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흙속의연꽃

시인이여, 더이상 슬픔을 노래하지 말자

담마다사 이병욱 2023. 1. 19. 06:58

시인이여, 더이상 슬픔을 노래하지 말자

 


슬픔을 노래하는 시인이 있다. 시인의 시에는 꼭 슬픔이라는 단어가 들어간다. 시인은 무엇이 그토록 슬픈 것일까? 나이 들어 늙어가는 것이 슬픈 것일까? 몸이 아파 병든 것이 슬픈 것일까? 모든 일이 내뜻대로 되지 않아서 슬픈 것일까?

인생은 본래 슬픈 것이다. 슬픈 것은 괴로운 것이다. 인간은 본래 괴로운 존재로 태어났다. 부처님도 그렇게 말하지 않았던가? 일체개고라고.

왜 일체가 괴로운 것일까? 가르침을 알면 명백하다. 이럴 때는 경전을 근거로 해서 말해야 한다. 자신의 생각을 말하면 사견이 되어 버린다. 부처님은 오온에 집착되어 있기 때문에 괴로운 것이라고 했다. 이른바 오취온고를 말한다.

오취온고, 오온을 내것이라고 보기 때문에 괴로운 것이다. 슬퍼도 내가 슬픈 것이다. 괴로워도 내가 괴로운 것이다. 즐거워도 내가 즐거운 것이다. 느낌에는 언제나 내가 있는 것임을 알수 있다.

내가 없다면 슬픔도 괴로움도 없을 것이다. 물론 즐거움도 없다. 그런데 부처님은 놀랍게도 내가 없다고 했다. 그래서 오온에 대해서 "이것은 나의 것이 아니고, 이것은 내가 아니고, 이것은 나의 자아가 아니다."라고 했다. 초기경전에 수도없이 나오는 말이다.

경전에 크게 의지하고 있다. 구체적으로 니까야 경전에 의지하고 있다. 이런 삶에 경멸하는 자들도 있다. 책에 의지하지 말라는 것이다. 자신의 삶을 살아야지 왜 남의 삶을 사느냐고 나무라는 것 같다.

어느 스님이 있다. 스님은 윤회를 부정한다. 부처님 가르침에 윤회는 없다고 말한다. 불자들이 말하는 윤회는 힌두교식 윤회라고 한다. 그러면서 과학적 탐구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지금 여기에서 행복한 삶을 살면 그만이라는 식으로 말한다.

스승이 없는 시대에 살고 있다. 깨달았다고 하는 자들이 한마디씩 하지만 부처님 가르침에 견주어 보면 허상으로 드러난다.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하는 것일 뿐이다. 그런 사람을 스승으로 할 수 없다. 윤회를 부정하는 자는 부처님 제자가 아니라고 단언할 수 있다.

이 세상에는 잘나고 똑똑한 자들만 사는 세상은 아니다. 이 세상에는 갖가지 종류의 유정물이 있다. 인간도 갖가지 종류의 사람들이 있다. 당연히 못나고 어리석은 자들도 있다. 그럼에도 잘나고 똑똑한 자들만을 대상으로 하여 윤회는 없다는 식으로 말했을 때 사견이 된다.

한번 형성되면 좀처럼 바꾸기 힘들다. 이 모양 이 성향대로 태어난 자는 평생간다. 죽을 때까지 변하지 않는 것이다. 타고난 것이 그렇다는 것이다. 이렇게 보았을 때 열등하게 태어난 자의 희망은 다음 세상을 기대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윤회가 없다고 말하는 자는 우월한 자를 대변하는 것 밖에 되지 않는다.

이 세상에는 자신이 누구인지도 모르고 사는 사람들이 많다. 이 세상에는 신체적으로 정신적으로 열등한 조건을 가지고 태어난 사람들도 많다. 그래서 세상을 힘겹게 살아간다. 그럼에도 윤회가 없다고 말하면서 지금 여기에서 행복을 말한다면 위선이다.

시인은 슬픔을 노래한다. 시인의 시에는 슬픔이 빠지지 않는다. 무엇이 그토록 시인을 슬프게 만들었을까? 아마도 그것은 생, 노, 병, 사에 대한 괴로움일 것이다. 더 나아가 사랑하는 것과 헤어짐에 대한 괴로움, 사랑하지 않는 것과 만나는 것에 대한 괴로움,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하는 것에 대한 괴로움일 것이다. 그러나 근본적인 괴로움은 오온에 대하여 자신의 것이라고 꽉 움켜쥐고 있는 것에 대한 괴로움, 오취온고일 것이다.

시인이여, 더 이상 슬픔을 노래하지 말자. 이 세상은 본래 괴롭고 슬픈 세상이다. 부처님도 "태어남을 조건으로 늙음과 죽음, 슬픔, 비탄, 고통, 근심, 절망이 생겨난다."(S12.2)라고 말씀하지 않았던가? 태어났기 때문에 슬픈 것이다.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비탄, 고통, 근심, 절망으로 이어진다.

삶의 종착지는 절망이다. 죽음에 이르렀을 때 절망이다. 그러나 절망이 끝이 아니다. 새로운 태어남이 있다. 다음에는 좀더 좋은 조건으로 태어나기를 바라는 것이다. 선업을 쌓아서 천상에 나거나 인간으로 태어나도 고귀한 존재로 나는 것이다. 이것이 힌두교적 윤회라고?

"네 가지 거룩한 진리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해
여기 저기 태어나
오랜 세월 윤회했다.

이들 진리를 보았으니
존재의 통로는 부수어졌고
괴로움의 뿌리는 끊어졌고
이제 다시 태어남은 없다."(D16)

 


부처님이 완전한 열반에 들기 직전에 말씀하신 것이다. 부처님은 윤회를 말씀하셨다. 그리고 사성제로 윤회를 벗어남에 대해서도 말씀하셨다. 부처님은 윤회의 괴로움을 끝내자고 말씀하신 것이다.

부처님은 초기경전에서 수도 없이 윤회를 말씀 하셨다. 윤회를 벗어나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본래 괴로운 존재로 태어 났기 때문에 괴로울 수밖에 없고 슬플 수밖에 없다. 그러나 가르침을 접하면 슬픔은 기쁨으로 바뀐다. 시인이여, 더이상 슬퍼하지 말자.

 


2023-01-19
담마다사 이병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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