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6권 위빠사나수행기 II 2020, 사무실이 일터가 되고 서재가 되고 암자가 되었을 때
요즘 사십대 직장인들에게 로망이 있다고 한다. 그것은 자연인처럼 사는 것이다. TV에서 자연인 프로가 유행하자 사람들은 너도나도 자연인처럼 사는 꿈을 꾼다. 그러나 현실은 허락하지 않는다. 과연 모두 다 버리고, 모두 다 내려 놓고 수행자처럼 홀로 살 수 있는 자들은 얼마나 될까?
남자에게 로망이 있다. 그것은 자신만의 사무실을 갖는 것이다. 이는 여자에게도 해당될 것이다. 자신만의 공간을 갖고 있다는 것은 자연인처럼 사는 것 못지 않은 로망이다. 도심에 자신만의 공간을 갖고 있다는 것은 모든 사람들의 로망일 것이다.
나만의 공간이 있다. 꽤 오래 되었다. 지금으로부터 16년전인 2007년에 나만의 공간을 가졌다. 안양에서 가장 저렴한 오피스텔에 입주한 것이다. 비록 십평가량 되는 작은 임대사무실이긴 하지만 이곳은 일터이자 글 쓰는 곳이고 또한 쉼터이기도 하다.
도심속의 사무실은 조용하다. 일년 열두달 찾는 이가 별로 없어서 산중에 있는 암자와 다름 없다. 임대료와 관리비가 있어서 놀려 둘 수 없다. 아침 일찍 나와서 저녁 늦게 들어간다. 토요일과 일요일에도 나온다. 이런 공간을 수행공간으로도 활용하고자 했다.
나만의 공간은 자연인의 그것 못지 않다. 더구나 수행공간으로도 활용하고자 했을 때 암자가 되는 것 같다. 이렇게 본다면 나만의 공간은 세 가지 조건을 만족하고 있다. 일터이자 글 쓰는 곳이자 수행처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오늘 96번째 책을 만들었다. 이번에 만든 책은 수행에 대한 책이다. 이미 수행에 대한 책 1권은 만들었다. 1권은 2008년 말부터 2019년까지 수행에 대해서 쓴 것이다.
이번에 만든 수행에 대한 두 번째 책은 2020년 한 해에 대한 것이다. 책 제목을 ‘96권 위빠사나수행기 II 2020’로 했다. 목차를 만들어 보니 모두 46개의 글에 298페이지에 달한다. 참고로 목차를 보면 다음과 같다.
목차
1. 명상이 일상이 되도록
2. 잡담은 불선업을 짓는 것
3. 앉는 즐거움
4. 사마타로 먹기
5. 가 보지 않은 길
6. 진실로 새로운 하루가 되기를
7. 촛불이 타는 것을 보면
8. 호흡이 피난처
9. 푹신한 방석과 함께
10. 세상을 떠나고 싶다면
11. 느릿느릿한 것이 미덕
12. 진정한 자유인이 되려면
13. 아무리 나를 찾으려 해도
14. 수행자의 위엄
15. 매순간이 생일날
16. 생멸을 보지 못하고 백년을 사는 것보다
17. 간지러움의 끝을 보고자 했으나
18. 역류도(逆流道), 눈물로 범벅된 고난의 길
19. 통증의 발생에서 소멸까지
20. 괴로움을 없애는 마법의 주문
21. 상쾌한 좌선
22. 수행자의 밥상
23. 내가 생각하는 사띠빳타나위빠사나
24. 현재의 상태에 정복당하지 않으려면
25. 마음 보는 수행에 대하여
26. 통증의 느낌을 물거품처럼
27. 시선강탈 당하지 않으려면
28. 해탈의 맛은 왜 모두 한 맛일까?
29. 수행중에 왜 말하지 말라고 했을까?
30. 명상수행 예비동작으로의 스쿼트(Squat)
31. 무엇이든지 천천히 해야
32. 도무지 멈출 줄 몰라서
33. 번뇌가 일어나는 족족
34. 어떤 느낌이든 그것은 괴로움 안에
35. 아버지의 영역을 거닌다면
36. 빤냐완따 스님의 경행예찬
37. 마하시전통에서는 왜 복부를 관찰하라고 할까?
38. 그윽한 고요
39. 경을 외울 때는 입체적으로
40. 사띠(sati)는 도와 과의 전제조건이자 전조현상
41. 지금 내 마음이 무엇을 하고 있는가?
42. 욕망과 불선법을 잠재우려면
43. 수행은 아무나 하나?
44. 빠알리 팔정도경을 외우고
45. 몸을 움직이면 힘이 나온다
46. 스쿼트와 몸관찰
그 동안 글만 쓰고 살았다. 2006년부터 쓰기 시작했다. 그러나 지행합일이 되지 않았다. 아는 것과 실천하는 것이 따로 가는 것이다. 언제까지 이렇게 할 수 없었다. 집중수행 했었을 때 배운 것을 생활속에서 실천해 보고자 했다.
사무실 한 공간에 명상공간을 만들었다. 이에 대한 이야기가 목차 1번 ‘명상이 일상이 되도록’ (2020-01-28)이라는 제목으로 실려 있다.
어떻게 해야 명상이 일상이 될 수 있을까? 곰곰히 생각해 보았다. 그것은 일터 바로 옆에 명상공간을 확보하는 것이었다.
현재 사무실은 16년 되었다. 2007년에 입주 했으니 그렇게 오래 된 것이다. 2020년 당시에는 13년된 사무실이었다. 그런데 2019년이 되자 사무실에 변화가 생겨났다는 사실이다.
2007년 오피스텔에 처음 들어 왔을 때 비용이 부담되었다. 임대료와 관리비를 합하니 고정비용이 상당했다. 이를 조금이라도 부담을 줄이기 위해서 사무실 공유를 추진했다. 사무공간이 필요로 하는 사람에게 책상 하나 공간을 마련해 주는 것이다.
오랜세월 사무실을 공유했다. 안양에는 사무실을 공유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사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전에 임시로 자리를 잡고자 하는 사람에게 공간이 필요했던 것이다. 그래서 전대를 놓았다. 비용은 얼마 되지 않았지만 고정비 절감에 상당히 도움이 되었다.
한 사람과 꽤 오래 있었다. 거의 7-8년 같이 있었던 것 같다. 처음에는 책상 하나를 주었다. 나중에는 두 개를 주었다. 그는 마치 자신의 사무실처럼 사용한 것이다. 그러나 일체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마주칠 때 눈인사만 했다. 그렇게 하는 것이 편했다. 그래서 오래 간 것인지 모른다.
그 사람은 독립해서 나갔다. 같은 오피스텔로 임대해서 나간 것이다. 사업이 성공적으로 정착한 것 같다. 요즘도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치면 눈인사만 할 뿐이다.
그 사람은 2019년에 나갔다. 그 사람이 나가자 공간이 널널해졌다. 이 공간을 어떤 용도로 활용해야 할까? 또다시 전대를 놓을 수 없었다. 이제 사업기반이 어느 정도 잡혔기 때문에 타인과 함께 쓰는 것은 불편할 것 같았다.
어느 날 이런 생각이 들었다. 놀려 두고 있는 공간을 명상공간으로 활용하고자 한 것이다. 매일 경전을 근거로 글을 쓰고 있지만 수행은 하지 못하고 있는 상태였다. 수행은 수행처에 가서나 하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
집중수행 하려면 일주 이상 자리를 비워야 한다. 보통 십일코스가 많다. 미얀마에라도 가게 된다면 2주가량 자리를 비워야 한다. 매일 고객의 주문을 기다려야 하는 입장에서 자리비우기가 쉽지 않다. 이럴 때 사무실 공간에 명상공간을 만들어 보자는 아이디어가 떠오른 것이다.
마침내 2020년 1월에 명상공간을 만들었다. 사무실 가운데를 확보하여 칸막이를 치자 3평가량 공간이 확보 되었다. 이제 언제든지 앉을 수 있는 수행처가 생긴 것이다. 이에 대하여 “일단 앉아야 한다. 앉는 것을 생활화해야 한다. 하루에 한번은 앉아야 하고, 한번 앉으면 한시간은 앉아 있어야 한다. 가능하면 자세를 바꾸지 말고 그대로 있어야 한다. 그래야 현상에 대한 생멸을 관찰할 수 있다. 매일 밥먹듯이, 매일 앉아 있는 것이다. 명상이 일상이 되도록 하는 것이다. 오늘은 그 첫날이다. 나는 매일매일 쉬지 않고 할 수 있을까?”(2020-01-28)라고 써 놓았다.
명상공간을 만들어 놓았다. 매일 앉아 있고자 했다. 이런 결심을 써 놓았다. 그리고 방석에 대해서도 써 놓았다. 바닥에 차가운 기운이 올라 온다는 이야기도 써 놓았다. 이런 글이 암시가 되었던 것 같다. 어느 페이스북친구가 방석을 보내 온 것이다. 이에 대하여 목차 9번에서 ‘푹신한 방석과 함께’(2020-02-22)라는 제목으로 글을 올렸다.
글을 올릴 때 암시가 되는 경우 난감하다. 글을 보고서 먹을 것 등을 보내 오기 때문이다. 방석에 대한 글을 썼더니 방석을 보내 준 것이다. 이에 대하여 “말이 씨가 된 것 같다. 또 암시가 된 것 같다. 페친이 보내 주겠다고 메신저를 준 것이다. 이는 전혀 의도하지 않았던 것이다. 단지 있는 그대로를 썼을 뿐인데 암시로 비추어진 것 같아 당혹한 마음이다. 이럴 때 쓰는 표현이 아마도 ‘대략난감’일 것이다.”(2020-02-22)라고 써 놓았다.
사무실에 명상공간을 만들어 놓은 지 만 3년이 지났다. 나는 얼마나 앉아 있었을까? 처음에는 자주 앉아 있고자 노력했다. 좌선한 것에 대하여 수행기를 작성하기도 했다. 2020년 수행기 목차에서도 볼 수 있다. 그러나 날이 갈수록 앉아 있지 않는 날이 많아졌다.
명상공간이 있다는 것은 언제든지 앉아 있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일이 바빠서 한동안 앉아 있지 못했을 때 일부로 시간을 내서 앉아 있기도 한다. 일단 앉아 있으면 마음이 편하다. 그러나 갑자기 앉으면 번뇌에 가득 차게 된다.
어떻게 해야 수행을 잘 할 수 있을까? 이 말은 “어떻게 해야 집중을 잘 할 수 있을까?”라는 말과 같다. 이에 최근에 발견한 것이 있다. 그것은 암송을 활용하는 것이다. 암송한 다음에 행선이나 좌선을 하면 집중이 잘된다는 사실이다. 왜 그럴까?
암송하면 집중이 잘된다. 머리 속에 있는 경을 기억해내고자 했을 때 집중이 되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긴 길이의 경을 암송하고 났을 때 집중이 되어 있음을 알게 된다. 이때 암송으로 집중된 힘을 행선이나 좌선에 이용하면 매우 효과적이다. 내가 발견한 것인데 다른 사람도 이런 방법을 활용하는지는 알 수 없다.
사무실에 명상공간을 만들어 놓았다. 그러나 반드시 앉아 있는다고만 해서 수행을 한다고 볼 수 없다. 일상이 수행이 되어야 한다. 암송하는 것도 수행이다. 이는 다름아닌 사마타 수행이다. 그러나 근본적으로는 늘 깨어 있어야 한다. 늘 알아차림을 유지하는 것 자체가 수행인 것이다.
누구나 로망이 있다. 퇴임이나 정년을 맞이한 사람은 갈 곳이 없다. 이런 때 자신만의 공간을 만들어 놓는다면 최상의 놀이터가 될 것이다. 집에 자신만의 공간을 만들어 놓을 수 있다. 그러나 집은 하루종일 머물러 있을 공간은 되지 못한다. 눈만 뜨면 밥만 먹으면 밖으로 나가야 한다. 밖에 나가서 사람을 만나야 한다. 자신만의 공간을 만들어야 한다.
나는 로망을 실현했을까? 어쩌면 오래 전에 실현한 것이나 다름없다. 가장 먼저 일터로서 사무실 공간을 만들어 놓았다. 동시에 서재로서 글쓰는 공간이 되었다. 마지막으로 명상공간으로서 수행처를 만들어 놓은 것이다. 사무실이 일터가 되고 서재가 되고 암자가 된 것이다. 나는 정말 로망을 실현한 것일까?
2023-05-31
담마다사 이병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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