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흙속의연꽃

깨진 놋쇠그릇처럼

담마다사 이병욱 2023. 1. 11. 13:32

깨진 놋쇠그릇처럼


일인사업자라 삶이 자유롭다. 점심시간에 일터에서 벗어나 집에서 점심을 먹을 수 있다. 직장인이라면 꿈도 꾸지 못할 것이다. 매일 집에만 있는 사람이라면 의미가 없을 것이다. 일터를 직장처럼 다니는 자영업자에게는 일탈의 자유가 있다.

집에 가면 점심을 해먹는다. 당연히 점심값이 절약된다. 그 돈으로 중앙시장에 가면 며칠 먹거리를 살 수 있다. 아내가 직장에 다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점심 때 집에 가는 진정한 이유가 있다. 그것은 지상에서 가장 편한자세로 니까야를 보는 재미가 있기 때문이다. 이른바 머리맡에 있는 니까야를 말한다.

무엇이든지 의지처가 있으면 든든하다. 노후 든든한 의지처는 아마도 연금일 것이다. 비록 공무원연금의 반토막에 지나지 않지만 국민연금이 나온다는 것은 든든한 것이다. 그런데 나에게는 진정한 의지처가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니까야이다.

니까야는 의지처를 넘어선다. 나에게 있어서 니까야는 피난처에 가깝다. 언제든지 위기를 느끼면 숨을수 있는 피난처와 같은 것이다. 니까야를 읽으면 마음이 청정해지고 기쁨이 생겨난다.

요즘 니까야 읽는 재미로 산다. 그런데 아직도 니까야가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들도 있다는 것이다. 모르다 보니 거부감이 있는 것 같다. 니까야 얘기할 때 저항감도 있을 것이다.

사람은 자만하기 쉽다. 조금 가졌다고 해서 없는 사람을 경멸한다면 부자의 자만이라 해야 할 것이다. 지위가 있다고 해서 지위가 없는 자를 무시한다면 태생의 자만에 해당될 것이다. 조금 안다고 해서 견해에 빠져 있다면 배운자의 자만에 해당될 것이다.

글을 쓰는 것도 자만이 될 수 있다. 자신의 지식을 드러내고자할 때 불편한 사람이 있다면 글쓰는 자의 자만이 된다. 그렇다면 나는 어떠한가?

글을 쓰다 보면 견해차이를 발견하게 된다. 자신과 견해를 달리하는 사람을 발견하게 된다. 이런 경우 부처님 가르침과 대조해 본다. 설령 큰스님의 견해가 훌륭하다고 해도 법과 율에 맞지 않으면 내쳐야 한다. 그렇다고 비방하는 것은 아니다. 비판하는 것이다.

비방과 비판은 다른 것이다. 비방은 상대방에 타격을 주기 위한 것이다. 대개 탐, , 치가 개입되어 있기 마련이다. 그러나 비판은 다르다. , , 치 없이 견해를 표출한다면 비판이 된다.

건전한 비판은 장려되어야 한다. 조직에서 비판정신이 실종되면 어떻게 될까? 조직침묵이 될 것이다. 잘못된 것에 대해서 누구도 말하지 않으면 공멸의 길로 가게 될 것이다.

종종 비난받는 때가 있다. 욕설에 가까운 비난이다. 주로 민감한 부위를 건드렸을 때이다. 어쩌면 자신의 이해와 관계된 것인지 모른다. 그럴 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

 


"
깨어진 놋쇠그릇처럼
그대 자신이 동요하지 않으면,
그것이 열반에 이른 것이니
격정은 그대에게 존재하지 않는다." (Dhp134)

 


말이 많아도 비난받고 말이 적어도 비난받는다. 말을 하지 않아도 비난 받는다. 부처님도 비난 받았다. 이 세상에 비난 받지 않는 사람은 없다. 근거없는 비난에 어떻게 해야 할까? 가르침에 답이 있다. 법구경에서는 깨진 놋쇠그릇처럼 동요하지 말라고 했다.

비난받으면 발끈한다. 마치 종치는 것과 같다. 쇠붙이 종을 "땡땡땡"하며 치는 것과 같다. 그러나 현명한 자는 땅바닥에 있는 깨진 종과 같다. 아무리 쳐도 소리가 나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깨어진 놋쇠그릇처럼" 동요하지 않는다고 했다.

글만 쓰면 수행을 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수행기를 올리면 한 수 가르쳐 주려고 한다. 글이 길면 글이 너무 길다고 말한다. 글이 짧으면 내용이 없다고 말할 것이다. 어느 장단에 춤을 추어야 할까?

17
년 동안 글을 쓰면서 수많은 일을 겪었다. 산전수전 다 겪었다. 속된 말로 공중전도 치렀다. 댓글을 보면 유형을 파악할 수 있다. 깨어진 놋쇠그릇처럼 되고자 한다. 아무리 때려도 소리가 나지 않는 것이다.

하루가 허무하게 스러진다. 아침인가 싶으면 저녁이다. 새벽에 잠에서 깨면 어제와 똑같은 상황이 된다. 언제까지나 지속되지 않을 것이다. 파국의 날이 있을 것이다.

하루하루가 지나간다. 아무것도 하는 일없이 식사가 대사가 되었을 때 인생은 허무한 것이다. 아무것도 남는 없는 인생이 되었을 때 허와 무밖에 없다. 인생을 이렇게 살 수 없다.

틈만 나면 니까야를 읽는다. 니까야에 길이 있고 진리가 있다. 인생의 정초를 세울 수 있다. 불자들이여, 니까야 읽는 삶을 살아라. 불자들이여, 니까야 구입 불사를 하라. 나는 오늘도 머리맡에 있는 니까야를 읽는다.


2023-01-11
담마다사 이병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