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성지순례기

스리랑카 성지순례기15, 부처님은 불상에 동의했을까? 아바야기리 사마디불상을 보고

담마다사 이병욱 2023. 1. 21. 07:28

스리랑카 성지순례기15, 부처님은 불상에 동의했을까? 아바야기리 사마디불상을 보고


열반이 최상의 행복이다.”(Dhp.204) 법구경에 실려 있는 가르침이다. 열반은 지각할 수도 없고 느낄 수도 없는데 왜 행복이라 했을까? 행복은 즐거운 상태를 말라는데 적멸의 고요에 대해서 왜 궁극적 행복이라고 했을까?

순례자들은 아바야기리 대탑을 보고 다음 행선지로 이동했다. 스리랑카 현지인 가이드는 사마디불상이 있는 곳으로 안내했다. 대탑에서 몇 백미터 떨어진 곳에 있다. 그럼에도 차로 이동했다. 이번에는 신발을 벗지 않아도 되었다. 숲속에 덩그러니 불상 하나만 있었기 때문이다. 이를 '사마디불상1'이라고 한다.


현지 시점은 2022년 12월 12일 늦은 오후이다. 이날 점심이후부터 바쁜 일정을 소화했다. 아누라다푸라 신성도시 곳곳을 둘러 보는 일정이다. 한곳에 30분 정도 할당 되었다. 그러다 보니 주마간산격이 되었다. 그럼에도 사진을 남겼다. 여행 후기를 쓰기 위한 것이다. 사진을 바탕으로 검색해 가면서 여행기를 완성해 나가는 것이다

스리랑카에 대한 지식이 별로 없다. 스리랑카 불교에 대해서도 피상적 지식을 가지고 있을 뿐이다. 유적에 대한 것은 더욱더 모른다. 현지에서 가이드가 이끄는 대로 갈 뿐이다. 모두 처음 보는 것들이다.


처음 접하는 유적은 모두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그것은 나의 상상을 초월했기 때문이다.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대탑이 나타났을 때 전혀 다른 세상에 있게 됨을 알게 되었다. 사마디 불상도 그런 것 중의 하나이다.

스리랑카 불상은 특징이 있다. 그것은 명상하는 불상이다. 이를 사마디 붓다 스테튜라고 한다. 스리랑카에는 왜 사마디불상이 많을까? 아마도 그것은 보리수와 관련이 있을 것 같다.

스리랑카불교의 특징중의 하나는 보리수를 숭배하는 것이다. 스리랑카 보리수 신앙은 아마 전세계적으로 유례를 찾아 볼 수 없을 것 같다. 그렇다면 스리랑카에서는 왜 보리수를 숭배하고 신앙하는 것일까?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것이다.

스리랑카에서는 왜 보리수를 숭배할까?

보리수는 스리랑카불교와 역사를 함께 한다. 보드가야에 있는 보리수 묘목이 섬에 들어 옴으로 인하여 스리랑카불교의 역사가 시작되었다. 이식된 보리수는 스리랑카 전역에 퍼져 나갔다. 사원마다 보리수가 심어져 있다.

사원에서 가장 중심지는 보리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스리랑카 불자들은 보리수를 참배한다. 보리수 주변을 돌기도 한다. 보리수가 잘 자랄 수 있도록 물을 뿌려 준다. 보리수가 살아 있는 한 사원은 번영할 것이다. 보리수가 살아 있는 한 스리랑카불교는 죽지 않을 것이다.

스리랑카 불자들에게 있어서 보리수는 생명과 같은 나무이다. 보리수가 죽지 않도록 최선을 다한다. 사원에 보리수가 죽으면 사원은 망한 것이다. 살아 있는 보리수가 죽지 않도록 최선을 다한다. 또한 보리수를 이식하여 새로운 사원을 만든다. 스리랑카에서 보리수 숭배와 보리수 신앙이 생겨나지 않을 수밖에 없는 이유라고 생각한다.

불상은 보리수 보조 역할

보리수에는 보리수만 있는 것은 아니다. 보리수를 중심으로 하여 사방에 불상이 있다. 보리수가 메인이고 불상이 서브처럼 보인다. 이때 불상은 사마디불상이다. 명상속의 부처님이다. 부처님이 보리수 아래에서 정각을 이룬 장면에 대한 것이다. 그래서 두 눈을 감고 있는 모습이다.

사마디불상은 보리수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불탑 주변에도 있다. 보리수와 마찬가지로 불탑 사방에 사마디형 불탑이 있다. 이때 불탑 역시 서브로 여겨진다. 메인은 불사리가 있는 불탑이고 불상은 이를 보조하는 역할 정도로 보인다.

스리랑카불교에서 불상은 그다지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지 않는 것 같다. 스리랑카불교에서 가장 숭배의 대상이 되는 것은 단연 보리수와 불탑이다. 이는 부처님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보리수는 부처님이 정각을 이룬 나무이고 불탑에는 부처님의 사리가 들어 있다.

불상은 부처님의 형상을 만든 것이다. 그러나 부처님 그분이 어떤 모습인지 모른다. 초기경전에는 부처님의 신체적 특징에 대하여 32상으로 묘사해 놓았다. 이를 형상으로 만든 것이 불상이라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아무리 불상을 잘 만든다고 해도 살아 있는 부처님 형상을 그대로 재현할 수 없을 것이다.

무불상(無佛像) 시대가 있었는데

역사적으로 무불상(無佛像) 시대가 있었다. 부처님의 형상이 없는 시대, 불상이 없던 시대가 부처님 입멸 후에 5백년 가량 지속 되었다.

사람들은 왜 불상을 만들지 않았을까? 부처님은 너무나 위대한 분이라서 감히 불상으로 만들 엄두가 나지 않았을 것이다. 아무리 잘 만든다고 해도 완전하게 만들 수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무불상 시대 때는 부처님의 상징이 불상을 대체했다. 보리수, 법륜, 족적 같은 것이다. 보리수는 부처님의 깨달음을 상징하고. 법륜은 전법을 상징한다. 신체적인 것으로는 유일하게 부처님의 발바닥 모습을 숭배의 대상으로 삼았다. 감히 부처님의 얼굴을 형상으로 만들 생각을 하지 않은 것이다.

시대가 흐르면서 불상이 출현하게 되었다. 부처님 입멸후 5백년이 되던 무렵에 불상이 출현한 것이다. 이는 대승불교의 흥기와도 관련이 있다.

사람들은 부처님 그분이 어떤 분이 너무도 궁금했었던 것 같다. 보리수나 법륜, 족적으로는 양이 차지 않았을 것이다. 부처님도 같은 인간이기 때문에 인간 중에서도 가장 고귀한 모습을 형상화하고자 했을 것이다.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람은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아마 이 세상에서 가장 잘 생긴 미인을 아름답다고 말할 것이다. 그러나 이는 겉모습일 뿐이다. 미인이라도 탐욕, 성냄, 어리석음이 있다면 그 순간 추악해 보인다.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람은 마음이 깨끗한 사람이다. 그것은 명상하는 사람이다.

명상하는 사람은 아름답다. 설령 그가 못생기고 비호감으로 외모를 가졌더라도 하나의 대상에 집중하는 모습은 아름답다. 마치 공부하는 사람이 사랑스러워 보이고 일하는 사람이 좋아 보이는 것은 몰두하고 있기 때문이다.

공부하는 사람, 일하는 사람, 명상하는 사람은 공통적으로 몰두하고 있는 모습이다. 이는 탐, 진, 치와 같은 어리석음이 없는 상태를 말한다. 무탐, 무진, 무치의 상태라면 외모와 관련 없다. 왜 그런가? 마음이 아름답기 때문이다.

이 세상에 가장 아름다운 사람은 마음이 청정한 사람이다. 이런 모습을 명상하는 사람에게서 본다. 어떤 사람이 발의 움직임을 따라가며 행선하는 모습은 아름답다. 어떤 사람이 가부좌를 하고 두 손을 포개고 명상하는 모습을 보면 거룩해 보인다.


사마디형 불상은 아름답고 거룩해 보인다. 아바야기리 사원 구역에 있는 사마디불상도 그랬다. 처음 접했을 때 거룩해 보였다. 마치 석굴암 본존불을 보았을 때와 같은 인상을 받았다. 그것은 명상하는 모습의 부처님이다. 보리수 아래 금강좌에 앉아 정각을 이룰 때 모습을 형상화 한 것이다.

인도의 모디 총리가 선물로 받은 불상

사마디불상과 관련하여 검색해 보았다. 위키백과에 따르면 인도의 모디 총리가 스리랑카를 국빈 방문했을 때 불상을 선물로 받았다고 한다. 바로 그 불상은 다름아닌 아바야기리 사원 구역에 있는 사마디불상이다.

스리랑카 대통령은 왜 인도 총리에게 사마디불상을 선물했을까? 위키백과에 따르면 네루와 관련이 있다. 네루는 1931년에 스리랑카를 방문했다. 그때 처음으로 사마디불상을 봤을 때 감탄했다고 한다. 이후 네루가 감옥에 있을 때 스리랑카 사마디불상은 마음의 위안처가 되었다. 이에 대하여 네루는 “그것은 소중한 동반자가 되었습니다.”라고 말했다.

(인터넷)


세월이 흘렀다. 인도의 모디 총리가 2019년 스리랑카를 국빈 방문했다. 그때 스리랑카 마히트리팔라는 모디 총리에게 불상을 선물했다. 네루 총리가 마음의 위안으로 삼았던 바로 그 사마디불상을 말한다. 사마디불상 복제품을 만들어 선물한 것이다.

사마디불상은 전형적인 스리랑카불상이다. 스리랑카 전역에서 볼 수 있는 사마디형 불상의 원조가 되는 것이다. 어쩌면 그때 당시 스리랑카 사람의 모습을 잘 표현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아바야기리사원 구역에서 본 사마디형 불상

아누라다푸라 아바야기리사원 구역에서 사마디형 불상1을 접했다. 불상은 꽤 크다. 높이가 7피트 3인치라고 한다. 미터법으로 환산하면 2미터 20센티에 이른다. 이 불상은 언제 만들어졌을까? 위키백과에 따르면 4-6세기라고 한다. 그런데 이와 같은 사마디형 불상은 아바야기리 사원 구역에서만 발견된다는 사실이다.

아바야기리 사원은 개방적이었다. 테라와다불교이긴 하지만 대승의 사조도 받아 들였다. 법현스님은 410년 무렵 이곳 스리랑카 아바야기리 사원을 방문했다. 법현스님에 따르면 아바야기리 사원에 대하여 “소승불교(Hīnayāna)와 대승불교(Mahāyāna) 가르침을 모두 연구하고 삼장(Tripiaka)을 전파한다.”라고 했다.

아바야기리 사원은 대승불교를 수용했다. 그래서일까 불상도 수용했을 것이다. 법현스님이 방문했을 때도 불상은 이미 있었을 것이다. 아바야기리 사원 구역에서 4세기 것으로 보이는 두 기의 사마디형 불상이 발견된 것으로 알 수 있다.

(사마디불상 3)


법현스님은 ‘사마디형 불상 3’에 대하여 불국기에 기록을 남겼다. 법현스님은 “그 나무 아래에는 비하라(vihara)가 세워져 있고 거기에는 (부처님의) 형상이 앉아 있고, 승려들과 일반 대중들이 결코 지치지 않고 존경하고 존경합니다. ......” (Third Samadhi Statue and the Asanaghara)라고 불국기에 기록을 남겨 놓았다. 이로 알 수 있는 것은 법현스님이 스리랑카를 방문했었던 410년 무렵에는 이미 불상이 있었던 것이다.


마하비하라는 아바야기리와 대척점에 있었다. 그래서인지 마하비하라 사원 구역에서는 고대의 불상이 발견되지 않는다. 아는 마하비하라가 대승의 사조를 받아들이지 않았기 때문으로 본다. 그래서 법현스님은 마하비라하에 대하여 “마하비하라파(Mahāvihāravāsins)에서는 대승불교(Mahāyāna)를 거부하고 소승불교(Hīnayāna)를 실천한다.”라고 써 놓았다.

마하비하라파는 불교의 전통을 고수하고자 했다. 그것은 정통불교를 말한다. 아소까 대왕 당시에 3차결집된 공인불교를 말한다. 그래서 삼장에 근거한 불교를 실천하고자 했을 것이다. 그 결과 변화무쌍한 인도 대륙의 새로운 사조를 거부했을 것이다. 당연히 대승불교도 거부하고 불상도 거부했을 것이다. 이런 이유로 마하비하라 구역에서 고대의 불상이 발견되지 않는 것 아닐까?

부처님은 불상 만드는 것에 동의했을까?

부처님은 자신의 모습을 형상으로 남기는 것을 좋아했을까? 지금 부처님이 계신다면 자신의 모습을 형상으로 만들어 숭배하는 것에 대하여 동의하지 않았을 것이다. 왜 그런가? 이는 경전적 근거가 있다. 다음과 같은 가르침을 말한다.


“박깔리여, 그만두어라. 나의 부서져 가는 몸을 보아서 무엇하느냐? 박깔리여, 진리를 보는 자는 나를 보고 나를 보는 자는 진리를 본다. 박깔리여, 참으로 진리를 보면 나를 보고 나를 보면 진리를 본다.”(S22.87)


부처님 제자 박깔리 존자가 있었다. 박깔리는 부처님이 설법할 때 진리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지 않고 부처님 얼굴만 쳐다 보았다. 그리고 청정한 음성에 끌렸다. 마치 어느 학생이 수업을 받는데 선생의 얼굴만 빤히 쳐다 보는 것과 같다. 이럴 때 선생은“학생은 왜 내 얼굴만 빤히 쳐다 보죠? 내가 하는 말에 집중하세요.”라며 주의를 줄 것이다.

박깔리는 부처님의 32상에 매료 되었다. 부처님이 말씀하시는 것은 귀에도 들어 오지 않았다. 부처님의 아름다운 형상만 보고 있었던 것이다. 또한 박깔리는 부처님의 음성에 매료 되었다. 그 부처님의 목소리는 감미롭고 달콤하고 울림이 있고 명료하고 꾀꼬리 같은 아름다운 목소리를 말한다.

부처님은 박깔리를 두고 볼 수 없었던 것 같다. 그래서 부처님은 “나의 부서져 가는 몸을 보아서 무엇하느냐?”라며 나무랐다. 이어서 “진리를 보는 자는 나를 보고 나를 보는 자는 진리를 본다. (dhamma passati so ma passati, yo ma passati so dhamma passati)”(S22.87)라고 말했다.

부처님은 제자들에게 형상과 음성으로 자신을 보지 말라고 했다. 진리를 보라고 했다. 진리를 보는 것이 곧 나를 보는 것이라고 했다. 그래서일까 후대에 성립된 금강경에서는“약이색견아(若以色見我) 이음성구아(以音聲求我) 시인행사도(是人行邪道) 불능견여래(不能見如來)”라고 했다. 이 말은 “만약 형상으로 나를 보거나, 음성으로 나를 구하고자 한다면, 이 사람은 삿된 도를 행하기 때문에 여래를 볼 수 없다.”라는 뜻이다.

부처님은 진리의 몸이기에

부처님 가르침에 따르면 불상을 만들어서는 안된다. 불상을 만들어 불상에서 부처님을 찾으려 한다면 삿된 도를 행하는 것과 같다고 했다. 이는 오늘날 우상숭배로 나타난다. 부처님 그분의 가르침을 따르지 않고 단지 기복만을 바란다면 부처님이 바라던 것은 아닐 것이기 때문이다.

부처님이 바라던 것은 무엇일까? 꽃이나 향 등으로 공양받기 위해서 4아승지10만겁동안 십바라밀을 닦지 않았을 것이다. 부처님에 대한 최상의 공양은 가르침을 실천하는 것이다. 그래서“아난다여, 수행자나 수행녀나 남녀 재가신자가 가르침을 여법하게 실천하고 올바로 실천하고, 원리에 따라 행한다면, 그것이 최상의 공양으로 여래를 존경하고 존중하고 경배하고 예경하고 숭배하는 것이다.”(D16.108)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불상이 없었던 무불상시대가 있었다. 무려 5백년이나 지속되었다. 이 시기에는 오로지 부처님의 가르침만이 부처님을 대신했다. 부처님 가르침을 접하면 부처님을 친견하는 것과 같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부처님은 진리를 보는 자는 나를 보고 나를 보는 자는 진리를 본다.”라고 한 것이다. 그런데 이런 가르침은 니까야 도처에서 발견된다는 사실이다.

디가니까야 27번경에 따르면, 빠세나디 왕은 부처님을 진실로 존경했다. 그래서부처님은 자신을 경외하는 왕의 행위에 대하여 “진리야말로 현세에서도 내세에서도 최상이다.”(D27.4)라고 했다. 이는 부처님이 진리의 몸인 것을 말한다.

니까야는 법신이다

부처님은 스스로 자신의 몸에 대하여 진리의 몸이라고 했다. 진리의 몸을 따르는 자는 누구든지 진리의 상속자가 된다. 그래서 부처님은 진리의 몸에 대햐여 다음과 같이 말씀 하셨다.


바쎗타여, 여래에게는 ‘진리의 몸’이라든가 ‘하느님의 몸’이라든가 ‘진리의 존재’라든가 ‘하느님의 존재’라든가 하는 명칭이 있기 때문이다.”(D27.5)


부처님은 여래는 ‘진리의 몸(dhammakāya)’이라는 명칭이 있다고 했다. 이는 부처님이 진리의 몸, 즉 법신(法身)임을 선언하는 것이나 다름 없다. 그런데 부처님은 ‘하느님의 몸(brahmakāya)’이라고도 했다. 이는 무엇을 말하는가? 하느님, 즉 브라흐마는 고대인도 바라문교에서는 최상의 신이었다.

부처님은 부처님에 대하여 하느님의 몸과도 같다고 한 것이다. 이는 진리의 몸과 하느님의 몸과 동격임을 말한다. 또한 부처님은 ‘하느님의 존재(brahmabhuta)’와도 같다고 했다. 이는 무엇을 말하는가? 하느님의 존재가 바로 하느님의 존재인데, 이는 진리가 최상의 의미에서 하느님임을 말한다. 왜 그런가? 하느님을 뜻하는 브라흐마라는 말은 신성함, 거룩함, 최상이라는 뜻이 있기 때문이다.

부처님 당시나 무불상시대 때는 가르침을 암송했다. 가르침을 암송했을 때 항상 부처님과 함께 있는 셈이 되었을 것이다. 왜 그런가? 진리의 말씀이 바로 부처님 몸이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불상을 필요로 하지 않았을 것이다.

니까야에 따르면 부처님이 말씀 하신 것은 부처님의 몸과 같다고 했다. 이렇게 본다면 부처님의 말씀을 모아 놓은 니까야는 법신이 된다.

부처님이 아무리 멀리 떨어져 있어도

법신으로서 부처님 가르침은 이띠붓다까에서도 발견된다. 다음과 같은 가르침이 있다.


“수행승들이여, 만일 그 수행승이 일백 요자나 떨어져 살더라도, 그가 탐욕스럽지 않고, 감각적 쾌락의 욕망에 자극되지 않고, 마음에 분노가 넘치지 않고, 정신적으로 사유가 타락하지 않고, 새김이 마비되지 않고, 올바로 알아차리고, 올바로 집중하고, 마음이 통일되고, 감각능력이 통제되면, 나는 그에게서 가깝고 그는 나에게 가깝다. 그것은 무슨 까닭이냐? 수행승들이여, 그 수행승은 진리를 보기 때문이다. 진리를 보면, 나를 보는 것이다.”


부처님은 일백 요자나 떨어져 살더라도 가르침을 잘 실천한다면 부처님이 바로 옆에 있는 것과 같다고 하였다. 그래서 “나는 그에게서 가깝고 그는 나에게 가깝다. (atha kho so santike va mayha, aha ca tassa)”라 한 것이다.

지금 부처님은 앞에 계시지 않는다. 공간적으로는 멀리 떨어져 있고 시간적으로는 수천년 떨어져 있다. 그럼에도 부처님이 설하신 가르침이 실려 있는 경전을 가까이 한다면 부처님이 바로 앞에 계시는 것과 같다. 그래서 부처님은 “진리를 보면, 나를 보는 것이다.(dhamma passanto ma passatī)”(S22.87)라고 말씀했을 것이다.

성원정사 불상을 보면

아누라다푸라 아바야기리 사원 구역 안에 있는 사마디불상 앞에 섰다. 스리랑카에서 가장 아름다운 불상 중의 하나라고 한다. 이후 제작된 사마디불상은 모두 이 아바야기리 사원 구역에 있는 사마디불상 1을 모티브로 하여 제작된 것이라고 한다. 그러고 보니 한국에서도 이와 유사한 사마디불상을 보았다. 신림동 고시촌에 있는 성원정사 불상이 바로 그것이다.

(성원정사 사마디불상)


성원정사에 가면 스리랑카 불상을 볼 수 있다. 이는 성원정사 창립자인 송위지 법사가 스리랑카에서 젊은 시절 유학했기 때문일 것이다. 이런 이유로 법당에 스리랑카 불상을 모셔 놓은 것이다. 그런데 가부좌를 하고 눈을 감고 있는 모습이 전형적인 사마디형 불상이라는 것이다.

(양주 마하보디 사마디불상)


성원정사와 깊은 관련이 있는 사원이 하나 있다. 양주에 있는 마하보디 사원이다. 2019년 카티나 법요식 때 가 보았었다. 와치사라 스님이 창건한 스라랑카 사원이. 그때 법당에서 본 스리랑카 불상은 사마디형 불상이었다.

사마디형 불상과 안개(眼開)형 불상

크게 두 가지 유형의 불상이 있다. 하나는 눈을 감고 있는 사마디형 불상이고, 하나는 눈을 뜨고 있는 안개(眼開)형 불상이다. 전자의 사마디형불상은 스리링카 보리수나 대탑에서 주로 볼 수 있다. 후자의 안개형 불상은 전세계적으로 볼 수 있는데 주로 법당에서 볼 수 있다. 스리랑카에서도 법당 안에 모셔져 있는 불상은 대부분 안개형 불상이다.

사마디형 불상은 부처님의 정각과 관련이 있다. 깨달은 순간을 형상화 한 것이다. 이에 반하여 안개형 불상은 중생교화와 관련이 있다. 그래서 눈을 떠서 중생들을 연민으로 마음으로 바라 보는 것 같다.

한국에는 스리랑카 이주민들이 많이 살고 있다. 그런데 스리랑카 이주민들을 위한 쉼터도 있다는 사실이다. 그것은 스리랑카 스님들이 세운 스리랑카 사원을 말한다. 대표적으로 아산에 마하위하라가 있다. 그런데 법당에 있는 불상을 보면 안개형이라는 사실이다. 이는 무엇을 말하는가? 중생을 자비와 연민으로 바라 보는 모습을 형상화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아산 마하위하라 개형 불상)


한국에 있는 불상은 대부분 안개형이다. 눈을 뜨고 아래로 내려다 보는 모습이다. 이는 중생에 대한 자비의 연민의 마음이 담긴 불상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스리랑카에서 보는 것처럼 눈을 감고 두 손을 포갠 모습의 사마디불상은 없다는 사실이다. 아마 이런 것도 불교의 전통의 문화가 서로 다르기 때문일 것이다.

(조계사 불상)


보는 각도에 따라 모습을 달리한다는데

사마디불상은 보는 각도에 따라 모습을 달리한다고 말한다. 현지인 가이드에 따르면 보는 방향에 따라 슬픈 모습도 있고 행복한 모습도 있다는 것이다. 오른쪽에서 보았을 때 행복한 모습이라고 했다. 이에 정면과 좌우 사진을 찍어 두었다.


사마디불상 사진을 다시 보았다. 어느 면으로 보나 근엄한 모습이다. 코는 새로 붙인 것이라고 한다. 1886년 발견 당시에는 코가 떨어져 나간 채로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이후 코를 다시 붙였는데 너무 날카롭다. 어느 면으로 보나 슬픈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삼매의 든 부처님의 모습에서 슬픔은 있을 수 없다. 적멸의 고요에 든 불상은 최상의 행복을 표현한 것이다. 그래서 행복한 모습의 불상이라고 말할 수 있다.

적멸의 고요에 따른 궁극적인 행복

사마디형 불상은 거룩한 모습을 특징으로 한다. 눈을 감고 삼매에 든 모습 자체가 거룩하기 때문에 거룩한 모습이 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그것은 다름 아닌 최상의 행복이다. 이는 적멸의 고요에 따른 궁극적인 행복이다.


법구경에서 “닙바낭 빠라망 수캉(nibbāna parama sukha)”(Dhp.204)이라고 했다. 이 말한 것이다. 열반은 이 세상 그 어떤 행복과도 견줄 수 없는 최상의 행복이다. 거기에는 지각도 느낌도 없다. 지각도 느낌도 느낄 수 없어서 최상의 행복인 것이다. 적멸의 고요야말로 궁극적 행복이다. 그래서 부처님은 우다나에서 행복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게송으로 말했다.


수행승들이여, 이러한 세계가 있는데
거기에는 땅도 없고, 물도 없고, 불도 없고, 바람도 없고,
무한공간의 세계도 없고, 무한의식의 세계도 없고,
아무것도 없는 세계도 없고,
지각하는 것도 아니고 지각하지 않는 것도 아닌 세계도 없고,
이 세상도 없고, 저 세상도 없고,
태양도 없고 달도 없다.”(Ud.80)


2023-01-21
담마다사 이병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