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흙속의연꽃

함평천지에 날이 밝으니

담마다사 이병욱 2023. 7. 3. 07:26

함평천지에 날이 밝으니


함평천지에 날이 밝았다. 새벽에 날이 새는 것을 보기 위해 밖으로 나갔다. 어스름한 여명이 불과 30분도 되지 않아 극적으로 바뀌었다. 천지가 개벽된 것이다.

 


누님 집 마을에는 교회가 있다. 언덕 위 높은 곳에 있다. 개활지에서 가장 높은 곳이다. 첨탑은 높이 솟아 있다. 동네 랜드마크 역할을 하고 있는 것 같다.

 


사촌 큰누님은 교회 다닌다. 매형 돌아가시고 홀로 된지 오륙년 되었다. 교회가 위안이 되는 것 같다. 노인들만 남아 있는 시골에서 갈 곳은 교회밖에 없는 것 같다.

누님은 세례 받았다. 그런데 시골교회 목사는 세례 받았어요?”라고 물어 보았다고 한다. 자신이 세례 주고서 물어 본 것이다. 사람들이 많아서 누가 누군지 잘 몰라서 그렇게 말 했을 것이다.

 


누님에게 물어 보았다. 마을에서 절에 다니는 사람은 얼마나 되는지 물어 본 것이다. 딱 한사람 있다고 했다. 마을 사람 상당수가 교회 다니는 것이다. 시골 마을에서 교회는 공동체 중심역할을 하고 있다.

함평천지에 불교가 있을까? 절이 있기는 있다. 저 멀리 불갑산 쪽에 두 곳이 있다. 불갑사와 용천사이다. 불갑사는 소재지가 영광이다. 용천사는 함평소재지이다. 드넓은 함평천지에 용천사 하나 밖에 없는 것 같다.

 


옛날에는 탁발승이 돌아 다녔다. 유년 시절 봤었다. 지금은 옛날 이야기가 되었다. 절은 산에나 가야 볼 수 있다. 드넓은 평야지대에서 절 보기 힘들다. 함평천지에 불교는 없는 것 같다.

세월이 흐름에 따라 빈집은 늘어 간다. 초등학교는 폐교된지 오래 되었다. 늘어나는 것은 소 사육장이다. 공장식 사육장으로 인하여 풍광이 크게 변했다. 소똥 냄새가 진동하고 소 울부 짓는 소리가 처량하게 들린다.

고향의 범위는 어디까지 일까? 서울에 산다고 하여 서울이 다 자신의 것일 수 없다. 함평이 고향이라 하여 함평천지가 다 고향일 수 없다. 유년기의 추억이 서려 있는 곳이 고향이다.

고향집에 사람이 살고 있지 않다. 빈 집 된지 오래 되었다. 일년에 한번 사촌들이 모인다. 성장과정을 공유하고 있는 사람들이다. 사람 없는 고향을 상상할 수 있을까?

샤람은 없고 빈집만 있으면 공허하다. 낯선 사람이 살고 있다면 서먹할 것이다. 외국인이 살고 있다면 어떤 생각이 들까? 고향을 뺏긴 것 같은 생각이 들 것 같다.

고향의 맛은 사람이다. 익숙한 사람들과 정을 나눌 때 사는 맛이 난다. 고향은 반드시 물리적 공간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정 들면 고향이라고 한다. 이웃이 사촌이라고 한다. 정을 붙이고 살면 고향이다.

 


나이 든 누님은 혼자 산다. 일년에 한번 사람들이 모였다. 오늘이 지나면 또 홀로 살 것이다. 누님은 교회공동체에서 살고 마을공동체에서 산다. 외롭지 않을 것 같다. 하나 더 있다. 고양이가 있기 때문이다.

자식은 품 안에 있어야 자식이다. 외지에 나가 사는 자식은 남과 같다. 항상 함께 사는 사람이 가족이다. 축생도 가족과 같다. 텅 빈 집에서 새끼 고양이 가족은 위안이 될 것 같다.

 


함평천지에 날이 밝았다. 툭 터진 대지는 풍요롭다. 초여름의 녹음은 절정이다. 언제나 이맘때 쯤 왔다. 함평천지에서 여름만 본다. 함평천지의 봄, 함평천지의 가을, 함평천지의 겨울은 유년기의 기억에만 있다.

 


이제 제사 지내러 빈집에 가야 한다. 후원에 있는 천연기념물 호랑가시나무가 잘 있는지 살펴 보아야 한다. 마한시대 예덕리고 고분군도 잘 있는지 봐야겠다.


2023-07-02
담마다사 이병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