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삶의 정초(定礎)는
고요한 새벽이다. 스마트폰 시계가 막 세 시를 표시했다. 한시간 반동안 암송과 좌선과 행선을 했다. 암송은 10분 가량했고 좌선은 20분, 나머지 시간은 행선을 했다. 불안한 마음이 일시적으로 가라 앉는 것 같다.
이틀 격정에 쌓였다. 그것은 이유가 있는 분노였다. 분노때문에 잠못이룬다는 말이 있다. 분노가 해로운 것임을 알면서도 멈출 수 없는 것은 수행이 덜 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살다보면 근심과 걱정이 없지 않을 수 없다. 걱정을 해서 걱정이 없으면 걱정이 없어서 정말 좋겠다. 그러나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걱정을 하면 더 걱정이 되어 더욱더 괴로워질 뿐이다.
분노를 해서 분노를 없앨 수 없다. 욕망을 욕망으로 다스릴 수 없다. 더욱더 갈증만 날 뿐이다. 이럴 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 눈을 감고 앉아 있어야 한다. 귀도 막는 것이 좋다. 가장 좋은 것은 빈집이나 동굴같은 곳이다. 숲이나 산에서 지내는 것이 가장 좋을 것 같다. 그러나 현실은 허락하지 않는다. 이렇게 깊은 밤에 깨어 암송과 좌선과 행선과 글쓰기하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유튜브에는 온갖 것들이 있다. 대부분 쓰레기이지만 그 중에서도 유익한 것도 있다. 자신의 경험에서 우러나온 얘기를 들을 때 공감한다. 이야기를 듣고 나에게 대입해 보았을 때 울림이 있다면 유익한 것이다.
유튜버는 삶의 방향성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그것은 “왜 사는가?”에 대한 것이다. 나는 왜 사는 것일까? 삶의 방향성에 대해서 묻지 않을 수 없다.
어렸을 때 나는 무엇이 되고자 했을까? 무언가 되고 싶은 것이 없었다. 그저 학교에 가고 학교가 끝나면 집에 오는 것이었다. 누군가 미래에 어떻게 되라고 말해 주는 사람도 없었다. 태어났으니 사는 것이었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중학교 때의 일이다. 윤리선생님은 장래 무엇이 될 것인지 적어 내라고 했다. 그리고 발표하라고 했다. 그때 무엇이 되겠다고 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한번도 무엇이 되겠다고 생각해 본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떤 학생은 꿈이 있었다. 그 친구는 장래 검사가 되겠다고 했다. 그때가 아마 중2 때였던 것 같다.
그 친구는 검사가 되고자 했다. 검사집안에서 자란 것일까? 산동네달동네에 살던 시절 검사가 무언지 몰랐다. 어렴풋이 들어는 보았을지 모른다. 그런데 그 시절 그 나이 때 그 친구는 검사가 되겠다고 했다. 어렸을 때부터 꿈이 있었던 것이다.
그 친구가 검사가 되었는지 알 수 없다. 중2 때 검사가 되겠다고 했으니 됐을지도 모른다. 또 어떤 친구는 탐정이 되겠다고 했다. 그 친구가 탐정이 되었는지 알 수 없다. 나는 무엇이 되고자 했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기억나지 않는다.
유튜버는 변호사가 되고자 했다. 그 꿈은 이루어졌다. 유튜브에서 이혼소송전문변호사로 활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20대 때 학교 다닐 때 변호사가 멋져 보여서 꿈을 갖게 되었다고 말한다. 물론 돈은 부수적으로 따라 오는 것이다. 물질적인 부 뿐만 아닐 것이다. 명예와 칭송도 뒤따를 것이다.
어떤 이는 군복 입은 군인의 모습이 좋아서 군인이 되었다고 말한다. 그러나 나는 몇 해 전까지만 해도 무엇이 되겠다는 꿈이 없었다. 남들이 가는 코스를 그대로 밟았다. 때가 되어서 학교를 가고, 남들 대학가니 대학을 갔다. 전공도 친구따라 선택했다. 때가 되어서 취직을 했고 때가 되어서 결혼을 했다. 무엇이 되고자 하는 것이 없었다.
고교시절 학생프로가 있었다. TV에서 어느 학생은 자신이 꼭 되고 싶은 것이 있다고 했다. 그 학생은 “저는 기필코, 기필코 아버지가 되겠습니다.”라고 말했다. 그 학생의 꿈은 이루어졌을까? 아마 이루어졌을 것이다. 누구나 마음만 먹으면 아버지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아버지가 되는 것은 쉬운 일이다. 누구나 하는 결혼이라는 제도에 편승하면 쉽게 아버지가 될 수 있다. 그 다음 목표는 무엇일까? 할아버지가 되는 것일까? 할아버지가 되었다면 다음 목표는 무엇일까?
살다보니 육십고개가 넘었다. 인정하고 싶지만 현실이다. 어렸을 적부터 늘 나이가 많다고 생각했는데 지금도 많다고 생각한다. 이 나이 되도록 내가 이루어 놓은 것은 무엇인가?
무엇이 되고자 하는 것이 없으면 평범한 일생을 살아간다. 평범하게 살다가 죽으면 쉽게 잊혀 진다. 그래도 악명을 남기는 것보다는 나을 것이다.
중학교 때 좋아 보이는 것이 있긴 있었다. 그것은 수행자였다. 불교 중학교를 다녔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본다.
중학교 2학년 때인 것 같다. 불교시간 교재는 고승열전이었다. 우리나라 의상스님, 의천 스님 등 고승의 삶에 대한 것이었다. 고승열전을 보자 스님이 되고 싶었다. 수행자로 사는 것이 가장 가치 있는 삶처럼 생각되었다.
고승열전을 보자 출가하고 싶었다. 보통사람들의 삶이 의미가 없어 보였다. 학교를 나와 취직을 하고 결혼하는 것이 의미가 없어 보인 것이다. 수행자로 사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지만 멋 있어 보였다. 수행자로 사는 것 외 다른 삶은 시시해 보였다. 그러나 마음뿐이었다. 중학교를 졸업하자 잊혀졌다.
인생의 목적이 없으면 방황하기 쉽다. 남들처럼 아버지가 되었을 때 직장인이 될 수밖에 없다. 직장이 인생의 목적이 될 수 있을까? 직장에 붙어 있는 것이 목적이 된다면 슬픈 현상이 발생된다. 직장에서 쫓겨 났을 때 그렇다.
직장은 내것이 아니다. 내것이 아니기 때문에 언제든지 퇴출될 수 있다. 오로지 직장 하나에 매여 살았을 때 퇴출된다면 방황할 수밖에 없다. 40대 때 그랬다.
인생의 목적이 있다면 쓰러져도 일어난다. 다시 목적을 향해 가면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뚜렷한 목적없이 하루하루를 보낸다면 표류하기 쉽다. 그렇게 세월 보냈을 때 육십이 되고 칠십이 될 것이다. 대체 남는 것은 무엇일까?
대부분 계획 없는 삶을 산다. 남들 하는 것처럼 산다. 대개 즐기는 삶이 되기 쉽다. 알코올 중독자도 그런 케이스에 해당될 것이다.
금요니까야모임 시간에 들은 것이 있다. 전재성 선생에 따르면 어떤 사람으로부터 감사의 말을 들었다고 한다. 그 사람은 알코올 중독자였는데 상윳따니까야를 읽고서 술을 끊었다는 것이다.
알코올 중독자는 어느 경을 읽고서 개과천선한 것인가? 그것은 15번 상윳따에 있다. 아마 다음과 같은 내용일 것이다.
“수행승들이여, 그대들이 오랜 세월 유전하고 윤회하면서 목을 잘려 흘리고 흘린 피가 훨씬 더 많아 사대양에 있는 물에 비할 바가 아니다.”(S15.13)
알코올 중독자는 술을 끊고자 했다. 그러나 자신의 의지로 끊을 수 없었다고 한다. 그런데 상윳따니까야에서 이 문장을 보자 단번에 끊게 되었다고 한다.
알코올 중독자가 경전 문구를 보고 술을 끊었다는 것은 상상이 가지 않는다. 그러나 당사자에게는 절절히 다가 왔을 것이다. 자신이 술을 끊지 못했던 것은 전생에서부터 술을 마셔 왔기 때문이다.
시작을 알 수 없는 윤회에서 그가 마신 술은 사대양의 물보다 더 많았을 것이다. 그는 술을 이번 생에서만 마신 것이 아니라 전생에서도 엄청나게 마셨던 것이다. 수미산을 둘러싸고 있는 사대양 보다 더 많은 술을 마셨기 때문에 끊을 수 없었던 것이다.
“그대들이 오랜 세월을 소로 태어나...물소로 태어나...양으로 태어나...사슴으로 태어나...닭으로 태어나...돼지로 태어나...도둑으로 살면서 마을을 약탈하다...부녀자를 약탈하다가 목을 잘려 흘리고 흘린 피가 훨씬 더 많아 사대양에 있는 물에 비할 바가 아니다...”(S15.13)
우리는 인간으로만 태어난 것은 아니다. 시작을 알 수 없는 윤회에서 축생으로도 태어났을 것이다. 그때마다 흘린 피가 사대양보다 더 많았을 것이다.
눈물은 어떠할까? 눈물의 경에 따르면, 윤회하면서 흘린 눈물의 양 역시 사대양보다 더 많았을 것이다. 젖의 경에서는 윤회하면서 어머니의 젖은 사대양보다 더 많았을 것이라고 한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
“수행승들이여, 이 윤회는 시작을 알 수 없다. 무명에 덮인 뭇삶들은 갈애에 속박되어 유전하고 윤회하므로 그 최초의 시작을 알 수 없다. 수행승들이여, 이와 같이 참으로 오랜 세월 동안 그대들은 고통을 경험하고 고뇌를 경험하고 재난을 경험하고 무덤을 증대시켰다. 수행승들이여, 그러나 이제 그대들은 모든 형성된 것에서 싫어하여 떠나기에 충분하고, 사라지기에 충분하고, 해탈하기에 충분하다.”(S15.13)
우리는 왜 윤회할까? 경전에 명확하게 언급되어 있다. 그것은 무명과 갈애 때문이다. 이에 대하여 경에서는 무명에 덮이고 갈애에 속박되었다고 말한다. 그래서 윤회의 시작을 알 수 없다고 하는 것이다.
윤회하면서 겪을 것은 다 겪었다. 이는 “참으로 오랜 세월 동안 그대들은 고통을 경험하고 고뇌를 경험하고 재난을 경험하고 무덤을 증대시켰다.”라는 가르침에서 알 수 있다. 그 다음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이는 “이제 그대들은 모든 형성된 것에서 싫어하여 떠나기에 충분하고, 사라지기에 충분하고, 해탈하기에 충분하다.”라고 한 것에서 알 수 있다.
젊은 나이에 출가한 수행승이 있다. 어찌보면 대단히 선견지명이 있는 것 같다. 아니 전생에 수행자로 살았는지 모른다. 남들은 아버지가 되고 어머니가 되고자 함에도 이를 거부하고 수행승으로 살아가는 이유는 무엇일까? 승복 입은 것이 멋있어 보여 수행승이 됐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무엇보다 전생에 해 볼 것은 다 해보았다는 것이다.
우리는 전생에 당연히 아버지로도 살았을 것이다. 왕족으로도 살았을 것이고 걸인으로도 살았을 것이다. 또한 천신으로도 살았을 것이고 지옥에서도 살았을 것이다. 무명과 갈애로 인하여 한량없는 윤회의 삶을 살았을 때 경험할 것은 다 해 본 것이다.
모든 것을 다 경험해 보았을 때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그것은 윤회를 끝내는 일이다. 더 이상 그 어떤 존재로 태어나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모든 형성된 것에서 싫어하여 떠나기에 충분하고, 사라지기에 충분하고, 해탈하기에 충분하다.”라고 말한 것이다.
인생의 목적이 없으면 방황하기 쉽다. 그가 설령 검사가 되고 변호사가 되었다고 할지라도 결국 윤회하는 삶을 살게 되어 있다. 이렇게 본다면 가장 바람직한 삶은 윤회를 끝내는 삶이다. 수행자로 사는 것이 가장 이상적인 삶이다.
중학교 때 윤리시간에 선생님은 장래 꿈을 적어 내라고 했다. 뚜렷한 꿈이 없었기 때문에 무엇을 썼는지 기억이 없다. 다만 막연하게 수행자의 삶이 최상의 삶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때 좀 더 지혜가 있었더라면 아버지가 되지 않고 출가수행승으로 삶을 살았을지 모른다.
중학교 때 인연이 있어서일까 불교를 종교로 하고 있다. 그리고 수행자로서 삶을 살고자 노력하고 있다. 재가수행자로서의 삶이다.
재가수행자로 삶을 살기가 쉽지 않다. 마치 프리랜서와 같은 삶이다. 스스로 단속하고 제어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자영업자, 일인사업자로서 삶 역시 자신을 잘 관리해야 한다. 40대 중반 일인사업자로 살면서 글을 쓰기 시작했는데 방향은 잘 잡은 것 같다.
어렸을 때, 젊었을 때는 꿈이 없었는데 불교공부를 하고 나서부터는 꿈이 생겼다. 특히 초기불교, 니까야를 접하고 나서 삶의 방향은 설정된 것 같다.
“아난다여, 고귀한 제자가 그것을 성취하여 그가 원한다면 스스로 자신을 이와같이 '지옥도 부서졌고, 축생도 부서졌고, 아귀도 부서졌고 괴로운 곳, 나쁜 곳, 비참한 곳도 부서졌고 나는 이제 흐름에 든 님이 되어 악도에 떨어지지 않고 삶의 길이 정초되어 올바른 깨달음으로 나아간다.'라고 예지할 수 있는 진리의 거울이라는 법문은 이러한 것이다.”(D16.39)
삶에는 정초(定礎)가 있어야 한다. 목적을 위한 초석을 놓는 것이다. 목적 달성을 위한 기초를 닦는 것이다. 수행자에게 있어서 삶의 정초는 무엇일까? 그것은 성자의 흐름에 드는 것이다. 성자의 흐름에 들면 아무리 못잡아도 일곱생 이내에는 완전한 열반에 들것이라고 한다.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삶의 목적이 아닐까?
늦게 철 든 것 같다. 오랜 방황 끝에 이제 제 길을 가는 것 같다. 나이를 먹어도 억울하지 않을 것 같다. 나이를 먹으면 먹을수록 공부할 수 있는 기간은 많아질 것이기 때문에 늙는 것은 두려운 것이 아니다. 다음 생에도 수행자로 살려 하려거든 이번 생에 발판이라도 마련해 두어야 한다. 나는 다음 생에도 수행자로 살 수 있을까?
2023-03-15
담마다사 이병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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