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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독립군이 되어

담마다사 이병욱 2023. 4. 9. 08:57

촛불독립군이 되어

 


그동안 촛불대행진에 참여 하지 못했다. 매주 토요일 일이 있어서 참여하지 못한 것이다. 오늘 마침 잠시 시간이 되어서 참여 하고자 한다.

4.8 촛불대행진은 오후 5시에 시청-남대문 대로에서 열린다. 5시 이전에 참여하면 좋을 것이다. 그러나 해야 할 일을 하고 나서 참여해야 한다. 출석체크 하는 것은 아니다. 5시 이후에 참여해도 된다. 행사가 열리는 5-7시 아무 때나 참여 해도 된다.

참여 하는 데 의미가 있다. 머릿수 채우는 데 도움을 준다. 무엇보다 기록이다. 참여해서 후기를 남긴다면 여러 사람을 참여하게 만드는 효과가 있다. 글과 사진을 본 사람들이 공감한다면  촛불대행진에 참여하는 것과 같다.

촛불대행진에 참여 하는 것은 피곤한 일이다. 해야 할 일을 마친다면 쉬어야 할 것이다. 더구나 토요일이다. 물론 집안행사 등 행사가 있으면 참여할 수 없다. 피곤을 무릅쓰고 참여하는 것은 이 땅에 사는 사람으로서 마땅히 해야 할 일로 보기 때문이다.

어떻게 해야 피곤하지 않게 갈 수 있을까? 급행 타는 것이 좋다. 스마트폰 검색으로 시간을 알아 냈다. 안양역에서 4시 43분에 청량리행 급행이 있다. 안양역에서 가산디지털단지역으로 점프한다. 중간에 관악, 석수, 금천역을 지나치는 것이다. 앉아서 갈 수 있다면 행운이다.

나는 왜 기를 쓰고 시위 현장에 가는 것일까? 그것은 불의에 항거하기 위해서이다. 정의롭지 않은 세력들로부터 이 나라를 지키기 위해서이다. 그렇다고 민주적으로 이루어진 정권교체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설령 민주적으로 정권교체가 이루어졌다고 하더라도 정의롭지 않으면 끌어 내릴 수 있다.

한국은 여러모로 선진국이다. 정치적으로도 선진국이다. 이렇게 평화적으로 정권교체가 이루어지는 나라는 드물다. 설령 1프로 이하로 패배 했더라도 깨끗이 승복한다. 그렇다면 빼앗긴 정권을 되찾아 오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정권교체에 대한 열망이 있어야 할 것이다.

굥을 끌어 내려야 한다. 굥을 끌어 내려야 하는 이유는 차고도 넘친다. 독도이슈는 결정적이다. 그는 국민의 역린을 건드렸다. 다른 것은 양보해도 독도 만큼은 양보할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일까 국힘은 수세에 몰린 것 같다. 이마트 앞에 붙어 있는 총선 후보자의 플레카드를 보면 알 수 있다. 그들은 독도괴담이라고 한다.

시청역에 도착했다. 38분 걸렸다. 급행을 타니 7분 단축되었다. 7번 출구로 가면 된다. 내려 갈 때도 급행을 타고자 한다. 시청역에서 천안행이 6시 30분에 있다. 집에서 7시 대에 저녁식사가 가능할 것 같다.

 


촛불대행진 현장에 도착했다. 행사는 이미 시작되고 있었다. 날씨는 맑고 청명하다. 이틀전까지만 해도 내리 사흘 비가 내렸다. 비가 오고 나면 다음 날은 맑다. 촛불현장은 활력이 넘친다. 비가 오나 바람 부나 눈이 오나 매주 열렸다.

 


내가 못 나가면 다른 사람이 나온다. 누구든지 시간 나면 나오는 것이다. 머릿수를 채워 주기 위해서도 나온다. 그러나 나오면 스트레스가 풀린다는 것이다. 이런 행사가 없으면 어떻게 사년을 견디어 낼까?

 

 


이번주 촛불의 주제는 무엇일까? 그것은 아마도 자주독립일 것 같다. 사람들은 등에 자주독립 망토를 둘렀기 때문이다. 흰색 바탕에 안중근 의사 단지 손바닥 도장이 들어간 망토를 말한다. 망토에는 자주독립 네 글자가 크게 써 있다. 일본으로 부터 자주독립, 미국으로부터 자주독립일 것이다. 촛불행동에서 만든 것이다.

 


촛불도 매주 진화하는 것 같다. 시국에 맞게 주제를 정하는 것이다. 두 달전에는 이태원 10.29 참사가 주제였다. 이제는 자주독립에 대한 것이다. 나라를 팔아 먹은 매국노 대통령을 성토하기 위한 것이다. 아스팥트 바닥에 앉아 있는 사람들은 모두 촛불독립군이 되었다.

 


이번 촛불에서는 무대가 바뀌었다. 이전에는 시청방향에 있었으나 남대문 방향으로 바뀐 것이다. 그리고 시청을 바라보고 왼쪽 차로를 점유했다. 이렇게 됨에 따라 그 동안 삼성생명 앞에서 맞불 시위를 하던 태극기부대가 자취를 감추었다. 현명한 입지선택으로 본다.

 


무대에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이 올라 왔다. 신부는 독도는 우리땅이라고 했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내려 오라고 했다. 우리 불교계에는 왜 이런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것일까? 이제 불교계에서도 목소리를 낼 때가 되었다. 부처님 제자도 이렇게 말했다.

“여법하지 못한 삶과
여법한 죽음이 있다.
여법한 죽음이,
여법하지 못한 삶보다 낫다.” (Thag.670)라고.

 


촛불은 매주 토요일 열린다. 내가 참여하든 참여하지 않든 열린다. 특별한 일이 없는 한, 시간 되면 참여한다. 나에게 있어서 촛불은 하나의 의무와 같다.

어느 시인이 있었다. 한번도 직접 대면한 적이 없지만 잘 알고 있다. 시인은 BTN에서 강연하기도 했다. 블로그에 댓글을 달아 주기도 했다. 그런 시인을 페이스북에서 봤다. 그런데 시인은 어느 때 태극기부대원이 되어 있었다.

시인은 문재인정부시절 광화문에 나갔다. 그것도 매주 나갔다. 시인은 광화문 태극기집회에 나가는 것에 대해서 머릿수 보태주기 위해서 나간다고 했다.

어느날 시인이 작고 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시인은 그토록 바라던 정권교체를 보지 못하고 죽은 것이다. 무엇이 그토록 시인을 광화문에 나가게 했을까? 그때 당시 그것이 궁금했다.

공수가 바뀌었다. 이제 내가 시인의 입장이 된 것 같다. 머릿수 하나라도 채워주기 위해서 시청-남대문 대로에 간다. 특별한 일이 없으면 간다. 나는 왜 촛불을 드는 것일까?

카오스이론이 있다. 흔히 나비효과로 설명한다. 베이징에서 나비 날개짓이 뉴욕에서 태풍을 일으킨다는 식으로 설명된다. 작은 움직임이 큰 움직임이 되는 것이다. 마치 파문이 이는 것과 같다.

잔잔한 호수에 돌맹이를 던지면 파문이 일어난다. 파문이 일어나면 더 높게 더 넓게 더 멀리 퍼져 나간다. 조건이 맞으면 저편 언덕에 까지 이른다. 촛불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누군가 촛불을 들었을 때 그 사람 한사람으로 끝나지 않는다. 반드시 다른 사람에게 영향을 주게 되어 있다.

태극기부대 사람들은 오년 동안 태극기를 들었다. 그 결과 정권교체를 이루어내었다. 시인이 아픈 몸을 이끌고도 바락바락 태극기를 든 이유는 무엇일까? 바람을 일으키기 위해서 들었다. 태극기 든 모습을 보여 줌으로써 사람들을 각성시키기 위해서 든 것이다.

 


나는 이제 시인의 입장이 되었다. 시인이 비가 오나 바람이 부나 눈이 오나 태극기를 들었듯이, 나도 비가 오나 바람이 부나 눈이 오나 촛불을 들어야 한다.

촛불에 참여하는 것도 집착일까? 이런 행위에 대해서 비난해도 좋다. 왜 그런가? 정의를 위해 촛불을 들기 때문이다.

정의는 책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대다수 사람들이 분노하는 것이 정의이다. 독도 이슈에 분노한다면 정의로운 것이다. 매국행위에 분노한다면 정의로운 것이다.

촛불을 다녀 오면 후기를 남긴다. 나비의 날개짓과 같다. 잔잔한 호수에 돌맹이를 던지는 것과 같다. 앞으로 사년동안 해야 할 일이다. 촛불독립군이 되고자 한다.

2023-04-08
담마다사 이병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