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8권 지행합일, 나는 언제나 진정한 지행합일의 행자가 될 수 있을까?
인생을 살면서 가장 가치 있는 일은 무엇일까? 지금 죽음의 침상에 누워 있다면 제일 잘했다고 생각하는 것은 무엇일까?
몸이 아프면 만사가 귀찮다. 몸이 정상이 아닐 때 아무것도 할 것이 없다. 어서 이 괴로움에서 벗어나기만을 바란다. 지옥중생들이 공덕을 쌓을 수 없고 수행을 할 수 없는 이유에 해당될 것이다.
몸이 편하면 자만하기 쉽다. 건강할 때는 건강의 교만이 생겨나고, 젊을 때는 젊음의 교만이, 삶에는 영원의 교만이 생겨나기 쉽다. 그러나 세월은 가만 내버려 두지 않는다. 세월은 인정사정 봐주지 않는다. 건강의 교만은 질병에 종속되고, 젊음의 교만은 늙음에 종속되고, 삶의 교만은 죽음에 종속된다.
많이 살았다. 육십 넘게 살았으면 많이 산 것이다. 나는 그 동안 어떤 삶을 살아 왔는가? 지난 세월을 되돌이켜 보면 나 자신만을 위해서 산 것 같다. 또한 가족만을 위해서 산 것 같다. 사회를 위해서 세상을 위해서 봉사하는 삶을 살아 오지 않았다.
세상에는 봉사하는 삶을 사는 사람들이 많다. 그것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 가장 낮은 자리에서 묵묵히 자신의 할 바를 다하는 사람들이다. 그런 사람들 중에 김광하 선생이 있다.
김광하 선생의 봉사단체 작은 손길이 있다. 이 봉사단체에서 짧게나마 봉사활동을 한 바 있다. 그리고 이에 자극 받아 개인적인 자선을 베푼 바가 있다. 이에 대한 블로그의 기록을 한권으로 책으로 만들었다. 책 제목은 ‘98권 지행합일’이다. 모두 16개의 목차로 173페이지 분량이다. 참고로 목차를 보면 다음과 같다.
목차
1. 지행합일 김광하 선생의 무주상보시
2. 보살행을 실천하는 천사들
3. 돌아갈 집이 없는 사람들, 작은손길 을지로 따비에 참가하고
4. 추위와 굶주림의 형벌 같은 삶
5. 작은손길의 아름다운 회향을 위하여
6. 모여 사는 것 외 다른 방법이 없다, 삼중축복의 노후수행공동체
7. 어떻게 봉사할 것인가? 두 갈래의 길에서
8. 심신이 온전한 자들의 도덕적 의무, 2월 19일 을지로 굴다리 따비
9. 불교에서 해법을 찾기로, 13년간 함께 한 작은 법회모임
10. 민들레 홀씨되어, 을지로굴다리따비 회향하는 날
11. 가장 낮은 자들에게 가장 낮은 자세로, 작은손길 무주상보시 13년
12. 퍼스트 펭귄처럼, 2018년 재가결사 송년회
13. 기쁨으로 보시했을 때
14. 티 내지 말고 보시하라고 했는데
15. 글을 쓴 대가로
16. 선업공덕 지을 기회를 준 경비원들과 미화원들에게
김광하 선생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것은 니까야모임에서였다. 2016년 12월 모임에서 전재성 선생은 지행합일의 행자가 있다고 했다. 그 사람은 김광하 선생이라고 했다. 이 이야기를 듣고 김광하 선생을 찾아 갔다. 김광하 선생은 전재성 선생의 친구이자 후원자이고 동시에 편집자였다.
김광하 선생을 찾아서 황학동에 있는 사명당의 집에 갔다. 사명당의 집에서는 을지로 굴다리 노숙자 봉사뿐만 아니라 독거노인 반찬봉사, 탈북청소년 지원봉사 등 다양한 봉사활동을 하고 있었다. 처음 찾아 간 것에 대하여 ‘보살행을 실천하는 천사들’(2017-01-09)라는 제목으로 기록을 남겼다.
봉사를 한번도 해 본적이 없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사명당의 집에서는 13동안 봉사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고 매스컴에 요란하게 광고하며 봉사는 것은 아니었다. 지자체나 정부의 지원도 받지 않고 오로지 자원봉사자들로만 이루어진 순수한 봉사단체였다. 그러기에 회향도 쉽게 할 수 있었던 것 같았다.
김광하 선생을 처음 만났을 때 이런저런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봉사근본 정신은 무주상보시였다. 금강경에 있는 가르침을 말한다. 이는 보시를 하되 보시를 했다는 상을 내지 말라는 것이다. 쉬운 말로 하면 ‘티 내지 말고 보시하라!"라는 말이다.
사명당의 집은 김광하 선생이 만든 봉사단체 작은 손길의 근거지가 되는 작은 집이다. 황학동 주택가에 있는 단독주택이다. 단독주택을 임대해서 노숙자들의 음식을 준비하고 독거노인의 반찬을 준비하는 것이다. 그러나 내가 방문 했을 때는 끝물이었다. 두 달 후에 완전히 회향 했기 때문이다.
처음 김광하 선생을 찾아 가던 날 을지로 노숙자 봉사 현장에 갔다. 을지로 굴다리라고 불리 우는 곳이다. 매주 일요일 저녁 8시 30분부터 급식이 시작된다. 김광하 선생은 백설기와 바나나가 든 봉지를 나누어 주라고 했다.
배식 시간이 시작되었다. 사명당의 집에서 미리 준비한 봉지 안에는 백설기와 바나나가 들어 있다. 이를 노숙자들에게 하나씩 나누어 주어야 한다. 노숙자들은 약 백명 가량 되었다.
그들은 어디서 왔는지 모른다. 어둑할 때가 되면 여기저기서 나타난다. 아무 말이 없다. 음식을 받자 마자 조용히 어디론가 사라진다. 차와 커피도 제공된다. 어떤 때는 양말 등이 제공된다. 특식으로 삼계탕이 제공된 때도 있었다고 한다.
급식은 금방 끝났다. 타종교 단체처럼 찬송가를 부른다거나 기도를 하는 행위는 없다. 나누어 주는데 고작 15분 밖에 걸리지 않는다. 그런데 봉사자들은 15분을 위해서 일주일 준비한다는 사실이다.
노숙자들을 본 적은 많다. 그러나 대면한 적은 없다. 을지로에서 노숙자를 대면 했을 때 그들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 보지 못했다. 그때 느낀 것에 대하여 “노숙자들 얼굴을 제대로 볼 수 없었습니다. 괜히 미안한 마음이 들어서 입니다.” (보살행을 실천하는 천사들, 2017-01-0)라고 글을 남겼다.
노숙자와와 대면은 주는 입장과 받는 입장이다. 이 과정이 두려웠다. 그래서 눈을 마주치지 않고 “많이 드세요” “안녕하세요”라 말했다. 그들은 “고맙습니다”라며 감사의 말을 하며 받아 갔다. 어떤 이는 무표정하게 받아 갔다.
이후로도 매주 일요일 노숙자 봉사활동에 나갔다. 그러나 아쉽게도 작은 손길에서는 13년 봉사를 회향하기로 했다. 이유는 김광하 선생이 남긴 카페의 글에서 잘 나타나 있다. 이는 “내년에는 제가 세는 나이로 65세가 됩니다. 한 두 해가 지나며, 몸도 마음도 기력이 확실히 떨어집니다.”라는 글로 시작되는 회향의 변으로 알 수 있다.
김광하 선생은 2002년 봉사활동을 처음 시작한 이래 한번도 빠짐 없이 달려 왔다. 그것도 자신의 사업체를 운영하면서 동시에 활동한 것이다. 그것도 을지로 노숙자 봉사뿐만 아니다. 독거노인 반찬봉사, 탈북청소년 지원 봉사 등 일주일에 몇 차례 한 것이다. 십년 넘게 이런 세월을 살았는데 이제 체력적으로 정신적으로 한계에 달했기 때문에 회향하고자 한 것이다.
김광하 선생의 봉사단체 작은 손길은 2017년 3월에 완전히 회향 되었다. 황학동에 있던 사명당의 집도 내 놓았다. 그러나 작은 손길의 활동 상황은 다음 카페(작은손길(사명당의집) - Daum 카페, https://m.cafe.daum.net/samyungdang/_rec)에 고스란히 남아 있다.
봉사단체 작은 손길 사람들과 세 달 가량 함께 했었다. 비록 짧은 기간이지만 노숙자 봉사활동을 하면서 나 자신의 삶을 되돌아 보는 계기가 되었다. 그것은 지행합일에 대한 것이다.
흔히 언행일치라고 한다. 말하는 것과 행위 하는 것이 일치하는 것을 말한다. 지행합일은 무엇인가? 이는 아는 것과 행위 하는 것이 일치하는 것을 말한다. 지행합일이 언행일치보다 더 상위 개념임을 알 수 있다.
지행합일을 실천해 보고자 했다. 가장 가까운 곳을 대상으로 했다. 그 결과 사무실이 있는 오피스텔 경비원과 미화원이 포착되었다. 이에 해마다 한두 차례 선물을 했다. 그 중에 하나가 ‘선업공덕 지을 기회를 준 경비원들과 미화원들에게’(2022-09-07)라는 제목의 글이다.
나는 지행합일을 하고 있는가? 아직은 아니라고 본다. 그러나 노력하고자 한다. 아는 것을 실천하기 위해서 사무실에는 한켠에 명상공간을 만들어 놓았다. 틈만 나면 앉으려 하는 것이다. 또한 아는 것을 실천하기 위해서 오피스텔 경비원들과 미화원들에게 선물하고자 한다.
지행합일은 말로만 하는 것이 아니다. 이렇게 공덕 지었다고 글로 남기는 것은 진정한 무주상보시가 되지 못한다. 보시할 때는 티 내고 하지 말라고 했는데 무주상보시에 위배 되는 것이다.
보시하는 삶을 살고자 한다. 그렇다고 마치 앵벌이 하는 것처럼 방송에서 후원해 달라고 요청하는 국제구호단체에 보시할 생각은 없다. 직접 보시하는 것이 낫다. 그러나 본격적인 실천은 아직까지 요원하다.
보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자신이 가장 아끼는 것을 보시하는 것이다. 자신이 가장 아끼는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아마도 자신의 목숨일 것이다. 그래서일까 십바라밀에서는 자신의 신체의 일부를 보시하고, 심지어 자신의 목숨까지 보시하는 것이다. 과연 이런 보시의 삶을 살 수 있을까?
부처님은 사아승지하고도 십만겁동안 보살행을 했다. 이는 자타카를 읽어 보면 알 수 있다. 그런데 부처님이 보시할 때는 목숨 걸고 했다는 것이다. 어느 것 하나 목숨 걸지 않은 것이 없다.
보시바라밀은 목숨 걸고 하는 것이다. 이는 “예를 들어 아내들, 아이들, 재물들을 기부하는 것은 일반적 초월의 길의 보시이고, 손이나 발 등의 장기를 기증하는 것은 우월적 초월의 길의 보시이고, 목숨을 보시하는 것은 승의적 초월의 길의 보시이다.”(Jat.I.73)라는 가르침으로 알 수 있다. 계행바라밀도 목숨 걸고 하는 것이고, 출리바라밀도 목숨 걸고 하는 것이다. 이밖에 지혜바라밀, 정진바라밀, 인내바라밀, 결정바라밀, 자애바라밀, 평정바라밀도 목숨 걸고 한다. 그래서 십바라밀을 ‘승의적 초월의 길(dasaparamatthapāramī)’이라고 말한다.
몸이 좋지 않을 때 종종 죽음의 침상에 누워 있는 자신의 모습을 상상해 본다. 손가락 하나 움직일만한 힘이 없을 때, 눈꺼풀 하나 깜박거릴 힘이 없을 때 무엇이 생각이 날까? 그것은 자신의 행위일 것이다.
돈을 아무리 많이 벌어도 죽어서 가져가지 못한다. 그가 백만장자라고 할지라도 그 재산을 가져 가지 못한다. 그가 가져 갈 수 있는 것은 백만장자가 되기 까지 행위(業)를 가져 간다. 그가 불법, 탈법, 편법으로 돈을 모았다면 그 행위를 가져 간다. 남의 눈에 눈물을 흘리게 했다면 그 악행에 대한 업을 가져 간다.
죽음의 침상에 누웠을 때 나는 무엇을 가져가야 할까? 그것은 명확하다. 공덕을 가져 가야 한다. 구체적으로 보시공덕, 지계공덕, 수행공덕을 가져가야 한다. 더 범위를 넓혀서 열 가지 공덕을 가져 가야 한다. 재가불자라면 십복업사가 될 것이다. 출가수행자라면 십바라밀이 될 것이다. 나는 언제나 진정한 지행합일의 행자가 될 수 있을까?
2023-07-12
담마다사 이병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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