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흙속의연꽃

나도 토굴 하나 있었으면

담마다사 이병욱 2023. 1. 15. 08:46

나도 토굴 하나 있었으면

 

 

이슬비 내리는 일요일 아침이다. 날씨는 우중충하고 차갑다. 하늘은 구름이 잔뜩 끼여 있고 춥다. 사람은 날씨에 따라 영향을 받는 것 같다. 구루미 선데이, 우울한 일요일이 된 것 같다.

 

일요일 아침이라 해서 가만 있을 수 없다. 집을 벗어나야 한다. 눈만 뜨면 밥만 먹으면 갈 곳이 있다는 것은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지 모른다. 일인사업자에게 주말은 없다. 월화수목금금금이다.

 

 

일터에 왔다. 일감이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일요일에도 나오는 것은 편하기 때문이다. 혼자만의 공간이다. 이런 자유를 맛 본지 16년 되었다. 200712월 입주이래 지금까지 내리 한 장소에만 있다.

 

몸이 찌뿌둥하다. 마음은 들떠 있다. 이런 상태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당연히 수행도 되지 않는다. 이럴 땐 어떻게 해야 할까? 몸과 마음 상태를 바꾸어 주어야 한다. 목욕을 하는 것이 좋다. 욕조 뜨거운 물에 몸을 담그는 것만으로도 기분전환이 된다. 더 좋은 것은 글을 쓰는 것이다.

 

수행자에게 있어서 들뜸은 커다란 장애이다. 들뜸은 오장애 중에 하나이다. 탐욕, 분노, 해태와 혼침, 의심, 흥분과 회환을 말한다. 이와 같은 오장애가 있는 한 선정에 들 수 없다. 마음의 장애가 있는 상태에서는 수행을 할 수 없다.

 

사무실은 나만의 공간이다. 가장 먼저 하는 일은 커피를 만드는 일이다. 원두커피를 말한다. 오늘은 절구커피로 마시기로 했다. 분쇄커피를 계속 마셨는데 이제 식상한 것 같다. 다시 절구커피로 돌아간다.

 

 

분쇄커피와 절구커피 맛은 다르다. 분쇄커피는 진한 맛이 난다. 절구커피는 부드러운 맛이다. 분쇄커피는 입자가 일정하고 미세하다. 이에 반하여 절구커피는 입자는 거칠고 알갱이는 크기 다양하다. 절구질하며 만든 것이기 때문에 입자가 다양한 것이다. 입자의 다양성 때문에 오묘한 맛이 나는 것 같다.

 

절구커피를 마시니 몸이 사르르 녹는 것 같다. 마치 한약 마시는 것 같다. 피가 도는 것 같다. 역시 커피는 절구커피가 최고인 것 같다. 다른 사람들은 이 맛을 알까?

 

사람들은 이 행복이 오래 지속되기를 바란다. 불행에 빠진 자는 하루 빨리 불행에서 빠져 나와 행복하기를 바란다. 매일 아침 절구커피를 마시며 하루일과를 시작하지 10년이 넘었다. 언제까지 이 행복이 지속될까?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기 마련이다. 사무실도 이제 비워야 할 때가 된 것 같다. 난방비가 너무 올라서 견디지 못할 지경에 이르렀다. 12월 관리비 청구서를 보니 아파트 관리비보다 한배 반이나 많다. 주말에는 난방 하지 않는다. 전기히터로 버틴다. 그럼에도 난방비가 전년 대비 53프로가 올랐다. 이를 어떻게 해야 할까?

 

 

오피스텔은 안양에서 가장 오래되었다. 1991년에 지었다고 하니 32년 된 것이다. 그런데 시설이 노후화 되어 수리비가 많이 들어간다고 한다. 더구나 난방을 가스로 하는데 이번에 대폭 올랐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때문이라고 한다.

 

임대료는 변함없다. 16년전이나 지금이나 그대로이다. 그러나 관리비는 꾸준히 올랐다. 이제 임대료를 추월하기에 이르렀다. 이제까지 평균적으로 하루 이만원이었으나 그 이상 되게 된 것이다.

 

종종 이런 생각을 해 본다. “나도 토굴 하나 있었으면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재가불자에게 무슨 토굴이라고 말할지 모른다. 누구나 자신만의 공간을 필요로 한다면 이런 꿈을 가져 볼 수 있다. 그런데 사무실 난방비가 대폭 상승됨으로 인하여 토굴에 대한 꿈을 가져 본다.

 

 

토굴은 수행공간을 뜻한다. 스님들의 개인 수행공간이기도 하다. 그런데 요즘은 토굴개념이 확장되었다. 시골에 단독 가옥도 토굴이라고 하고 심지어 아파트도 토굴이라고 한다. 이렇게 본다면 사무실도 토굴이라고 말할 수 있다.

 

현재 하는 일은 사람을 만나지 않아도 되는 일이다. 비대면으로도 할 수 있는 일이다. 메일로 자료를 주고 받고 전화로 소통하면 되는 일이다. 이렇게 본다면 일터는 어디에 있든지 상관없다. 네트워크만 깔려 있으면 깊은 산중에 있어도 된다.

 

토굴은 집에서 너무 멀지도 않고 가까운 곳에 있었으면 좋겠다. 안양을 벗어나지 않는 것이다. 관악산 가까이 빈 공간이 있으면 최상의 조건이 될 것 같다. 임대료만 나가고 관리비는 거의 없는 공간이면 최상의 조건이다. 그런 공간 어디 없을까?

 

은퇴자에게는 로망이 있다. 그것은 자신만의 공간을 갖는 것이다. 그러나 비용이 들어간다. 수입은 없는 상태에서 고정적으로 지출만 있을 때 버티기 힘들 것이다. 그래서 두세명이 모아서 오피스텔을 임대하는 경우도 있다.

 

나에게 있어서 일터는 어떤 의미인가? 일감이 있으면 일을 하는 공간이다. 또한 자아실현의 공간이기도 하다. 오전은 주로 글쓰기로 보내기 때문이다. 요즘은 행선과 좌선을 의무적으로 하려고 한다.

 

 

과연 나는 이 공간을 탈출할 수 있을까? 싼 임대료와 저렴한 관리비로 이제까지 잘 살아 왔다. 그러나 러-우 전쟁의 여파가 나에게까지 미쳤다. 이 위기를 어떻게 돌파해야 할까? 전쟁이 끝나면 가스비는 다시 원위치 되는 것일까? 그러나 쉽지 않을 것 같다.

 

이것 저것 다 따져 보면 이곳처럼 좋은 조건이 없는 것 같다. 비용을 감수하며 결국 눌러 앉게 될 가능성이 높다. 그럼에도 꿈을 꾸어 본다. 봄에는 관악산이 보이는 곳에 토굴 하나 갖는 것이다. 나도 토굴을 하나 가지고 싶다.

 

 

2023-01-15

담마다사 이병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