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흙속의연꽃

공감능력 제로의 인터넷 꼰대를 보면

담마다사 이병욱 2023. 2. 9. 19:55

공감능력 제로의 인터넷 꼰대를 보면


페이스북 계정을 새로 만든지 사개월 되었다. 현재 친구는 800명 가량 된다. 계정을 새로 만든 것은 순전히 옥석을 가리기 위한 것이다. 허수를 배제하고 친구다운 친구를 만들기 위해서 만들었다.


친구라 하여 반드시 오프라인 친구만 친구라고 하지 않는다. 현실공간과 가상공간이 구분이 없어진 요즘에는 인터넷 공간에서 사귄 사람도 친구로 본다. 대표적으로 페친, 페이스북친구를 들 수 있다.

친구요청이 지속적으로 들어 온다. 아무나 받지 않는다. 나름대로 심사해서 선정한다. 실명이어야 하고 자신의 얼굴이 있어야 하고 무엇보다 콘텐츠가 있어야 한다. 그러나 이 세 가지 조건을 만족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들은 왜 친구요청을 하는 것일까? 친구요청을 수락할 때 메시지를 하나 발송한다. 그것은 공감표현을 해달라는 것이다. 글을 읽었으면 좋아요 등의 공감표현을 기대하는 것이다. 그러나 열에 아홉은 반응이 없다. 그들은 무엇 때문에 친구요청을 했을까? 그것이 궁금하다.

요즘 대부분 사람들은 에스엔에스로 소통한다. 카톡이나 밴드, 페이스북으로 실시간 소통하는 것이다. 이때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다름 아닌 공감이다. 공감이 없다면 죽은 공간이나 다름 없다.

사람들은 대체로 공감에 인색한 것 같다. 글이 길어서 그런 것일까? 글이 길면 일단 공감표현부터 하고 나서 읽으면 될 것이다. 많이 배운 사람들이나 지위가 높은 사람들일수록 공감능력이 부족한 것 같다. 특히 학생을 가르치는 선생이나 교수와 같은 사람이 그런 것 같다. 그렇다면 나는 어떠한가?

남의 글을 보면 공감해주고자 노력한다. 가능하면 짧게라도 댓글을 달아 준다. 공감 한번 해주는 것에 따라 힘을 받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자신의 글에 공감받기를 원한다면 남의 글에도 열심히 공감표현 해야 할 것이다.

공감능력은 사회 모든 분야에서도 요청된다. 부부사이에서도 공감능력이 요청된다. 말을 거들어 주는 것도 공감능력이 되는 것이다. 결국 “그랬구나” 라든가, “그렇네”라는 말로 귀결된다.

대체로 권위적인 사람은 공감능력이 약한 것 같다. 이는 “내가 누군데?”라는 자만을 가지기 때문이다. 많이 배운 사람, 많이 가진 사람, 지위가 있는 사람에게서 볼 수 있다.

자만에 가득한 자들은 여간해서 공감하지 않는다. 자신의 글 이외에는 관심을 두지 않는 것 같다. 그 사람의 계정에서 글을 남겨도 읽었다는 표시조차 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공감표현을 하고 글을 남긴다. 언젠가는 공감표현 할 것을 기대하면서 공감표시를 하는 것이다. 그래도 무관심하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무관심에 대응하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무관심에 대응하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하나는. 인정요청이고, 또 하나는 인정투쟁이다.

인정요청은 공감함으로써 자신을 지속적으로 알리는 것이다. 대부분 사람들은 이런 요청을 받아 준다. 공감능력이 있는 사람이다. 그런데 아무리 알려도 요지부동인 사람이 있다. 공감능력 제로인 사람이라고 볼 수 있다. 마치 사이코패스를 접한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사이코패스는 현실공간에서만 있는 것은 아니다. 에스엔에스와 같은 사이버공간에도 사이코패스를 볼 수 있다. 공감할 줄 모르는 사람이다. 마치 거울신경이 마비된 자를 보는 것 같다. 감정이 없는 에이아이(A.I)를 대하는 것 같다.

가상공간에서 기계인간 같은 사람을 본다. 오로지 자신이 올린 글에만 관심을 갖는 것 같다. 타인의 글은 읽어 보지 않는 것 같다. 심지어 댓글에도 반응을 하지 않는다. 마치 자기애(自己愛)에 빠진 나르시소스를 보는 것 같다.  글에는

누구나 인정욕구가 있다. 공감표현을 했으면 공감표현을 받고 싶어 하는 것은 대부분 사람들의 심리이다. 그럼에도 사이코패스와 같은 사람, 자기애에 빠진 꼰대같은 사람이 있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이런 부류의 사람에게는 인정투쟁을 해야 할 것이다.

인정욕구와 인정투쟁은 다른 것이다. 인정투쟁은 그 사람이 했던 방식대로 하는 것이다. 그 사람이 나를 무시했다면 똑 같은 방식대로 그 사람을 무시하면 되는 것이다. 이것이 인정투쟁이다. 인정욕구와는 정반대인 것이 인정투쟁인 것이다. 그러나 부처님 가르침을 따르는 불자로서 그렇게 할 수 없다. 자비의 마음으로 대해야 할 것이다.

페이스북 계정을 새로 만든지 사개월 되었다. 친구는 팔백명 되었다. 아직까지 마음을 열어 놓지 않은 사람들이 많다. 심지어 차단하기까지 한다. 반응이 없는 사이코패스 같은 사람, 자기애에 빠진 나르시소스 같은 사람이 있다. 공감능력 제로의 인터넷 꼰대 같은 사람이다. 이런 사람에게는 인정투쟁해야 할 것이 아니라 자비를 실천해야 할 것이다. 언젠가는 공감해 주기를 바라면서 오늘도 공감버튼을 눌러 주고자 한다.


2023-02-09
담마다사 이병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