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흙속의연꽃

엔지니어 출신이 글쓰기 하면

담마다사 이병욱 2023. 6. 20. 14:28

엔지니어 출신이 글쓰기 하면



아침 6시 10분에 집을 나섰다. 해야 할 일이 있기 때문이다. 비산사거리 이마트 앞에 줄이 형성되어 있다. 거의 대부분 젊은 사람들이다. 이삼십대로 보인다. 복장은 자유롭다. 대충 짐작이 같다. 마북연구단지라 쓰여 있는 대형 전세버스를 보고 확신했다. 반도체 회사에 출근 하는 사람들이다.

아침 6시 반에 출발하는 버스를 종종 볼 수 있다. 경기 남부 반도체 회사 다니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 것이다. 대부분 사람들이 잠자거나 이제 막 일어날 시간에 하루일과를 시작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이다.

일터에 갈 때 안양7동을 거쳐서 간다. 주접지하차도가 있는 굴다리를 지날 때 종종 걸음으로 출근하는 사람들을 볼 수 있다. 젊은 사람들도 있고 중년들도 있다. 출근하는 모습이 아름답다. 아마 여성들은 공장에 갈 것이다.

안양7동은 공업단지나 다름없다. 전자, 기계 등 제조업 단지라고 볼 수 있다. 아침에 출근하는 사람들을 보면 활력이 있다. 서비스 업종에서는 볼 수 없는 제조업 특유의 활력이 있다.

 


오랜 세월 제조업에 종사해 왔다. 대학을 졸업하고 공장에서 일했다. 직장생활 20년은 공장과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가 되었다. 늘 생산과 관련된 일을 했다. 그것도 수출과 관련된 일이다.

직장생활은 주로 공장에서 보냈다. 생산적인 일을 한 것에 대하여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자원이 없는 우리나라에서는 제조업만이 살 길이라고 보았다. 물건을 많이 만들어서 외화를 벌어 들여야 나라가 유지된다고 생각했다. 이와 같은 마음은 지금도 유효하다.

첫 직장은 수원에서 다녔다. 1985년 S그룹에 공채로 들어 간 것이다. 입사해서 4년까지는 실적을 내지 못했다. 4년째 되었을 때 밥값을 했다. 개발한 모델이 양산되어서 수출되었기 때문이다. 매달 실적 발표할 때쯤 되면 뿌듯했다. 내 손으로 개발한 제품이 수출되어서  외화를 벌어 들인 것이다!

나의 전성기는 언제일까? 아마도 95년에서 99년까지 4년인 것 같다. 그때 당시 안양 T사에서 개발팀장으로 있으면서 수많은 모델을 개발했다. 위성방송수신기를 말한다. 케이블 셋톱박스도 개발했다.

직장생활 20년은 오로지 직장과 집밖에 몰랐다. 아침에 일찍 직장에 출근해서 그날 해야 할 일을 하다 보면 시간이 잘 갔다. 금방 점심 시간이 돌아 오고 저녁시간이 돌아 왔다. 일에 열중하다 보면 밥 때가 된 것이다.

직장생활 20년은 오로지 일밖에 몰랐다. 다른 것은 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매일 밤늦게까지 일했고 주말에도 나갔고 심지어 휴가 때도 나가서 일했다. 이런 원동력은 어디서 나왔을까? 그것은 어쩌면 나의 자만인지 모른다. 생산적인 일에 종사한다는 자만을 말한다.

산업을 크게 세 종류로 나눌 수 있다. 농업, 제조업, 서비스업을 말한다. 크게 두 종류로 나누면 제조업과 비제조업이 될 것이다.

오랜 세월 제조업에 종사하다 보니 제조업이 아닌 것은 하찮게 보는 경향이 생겼다. 그가 아무리 잘 나가는 사람이라도 생산적인 일에 종사하지 않는다면 우습게 보는 것이다. 이를 제조업의 자만이라 해야 할 것이다.

대한민국은 누가 먹여 살리는가? 누구나 알 수 있는 우문이다. 수출로 먹고 사는 나라에서 당연히 제조업이 이 나라를 먹여 살리는 것이다. 이와 같은 제조업 대열에 동참한 것을 자랑스럽게 여겼다. 공장에서 일하는 것에 자부심을 가졌다. 비제조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을 아래로 보는 자만이 생긴 것이다.

사람들은 자신이 속한 그룹을 벗어나면 잘 알지 못한다. 박사라고 하지만 해당분야에서만 프로페셔널일 뿐이다. 제조업에 오랫동안 종사하다 보니 세상이 온통 제조업 중심으로 돌아 가는 것처럼 보였다. 제조업을 떠나면 살 수 없을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세상사람들은 제조업이 아닌 분야에서도 잘 살고 있었다.

제조업 디엔에이(DNA)가 있는 사람은 모든 것을 제조업 중심으로 판단하려 한다. 제조업과 비제조업으로 이분법적으로 보는 것이다. 이는 다름아닌 생산과 소비에 대한 것이다. 제조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생산집단으로 보고, 비제조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소비집단으로 보는 것이다.

오랫동안 소비에 대해 부정적으로 보았다. 생산적인 것은 긍정적이고 선(善)으로 본 것이다. 제조업에 오랫동안 있다 보니 선악 이분법적 사고가 생겨 난 것이다. 그래서 소비집단은 무조건 나쁜 것, 악한 것으로 보는 자만이 생겨났다.

비제조업은 소비집단이라 단정할 수 없다. 서비스업이 소비집단이라 단정할 수 있는 근거는 없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사람을 소비집단으로 보아야 한다. 이 사회에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하고 소비만 하는 집단에 대하여 제조업의 잣대를 들이대야 한다.

제조업은 생산적인 것이다. 제조업은 소비집단이 될 수 없다. 무언가 만들어 낸다는 것은 생산적인 것이다. 인생도 생산적이어야 한다.

매일 글을 쓰고 있다. 전문 작가의 입장에서 보았을 때는 비(B)급에 지나지 않는다. 나는 왜 매일 글을 쓰는가? 아마도 그것은 제조업 마인드가 들어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아니 제조업 디엔에이가 박혀 있어서 그런지 모른다. 글 쓰는 것도 생산적인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엔지니어가 글을 쓰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언젠가 글 쓰는 행위에 대하여 “저는 매일 글을 생산하고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상대방은 이 말에 강한 인상을 받은 것 같다. “글은 쓰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생산이라니!”라고 생각했는지 모른다.

매일 글을 생산하고 있다. 마치 제조라인 콘베이어벨트에서 물건이 쏟아져 나오듯이 글을 매일 생산하고 있다. 어떤 날은 두 개도 좋고, 세 개도 좋다. 이렇게 생산된 글을 쌓아 두니 산을 이룬다.

직장생활은 20년 했다. 1985년부터 2005년까지 한 것이다. 2005년부터는 개인사업을 하고 있다. 개인사업을 하고 나서부터 글을 썼다. 아니 글을 생산했다. 직장 다닐 때는 제품을 생산했으나 개인사업 하면서부터는 글을 생산하고 있는 것이다.

글을 생산하듯이 썼다. 생산품은 어떤 것인가? 생산품은 시장에서 팔리는 것이다. 성능과 가격에서 우월해야 팔리는 상품이 된다. 그래서 엔지니어는 성능을 1dB(데시벨) 향상시키기 위해서 밤새는 것도 마다하지 않는다. 또한 코스트다운하기 위해서 수 없는 실험을 반복한다. 이와 같은 노력으로 생산되었을 때 보람을 느낀다. 생산적인 일을 한 것에 대한 자부심이다.

개인사업을 하면서부터는 직접적 생산에 종사하지 않았다. 다만 간접적 생산에 종사하고 있다. 현재 하고 있는 인쇄회로기판(PCB) 설계업이 생산에 도움이 되는 일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본다면 나는 평생 생산적인 일을 하고 있는 셈이 된다.

글을 생산하듯이 쓰고 있다. 생산품은 팔리는 것이기 때문에 글도 읽히는 글이어야 한다. 그렇다고 글을 써서 이익을 취하지 않는다. 어디까지나 아마추어 영역이다. 돈을 받지 않고 쓰는 것이기 때문에 아마추어 글쓰기가 될 수밖에 없다.

글은 하나의 상품이다. 비록 돈을 받고 파는 물건은 아니지만 품질보증은 되어야 한다. 그래서 오류가 발견되면 10년 전에 쓴 글이라도 수정에 들어간다. 품질보증 측면에서 날자와 함께 서명을 한다. 무한책임을 지겠다는 것이다.

대학졸업과 함께 제조업에 취업했다. 제조업에서 20년 보냈다. 대부분 공장에 있었다. 그래서일까 제조업 마인드가 뼈속까지 각인 되어 있는 것 같다. 그러나 부정적 요소도 있다. 세상을 제조업과 비제조업으로 가르고, 여기에다 생산적인 것과 소비적인 것으로 나누는 이분법적 사고방식을 말한다.

제조업에서 일한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인생에서 절정기라면 30대 때 제조업에서 일한 것이다. 개발한 것이 외화를 불러 왔을 때 애국자가 된 것 같았다. 그에 비례하여 비제조업을 하찮게 보고, 소비만 하는 집단을 경멸하는 자만을 보이기도 했다.

제조업은 가슴을 뛰게 한다. 공장을 보면 안심이 된다. 큰 공업단지를 보면 뿌듯한 느낌이다. 생산적인 일에 종사하는 사람들에게 우호적이다. 제조업 디엔에이가 글을 쓰게 하는 원동력이 된 것 같다. 글을 하나의 상품으로 본다. 나는 오늘도 내일도 글을 생산한다.



2023-06-20
담마다사 이병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