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행기

안팍으로 생멸(生滅)에 사무치고자

담마다사 이병욱 2023. 7. 18. 16:44

안팍으로 생멸(生滅)에 사무치고자
 
 
혼자 있는 시간이 대부분이다. 원맨컴퍼니, 일인사업자, 일인사장이다 보니 늘 혼자 있다. 밥 먹는 것도 혼자이다. 식당에 가서 밥 먹을 때가 제일 난감하다. 테이블만 차지 하는 것 같아 미안한 느낌이 든다.
 
식사할 때는 주로 한식부페를 이용한다. 요즘에는 혼밥하는 사람을 배려해서 일인석이나 이인석을 마련해 놓은 식당도 있기는 하다. 가장 무난한 것은 햄버거를 먹는 것이다. 일터 근처에 롯데리아가 있어서 포장해서 먹는다. 점심특가로 가장 싼 것은 데리버거 세트로 4,500원이다.
 
하루종일 사무실을 지킨다. 아침 일찍 나와서 오후 일찍 나선다. 일찍 출근했으니 일찍 퇴근 하는 것이다. 프리랜서가 자기관리를 잘 하듯이 역시 자영업자는 자기관리를 잘 해야 한다. 어영부영하다 보면 하루를 헛되이 보낼 수 있다.
 
일하는 날보다 노는 날이 더 많다. 일의 특성상 어쩔 수 없는 구조이다. 일감이 있어야 일을 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일감이 주기적으로 있는 것은 아니다. 언제 일감이 올지 모른다. 일감이 없을 때는 몇 주 가기도 한다.
 
사업은 운이라고 볼 수 있다. 사업은 월급생활자와 달리 고정적으로 수입이 있는 것은 아니다. 수입이 들쑥날쑥 한다. 어느 달은 벌이가 괜찮지만 어느 달은 벌이가 시원찮다. 마치 장사하는 것과 똑같다.
 
사업을 하면 운수 좋은 날도 있기도 하다. 생각지도 않게 주문이 오는 것이다. 잊고 있었던 고객에 전화가 올 때도 있다. 만일 사업을 접었다면 기회는 없을 것이다. 안죽고 살아 있으면 기회가 오게 되어 있다.
 
어제 품질문제로 인하여 전화를 받았다. 그리고 설계를 수정해서 대응해 주었다. 기술담당에게 할 수 있는 조치는 다 취했다. 그 다음은 영업쪽하고 이야기를 해야 한다.
 
충분히 예상했었다. 아니나 다를까 공짜로 해달라고 했다. 회사 사정이 어려운 이야기도 했다. 아마 품질문제로 주문을 하지 못하는 상황이었을 것이다. 이런 것을 예견했다. 그리고 시나리오도 준비해 두었다.
 
흔쾌히 받아 주었다. 무상으로 제작해 주겠다고 했다. 그랬더니 딸 뻘 되는 담당자가 “사장님, 고맙습니다.”라고 연신 말하는 것이었다.
 
사업을 하다 보면 손해 볼 때도 있다. 이익만 보려 하면 큰 손실로 이어질 수 있다. 소탐대실이다. 자신은 절대로 손해 보지 않으려 할 때 다시는 주문하려 하지 않을 것이다. 왜 그런가? 사업은 기브앤테이크(Give & Take) 즉, 주고받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루종일 혼자 앉아 있다. 이럴 때 유튜브를 보기 쉽다. 유튜브에 빠지면 시간 가는 줄 모른다. 이럴 때 죄스러움을 느낀다. 이 귀중한 시간에 시간을 헛되이 보내는 것 같아 죄를 짓는 것 같다.
 
혼자 있을 때 독서를 할 수도 있다. 경전을 읽을 수도 있고, 경 외우기를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쓰는 것은 부담이 없다.
 
쓰는 것을 즐긴다. 이 세상에 쓰는 것이 가장 쉬운 것 같다. 이는 생활화가 되어 있기 때문이다. 2006년이래 17년동안 매일 쓰고 있으니 밥 먹는 것과 똑 같은 것이다. 그러나 부담을 느낄 때가 있다. 여행기를 쓰는 것이다.
 
여행을 가면 여행기를 작성한다. 한시간 본 것도 사진을 바탕으로 기록을 남긴다. 그런데 여행기 작성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그 나라, 그 지역의 역사와 문화를 알아야 한다. 또한 검색이 이루어져야 한다. 누가 보아도 공감할 수 있는 만한 여행기를 남긴다는 것은 매우 부담스러운 일이다.
 

 
오후가 되자 비가 그쳤다. 오전에 억수로, 겁나게 내리던 비가 뚝 그친 것이다. 비 갠 하늘은 맑다. 저 멀리 수리산의 초록이 손에 잡힐 듯 가까이 있다. 이럴 때 앉아 있을 수 없다. 명학공원으로 향했다.
 

 
명학공원은 산책코스이다. 둘레길이 있어서 빙빙 돌기도 한다. 근처에 사는 사람들은 산책겸 운동을 한다. 작은 공원이기는 하지만 숲이 있다는 것은 삶의 활력을 주기에 충분하다.
 
거리가 깨끗해졌다. 비가 온 다음에는 마치 물청소한 것처럼 도시가 산뜻하다. 그러나 거리를 더럽히는 것도 있다. 개가 거리를 더럽힌다. 애완견이 오줌을 싸는 것을 종종 목격하기 때문이다.
 

 
이 거리와 이 도시를 사랑한다. 그러나 애완견으로 인하여 거리와 도시가 더럽혀지는 것 같아 안타깝다.
 
애완견은 아무곳에서나 오줌을 싸고 똥을 눈다. 주인이 똥을 치운다고는 하지만 완벽하지 않다. 애완견이 아무 곳에서나 오줌을 누었을 때 지린내가 날 것이다.
 
비가 오면 모든 것이 씻겨 내려 간다. 그래서인지 비가 온 뒤에 도시의 모습은 산뜻하다. 이렇게 폭우가 오면 도시의 모든 오염원이 씻겨 내려가는 것 같다. 물론 애완견의 오줌과 똥도 씻겨 나간다.
 
오피스텔 18층으로 올라갔다. 안양시내를 사진 찍기 위해서 올라 간 것이다. 오늘 같이 맑은 날, 비 온 다음에 하늘과 땅은 청정하다. 사람의 마음도 이렇게 청정했으면 좋겠다.
 

 
사람은 겉으로 깨끗해 보인다. 그러나 마음 속은 깨끗하지 않다. 언제 어떻게 변할지 모른다. 충동적이다. 마음이 일어 났을 때 그것을 하고야 만다. 먹고 싶은 것이 있을 때 기어이 사러 가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마음이 탐욕으로 물들면 세상도 탐욕의 대상이 된다. 마음이 분노로 가득하면 세상도 분노의 대상이 된다. 이런 마음을 어떻게 다스려야 할까?
 
사무실에 명상공간을 만들어 놓았다. 요즘처럼 주문이 없을 때는 앉아 있기 좋다. 그런데 앉아 있으려면 먼저 마음의 항복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마음은 늘 들떠 있기 때문에 앉아 있기가 쉽지 않은 것이다.
 
명상공간이 있어서 앉아 있는 때가 많다. 그러나 시간은 길지 않다. 이삼십분이 고작이다. 그런데 앉아 있다보니 불편하다. 바지를 입은 것이 불편하다.
 
오늘 아침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었다. 명상할 때 입는 옷을 따로 준비하는 것이다. 법복이 생각났다. 법복을 사무실로 가져가서 좌선할 때 입는 것이다. 그러나 무리가 따른다. 갑자기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추리닝을 가져다 놓는 것이다. 바지만 가져 놓으면 된다.
 
오늘 오후에 추리닝 바지를 입었다. 하루종일 홀로 있기 때문에 문제가 되지 않는다. 누가 찾아 올 사람도 없다. 좌선할 때만 입기로 한 것이다. 그런데 바지 추리닝을 입다 보니 너무 편한 것이다. 바지를 입는 것과 천지차이가 난다.
 
일감이 없을 때 유튜브를 본다. 그러나 창조적인 일을 해야 한다. 수동적이고 소극적인 것은 하기가 쉽지만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것은 하기가 어렵다. 책을 읽고, 경전을 읽고, 글을 쓰고, 경을 외우고, 경을 암송하고, 명상을 하는 것은 쉽지 않다.
 
명상은 생활화가 되어야 한다. 조건은 갖추어져 있다. 명상공간이 있어서 언제나 앉아 있을 수 있다. 추리닝 바지를 가져다 놓아서 부담이 없다. 이제 앉아만 있으면 된다.
 

 
앉아 있으면 새로운 세계에 들어간다. 그렇다고 신비한 체험을 하기 위한 것은 아니다. 생멸을 보는 것이다. 몸과 마음에서 일어나는 현상을 관찰하는 것이다.
 
명상의 핵심은 관찰이다. 끊임없이 일어났다가 사라지는 것을 관찰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생멸관찰은 행선이나 좌선에서만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일상에서도 관찰되어야 한다. 불현듯 무언가 하고 싶은 마음이 일어났을 때 “일어남”이라고 관찰해야 한다. 이렇게 알아차리면 욕망은 이전의 마음이 되어 버린다.
 
 
생겨나고 사라지는 것을 못보고
백 년을 사는 것보다
생겨나고 사라지는 것을 보면서
하루를 사는 것이 낫다.”(Dhp.113)
 
 
법구경 ‘천의 품’에 있는 생멸의 게송이다. 부처님은 생멸을 보라고 했다. 어떤 생멸을 말하는가? 이럴 때는 주석을 보아야 한다. 주석에서는 오온의 생멸을 보라고 했다.
 
오온은 색, 수, 상, 행, 식을 말한다. 이는 우리 몸과 마음을 분석적으로 본 것이다. 몸과 마음에서 일어나는 물질, 느낌, 지각, 형성, 의식을 보는 것이다. 그런데 오온은 무명, 갈애, 행위, 자양분, 접촉의 다섯 가지를 통해서 생겨나고 사라진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다섯에 다섯을 곱하면 스물다섯 가지 생멸을 볼 수 있다.
 
생멸을 보고자 한다. 생멸에 사무치고자 한다. 눈으로 생멸을 보기는 쉽지 않다. 보는 것은 계속 있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듣는 것은 생멸을 보기가 쉽다. 없던 것에서 나타나기 때문이다.
 
생겨난 것은 금방사라진다. 머물러 있지 않는 것이다. 냄새도 그렇고 감촉도 그렇고 생각도 그렀다.
 
눈에 속지 말아야 한다. 눈으로 보고 있으면 계속 생멸하는 것임에도 항상 그 자리에 있는 것처럼 보인다. 저 산을 바라 보았을 때 저 산은 항상 거기에 있는 것이다. 그러나 보기 이전과 이후는 다른 것이다.
 
청각은 생멸이 또렷하다. 그러나 시각은 또렷하지 않다. 그래서 좌선 할 때 눈을 감는다. 마음의 문 하나만 열어 놓는다. 그러면 온갖 소리가 들린다. 소리에 개입해서는 안된다. 단지 듣는 것으로 그쳐야 한다. 그러면 소리는 생겨났다가 사라진다. 생멸을 보는 것이다.
 
앉아 있다 보면 끊임없이 생각이 떠 오른다. 이런 것도 객관적으로 바라 보아야 한다. 사띠가 확립되어 있을 때는 번뇌망상은 힘을 쓰지 못한다. 생겨났다가 금방 사라진다. 문제는 일상에서 생멸을 보는 것이다.
 

 
거리를 걸어 가면서 생멸을 보고자 한다. 눈에 지나치는 것은 생멸하는 것이다. 눈으로 본 것은 사라진다. 이를 아는 마음도 사라진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아는 마음은 있어야 한다. 사띠가 확립되어 있다면 생멸하는 것이 잘 보일 것이다.
 
매사를 생멸로 보아야 한다. 관중석에 사람들로 가득하다가 경기가 끝났을 때처럼 텅 빈 것을 보듯이 보아야 한다. 저 산을 보면 그대로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지금 여기에서 순간순간 보았을 때 생멸을 볼 수 있다.
 
무엇보다 생각이다. 한생각이 일어났을 때 일어난 줄 아는 것이다. 그러면 생각에 끄달려 가지 않을 것이다. 짜장면 생각이 난다고 하여 중국집으로 달려가는 일은 없을 것이다.
 
홀로 있는 시간이 많다. 전에는 홀로 있는 시간이 두려웠다. 처음으로 사업을 시작했을 때 그랬다. 마치 감옥에 있는 것 같았다. 독방에 있는 것 같았다. 그러나 지금은 홀로 있는 것에 익숙해 있다.
 
밖에 나가 방황하는 일은 없다. 명상공간이 갖추어져 있기 때문에 틈만 나면 앉아 있으면 된다. 그런데 생멸은 반드시 앉아 있을 때만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걸어가면서도 볼 수 있다. 일상에서도 생멸을 볼 수 있는 것이다. 안팍으로 생멸에 사무치고자 한다.
 
 
2023-07-18
담마다사 이병욱
 

'수행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한시간 앉아 있었는데  (0) 2023.07.24
사무실에 경행대를 만들고  (0) 2023.07.20
명상공간용 매트를 구입하고  (0) 2023.07.14
마음이 황무지가 되었을 때  (1) 2023.07.13
한번 사띠가 확립되면  (1) 2023.07.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