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흙속의연꽃

모닝천리

담마다사 이병욱 2023. 6. 8. 07:40

모닝천리


앞뒤로, 옆으로 포위 된 듯 했다. 앞에는 벤츠, 뒤에는 아우디, 옆에는 베엠베(BMW)가 있다. 이 상황을 어쩌 할 것인가? 접촉사고라도 나면 타고 다니는 차의 값에 해당되는 비용을 물어 주어야 할지 모른다.

외제차를 만나면 긴장된다. 가능하면 거리를 넓힌다. 그때 잽싸게 끼어들기 하는 차가 있다. 약간 안심된다. 부딪쳐도 견적이 덜 나오기 때문이다.

차선을 바꾸려 할 때 여의치 않을 때가 있다. 양보하려 하지 않는 것이다. 심지어 빵빵거리기까지 한다. 이럴 경우 끼어들기를 포기한다. 모닝을 타고 다니다 보면 포기할 것이 많다.

도로는 자동차 전시장 같다. 미국을 인종전시장 같다고 하는데 도로에는 온갖 종류의 차종이 있어서 자동차 전시장을 방불케 한다. 그 중에 화물차가 있다.

트럭으로 대표 되는 화물차는 천대 받기 쉽다. 겉모습부터 차이 난다. 마치 피부가 까매서 눈에 띄는 것 같다. 짐을 잔뜩 실은 트럭을 보면 위태해 보이기도 하다. 어떤 화물차에서는 쓰레기가 휘날리기도 했다. 천막을 단단히 치지 않은 것이다.

외제차의 눈에 화물차는 어떻게 보일까? 모닝차의 입장에서 화물차를 보았을 때 장애물로 보인다. 시야를 가리기 때문이다. 또한 과속과 신호무시 등 거리의 폭력배처럼 보인다. 덩치가 큰 트럭은 도로 파손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하물며 억대 차를 타고 다니는 사람 입장에서 보았을 때 화물차는 어떤 느낌일까?

도로는 누구나 사용할 수 있다. 특권층만 사용하는 도로는 없다고 보아야 한다. 그런데 도로에는 극과 극이 공존한다는 것이다. 또한 보이지 않는 차별이 극명하게 노출되는 곳이 도로라는 것이다. 벤츠와 오물차가 함께 달리는 곳도 도로이다.

도로에서 승용차만 다닌다면 어떻게 될까? 물류대란이 일어나서 살 수 없을 것이다. 삼천리 방방곡곡 거미줄처럼 사통팔달 도로가 깔려 있는데 화물차가 없다면 경제는 올스톱될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도로의 주인은 화물차가 된다.

오늘날 도로는 신분과시의 장이 되었다. 너도나도 고급 차종을 선보이고 있는 것 같다. 갖가지 종류의 차종을 보면 신분을 서열화하는 것 같다. 자동차는 움직이는 신분과시의 수단이 되었다.

부자들은 좀처럼 자신의 부를 드러내지 않는다. 자신의 부를 드러내서 좋을 것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은 그들끼리 살아간다. 같은 지역에서 살며 자녀들도 같은 학교에 보낸다. 그러나 자동차만큼은 예외이다. 움직이는 자동차에 부와 명예와 권력을 마음껏 과시하는 것 같다.

요즘 택시에서 영상광고를 보았다. 택시광고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대개 문자나 그림으로 된 것이다. 버스에서도 볼 수 있다. 그런데 택시 지붕에 화면이 있어서 영상광고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움직이는 광고효과를 노린 것이라 볼 수 있다. 외제차도 이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외제차는 "나 이런 사람이야!"라며 움직이는 신분과시의 수단이 된 것이다.

사람의 욕심은 한이 없다. 하나를 가지면 둘을 가지고 싶다. 아파트 한채로 만족하지 않는다. 두 채가 되면 한채 더 가지고 싶어 한다. 한채 가지고 갭투자하면 이론적으로는 여러 채 가질 수 있다.

욕망은 절제 되지 않는다. 목적이 달성되도 계속 치닫는다. 주식도 그렇다. 마치 게임하듯이 주식을 한다. 욕망을 절제하지 못했을 때 결국 도박이 된다. 과도한 욕망을 추구했을 때 정신은 황폐화된다.

"
벤츠는 저의 욕망입니다." 어느 변호사가 한 말이다. 벤츠를 사기 위해 3년동안 돈을 쏟아 부었다고 한다. 딜러 말에 따르면 돈은 벌면 되는 것이기 때문에 할부로 장만해도 된다는 것이다. 더구나 벤츠를 타면 하차감이 좋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뽀다구'나는 것이다. 특히 상견례 할 때 뽀다구날 것이다.

어떤 물건이든지 일주일 간다고 한다. 명품을 사도 일주일만 지나면 시들해짐을 말한다. 물질적 욕망으로 살아가는 사람에게 욕망의 끝은 없다. 항상 앞서 가야 한다. 다음 목표를 향해서 또다시 질주 한다.

물질적 소유가 목표가 되었을 때 만족은 없다. 만족이 없으면 행복도 있을 수 없다. 남과 비교해서 떨어진다고 생각했을 때 자존심도 상할 것이다. 그래서 빚을 내서라도 사려 할 것이다. 자동차가 대표적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멈출 줄 모른다. 특히 신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무한질주한다. 그 끝은 어디일까? 브레이크 없는 벤츠가 되었을 때 파국에 이를 것이다. 그럼에도 거리에는 신분과시용 차로 넘쳐난다. 안양과 같은 도시에서도 앞과 뒤에, 옆에 외제차가 있다.

모닝차를 타고 다닌다. 차종 중에서 급이 가장 낮다. 소형차도 아니고 경차이다. 배기량은 999씨씨이다. 접촉사고 나면 부서질 것 같다. 어쩌면 목숨 걸고 타는 것인지 모른다.

 


경차 예찬론자이다. 오피스텔 경비원에게 물어 보았다. 이 세상에서 가장 좋은 차가 어떤 것인지 물어 본 것이다. 경비원은 쏘나타도 아니고 그랜저도 아니라고 했다. 모닝이 최고라고 했다.

경비원은 왜 모닝을 최고라 했을까? 대형차는 타워형 주차장에 들어가지 않는다. 중형차는 간신히 들어간다. 경차는 무리가 없다. 무엇보다 고속도로 통행료가 반값이다. 공영주차장에서 주차료도 반값이다. 연비도 좋다. 이런 이유로 모닝이 최고라는 것이다.

지난 6 6일 공휴일 모닝으로 원주를 다녀 왔다. 원주 꽃양귀비축제에 갔었다. 원주 동화마을 수목원에도 갔었다. 그곳에 동화사도 있어서 참배했다. 귀가길에는 여주 세종대왕릉에 가서 왕의 숲 길을 걷기도 했다. 모닝으로 가지 못하는 곳이 없다. 해남 땅끝과 부산에도 간다. 모닝으로 천리간다.

도로에서 모닝을 만나면 반갑다. 같은 급이라 부끄럽고 창피한 것이 아니다. 모닝을 타는 사람은 몹시 실용적인 사람으로 생각된다. 허세를 부리지 않는 사람으로 보인다. 이 세상에서 가장 낮은 자리에서, 가장 낮은 자세로 살아가는 사람으로 보인다. 아무리 주변을 보아도 모닝이하는 없기 때문이다.

외제차는 자만의 상징이다. 그것도 우월적 자만의 상징이다. 이는 "누가 나와 같은 자가 있으랴?"라는 자만을 만든다. 이와 같은 우월적 자만은 부와 권력을 가진 자에게서 볼 수 있다. 왕권을 가진 왕은 우월한 자 가운데서도 우월하다는 교만이 있다.

우월중의 우월은 수행자에게서도 볼 수 있다. 어떤 것인가? 이는 계행을 잘 지키고 두타행을 열심히 하는 수행승에게서도 나타날 수 있다출가자에게도 계행과 두타행 등을 통해서 나는 다른 수행승과 차이가 있는가?”라며 교만을 만드는 것이다.

자만은 불선심 중의 하나이다. 자만을 하면 불선업을 짓게 된다. 그 결과 불선과보를 받을 것이다. 그래서 부처님은 세 가지 교만 곧, 내가 우월하다는 교만, 내가 동등하다는 교만, 내가 열등하다는 교만이 있습니다.”(D33.10)라고 했다.

우월적 자만만이 불선업을 짓는 것은 아니다. 놀랍게도 열등적 자만도 불선업이라는 사실이다. 시기하고 질투하여 깍아 내리려 하는 것도 자만에 해당되는 것이다. 또한 같은 집단에 속한 것에 안도하는 동등감도 자만에 해당된다는 사실이다. 이는 무엇을 말하는가? 비교에 따른 자만은 모두 불선업이 되어 불선과보를 받게 될 것이라는 말이다.

대체로 대형차를 타고 다니는 사람은 자신의 신분을 과시하고 싶은 욕망이 있는 사람으로 본다. 그래서 좀 더 큰 차, 좀 더 유명 브랜드를 찾는다. 이렇게 욕망으로 살면 결코 만족하는 삶을 살 수 없다.

욕망을 절제해야 한다. 욕망을 멈추어야 한다. 욕망을 멈추면 번뇌도 멈추어진다. 명품에 대한 갈망을 하면 할수록 현재의 삶이 만족스럽지 않다. 남과 비교하니 늘 불만족스럽다. 그러다 보니 마음은 급해진다. 목숨을 건 인정투쟁을 하는 것이다.

명품을 두르면 명품인간이 되는 것일까? 명품 차를 타면 인격도 오르는 것일까? 욕망을 추구하면 할수록 자만심만 높아진다. 도로에서 자만을 본다. 결코 만족할 수 없는 자만이다.

욕망으로 사는 한 자존감은 낮아 질 수밖에 없다. 나보다 한푼이라도 많은 사람이 있을 때 자존은 낮아 질 것이다. 나보다 차종이 높은 것을 보면 역시 자존이 낮아 질 것이다. 그렇다면 목표를 성취했을 때 만족할까? 원하는 것을 소유했을 때 딱 일주일간다고 한다. 일주일만 지나면 심드렁해지는 것이다. 다음 목표를 향해 또 다시 질주하게 된다.

물질적 부를 추구하면 한이 없다. 이럴 경우 물질적 부를 포기하면 자유로워진다. 번뇌에서 자유로워지는 것이다. 주식으로 밤낮을 보내는 자가 주식을 처분 했을 때 자유를 맛보는 것과 같다.

경전에 있는 가르침은 틀림없다. 마음이 흔들릴 때 경전을 보면 위안을 얻는다. 특히 소유에 대해서 그렇다. 소욕지족의 가르침이 그렇다. 그래서 법구경에서는어떠한 것이든 만족하는 것이 행복이다.”(Dhp.331)라고 했다.

현재 조건에 만족하면 행복이다. 모닝을 타고 다니는 것에 만족한다. 모닝 이상을 바라면 괴로워질 것이다. 목표치가 생겼을 때 다급해진다. 그리고 자꾸 비교하게 된다. 자존감만 낮아질 뿐이다.

모닝으로 가지 못할 데가 없다. 모닝으로 천리간다. 이 세상에 모닝만큼 좋은 차가 어디 있을까? 도로에서 모닝을 보면 친구보는 것처럼 반갑다.


2023-06-08
담마다사 이병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