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흙속의연꽃

향토의 석양

담마다사 이병욱 2023. 7. 3. 07:25

향토의 석양


지금시각 3 54, 고향의 새벽이다. 고요함이 흐른다. 차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새소리, 바람소리도 들리지 않는 완전한 적멸이다.

바닥은 땅과 맞닿아 있다. 이렇게 대지와 가깝게 누워 있어 본 적이 별로 없다. 붕 떠서 산지 오래 되었다. 15층에서 누워 있는 것과 그라운드층에서 누워 있는 것은 다르다.

이제 30여분이 지나면 여명이 시작될 것이다. 어제 넘어간 해가 다시 떠 오를 것이다. 수없이 반복된 것이다. 내가 여기 오기 전에도 있었다. 내가 가고 나서도 반복될 것이다.

 


여기는 함평이다. 사촌 누님 집에서 하루 밤을 보내고 있다. 거실에는 선풍기도 에어콘도 없다. 열대야 없는 밤이다. 방에서는 나이 든 사촌들의 거친 숨소리가 들린다.

 


대지에는 땅의 기운이 있다. 땅에는 자기가 있다. 그라운드 층에 누워 있으니 편안하다. 땅에 딱 접지 된 것 같다. 가장 안정된 상태이다. 그러나 사촌의 정만 못할 것이다.

 


오늘은 제사날이다. 일년에 한번 사촌들이 모이는 날이다. 어제 미리 온 사촌들이 있다. 빈 집 청소를 하고 난 다음 한자리에 모였다. 디엔에이를 공유하는 사람들과 밥을 먹으며 우정을 나누었다.

 


어제 향토의 석양은 장엄했다. 붉은 해가 넘어 갈 때 대지는 푸르름의 바다였다. 탁 트인 개활지에서는 생명의 향연이 펼쳐졌다. 그러나 하늘과 대지의 파노라마는 오래 가지 못했다.

 

 


향토의 저 하늘과 저 구름은 태고적에도 있었다. 저 석양도 태고적에도 있었다. 여명도 태고적에도 있었다. 유한한 삶을 사는 사람들이 대지에서 살다가 간다. 저 태양이 스러지는 것처럼. 이제 여명을 보러 밖에 나가야겠다.


2023-07-02
담마다사 이병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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