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흙속의연꽃

대인(大人)의 풍모를 보여 주어야

담마다사 이병욱 2023. 5. 29. 07:59

대인(大人)의 풍모를 보여 주어야

 


직업은 속일 수 없는 것 같다. 꼭 티를 내기 때문이다. 학생을 가르치는 자, 상담하는 자를 보면 그런 것 같다. 속된 말로 꼰대짓 하는 것 같다.

우월적 위치에 있는 자들이 있다. 많이 배운 자들, 많이 가진 자들, 가문이 좋은 자들이 해당된다. 이들 특징은 우월적 위치에서 서고자 하는 경향이 있다. 이런 사람들과 우정이 성립될 수 있을까?

한평생 봉사하면서 산 사람이 있다. 가장 낮은 자리에서 가장 낮은 눈높이로 사람을 대했을 때 다른 사람들에게도 동일하게 대할 것이다. 사섭법에서 동사(同事)가 이에 해당된다. 이른바 동등한 배려를 말한다.

우월적 자만을 가진 자들은 명예를 소중히 여긴다. 명예가 침해 당했다고 생각했을 때 가만 있지 않는다. 어떤 식으로든지 표출한다. 그래서 상대방을 굴복시키고자 한다.

사과를 잘 하는 편이다. 상대방이 불편하고 불쾌하게 생각했다면 사과를 한다. 이러다 보니 사과를 남발하게 되었다. 반대로 내가 불편하고 불쾌하게 생각했더라도 속으로 삭이고 만다. 짧으면 하루 가고 길면 삼일 간다.

 


상대방이 도발해 오는 경우가 있다. 대개 우월적 자만을 가진 자들이다. 이런 자들을 만나면 피해야 한다. 맞서 싸우면 적이 된다. 적대적 감정을 갖게 되면 적이 되는 것이다.

최대한 우군을 많이 만들어야 한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인내해야 한다. 인내 하면 승리자가 될 수 있다. 나도 승리자가 될 뿐만 아니라 상대방도 승리자가 될 수 있다. 서로 윈윈(Win-Win)하는 것이다.

대인(大人)의 풍모를 보여 주어야 한다. 사소한 것에 불쾌하게 생각하여 화를 낸다면 속이 좁은 사람이다. 도량이 좁은 사람으로 간주 되어 무시될 수 있다. 모욕을 당하더라도 참고 견디어야 한다. 그래야 사람이 커 보인다.

나는 도량이 큰 사람인가? 그렇지 않다. 참다참다 참지못해 폭발하기 때문이다. 폭발하는 순간 끝이다. 이제까지 맺어 놓은 인간관계는 다 파괴된다. 분노함으로 인하여 적대적 관계로 변한다. 피곤한 일이다.

어떤 일이 있어도 화 내지 말아야 한다. 화가 나면 화로 인해 망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관계를 파탄내고자 한다면 화를 내도 좋다. 결국 혼자 살게 될 것이다.

사람들은 왜 혼자 살까? 나홀로 사는 사람에 대한 편견이 있다. 혹시 성격적으로 모난 사람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물론 다 그렇다는 것은 아니다. 그런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어울리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 자신만의 세계에 갇혀 사는 사람이 있다. 이런 사람들은 자신을 불편하게 하거나 불쾌하게 하는 사람을 보면 참지 못하는 것 같다. 아주 사소하고 하찮은 것에 대해서도 구름처럼 크게 보는 것 같다. 이처럼 혼자 사는 사람에게 우정은 존재 할까?

우월적 자만을 가진 자, 홀로 사는 사람을 경계한다. 관계를 맺어서 좋을 것이 없다. 우정의 관계가 성립되기 쉽지 않다.

친구가 그다지 많지 않다. 비밀을 털어 놓을 수 있는 친구는 없다. 아는 사람은 많아도 친구는 드물다. 친구 사이는 어떤 사이이어야 할까? 그것은 말할 필요도 없이 우정이다.

친구 사이에는 우정이 있어야 한다. 우정은 우호적 감정을 뜻한다. 적대적 감정이 있다면 친구가 될 수 없다. 그렇다면 친구는 같은 또래이어야 할까? 친구는 동성이어야 할까? 그렇지 않다.

나이 차이가 많아도 친구가 될 수 있다. 아이와도 친구가 될 수 있다. 우정만 있으면 누구나 친구가 될 수 있다. 사랑의 감정만 없으면 이성도 친구가 될 수 있다.

학교 친구가 있다. 나의 경우는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친구는 없다. 서울이라는 도시에 살아서 그럴 것이다. 대학친구가 있기는 하지만 너무 오래 되었다. 살아 온 배경이 다르기 때문에 일치점을 찾기 힘들다.

나에게 있어서 친구는 종교모임과 관련 있다. 자주 모이다 보니 익숙해진 것이다. 무엇보다 우정이다. 그것은 동등한 배려의 마음에 기반한다. 설령 나이 차이가 나고 이성이라도 자애의 마음이 있으면 친구가 된다.

친구 사이에는 우정이 있어야 한다. 우정 없는 친구 관계를 상상할 수 없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우정의 관계가 될 수 있을까? 그것은 자, , , , 즉 사무량심이 바탕이 되어야 한다.

불교에서는 자비를 강조한다. 엄밀히 말하면 자비희사이다. 자애, 연민, 기쁨, 평정은 항상 패키지로 움직인다. 자애가 있는 곳에 연민과 기쁨과 평정이 있다. 다른 것도 마찬가지이다.

자비희사의 대표주자는 자애이다. 그래서 테라와다불교 예불문이자 수호경에는 자애경이 있다.

자애는 멧따를 번역한 말이다. 멧따는 영어로 ‘friendship’의 의미가 있다. 멧따는 우정의 뜻인 것이다. 그래서일까 빠알리어에서 친구를 뜻하는 미따(mitta)는 우정을 뜻하는 멧따에서 파생된 것이다.

기독교를 사랑의 종교라고 한다. 그럼 불교는 어떤 종교인가? 불교는 자애의 종교라고 본다. 여기서 자애는 자비희사의 대표 용어이다. 불교를 자비의 종교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사랑과 자애는 다른 것이다. 사랑은 남녀간의 사랑의 의미도 있고 절대적인 사랑의 의미도 있다. 그래서 기독교의 사랑은 절대자의 절대적 사랑도 해당된다.

절대적 사랑은 수직관계에 적용될 수 있다. 창조주와 피조물과의 관계가 그렇다. 부모와 자식간의 사랑도 절대적이다. 그러나 자애는 다르다.

자애는 절대적 관계가 될 수 없다. 또한 수직적 관계가 될 수 없다. 자애는 수평적 관계이다. 자애는 동등한 관계이다. 자애는 친구 사이에서 성립된다. 이렇게 본다면 자애를 강조하는 불교는 우정의 종교라고 볼 수 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사랑스러운 말은 무엇일까? 누군가는 사랑이라 할 것이다. 그러나 이 세상에서 가장 사랑스러운 말은 사랑이 아니라 우정이다. 우정보다 더 수승한 말은 없다.

지인과 친구가 있다. 구별 기준은 무엇일까? 당연히 우정이다. 우정이 없으면 지인이고 우정이 있으면 친구이다. 나는 친구가 얼마나 될까?

알고 지내는 사람은 많다. 아는 사이라고 해서 다 친구가 될 수 없다. 우정이 있어야 친구가 될 수 있다. 그렇다면 페이스북친구도 친구가 될 수 있을까?

블로그에 글을 쓰면서 글로 맺어진 사람들이 많다. 댓글로 소통하다가 오프라인에서 만났을 때 친구가 되었다. 어쩌면 수십년 학교친구 보다 더 가까운 사이가 되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 그것은 나의 글에 공감 했기 때문이다. 글이라는 공통분모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서로 아껴주고 격려해 주는 관계가 되었을 때 우정의 관계가 되지 않을 수 없다.

페이스북친구도 친구가 될 수 있다. 글에 공감하면 누구나 친구가 될 수 있다. 나이와 성별을 초월한다. 지위도 초월한다. 모임이나 단체에서 만난 사람들과 다르다.

모임이나 단체에서 만난 사람들은 친구가 되기 힘들다. 대개 우월적 자만을 가진 자들이 많다. 자만이 있는 한 친구가 되기 힘들다. 동등한 관계가 될 수 없다. 그저 아는 사람, 지인일 뿐이다. 자애의 마음, 우정이 없기 때문이다.

페이스북에서 블로그에서 카톡방에서 우호적인 사람이 있다. 이런 사람은 모두 친구가 된다. 에스엔에스에서도 우정이 있다.

아는 사람이라 하여 모두 친구가 아니다. 모임이나 단체에서 만나는 사람이라 하여 모두 친구가 아니다. 우월적 자만으로 가득찬 자는 친구라 볼 수 없다.

법구경에 "어리석은 자와의 우정은 없다.”(Dhp.61)라고 했다. 우월적 자만에 가득한 자와 우정은 없다. 나를 무시하는 사람, 나를 얕잡아 보는 사람, 나를 깔아 뭉개려 하는 사람과 어찌 친구가 될 수 있을까? 그저 알고 지내는 사이일 뿐이다.

디가니까야에 따르면 연민할 줄 아는 사람이 친구”(D31)라고 했다. 이는 무엇을 말하는가? 사무량심에 바탕을 둔 사람이 친구임을 말한다. 행복하기를 바라는 자애의 마음, 고통에서 벗어나기를 바라는 연민의 마음, 성공을 축하하는 기쁨의 마음이 바탕이 되어야 한다.

나에게 우월적 자만으로 대하는 자는 친구가 될 수 없다. 비록 한번도 만난 적 없지만 나에게 우호적인 사람은 친구가 될 수 있다. 내 글에 공감하고 댓글 달아 주는 사람은 친구가 될 수 있다. 나에게 자애와 연민과 기쁨을 가진 사람이다.

친구는 반드시 오프라인 친구만 친구가 아니다. 온라인에서도 공감만 하면 친구가 될 수 있다. 온라인친구를 오프라인에서 만나면 진짜 친구가 된다. 나이와 성별을 초월한 우정의 관계이다.

우월적 자만을 가진 자와 우정은 없다. 또한 동등적 자만을 가진 자, 그리고 열등적 자만을 가진 자아를 가진 자와도 우정은 없다. 자만와 교만이 있는 자와 우정은 없다.


2023-05-28
담마다사 이병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