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흙속의연꽃

수리천 약수터 가는 길에

담마다사 이병욱 2023. 6. 28. 12:08

수리천 약수터 가는 길에
 
 
평범한 일상이다. 일인사업자에게 급할 것도 없고 서두를 것도 없다. 오전 아침 좌선을 마치고 길을 떠났다. 물을 뜨기 위해 수리산 수리천 약수터로 가고자 했다.
 
아침 일찍 일터에 나와 샌드위치를 만들어 먹고 식물을 살폈다. 어제에 이어 이틀 연속 한시간 좌선을 했다. 아침에 좌선을 하는 것은 이점이 있다. 일과가 시작되면 좌선하기 힘들다. 격정에 휩싸일 수 있기 때문이다.
 
일감 주문이 있으면 마음 편히 앉아 있을 수 없다. 일이 다 끝나야 앉아 있을 수 있다. 오후가 되었을 때 앉아 있기가 더 힘들다. 마음은 이미 오염될 대로 오염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유튜브 영향이 크다.
 
세상에서 가장 편한 자세로 유튜브를 보다 보면 갖가지 것들을 접한다. 알고리즘이 유도해서 보기도 한다. 이렇게 보다 보면 시간 가는 줄 모른다. 마음은 이미 들떠 있어서 집중을 할 수 없다. 저녁에는 더 안된다. 이미 힘이 빠질대로 빠져 버려서 앉아 있을 힘도 없다.
 
업체 출근 시각은 일반적으로 9시이다. 9시가 되기 이전에 좌선을 끝내야 한다. 그러나 오늘은 늦게 시작했다. 암송을 하고 행선을 하고 좌선에 들어가다 보니 8시 23분이 되었다. 늦게라도 하고자 했다.
 
한시간 좌선은 큰 것이다. 하루 24시간 중에서 한시간을 좌선으로 보낸다는 것은 엄청난 시간을 투자하는 것이다. 잠자는 시간, 밥먹는 시간, 이동하는 시간 등을 빼고 나면 일하는 시간은 일반적으로 8시간 밖에 되지 않는다. 그런데 좌선으로 한시간 보낸다는 것은 깨어 있는 시간을 한시간 보내는 것과 같다. 그것도 아침 가장 정신이 맑을 때 한시간이다.
 
오랜만에 좌선을 해서 그런지 번뇌와의 싸움이다. 일어난 생각과의 싸움이다. 어쩌면 나 자신과의 싸움인지 모른다. 생각이 하자는 대로 한다면 평좌한 다리를 당장 풀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나 자신과 싸워서 이기고자 한다면 다리를 풀어서는 안된다.
 
생각이 일어 났을 때 생각에 따라 가면 안된다. 생각에 생각이 꼬리를 물어 집을 짓게 된다. 마음의 부담을 느낀다. 생각의 무게로 인하여 힘이 든다. 이럴 때 알아차리면 생각의 집은 무너진다.
 
생각은 끊임없이 일어난다. 생각에서 자유롭고자 한다면 호흡이라는 기둥에 사띠라는 밧줄로 마음을 꽁꽁 묶어 놓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생각을 관찰하는 것도 수행이다. 끊임없이 치고 들어 오는 생각을 알아차렸을 때 스러진다. 생각이 생멸하는 것이다.
 
위빠사나 수행은 관찰수행이다. 자신에게 일어난 생각이나 느낌 등을 제3자가 보는 것처럼 객관적으로 관찰하는 것이다. 그래서 다리가 저리는 통증이 왔을 때 마치 남의 다리를 보는 것처럼 관찰하라고 했다.
 
시간이 더디게 가는 것 같다. 한시간이 매우 길게 느껴진다. 끊임없이 밀려 오는 생각은 중공군의 인해전술 같아 보인다. 죽여도 죽여도 밀려 오는 것이다. 나 자신과의 싸움이다. 여기서 생각하자는 대로 하면 지는 것이다. 그래서 “전쟁에서 백만이나 되는 대군을 이기는 것보다 하나의 자신을 이기는 자야말로 참으로 전쟁의 승리자이다.”(Dhp.103)라고 했을 것이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끝날 때쯤 된 것 같다. 마음은 한시간 좌선이 끝내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새로 산 써큘레이터를 한시간 예약 설정 해 놓았기 때문에 모터 돌아가는 것이 멈추는 때가 좌선이 끝나는 시간이다.
 
도중에 시간을 보았다. 5분 남았다. 평좌한 오른쪽 다리가 저려 온다. 평좌할 때 보통 오른쪽 다리를 안으로 넣는다. 그럴 경우 다리저림으로 인하여 다리가 끊어질 듯 아프다. 이런 이유로 왼쪽 다리를 안으로 넣고 오른쪽 다리를 바깥으로 한다. 이렇게 하면 오른쪽 다리의 저림이 덜하다. 그럼에도 한시간 동안 다리를 꼬고 앉았을 때 통증이 엄습한다.
 
마침내 서큘레이터의 모터가 멈추었다. 좌선이 끝난 것이다. 오른쪽 다리의 저림에 따른 통증으로 인하여 천천히 일어났다. 몸을 뒤로 누이고 피가 돌게 한 다음 일어난 것이다. 오늘도 해낸 것이다. 오늘 한시간 좌선으로 인하여 승리자가 된 듯 하다.
 
오늘은 어떤 일을 해야 할까? 좌선을 끝내고 메일을 열어 보았다. 새로운 메일은 보이지 않는다. 오늘 특별히 할 일이 없는 것이다.

한가한 시간이다. 명학공원에 산책 가고자 했다. 그러다 마음을 바꾸었다. 약수터에서 떠 온 물을 거의 다 마신 것이다. 물을 뜨러 가고자 했다.
 
요즘 약수터 물을 마시고 있다. 수리산에 있는 수리천 약수터 약수물이다. 사무실에서 1.1키로 거리에 있다. 천천히 걸어서 16분 거리에 있다. 만보기로 재어 보니 1,617보이다.
 
배낭은 준비 되어 있다. 집에 여러 배낭이 있는데 그 중에서 가장 싸게 보이는 것을 가져왔다. 배낭에는 네 개의 패트병을 담았다. 네 개가 딱 적당하다.
 
오늘 날씨는 오전부터 햇살이 강렬하다. 어제는 비가 왔으나 오늘은 햇볕이 쨍쨍하다. 장마철이라 기후는 변화무쌍한 것 같다. 햇볕이 강렬해서 모자를 준비 했다.
 

 
수리천 약수터 가는 길에 안양상고를 보았다. 수리장애인복지센터 맞은 편에 있다. 약수터 가는 길에 늘 보는 것이다. 요즘 세상에 상고를 보기 힘들다. 이름을 바꾸어 부르기 때문일 것이다. 그럼에도 안양상업고등학교가 있다.
 
안양상업고등학교는 건물만 있다. 운동장이 없는 학교이다. 학교 같아 보이지 않는다. 현수막을 보니 “성인 만학도 신입생 모집”이라는 문구가 보인다. 짐작이 간다.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학교라기 보다는 나이 든 노인들을 위한 학교로 보인다.
 
약수터 가는 길에 절이 하나 있다. 선화암이라는 절이다. 주택 2층에 있다. 절인지 아닌지 잘 알 수 없다. 무속인의 암자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만(卍자) 표시가 있는 것으로 보아 절 같다. 그러나 무속인들도 만자를 쓰기 때문에 절인지 확실하지 않다.
 

 
도시는 온통 십자가 천지이다. 크고 작은 교회가 수도 없이 많다. 십자가 천지의 도시에서 불교는 없는 것이나 다름 없다. 어쩌다 절을 보기는 보지만 초라하다. 상가 건물에 있는 경우가 많다. 단독 건물로 된 절은 보기 힘들다. 산에나 가야 볼 수 있을 것이다.
 
약수터 가는 길에 암자를 보면 불교의 현실을 보는 것 같다. 위축될 대로 위축 되어서 간신히 명맥만 유지하는 것처럼 보인다. 절의 암자인지 무속인의 암자인지 모를 정도로 구분이 가지 않는다. 과연 저 곳에도 부처님의 정법이 있을까? 니까야를 보는 자가 괜히 이런 자만을 내 본다.
 

 
약수터 가는 길에 국수집이 있다. 약수터 거의 다 가서 있는 집이다. 언제 보아도 아름답고 사랑스러운 식당이다. 막다른 곳, 외진 것 한켠에 잘 꾸며 놓았다. 무엇보다 갖가지 종류의 꽃이 있는 화분이 눈에 띈다.
 

 
국수집 이름은 꽃국수이다. 꽃과 국수가 어떤 관계가 있을까? 꽃국수는 어떤 것일까? 메뉴가 있는 안내판을 보니 “맛있는 차와 커피를 즐기기 좋은 카페”라고 써 있다. 국수집과 카페를 겸하고 있는데 카페에 더 가까운 것 같다.
 
물 뜨러 갈 때 늘 국수집을 지나친다. 식당이 아름다워서 한번쯤 들어가서 먹고자 했으나 기회가 생기지 않았다. 그러나 언젠가는 한번쯤 들어가서 먹어 주어야 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
 
약수터에 도착했다. 가장 먼저 수질이 어떤지 살펴 보았다. 시에서 검사한 것을 보면 “기준에 적합함”이다. 마셔도 되는 것이다. 그런데 날자를 보니 2023년 5월 9일자이다. 한달도 전에 검사한 것이다. 마셔도 될까?
 

 
 
약수터 물은 마셔도 된다. 설령 기준에 적합하지 않아도 마셔도 될 것 같다. 수도물 보다는 더 나을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빗물이 땅속으로 들어가 걸러진 것이기 때문에 마셔도 되는 것으로 본다. 더구나 수도에는 없는 광물질이 있는 물이다.
 

 
약수를 네 개 떴다. 패트병으로 네 개 무게는 상당하다. 배낭에 매면 지고 올만하다. 묵직한 배낭을 매고 내려 오면 마음도 뿌듯해지는 것 같다. 물 값으로 4천원이 절감된다. 무엇보다 보리수에 물을 줄 수 있다는 것이다. 보리수는 다른 식물과 달리 특별관리 하기 때문이다.
 

 
평범한 일상이다. 전화 한통 걸려 오지 않는다. 아직 유튜브는 열어 보지 않았다. 유튜브를 열어 보는 순간 판도라 상자를 열어 보는 것과 같다.

사띠가 깨지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말을 하지 말라고 했다. 사띠가 유지되고 있는 상태에서 누군가 말을 건다면 실례가 되는 것이다. 선원에서는 이렇게 한다. 아침 좌선도 이와 다르지 않다.
 
아침 좌선을 마치자 상쾌한 기분을 유지하고자 했다. 일부러 유튜브도 보지 않고 약수터로 갔다. 그리고 일상을 기록하기 위해서 이렇게 자판을 속도전 하듯이 두드리고 있다. 커피를 마시면서 평범한 일상을 기록하고 있는 것이다.
 

 
약수로 커피를 만들었다. 절구커피를 만든 것이다. 날씨가 타는 듯이 더워서 아이스커피를 만들어 보고자 했다. 얼음이 필요하다. 그러나 문제 없다. 냉장고에 얼음을 얼려 놓았기 때문이다. 소형냉장고를 당근에서 구입한 효과를 톡톡히 보고 있다. 예전 같았으면 편의점에서 아이스아메리카노를 사서 먹었을 것이다.
 

 
오늘 하루는 한시간 좌선하는 것으로 시작 했다. 마치 선원에서 사띠가 유지되는 것처럼 상쾌한 기분이 계속 유지되고 있다. 그러나 언젠가는 깨지고 말 것이다. 다시 혼탁한 마음으로 돌아 가는 것이다. 이제 점심시간이다. 집에 가서 밥을 먹어야겠다.
 
 
2023-06-28
담마다사 이병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