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흙속의연꽃

고향 빈집에 가면

담마다사 이병욱 2023. 7. 3. 07:27

고향 빈집에 가면



제사는 정성으로 지내는 것이라 한다. 이 말 한마디에 모든 것이 들어 있다. 허례허식을 배격하는 말이다. 억대의 제사도 지극한 마음에 미치지 못한다.

일년에 한번 고향을 찾는다. 조부모 제사가 있는 날이다. 조부는 어떤 분인지 모른다. 태어나기도 전에 돌아 가셨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이 많은 사촌형님은 기억에 선명할 것이다.

 


제사음식은 주문한다. 빈집에서 준비할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주문하면 갖가지 음식이 온다. 밥만 빼고 다 온다고 보면 된다. 이럴 때  '제사는 마음이 중요하다'라는 말을 한다.

 


제사에는 내면의 제사도 있다. 마음을 청정하게 하는 것이 내면의 제사를 지내는 것이다. 부처님 당시 수행자들이 그랬다. 호흡도 일종의 내면의 제사를 지내는 것과 같다. 들숨은 제사상을 차리는 것과 같고 날숨은 제사음식을 먹는 것과 같다.

바라문들은 피의 제사를 지냈다. 제사를 지낼 때마다 수백, 수천마리의 동물이 희생되었다. 피의 제사는 공덕이 되지 않는다. 살생업을 저지르는 피의 제사는 오히려 악덕이 될 것이라고 했다.

 


제사 지낼 때는 경건하다. 절을 할 때는 경건함이 최고조에 달한다. 내면의 제사를 지낸 다면 항상 경건하게 살 것이다. 늘 사띠하며 사는 것이 내면의 제사를 지내는 것이 아닐까?

함평에 가면 두 가지 볼 것이 있다. 하나는 호랑가시나무이고 또 하나는 고분이다. 호랑가시나무는 후원에서 비밀리에 자라고 있고, 예덕리 고분군은 공개되어 있다.

 


고향은 자랑할 것이 없다. 지극히 평범한 시골마을이다. 특히 빈집을 보면 세월이 딱 멈춘 듯 하다. 일년이 다르게 스카이라인이 변하는 도시와 대조적이다. 해방 때와 변한 것이 없다. 산천도 그대로 있고 고향집도 그대로 있다.

마을은 갈수록 퇴락해 간다. 사람이 살지 않는 빈집은 늘어간다. 이에 이웃마을에 사는 사촌누님은 “갈수록 할망구만 늘어나고, 모다 병신 되부렀당께.”라고 말했다. 늙고 병듦에 따라 걷지 못하고 기억력이 약해지는 현상을 말한 것이다. 그럼에도 논농사를 짓는다. 마치 제사를 빠짐없이 지내는 것 같다. 그러나 10여년전부터 변화의 조짐은 있었다.

 


논에는 벼가 자라고 있다. 그런데 논에는 벼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잔디도 자라고 있는 것이다. 논이 잔디로 변한 것은 논농사보다 잔디농사가 더 수익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옛날 같았으면 상상도 못할 일이다.

그린필드의 초원은 아름답다. 마을은 사람이 살지 않아 점차 허물어 지고 있지만 멀리서 봤을 때 산천초목은 옛날 그대로 모습이다. 그러나 어떻게 변할지 모른다.

 


고향은 그대로 있는 것이 좋다. 다행히도 고향산천은 유년기 그대로 모습이다. 대형축사는 갈수록 늘어나고 있지만 공단이 들어오지 않는 것만 해도 다행이다. 고분이 있는 곳에서 바라본 고향은 고분시대나 지금이나 변한 것이 없다.

 


저 아래 월야에는 공단이 들어섰다. 대규모 현대자동차 공장이 생겨난 것이다. 전기자동차공장이라고 한다. 전에 볼 수 없었던 것이다. 오래 전부터 소외된 지역이라 공단은 꿈도 꾸지 못했던 것이다.

 

 
현대자동차는 함평에 공장을 지었을까? 해안을 매립한 곳도 많은데 왜 하필 곡창지대에 만들었을까? 환경이 파괴되는 것 같아 그다지 반갑지 않다. 분명한 사실은 함평천지에 빛그린산단이라는 이름으로 드넓은 평야를 파헤치고 있다는 사실이다.
 
태청산 아래에는 상무대가 들어 섰다. 함평천지에 조만간 상무대 전투비행단 활주로가 만들어질 모양이다. 마을에는 반대하는 현수막이 붙어 있다.
 

 
상무대는 예덕리 고분군에서 불과 3키로 밖에 떨어져 있지 있다. 그러나 산속에 있어서 보이지 않는다. 아직까지 고향은 원시 그대로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고분은 오래 된 것이다. 마한시대 고분이라 한다. 전방후원형과 옹관묘형이 특징이다. 아마도 4-5세기 이곳에 소국이 있었을 것이다. 그때 당시 소국에서는 경쟁적으로 큰 무덤을 만들었다고 한다.

 


고향 빈집에 가면 호랑가시나무가 있다. 처음 발견한 것은 아마 2012년이었던 것 같다. 그때 “집 뒷켠에서 비밀스럽게 기르고 있는데 세월이 오래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키는 크지 않다. 해마다 조금씩 자라는 것이다.”(인생의 2막을 살아가는 사람, 2012-07-09) 라고 기록을 남겼다.

 


호랑가시나무는 천연기념물이다. 옛날에는 군락지가 있었으나 사람들이 캐가는 바람에 씨가 말랐다. 그런데 후원에 작은 나무가 자라고 있었던 것이다!

 


해마다 고향에 가면 호랑가시나무를 살폈다. 처음 몇 년은 더디게 자랐다. 그러나 목대가 손목만하게 두꺼워지자 가속이 붙는 것 같았다. 11년 지나고 나니 목대가 장딴지만하고 키가 거의 지붕높이까자 자랐다.

 


호랑가시나무는 왜 이곳에 있게 되었을까? 호랑가시나무는 하나의 씨앗이 발아 된 것으로 본다. 백부가 한약재로 사용하기 위해 열매를 가져 왔는데 그때 버린 씨앗이 시초가 된 것으로 보는 것이다.

 


호랑가시나무는 우람하게 자랐다. 이제 가지를 쳐 줄 정도로 크게 자랐다. 처음 발견 했을 때는 누가 캐갈까 염려 했다. 지금은 뿌리를 단단히 내려 걱정 안해도 될 것 같다.

 


해마다 이맘 때쯤 고향을 찾는다. 고향에 가면 먼저 호랑가시나무가 잘 크고 있는지 확인한다. 디음으로 고분이 있는 곳에서 함평천지를 조망한다. 탯줄 묻은 고향이 있는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고향이 변함없이 있다는 것에 감사한다.



2023-07-03
담마다사 이병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