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행기

어금니 악물어야 할 때는

담마다사 이병욱 2023. 1. 23. 23:52

어금니 악물어야 할 때는

 


수행의 길은 멀고도 험한 길이다. 어떤 이의 말대로 놓아 버리는 것이 수행이라 하지만 잘못하면 막행막식으로 될 수 있다. 그래서일까 부처님은 최후의 말씀에서 "압빠마데나 삼빠데타"라고 말씀하셨다. 불방일정진을 말한다.

불방일정진하려면 선원에 들어가는 것이 가장 좋다. 선원에서 집중수행하는 것이다. 하루종일 밥만 먹고 명상하는 것이다. 그러나 생업이 있는 사람에게는 꿈과 같은 이야기이다. 그럼에도 일년에 일주일이라도 집중수행 할 수 있으면 좋을 것이다. 여의치 않으면 금, 토, 일 주말이라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위빠사나 수행에 대해서 이런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위빠사나 수행하다가 피곤하면 사마타 수행한다는 것이다. 이는 무엇을 말하는가? 대상을 관찰하는 수행이 하나의 대상에 집중하는 수행보다 훨씬 힘든 것임을 말한다. 그런데 이 말에 대한 근거가 되는 자료를 발견했다. 마하시사야도의 '위빳사나 수행방법론'에 다음과 같은 글이 있다.

"[위빳사나] 관찰을 하는 시간이 너무 길어져서 몸과 마음이 피곤하면 [그리고 이미] 사마타 수행을 능숙히 한 수행자라면 사마타를 숙고해야 한다."(218쪽)

 


위빠사나 수행하다 힘들면 사마타수행하라는 것이다. 사마타 수행이 마치 쉼터 같은 인상을 준다. 사마타 수행이 마치 휴식시간 같은 인상을 준다. 그런데 이와 같은 방식은 위빠사나가 능숙하지 않았을 때 하는 방식이라는 것이다.

위빠사나 관찰이 능숙하면 사마타로 휴식을 취할 필요가 없다. 위빠사나 삼매가 약하기 때문에 사마타로 쉬고자 하는 것이다. 위빠사나 관찰을 하면서 오랫동안 앉아 있으면 피곤하게 되는데 그때는 사마타로 전환하라는 것이다.

사마타라 하여 색계와 무색계 선정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청정도론에 소개 되어 있는 것처럼 40가지 사마타 명상주제가 있다. 사유와 숙고에 따라 초선정까지는 가능한 것이다. 이는 40가지 중에서 하나를 선택해서 대상에 몰입하는 것이다.

이성에 대한 감각적 욕망이 일어날 때가 있다. 이럴 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 위빠사나 수행으로 제압할 수 있다. 무상, 고, 무아로 관찰하는 것이다. 그러나 힘이 약하면 망상에 지배받을 수 있다. 이런 때는 부정관을 해야 한다. 몸의 더러움에 대해서 숙고하는 것이다. 여시서 부정관은 사마타 40가지 명상주제 중에 한 부류에 속한다. 위빠사나 하다 힘에 부치면 사마타로 전환하는 것이다.

사마타 수행을 하면 번뇌를 제압할 수 있다. 사마타 명상 주제 하나에 마음을 집중하면 번뇌는 일어나지 않는다. 이는 당연한 것이다. 왜 그런가? 마음은 한순간에 두 가지 일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현재 하고 있는 일에 집중하면 이성에 대한 탐욕은 이전 마음이 되어서 번뇌에서 자유롭게 된다. 그래서 "번뇌가 생겨나면 사마타 수행 중 어느 하나를 수행해서 제거해야 한다."(218쪽)라고 말한다. 그래도 감각적 욕망이 일어나면 어떻게 해야 할까?

수행은 새로운 상태로 되는 것이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성찰이 있어야 할 것이다. 어제 보다 더 나은 오늘이 되기 위해서는 반성해야 한다. 부정관으로도 번뇌가 제거되지 않는다면 그 다음 단계는 "생겨난 감각욕망 사유에 대한 허물을 반조해야 한다."라고 했다. 어떻게 반조하는가? 그대로 두면 계를 파하게 되어 악처에 떨어지게 됨을 아는 것이다. 윤회의 고통을 생각하며 감각적 욕망의 허물을 반조하는 것이다. 그래서 이런 게송이 있다.

"그대여,
감각욕망 사유 등을 생겨나게 하는
오! 몸과 마음의 무더기여!
나는 그대의
노예도 아니다.
일당이나 월급을 받는 일꾼도 아니다.
부처님 가르침을 얻은 좋은 기회인 지금,
그대, 오온의 무더기를 더 이상
따라 좋아하며 돌보지 않으리라.
그대, 오온의 무더기만을 돌보면서,
따라 좋아하며 지냈기 때문에,
윤회하면서 많은 고통을
받아야만 했다."(219-220쪽)

오온을 인격화 해서 말한 것이다. 더 이상 오온이 하자는 대로 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오온이 하자는 대로 했을 때 윤회하게 되어서 고통만 받았을 뿐이라는 것이다.

모든 것은 마음 먹기에 달려 있다. 오온에 끌려 다니는 것도 마음을 제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테라가타 딸라뿟따 장로의 게송이 연상된다. 장로는 마음을 인격화 해서 다음과 같은 게송으로 말했다.

“우리가 그대 때문에 아수라가 되고
그대 때문에 지옥에 떨어진 존재가 되는 것이니.
언젠가 축생의 존재가 되고
아귀의 존재가 되는 것도 오로지 그대 때문이다.”(Thag.1134)

윤회의 고통을 생각한다면 감각적 욕망에 따른 탐욕은 그만 두어야 한다. 그럼에도 탐욕이 멈추지 않으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이럴 때는 신경쓰지 않는 것이다. 잠시 수행을 중단하는 것이다. 이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하라고 했다.

"하루낮, 하루밤 동안 위빳사나 수행을 완전히 쉬어 버리고 같이 지내는 사람과 자유롭게 대화도 나누면서 새김에 신경쓰지 말고 지내야 한다."(220쪽)

이 방법은 아사띠(asati)와 아마나시까라(amanasikara)에 대한 것이다. 새김도 놓아 버리고 주의기울임도 놓아 버리는 것이다. 잘해 보고자 하는 마음을 내려 놓는 것을 말한다. 일시적으로 포기함으로 인해 마음의 평안을 찾는 것이다.

어떤 이는 타락을 말한다. 때로 타락하는 것도 수행에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런 말은 부처님 가르침에 없다. 마치 독으로써 독을 다스리는 것과 같다. 대단히 위험한 방법이다.

위빠사나 관찰이 피곤하고 사마타로도 효과가 없을 때 수행을 일시적으로 중단해야 한다. 이럴 때는 도반들과 법담을 나누는 것도 좋고 경전을 소리내서 독송하는 것도 좋다고 한다. 그래도 탐욕이 일어나면 어떻게 해야 할까?

번뇌가 일어나는 것은 이유가 있을 것이다. 과거 경험했던 것이 일어나는 것이다. 그래서 "다른 생각이나 망상을 하게 되면 그 생각의 이유를 찾아야 한다."(221쪽)라고 했다.

반복해서 일어나는 번뇌가 있다. 마치 반복해서 꿈을 꾸는 것 같다. 군대에 갔다 왔음에도 영장이 나와 또 끌려가는 꿈이다. 감각적 욕망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매번 반복되는 번뇌의 뿌리를 찾는 것이다. 이에 대하여 "처음 시작하는 작은 생각이 생겨남과 동시에 새겨 알 수 있다면 생각이나 망상이 선명하게 생겨나지 않고 사라진다."(221쪽)라고 했다. 그래도 해결되지 않으면 어떻게 해야 할까?

번뇌가 일어나면 처음의 생각까지 찾아야 한다. 그럼에도 속수무책이라면 이제 남은 것은 한가지 방법밖에 없다. 그것은 번뇌와의 전쟁이다. 그래서 "너희 번뇌들이 무엇이든 간에 너희들을 이기도록 관찰하리라."(222쪽)라며 이를 악무는 것이다. 그래서 경전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오, 비구들이여! 다른 방법으로 사유를 제거할 수 없으면 그 비구는 아랫니로 윗니를 받치고 (어금니를 악물고) 혀로 입천장을 닿게 하여 관찰하는 마음으로 망상하며 달아나는 마음을 눌러야 한다."(M20)

이 가르침은 맛지마니까야 '사유중지의 경'(M20)에 있다. 어금니를 악무는 것은 최후의 수단이다. 이런 방법은 경전 지식이 적은 이들에게 적합하다고 한다. 이른바 용맹정진을 말한다.

번뇌를 누루기 위한 다섯 가지 방법이 있다. 이는 1)부정관, 2)감각적 욕망의 허물 반조, 3)일시적 수행중지, 4)망상의 원인 추적, 5)어금니 무는 것을 말한다. 이 중에서 1번과 4번까지는 전향이 있는 수행이라고 한다. 5번째는 전향이 없는 수행이다.

전향 있는 수행은 반조하며 수행하는 것이다. 이에 대하여 "다른 대상에 마음을 일부러 보낸 후에 다시 관찰하는 것"이라고 했다. 이 수행은 수행기간이 길고 경전 지식이 많고 지혜 있는 수행자에게 적합하다고 했다.

전향 없는 수행이 있다. 어금니를 악무는 수행을 말한다. 이 수행은 전향 있는 수행과 반대이다. 그래서 "짧은 기간 동안만 수행하는 이, 경전 지식이 적은 이들에게 적합한 방법이다."(222쪽)라고 했다. 단기간에 집중수행하는 수행자에게 적합한 것이다.

어떻게 해야 수행을 잘 할 수 있을까? 그것은 수행을 생활화 하는 것이다. 틈만 나면 수행하는 것이다. 틈만 나면 경전을 읽고 행선과 좌선을 하는 것이다. 때로는 선원에 들어가서 집중수행하는 것이다. 그래서 자기자신과 싸우는 것이다. 오온과 싸워서 승리하는 것이다. 이렇게 하려면 어금니를 악물어야 할 것이다.

2023-01-22
담마다사 이병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