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흙속의연꽃

가족이 보아도 부끄러움 없는 글을

담마다사 이병욱 2023. 7. 8. 17:15

가족이 보아도 부끄러움 없는 글을

 


어떤이는 글 쓸 때 날씨를 전한다. 날씨가 춥다거나 더운 것을 전한다. 마치 처음 만나는 사람에게 "오늘 날씨 참 좋죠?"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그 사람이 전하는 날씨는 나와 아무런 관련이 없다. 그럼에도 글 쓸 때마다 오늘 날씨 상황을 알려 주었을 때 "그래서 어쩌란 말인가?"라는 생각이 든다.

어떤이는 자신의 상태를 전한다. 몸이 아프다고 말한다. 이런 글을 접했을 때 슬픈 생각이 든다. 그런 한편 "그래서 어쩌란 말인가?"라는 생각이 든다.

요즘 유튜브에 눈에 띄는 것이 있다. 그것은 처세학이다. 보고 싶어서 본 것이 아니라 알고리즘이 유도해서 본 것이다. 공통적으로 하는 말이 있다. 자신의 비밀을 말하지 않는 것과 자신의 약점을 말하지 않는 것이다. 이런 처세술은 놀랍게도 고대 철학자와 근대 철학자들도 말했다는 것이다.

철학자가 처세술을 말하면 가치가 떨어지는 것 같다. 어느 이혼소송전문 변호사는 공자의 말을 인용하여 사람을 구분한다. 어느 유튜버는 묵자의 말을 인용하여 자신의 약점을 말하지 말라고 한다. 이런 말은 놀랍게도 유럽 근대 철학자도 말한 것이다.

비밀을 말하면 비밀은 지켜 지지 않는다. 나중에 곤경에 처할 수 있다. 약점을 말하면 후련할 수 있다. 그러나 나중에 이용당할 수 있다. 그래서 개인의 사생활에 대해서는 가능한 말하지 말라고 한다. 그래서일까 페이스북을 보면 일체 자신에 대해서 말하지 않는 것 같다.

 


대부분 사람들은 자신을 숨긴다. 자신에 대해서 말하지 않는다. 심지어 프로필 사진도 공개하지 않는다. 어떤이는 필명을 사용한다. 그대신 자신과 무관한 것에 열을 올린다. 이념 투쟁 같은 것이다. 그리고 자신 자랑하기 바쁘다.

어떤이는 자신의 얼굴을 반복적으로 노출한다. 얼굴에 자신 있는 사람인 경우가 많다. 아마 내세울 수 있는 것은 얼굴밖에 없는 것 같다. 그 얼굴에 상처라도 나면 어떨까? 세상이 끝나는 것처럼 걱정할 것이다. 얼굴을 자아와 동일시 했을 때 얼굴은 그 사람의 모든 것과 같다. 이는 다름아닌 유신견이다.

유신견을 가지고 있는 한 괴롭다. 내세울 수 있는 것이 얼굴 밖에 없는 사람은 얼굴에 뾰로지라도 하나 나면 큰 일 나는 것이다. 내세울 것이 명예밖에 없는 사람이 명예가 훼손됐다고 했을 때 어떤 반응을 보일까? 아마 목숨을 건 인정투쟁을 할 것이다.

초기경전에도 처세학에 대한 것이 없지 않을 수 있다. 어리석은 자와 사귀지 말라는 말이 대표적이다. 어리석은 자와 길도 같이 가지 말라고 했다. 어리석은 자와 길을 가느니 외로워도 차라리 홀로 가라고 했다. 이는 수행의 관점에서 말한 것이다.

어리석은 자를 사귀지 말아야 한다. 사귀면 물든다. 담을 넘자고 했을 때 넘어갈 수 있다. 그렇다고 무시하거나 경멸해서는 안된다. 주석에 따르면 연민의 마음으로 대해야 한다고 했다. 말을 섞지는 않지만 연민의 눈으로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다름 아닌 자애의 마음이다.

불교가 처세학과 다른 것이 있다. 처세학에서는 손절해야 할 사람을 나열하거나 자신의 비밀이나 약점을 말하지 말라고 하지만 불교에서는 자애의 마음을 내라고 한다. 우호적인 마음을 내라는 것이다.

자애는 사무량심을 대표하는 마음이다. 자애의 마음을 낸다는 것은 자애, 연민, 기쁨, 평정의 마음을 내는 것과 같다. 어느 처세학에서도 이런 이야기는 하지 않는다.

감기 걸렸다. 목이 칼칼하고 콧물이 나고 오한이 나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처음에는 타이레놀과 치감으로 버텨 보고자 했다. 그러나 오한이 심해서 견딜 수 없었다. 마침내 내과에 가지 않을 수 없었다.

감기 이야기는 쓸 필요가 없다. 날씨 이야기 하는 것처럼 허망한 것이다. 이럴 때 "그래서 어쩌자는 말인가?"라는 소리를 들을 것이다. 그럼에도 자신이 아픈 것을 중계하듯이 전하는 사람이 있다. 어떤 시인은 슬픔이라는 말을 빼놓지 않는다. 이럴 때 "그래서 어짜자는 건가?"라는 생각이 든다.

문제만 제기해서는 안된다. 답도 내놓아야 한다. 하소연이나 신세타령을 듣자고 보는 것은 아닐 것이다. 자랑을 하려면 돈 내고 해야 할 것이다. 어떤이는 "여러분, 기뻐해주십시오. 저의 네 번째 손자가 태어났습니다."라고 말했다. 축하할 일이다. 그런 한편 "그래서 어쩌자는 건가?"라는 생각이 떠오른다.

글은 그 사람의 얼굴이고 인격이다. 페이스북과 같은 에스엔에스에서는 그 사람에 대해서 알 수 있는 방법이 없다. 올린 콘텐츠로밖에 판단할 수 없다. 그런데 철저히 자신을 숨기면서 최소한의 표현을 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자신의 모든 것을 드러내면서 포스팅하는 사람이 있다. 물론 대다수는 침묵한다. 어떤이는 자신의 이름은 물론 사진이 나오는 것을 꺼리는 사람도 많다.

가능하면 솔직하게 쓰려고 한다. 그러다 보니 써서는 안될 비밀이나 약점에 대해서도 언급한다. 동정할지 몰라도 결국 부정적인 이미지를 형성할 것이다. 그럼에도 쓰는 것은 전하고자 하는 메세지가 있기 때문이다.

글을 쓰는 한가지 분명한 사실이 있다.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람, 가장 사랑하는 사람 가족이 보아도 부끄러움 없는 글을 쓰는 것이다. 그래서 글을 쓴 다음에는 날자와 함께 서명한다.

2023-07-08
담마다사 이병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