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보살입니다
“당신이 부처님입니다.” 이 말은 어느 스님의 트레이드마크나 다름없다. 글을 마치고 날 때에 반드시 이 말이 후렴구처럼 들어 간다.
스님은 법문 할 때 늘 하는 말이 있다고 한다. 부부갈등으로 인하여 상담하러 올 때 상대방에게 백팔배하라는 것이다. 둘이서 마주 보고 하면 최상일 것이다. 상대방을 부처님처럼 보고 백팔배한다면 마치 햇볕에 눈 녹듯이 번뇌가 사라질 것이다.
오늘 새벽에 아내에게 시를 써서 카톡으로 보냈다. 카톡으로 메시지를 주고 받는 경우가 많은데 시를 써서 보내는 것은 흔한 일이 아니다. 특별한 날에나 가능한 것이다.
머리맡에 디가니까야가 있다. 그제 읽은 경이 마음에 와 닿았다. 그것은 ‘사랑의 시’에 대한 것이다. 니까야에 사랑의 시가 있다는 것이 놀라웠다. 노래와 춤을 주특기로 하는 건달바가 천상녀에게 보낸 장문의 시이다. 그 중의 일부를 보면 다음과 같다.
“땀 흘리는 자에게 바람처럼,
목마른 자에게 물처럼,
거룩한 님에게 가르침처럼,
빛나는 천녀여, 그대는 나의 님입니다.”(D21.4)
디가니까야 21번경 ‘제석천의 질문의 경’에 있는 게송이다. 건달바 빤짜씨까가 천녀 수리야밧차에게 보낸 것이다. 모두 14개 게송중의 일부이다. 시를 읽어 보면 오늘날 현대시 못지 않게 생생하고 현실적이다. 특히 비유가 매우 아름답다.
시를 보면 여인에 대한 최대의 찬사가 담겨 있다. 시를 보면 마음이 움직이지 않을 수 없을 정도이다. 어떻게 이와 같은 세속적인 시가 니까야에 들어 있을까? 이는 세속적인 시를 통해서 부처님을 드러내고자 하기 위함이다. 이는 다음과 같은 게송으로 알 수 있다.
“마치 성자가 최상의 원만한
깨달음을 얻어 기뻐하듯,
선한 여인이여, 그대와
한 몸이 되어 기뻐하겠습니다.”(D21.4)
게송에서 성자는 부처님을 말한다. 부처님이 보리좌에 앉아 일체지지를 얻어 기뻐하는 것처럼, 여인에게서 사랑의 성취를 기뻐하겠다는 것이다. 이런 게송은 대단히 세속적이다. 시 전체가 한 여인에 대한 흠모로 가득하다.
경에 실려 있는 게송을 보면 사랑의 시에 대한 정형을 보여 주는 것 같다. 수행승이 이와 같은 사랑의 시를 보면 곤혹스러울 것 같다. 그래서일까 초기불전연구원 각주를 보면 주석에 근거한 것 없이 “세속적인 사랑을 깨달음이나 성자와 비교해서 읊은 시들은 자이나교 전통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아마 그 시대 인도사람들에게는 친숙한 표현들이었을 것이다.”(초불연 2권 440번 각주)라고 써 놓았다.
니까야에 세속적인, 그리고 매우 노골적인 사랑의 시가 있다는 것은 놀랍다. 한평생 독신으로 살며 수행정진하며 사는 수행승들에게는 멍한 느낌이 들 것이다. 그래서 자이나교 전통의 시가 흘러 들어 온 것이 아닌지 의심하는 것이다. 그러나 게송은 부처님 가르침을 드러내기 위한 것이다. 마치 니까야에서 부처님과 반대 되는 말을 하는 악마를 등장시켜서 부처님의 가르침을 드러내고자 하는 것과 같다.
디가니까야 사랑의 시에서 자극받았다. 세상 사람들에게는 너무나 아름다운 사랑의 시이다. 연인 사이에 이런 시를 써서 보낸다면 감동할 것임에 틀림 없다. 오늘 새벽 시에서 한 구절을 인용해서 아내에게 바치는 시를 하나 썼다. 다섯 게송 정도 되는 시를 단번에 써내려 갔다. 그리고 아내에게 카톡을 보냈다. 회갑기념 시라고 표현했다.
아내에게 잘 해 준 것이 별로 없다. 팔팔년 이후 한집에 살고 있지만 어떤 때는 소가 닭 쳐다 보듯 하던 시절도 있었다. 어느 날 아내의 얼굴에서 중년에서 노년으로 넘어가는 모습을 보았다. 세월이 많이 흘렀음을 알게 되었다.
작년 아내 생일 때 카톡으로 장문으로 글을 하나 써서 보냈다. 처음 있는 일이었다. 올해에는 시를 하나 적어서 보냈다. 올해는 좀더 특별한 해다. 환갑기념으로 시를 보낸 것이다. 일종의 사랑의 시이다. 니까야에서 본 것을 모티브로 했다. 시는 블로그에 비공개로 처리했다.
스님은 당신이 부처님이라고 했다. 모든 사람을 부처님 보듯 한다면 다툼이 없을 것이다. 나는 모든 사람을 보살로 보고자 한다. 특히 아내를 보살로 보고자 한다. 관세음보살로 보는 것이다. 관세음보살 같은 아내를 기대하는 것보다 아내를 관세음보살처럼 보고자 하는 것이다. 당신이 보살입니다.
2023-02-07
담마다사 이병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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