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성지순례기

스리랑카 성지순례기16, 스리랑카 불탑은 어떤 구조로 되어 있을까? 폐사지 제따바나라마야에서

담마다사 이병욱 2023. 1. 23. 15:39

스리랑카 성지순례기16, 스리랑카 불탑은 어떤 구조로 되어 있을까? 폐사지 제따바나라마야에서


즐기는 여행을 하지 않는다. 치앙마이 한달살이 또는 두달살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팔자 좋은 사람들이리고 생각한다. 은퇴자들이 풍족한 연금으로 물가가 싼 나라에서 왕족처럼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일을 하지 않는 자들이 세계를 유랑하면서 몇 달씩 할 일 없이 보낼 수도 있을 것이다.

즐기는 여행을 단호히 거부한다. 여행은 구도여행이 되어야 한다. 해외에 나가는 것은 순례여행이기도 하지만 구도여행이기도 하다. 그 옛날 구법승이 그랬던 것처럼 구법승이 되어 보는 것이다. 이번 스리랑카 성지순례도 그렇게 하고자 했다.

쌍둥이 연못에서 악어를

스리랑카 현지에서 날자는 2022년 12월 12일 늦은 오후이다. 순례자들은 아바야기리 대탑을 보고 난 다음 다음 행선지로 이동했다. 현지인 가이드는 먼저 트윈 폰드로 안내했다. 우리말로 쌍둥이 연못이라고 한다.


트윈폰드는 현지어로 꿋땀 뽀꾸나(Kuttam Pokuna )이다. 아누라다푸라 아바야기리 사원 구역에는 수많은 연못이 있는데 그 중에서 가장 큰 것은 에트 뽀꾸나라 하여 코끼리 연못이라고 한다. 이번에 현지인 가이드가 안내한 곳은 가장 동쪽에 있는 쌍둥이 연못이다.


연못은 작은 것과 큰 것 두 개로 이루어져 있다. 그래서 쌍둥이 연못이라고 했을 것이다. 그런데 보통 연못이 아니다. 아름다운 석조로 장식되어서 품격 있는 연못이다. 크기는 얼마나 될까? 132피트라고 한다. 길이가 40미터 가량 된다. 언제 만들어졌을까? 6세기 아가보디 1세(575-608)의 통치 기간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된다.

(인터넷)


연못을 보면 마치 예술품을 대하는 듯하다. 네모난 테두리에서부터 바닥에 이르기 까지 모두 석재로 이루어져 있다. 수로가 연결되어 있어서 맑고 깨끗한 물이 늘 공급되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쌍둥이 연못은 어떤 용도로 만든 것일까?


스리랑카는 상하의 열대지역에 있다. 낮에는 기온이 상승하여 더울 수밖에 없다. 더구나 오후가 되면 태양은 매우 강렬할 것이다. 이럴 때 몸을 식힐 필요가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만들어진 것이 연못이다. 쌍둥이 연못은 수행승들을 위한 연못이라고 말할 수 있다.


현지인 가이드가 알려 준 것이 하나 있었다. 그것은 악어에 대한 것이다. 연못에 악어가 산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이 말을 믿지 않았다. 그러나 연못을 한바퀴 돌아 보는 과정에서 악어를 발견했다. 정말로 연못에는 악어가 살고 있었던 것이다!


연못은 폐허속에서 발견되었다. 인터넷 검색으로 본 사진에 따르면 오랜 세월 정글의 밀림에 버려져 있었다. 이를 복원해 놓으니 마치 그 옛날 그 시절 모습으로 되돌아 간 것 같아 보인다.

(인터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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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따바나라마야(Jetavanaramaya)

순례자들은 트윈 폰드를 보고 난 후에 다음 행선지로 이동했다. 그곳은 제따바나라마야(Jetavanaramaya)이다. 제따바나 비하라 사원 구역에 있다. 지금은 폐사지나 다름 없는 곳이다.

제따바나라마야에는 거대한 불탑이 있다. 붉은 벽돌 그대로 불탑이다. 마치 아바야기리 대탑을 보는 것 같다. 형태가 매우 비슷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처음 이 탑을 보았을 때 아바야기리 대탑인 것으로 착각할 정도로 똑같이 생겼다.


제따바나 불탑은 거대하다. 불탑 앞에 서니 거대한 크기에 압도되었다. 아마 아누라다푸라 고대신성도시 구역에서 가장 큰 불탑일 것이다. 입간판의 설명문을 보니 높이가 73미터이다. 그런데 스리랑카 역사서 마하왐사에 따르면 12세기 때는 높이가 무려 122미터였다고 한다.

스리랑카 사람들은 왜 이토록 거대한 불탑을 만들었을까? 아마도 그것은 사람들로 하여금 경외심을 심어주기 위한 목적이 컸을 것이다. 어느 종교이든지 건축물을 보면, 보는 이로 하여금 압도하게 만든다. 다음으로는 부처님 사리와 관련이 있다. 사리탑을 거대하게 만들어 신심이 나게 하기 위한 목적도 있었을 것이다.


아누라다푸라에는 세 개의 사원구역이 있다. 마하비하라 사원구역, 아바야기리 사원구역, 그리고 제따바나 사원구역을 말한다. 이 세 사원구역은 천년 이상 번영했다. 그러나 12세기에 아바야기리와 제따와나는 몰락했다. 왕에 의해서 불교정화가 일어났기 때문이다. 마하비하라 한 곳을 남기고 모두 폐사한 것이다.

제따바나의 탄생 배경은?

제따바나는 어떻게 생겨나게 되었을까? 이는 마하비하라파와 아바야기리파의 대립과도 관련이 있다. 스리랑카의 왕 마하세나(277-304)가 아바야기리를 후원하면서부터 문제가 시작되었다.

스리랑카에서 사원은 왕권의 후원 여부에 따라 흥망이 갈렸다. 마하세나 왕이 아바야기리를 후원하자 마하비하라 사원은 폐허가 되었다. 왕은 마하미하라 사원의 수행승들에게 공양을 올리지 못하게 했기 때문이다. 공양을 하면 벌금을 물리게 했다. 이로 인하여 마하비하라파 수행승들은 사원을 떠나야 했다.

스리랑카에서 마하비하라는 정통이나 다름 없다. 그러나 세월이 흐름에 따라 대륙의 변화무쌍한 사조가 유입되었다. 그 선봉에 아바야기리가 있었다. 아바야기리는 왕의 후원을 받게 되자 번영했다. 수행승들이 떠나 버린 마하비하라는 콩밭으로 변했다. 그러고 마하비하라 사원의 석재는 아바야기리 사원을 건설하는데 사용되었다.

마하비하라는 9년 동안 폐허 상태로 있었다. 그런데 마하세나 왕은 다시 마하비하라를 부활시켰다는 사실이다. 왕이 상가밋따라는 장로에게 놀아났기 때문이다. 상가밋따가 암살당하자 마하비하라 사원을 복원하고 추방된 수행승들을 다시 불러 들였다. 마하비하라가 다시 한번 왕권의 후원을 받게 된 것이다.

마하비하라는 극적으로 부활했다. 그러나 부활은 오래 가지 않았다. 이번에는 마하세나 왕이 꾸하까띳사 장로를 존경하여 마하비하라 구역에 새로운 사원을 건립해 주고자 했기 때문이다. 바로 그 사원이 제따바나 사원이다. 이렇게 해서 제따바나 비하라파가 생겨나게 되었다.


마하비하라는 스리랑카 불교 역사에 있어서 항상 정통임을 자부했다. 기원적 3세기 마한디 장로가 스리랑카에 온 이래 3차 결집된 정통불교를 수호하고자 노력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륙의 새로운 사조에 물들지 않으려고 했다. 그런데 아바야기리와 성격이 가까운 제따와나 사원을 마하비하라 사원 구역에 조성하자 반발한 것이다. 이에 마하비하라파 수행승들이 또다시 마하비하라를 떠났다.

스리랑카에서 세 파는 오랜 세월 정립되어 있었다. 정통이고 적통임을 강조하는 마하비하라 파가 있었고 대승불교를 용인한 아바야기리 파가 있었고, 그리고 아바야기리와 성격이 유사한 제따바나 파가 있었다.

세 개의 파는 12세기가 되자 정리되었다. 이는 새로운 사조와 관련이 있다. 아바야기리파는 왕권의 후원을 받아 마하비하라파보다 더 번영했다. 그러나 대승의 교리는 물론 금강승의 교리까지 받아 들임에 따라 부처님 가르침에서 크게 변질되었다. 이에 마하비하라파가 빠라까마바후 1세(1153-1186)의 지원 하에 아바야기리와 제따바나를 폐사시켰다. 그리고 마하비하라에 통합시켰다. 이후 스리랑카 불교에서는 오로지 마하비하라파 하나만 남게 되었다.

제따바나는 잊혀진 사원

제따바나 대탑 앞에 섰다. 높이가 무려 72미터에 달한다. 그러나 붉은 색만 보인다. 붉은 색 벽돌이 적층 되어서 복발형 탑의 모습을 보여 주고 있다. 마하비하라 구역에 있는 루완웰리세이야 대탑처럼 백색의 회칠이 되어 있지 않다. 더구나 상층부에 있는 첨탑은 부서져 있다.


제따바나 대탑은 여러모로 아바야기리 대탑과 유사하다. 마치 일란성 쌍둥이처럼 비슷하다. 그래서 처음 보는 사람은 잘 구분이 되지 않을 정도이다. 그러나 잘 보면 차이점을 발견한다. 이는 상층부 탑의 파손여부로 쉽게 구분할 수 있다.

제따바나 대탑 앞에 2층구조의 지붕이 있는 법당이 있다. 이런 구조는 아바야기리에서도 볼 수 있다. 법당에 들어가면 와불을 볼 수 있다. 부처님 열반상에 대한 것이다. 아바야기리와 마찬가지로 힌두신상이 와불을 외호하는 것처럼 보인다.

거대한 제따바나 대탑을 탑돌이했다. 왼쪽방향으로 시작해서 오른쪽으로 한바퀴 도는 것이다. 본래 세 번 돌아야 하지만 마치 작은 학교의 운동장처럼 넓기 때문에 한번만 했다.

대탑 주변에는 공양단이 있다. 사방향에 공양단이 있고 삼매형 불상이 있다. 그러나 공양단에는 꽃과 같은 공양물이 보이지 않는다. 아바야기리처럼 잊혀진 대탑처럼 보인다. 찾는 사람들은 많지 않다. 어쩌다 사람들이 보일 뿐이다.


아바야기리와 제따바나는 폐사지나 다름 없다. 그것도 12세기에 폐사되었다. 이후 방치 되었다. 세월이 흐름에 따라 탑에서는 풀이 자라고 나무가 자랐을 것이다. 더 세월이 흘렀을 때 작은 산처럼 보였을 것이다. 다만 이곳이 탑이었음을 알려주는 상징만 있었을 뿐이다. 밀림속에 버려져 있는 사진을 보면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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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따바나는 대탑은 상층부가 파손되어 있다. 아바야기리 대탑 역시 상층부가 파손되어 있다. 또한 백색 회칠을 해 놓지 않았다. 이는 마하비하라 구역에 있는 백색의 대탑과 구별된다. 왜 이렇게 해 놓았을까? 왜 복원하지 않았을까? 아마도 그것은 폐사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아바야기리와 제따와나는 정통에서 한참 벗어나 있었다. 개방적인 분위기에서 새로운 사조가 들어왔으나 그것이 지나쳤을 때 강한 보수회귀 심리에 따라 사라진 것이다. 그럼에도 두 사원을 복원한다면 어떻게 될까?

아바야기리와 제따와나 대탑을 복원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파손된 상층부를 복원하고 백색 회칠을 한다면 근사해 보일 것이다. 그러나 우려도 없지 않아 있을 것이다. 그것은 아바야기리와 제따와나의 부활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아바야기리와 제따와나는 복원되지 않을 것 같다. 현재 이런 상태로 계속 가게 될 가능성이 높다. 어쩌면 역사의 교훈으로 삼는 것인지 모른다. 마치 식민지 유산을 파괴하지 않고 역사교육의 현장으로 활용하는 것과 같다. 정통불교에서 멀어졌을 때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 것인지 보여 주는 것 같다.

스리랑카 불탑은 어떤 구조로 되어 있을까?

탑은 완성된 모습을 보여 주어야 탑으로서 가치가 있다. 한국에서 폐사지에 있는 석탑을 보면 파손된 채로 덩그러니 서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탑이 탑으로서 가능을 하려면 탑의 꼭대기 부분까지 완성되어 있어야 한다.

아바야기리나 제따와나의 경우 탑의 꼭대기가 파손된 채로 남아 있다. 이렇게 본다면 한국의 폐사지에서 볼 수 있는 석탑과 다름 없다. 그렇다면 스리랑카 불탑은 어떤 구조로 되어 있을까?

스리랑카 불탑을 다고바라고 한다. 다고바는 크게 기단부, 탑신부, 상륜부로 나위어져 있다. 이런 구조는 한국의 석탑과 유사하다. 그러나 스리랑카는 탑신부가 반구형으로 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를 복발형이라고 한다. 밥그릇을 거꾸로 엎어 놓은 형상이다. 또 다른 말로 버블형이라고 한다. 거품처럼 보이기 때문일 것이다.


기단부는 매우 넓다. 대탑의 경우 백미터가 넘는다. 네모난 형으로 되어 있는 것이 일반적이다. 한국 석탑에서 네모난 기단석을 연상하면 된다. 탑신부는 복발형이다. 한국에서는 탑신부는 삼층, 오층, 칠층, 구층 형태로 나타난다. 다음으로 상륜부는 아름다운 장식으로 되어 있다. 한국의 석탑에도 상륜부가 있는데 정교한 구조로 되어 있다.

불탑은 신앙의 대상이다. 왜 그런가? 사리가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리탑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사리는 어디에 있을까? 대개 도굴꾼이 접근하기 힘든 위치에 사리를 봉안했을 것이다. 가장 안전한 곳은 어디일까? 마치 무덤처럼 복발형 탑신부 안쪽으로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사리는 상륜부에 안치된다고 한다.

스리랑카 불탑 상륜부는 독특하다. 상륜부는 크게 네 부위로 나눌 수 있다. 가장 아래에 사각형 박스처럼 되어 있는 하타레스 꼬뚜와(Hathares Kotuwa)가 있다. 그리고 바로 위에는 원통형으로 된 데바타 꼬뚜와(Devatha Kotuwa)가 있다. 사리가 봉안되어 있다면 두 곳 중에 하나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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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개의 꼬뚜와 위에는 두 단으로 된 우산형 구조물이 있다. 이를 꼬트 께렐라(Koth Kerella)라고 한다. 꼬트 께렐라는 디스크처럼 생긴 원판형으로 되어 있다. 원판이 수십개 적층되어 있는데 위로 갈수록 폭이 좁아진다. 원판형 위에는 꼬타가 있다. 꼬타는 작고 뾰족한 첨탑을 말한다. 꼬타에는 추다 마니끼야(Chuda Manikya)라 하여 보석이나 수정이 있다.

깨달음을 상징하는 불사리탑

전세계적으로 어느 탑이든지 아름답다. 왜 그럴까? 하나의 완성으로 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불교의 탑은 어떠할까? 불탑은 기본적으로 불사리탑이기 때문에 신앙의 대상이 된다. 그런데 불탑은 그 이상의 의미도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불교의 깨달음과 관련이 있다.

불탑은 크게 기단부, 탑신부, 상륜부로 나눌 수 있다. 이 세 가지가 조합되지 않으면 탑으로서 기능을 상실한다. 폐사지에 있는 탑은 상륜부가 없다. 그래서 탑으로 기능을 상실한다. 탑은 상륜부가 있어야 탑으로서 제구실을 한다.

스리랑카의 불탑에서는 상륜부에 사리가 있다. 상륜부가 사리가 없다면 불탑으로서 제기능을 하기 어렵다. 아바야기리 대탑과 제타바나 대탑은 상륜부가 파손되어 있기 때문에 불탑으로서 제기능을 하기 힘들다.

불탑은 사리탑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깨달음의 탑이기도 하다. 그래서 상층부로 갈수록 깨달음에 점차 가까워진다. 이렇게 본다면 기단부는 깨달음을 이루기 위한 기초로 본다. 이를 계학(戒學)이라고 말할 수 있다. 스리랑카 불탑에서는 네모난 모양의 기단이 이에 해당될 것이다. 다음으로 정학(定學)에 해당되는 부위는 탑신부가 될 것이다. 스리랑카 불탑에서는 복발형 탑신이 이에 해당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혜학(慧學)에 대한 것은 상륜부라고 볼 수 있다. 부처님의 사리가 모셔져 있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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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탑은 깨달음의 단계를 형상화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세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는 불탑은 계, 정, 혜 삼학을 상징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런데 깨달은 궁극적으로 혜학을 닦아야 이루어진다. 혜학에 해당되는 것이 상륜부이다.

상륜부에 가장 하단에는 사각형 박스처럼 되어 있는 하타레스 꼬뚜와가 있다. 이는 부처님의 가르침의 핵심인 사성제(四聖諦)를 상징한다. 스리랑카 불탑에서 복발형 탑신부 위에 사각형 박스를 올려 놓은 이유를 알 수 있을 것 같다.

상륜부의 사각형 모양의 하타레스 꼬뚜와 위에는 디스크를 여러 개 겹쳐 놓은 듯한 구조물이 있다. 이를 꼬트 께렐라라고 하는데 수십개 열 된다. 이는 무엇을 상징하는 것일까? 이는 다름아닌 깨달음의 단계를 의미한다.

깨달음은 단번에 이루어지지 않는다. 계행의 바탕에서 이루어지고 정학의 바탕에서 이루어진다. 그런데 깨달음에도 단계가 있다는 것이다. 이는 부처님이 “이 가르침과 계율에서는 점차적인 배움, 점차적인 실천, 점차적인 진보가 있지 궁극적인 앎에 대한 갑작스런 꿰뚫음은 없다.”(Ud.5.5, A8.19, Vin.II.237)라고도 말씀하신 것에서도 알 수 있다.

상륜부에 있는 꼬트 께렐라가 있다. 마히비하라 구역에 있는 루완웰리세이야 대탑에 있는 꼬트 께렐라는 원판모양이 30개가 넘는다. 이는 무엇을 말하는가? 깨달음의 단계가 30단계가 넘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할 수 있다.

칠청정과 16단계 위빠사나 지혜

오늘날 청정도론은 테라와다불교에 있어서 부동의 준거틀과 같다. 5세기붓다고사가 마하비하라 사원에서 저술한 청정도론은 깨달음에 이르는 길에 대하여 일곱 단계로 설명했다. 이를 칠청정이라고 한다.

청정도론은 칠청정을 설명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칠청정은 단계적으로 이루어진다는 사실이다. 이는 계, 정, 혜 삼학에 대한 것이다. 그런데 혜학이 무려 다섯이나 된다는 사실이다. 참고로 칠정정에 대한 것을 보면 다음과 같다.

1)계의 청정(sīla visuddhi)
2)마음의 청정(citta visuddhi)
3)견해의 청정(diṭṭhi visuddhi)
4)의혹에 대한 극복의 청정(kakhāvitaraa visuddhi)
5)길과 길 아님에 관한 앎과 봄의 청정(maggamāggañādassana visuddhi)
6)행도에 관한 앎과 봄의 청정(patipadāāadassa visuddhi)
7)앎과 봄의 청정(ñāadassa visuddhi)

이것이 칠청정이다. 여기서 계청정은 불탑의 기단과 같은 것이고, 마음의 청정은 탑신부와 같은 것이다. 견해의 청정부터 네 가지 청정은 지혜의 청정에 대한 것인데 이는 상륜부와 같은 것이다.

스리랑카 불탑의 상륜부는 디스크 모양의 원판이 축적되어 있다. 이는 깨달음의 단계를 말한다. 이는 혜학에 대한 것이기도 하다. 그런데 깨달음에는 단계가 있기 때문에 원판이 수십개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실제로 위빠사나 지혜는 16단계를 필요로 한다.

청정도론은 니까야 주석서이자 동시에 수행지침서이다. 그래서 청정도론을 보면 깨달음에 이르는 길에 대하여 상세하게 설명해 놓았다. 구체적으로 칠청정과 16단계 위빠사나 지혜를 말한다.

지혜의 최종단계는 열반

지혜의 최종단계는 무엇일까? 그것은 다름 아닌 열반이다. 청정도론에서는 열반의 순간에 대해서 “첫 번째 길의 찰나에 열반을 보는 것이 관찰적 깨달음이다. 나머지 길의 찰나에 열반을 보는 곳이 수행적 찰나의 깨달음이다.”(Vism.22.127)라고 했다. 이는 무엇을 말하는가? 성자의 흐름에 들어가려면 반드시 열반을 증득해야 함을 말한다.

칠청정과 위빠사나 16단계 지혜의 최종단계는 열반이다. 열반을 증득해야 사향사과의 성자가 될 수 있다. 사향사과와 열반이 있어야 부처님의 출세간의 가르침이 완성된다. 그리고 사향사과와 열반이 있어야 정법이 유지된다. 또한 윤회의 괴로움에서 벗어날 수 있다.

성자의 흐름에 들면 공양을 받을 만한 자격이 된다. 아직 남아 있는 번뇌를 모두 소멸해서 번뇌다한 아라한이 되었을 때 부처님의 가르침은 완성된다. 이와 같은 부처님의 가르침은 보석과도 같은 것이다. 그래서 수타니파타 ‘라따나경’(Sn.2.1)에서는 부처님과 부처님의 가르침과 부처님의 가르침을 실천하여 성자가 된 승가공동체에 대하여 보석과도 같다고 했다.

불, 법, 승에 대하여 삼보라고 한다. 이는 세 가지 보석을 말한다. 그런데 스리랑카 불탑의 가장 꼭대기에는 보석이 있다는 것이다. 날씨가 맑은 날에는 태양빛에 반사되어서 빛이 난다. 이는 크리스탈로 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를 보면 신심이 날 것이다.

석양에 비친 대탑을 보면

제따바나 불탑에는 상륜부가 파손되어 있다. 아바야기리 불탑에도 역시 상륜부가 파손되어 있다. 상륜부가 파손된 상태로 있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폐사지에 있는 석탑과도 같은 것이다. 이는 두 사원의 불행한 역사를 말해 주는 것 같다. 정통불교에서 멀어지고 변질되어서 정법이 훼손되었을 때 미래 운명이 어떻게 되리라는 것을 말해 주는 것 같다.


제타바나 대탑을 탑돌이 했다. 탑돌이를 거의 마쳤을 때 해가 서산으로 뉘엿뉘엿 넘어가고 있었다. 석양 저편 마하비하라 사원 구역에 있는 루완웰리세이야 대탑이 신성하게 보였다. 고요한 가운데 우뚝 솟아 있는 대탑은 경외감을 주기에 충분했다.


석양의 저편 대탑은 이편의 대탑과 여러모로 비교되었다. 저편은 승리자의 대탑이다. 그래서 순례자가 끊이지 않고 공양단에는 꽃공양으로 넘쳐난다. 그러나 이편의 대탑에는 상륜부는 파괴되어 있고 붉은 벽돌만 있을 뿐이다. 더구나 사람도 없고 공양단에는 꽃이 보이지 않았다. 스리랑카 불교의 강한 보수회귀성을 보여주는 것 같다.


2023-01-23
담마다사 이병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