753년 태국의 우빨리 장로가 스리랑카의 캔디를 방문하여 승가를 복구시켜 준 것은 잘 알려져 있다. 이전에도 한번 복구시켜 준 바 있다.

 

현재 스리랑카불교에는 삼대 승단이 있다. 1753년 태국에서 계맥을 이어 주었는데 오늘날 이를 씨암니까야(Siam Nikāya)라고 한다. 1802년 미얀마에서 계맥을 이어 주었는데 이를 아마라푸라니까야(Amarapura Nikāya)라고 한다, 1864년 역시 미얀마에서 계맥을 이어 주었는데 이를 라만냐니까야(Rāmañña Nikāya)라고 한다.

 

스라랑카는 미얀마와 태국에 계맥을 전승해 주었다. 그리고 계맥이 단절되었를 때는 역으로 계맥을 전승받았다. 이처럼 테라와다 삼국은 서로 계맥을 주고받았다.

 

기내에는 온통 스리랑카 사람들뿐인 것 같다. 간혹 서양사람으로 보이는 백인들도 눈에 띈다. 동양사람은 찾아 보기 힘들 정도이다. 낯선 곳으로 가는 것이 실감난다.

거의 도착할 무렵 기내에서 아이가 칭얼대는 소리가 났다. 아기는아빠, 아빠했다. 처음에는 귀를 의심했다. 분명히 아빠를 아빠라고 부른 것이다. 더 놀라운 것은 엄마를 "엄마"라고 부른 것이다. 우리나라 아이가엄마” “아빠를 부르는 것과 똑같은 것이었다!

세상은 때로 불가사의할 때도 있다. 자신의 상식으로 도저히 믿기지 않을 때는 불가사의하다고 말한다. 아이가 칭얼대면서 "엄마" "아빠"를 부르는 것도 그랬다. 김형근 선생이인터레스팅(Interesting)”하며 관심을 보였다. 아이의 부모는 스리랑카 사람이긴 하지만 싱할라족이 아니라 타밀족이었다.

인도 타밀족 언어는 우리와 유사하다고 말한다. 엄마와 아빠 호칭은 같다. 이와 같은 언어 유사성에 대해서 수많은 글과 이야기가 있다. 그런데 비행기 안에서 실감했다는 사실이다. 얼굴 형태도 다르고 피부도 다르지만 같은 단어를 쓴다는 것에 있어서는 동질감을 느꼈다.

 


마침내 비행기가 카투나야케 공항에 도착했다. 비행기가 랜딩할 때 스무스했다. 이는 저가항공에서 랜딩할 때소리 나는 것과 매우 대조적이었다.

공항에는 온통 스리랑카 사람들뿐이다. 방콕 수완나품 공항의 국제화된 분위기와는 완전히 다르다. 태국은 치안이 잘 되어 있어서 배낭여행의 천국이라고 한다. 한국사람들 일부는 북부에 있는 치앙마이에서 한달살이 하는 사람들도 있다. 또한 태국은 골프여행의 천국이기도 하다.

 


스리랑카에는 오로지 스리랑카 사람들만 있는 것 같다. 유럽사람들이 간간히 보이기는 하지만 동양사람들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 확실이 낯선 곳, 이지에 왔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런데 공항 입구에 불상이 있었다는 것이다.

세계 여러나라를 많이 돌아다니지 못했다. 외국여행은 손으로 꼽을 정도이다. 회사 다닐 때는 업무와 관련된 여행을 했으나 일인사업자가 되고 나서부터는 해외성지순례 위주의 여행을 하고 있다. 중국, 일본, 인도, 미얀마를 다녔다. 이번 스리랑카 순례는 나라로 봤을 때는 다섯 번째이다. 그런데 초입부터 강렬했다. 입국장에 들어서자 마자 불상이 있었던 것이다!

 


스리랑카는 불교의 나라이다. 그것도 세계불교를 주도하는 위치에 있다. 왜 그런가? 스리랑카는 불교의 종가집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시작은 기원전 3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그때 당시 3차결집되어 공인된 불교가 스리랑카에 처음 들어 왔기 때문이다. 인도대륙에서 불교는 망했지만 스리랑카에 전달된 불교는 원형 그대로 보존되어 왔다.

오늘날 테라와다불교는 스리랑카를 중심으로 전파되었다. 태국, 미얀마, 라오스, 캄보디아 등 동남아불교는 스리랑카불교를 뿌리로 하고 있다. 요즘에는 세계불교를 주도하고 있다. 스리랑카불교 노력으로 웨삭(Vesak)이 유엔에서 공식적으로 홀리데이로 선언되게 한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스리랑카는 테라와다불교의 고향이다. 동시에 전세계 불교의 고향이기도 하다. 그런데 나라의 관문에 해당되는 입국장에 불상이 보라는 듯이 자리잡고 있었던 것이다. 불교인들에게는 반가운 것이다. 다민족 다종교 사회의 스리랑카에서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불교의 위상을 보여 주고 있는 것 같다.

불자라면 우리나라가 불국토가 되기를 꿈꾼다. 그 옛날 그랬던 것처럼 삼천리 방방곡곡 부처님 가르침으로 가득한 세상이 되기를 꿈꾼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십자가 천지가 되었다. 삼천리 방방곡곡 십자가 보이지 않는 곳이 없다. 과연 옛날의 영화를 되찾을 수 있을까? 우리도 스리랑카처럼 입국장에 불상이 당당하게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을까?

스리랑카 공항은 타국 공항과 분위기가 다르다. 스리랑카 사람들 일색인 것도 특징이긴 하지만 무장 군인도 곳곳에 눈에 띈다는 사실이다. 치안이 불안하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말해 주는 것 같다. 다민족에 종교도 다양해서 긴장과 갈등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공항을 출국장을 빠져 나왔다. 공항 대기실에서 혜월스님을 기다렸다. 혜월스님은 엘에이(LA)에서 파리를 경유해서 입국예정이다. 한시간 동안 기다리는 동안에 심카드를 교체했다. 한국처럼 자유롭게 스마트폰을 사용하기 위해서는 꼭 필요한 조치였다. 30일 사용할 수 있는데 6불 들었다. 이전 것은 공항을 나갈 때 바꿔끼면 된다.

공항에서 혜월스님을 만났다. 혜월스님은 예상과 다르게 노랑가사를 입고 있었다. 한국에서 구산스님 제자로 있었기 때문에 한국승복을 입고 나타날 줄 알았는데 예상이 빗나갔다. 그런 혜월스님은 스리랑카 사람이다.

 

 

이번 스리랑카 순례는 혜월스님과 함께 하게 되었다. 혜월스님이 특별히 시간을 내주어서 가능하게 된 것이다. 바쁜 일정이 있었음에도 이렇게 한국에서 온 순례자들을 위해서 시간을 내준 것은 크나큰 자비심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라고 본다.

 

스님과 공항을 나설 때 차를 하나 렌트했다. 일본 혼다 승용차를 렌트했다. 운전기사와 함께 하는 순례이다. 모두 네 명이 탑승했다. 혜월스님, 김형근 선생, 그본인, 운전기사를 말한다. 승용차는 공항을 빠져나와 콜롬보 시내로 들어 갔다.

 

 

콜롬보 가는 길에 스리랑카를 보았다. 고속도로 주변에는 온통 야자나무 천지이다. 혜월스님은 유창한 한국어로 스리랑카에 왔었던 한국사람들에 대해서 이야기 했다. 비구니 스님 등 공부하러 온 사람들이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후 소식은 알 수 없다고 말했다.

 

차창 밖으로 보이는 스리랑카는 풍요로워 보였다. 아마도 바깥 풍경이 녹색일색이기 때문일 것이다. 오염되지 않은 환경이 대체로 청정해 보였다. 날씨도 너무 덥지도 않은 초여름이라서 기분도 산뜻했다. 지금부터 스라랑카 여행이 시작되는 것이다.

 

 

2022-12-11
담마다사 이병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