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행기

통증은 손님과 같은 것, 재가안거 1일차

담마다사 이병욱 2023. 7. 31. 11:55

통증은 손님과 같은 것, 재가안거 1일차
 
 
지금은 국민휴가 기간이다. 8월이 시작되는 날부터 주말까지는 전체국민이 쉬는 날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공장지대가 그렇다.
 
국민휴가 기간에 일터에 나왔다. 달리 갈 곳이 없다. 일터가 있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아지트와도 같고 암자와도 같다. 더구나 평일에는 냉방까지 된다. 하루에 들어가는 비용을 생각한다면 놀릴 수 없다.
 
아침 일찍 나왔다. 아침 6시에 집에서 출발했으니 새벽같이 나온 것이다. 이렇게 일찍 나오는 것은 해야 할 일이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일을 하는 것은 아니다. 책을 읽는 것도 아니다. 좌선을 하기 위해서 일찍 나왔다.
 
어제 담마와나선원 안거 입재법회에 갔었다. 빤냐와로 대장로가 법문했다. 이 법회에서 결심한 것이 있다. 그것은 이번 안거에 참여하겠다는 것이다. 물론 글로서 선언했다. 후기를 작성한 글에서 선언한 것이다.
 
약속을 했으면 지켜야 한다. 하다못해 점심약속도 약속이다. 불특정다수의 사람들을 대상으로 선언한 것도 지켜야 한다. 오늘이 그 첫째 날이다.
 
테라와다불교에서 안거는 음력 6월 보름날 시작된다. 양력으로는 8월 2일이다. 그럼에도 오늘부터 약속을 지키기로 했다. 아침에 한시간동안 좌선하는 것이다. 그것도 시간을 정했다. 아침 7시 반부터 8시 반까지 하는 것이다.
 
아침에 너무 일찍 나왔다. 아침 여섯 시 대에 나오다 보니 오피스텔 미화원과 마주치게 되었다. 아마 나처럼 일찍 나온 사람도 없을 것이다.
 

 
시간이 남았다. 이 남는 시간에 무엇을 해야 할까? 화분을 하나 만들기로 했다. 준비는 되어 있다. 그동안 수경재배한 것을 화분으로 옮기는 것이다.
 
개운죽은 일년도 전에 사온 것 같다. 만안구청 안양로변에 있는 명학꽃집에서 사왔다. 이제 뿌리가 내렸으니 옮겨 심어도 되는 것이다.
 

 
개운죽은 그 동안 페트병에서 수경재배 했다. 물이 마르기 전에 주기적으로 갈아 주어야 했다. 그러나 흙만 못할 것이다. 꽃집에서 사온 흙과 마사토를 혼합하여 새로운 흙을 만들었다.
 

 
화분은 도자기로 된 것이다. 그래서일까 품격이 있어 보인다. 도자기 화분에 대나무를 심어 놓으니 식물도 품격이 있어 보인다. 이제 또 하나의 반려식물이 탄생했다.
 

 
화분작업은 8시에 마쳤다. 8시 20분부터 좌선에 들어가야 한다. 먼저 예비수행을 해야 한다. 짧게나마 행선을 했다. 사무실 한켠에 마련된 행선대를 이용했다.
 
행선에서 형성된 집중을 좌선으로 가져 갈 수 있다. 명상한다고 하여 방석에 곧바로 앉기 보다는 예비수행이 필요한 것이다. 또 하나 예비수행은 암송하는 것이다.
 
빠다나경을 암송했다. 암송하는 것 자체가 집중을 요하는 것이다. 암송으로 형성된 집중을 좌선으로 가져 가는 것이다.
 
좌선을 하기 위한 모든 준비는 끝났다. 이제 앉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그러나 집중이 되지 않는다. 왜 그런가? 컨디션이 좋지 않기 때문이다. 잠을 잘 못 잔 것이다.
 
새벽 1시대에 깨고, 새벽 4시대에 깼다. 새벽에 깨서 ‘위빳사나 수행방법론’을 보았다. 잠을 잘 자야 일을 잘 할 수 있다. 어떻게 해서든지 6시까지는 누워 있어야 한다. 그러나 수면의 질이 나쁠 때는 차라리 깨어 있는 것이 낫다. 아침이 되기만을 기다려 일터로 가야 한다. 일터에서 휴식을 취하는 것이 더 낫다.
 
컨디션이 엉망인 상태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좌선을 시작한지 5분도 안되어서 번뇌망상과 싸움이 시작되었다. 이럴 경우는 명상을 중단해야 한다. 뒤로 벌렁 누워 버렸다.
 
스마트폰 알람은 한시간으로 설정되어 있었다. 누워 있다 보니 끝나는 알람이 울렸다. 잠을 잘 못 잔 것이 잠시 누워 있음으로 인하여 해소 되었다. 여기서 말 수는 없다. 다시 자리를 잡고 앉았다.
 
알람을 다시 설정했다. 9시 27분에 좌선을 시작했다. 이전보다는 여건이 좋다. 잠시 쉼으로 인하여 몸과 마음이 개운해져 있는 상태가 된 것이다. 이제 앉아 있기만 하면 된다.
 
위빠사나 스승들이 하는 말이 있다. 늘 대상에 마음을 두라는 것이다. 좌선을 할 때는 배에 두는 것이다. 배의 부품과 꺼짐을 보는 것이다. 이는 호흡과 관련이 있다.
 
나는 왜 좌선을 하는가? 법의 성품을 보기 위한 것보다는 습관을 들이기 위한 목적이 크다. 좌선을 생활화 하기 위한 것이다. 점심 때가 되면 밥을 먹어야 하듯이, 아침에 한시간 앉아있기를 하는 것이다.
 
힘을 키워야 한다. 운동하는 사람들은 근력이 있다. 하루아침에 형성된 것이 아니다. 몇 년 동안 꾸준히 근력운동을 해서 만들어진 것이다. 마찬가지로 명상도 힘이 있어야 한다. 먼저 마음의 근육을 키우는 것이다.
 
처음부터 잘 할 수 없다. 처음부터 기대를 해서는 안된다. 먼저 조건을 만들어 놓아야 한다. 매일 한시간동안 앉아있기를 생활화한다면 마음의 근육을 키우는 것과 같다. 이렇게 몇 달 지났을 때 생활화가 될 것이다.
 
좌선 도중에 다리에 통증이 왔다. 평좌를 한 오른쪽 다리가 저려 오는 것이다. 왼쪽 다리는 한시간 앉아 있어도 전혀 저림이 없다. 그러나 오른쪽 다리는 앉아 있은지 이삼십분만 지나면 저려 온다.
 
좌선을 하면 할수록 저려 오는 시간은 늘어지는 것 같다. 이제 삼사십분대가 되는 것 같다. 몇 달 지나면 깨끗이 사라질지 모른다.
 
오른쪽 다리저림을 지켜 보았다. 가장 강력한 대상이 되었기 때문이다. 평좌를 한 다리가 묵직했다. 그리고 주기적으로 쿡쿡 찌르는 통증이 왔다. 처음에는 이런 통증에 겁을 먹었다. 그러나 횟수가 거듭될수록 두려움은 적어진다.
 
통증이 왔을 때 어떻게 해야 할까? 그저 바라 보는 수밖에 없다. 내가 개입할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저 관찰하는 것뿐이다. 통증이 사라지기만을 기다리는 것이다.
 
다리저림은 자연스런 현상이다. 오른쪽 다리 어디엔가에 통증을 유발하는 요인이 있을 것이다. 조건이 맞아 떨어졌을 때 나타나는 것이다. 이런 통증은 내가 만든 것이 아니다.
 
통증은 느낌에 대한 것이다. 통증을 관찰한다는 것은 느낌을 관찰한다는 말과 같다. 이는 다름아닌 느낌관찰, 즉 수념처이다.
 
통증을 객관적으로 관찰해야 한다. 통증은 내 것이 아니다. 통증은 내가 만들어낸 것이 아니다. 통증은 일어날만한 조건을 갖추었기 때문에 발현된 것이다. 이런 통증에 대하여 “이것은 내가 아니고, 이것은 나의 것이 아니고, 이것은 나의 자아가 아니다.”라며 마법의 주문을 암송했다.
 
위빠사나는 대상을 분리해서 관찰하는 것이다. 통증이 일어났을 때 나와 분리해서 관찰해야 한다. 마치 남의 다리 보듯이 관찰하는 것이다. 그래서 “통증은 내 것이 아니고, 통증은 내가 아니고, 통증은 나의 자아가 아니다.”라며 관찰하는 것이다.
 
다리저림이 점점 심해진다. 사라지기만을 바라지만 사라질 조짐은 보이지 않는다. 이전에는 겁 먹었으나 이제는 남의 다리 보듯이 관찰한다. 이것이 위빠사나이다. 통증으로 인하여 법의 성품을 관찰하는 것이다.
 
위빠사나 수행에서 통증은 선물 같은 것이다. 초보자가 호흡만 보아서는 법의 성품을 알기 힘들다. 초보자가 배의 부품과 꺼짐만을 보아서도 역시 법의 성품을 보기 힘들다. 통증이 왔을 때 법의 성품을 보기 쉽다.
 
손님이 오면 대접해야 한다. 손님을 쫓아 내 버리면 안된다. 통증은 손님과 같은 것이다. 더구나 법의 성품을 알 수 있게 하는 귀한 손님과 같은 것이다.
 
좌선 중에 통증이 오면 반가운 느낌이 든다. 손님이 찾아 온 것이다. 배의 부품과 꺼짐을 관찰하는 것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 강력한 것이다. 다리가 뻐근해질 때까지, 다리가 끊어질 듯 할 때까지 버틴다. 어쩌면 이런 통증을 즐기는 것인지도 모른다.
 
좌선한지 50분이 된 것 같다. 그대로 가야 할지 멈추어야 할지 결정해야 한다. 자세를 바꾸면 통증은 사라질 것이다. 계속 가면 불구가 될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아직도 느낌을 여전히 자신의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자세를 바꾸었다. 통증이 있는 오른쪽 다리를 안으로 넣었다. 자세를 바꾸자 통증은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통증에 겁 먹지 않아도 될 것 같다. 다음 번 좌선 때는 아파도 끝까지 가볼 생각이다.
 
알람이 울렸다. 한시간 좌선이 끝난 것이다. 10시 27분이 되었다. 아침 일찍 일터에 나와 오전을 보낸 것이다. 더구나 이렇게 후기를 쓰다 보니 현재 시각 11시 44분이 되었다.
 
일터에서 오전을 보냈다. 일부로 형광등은 켜지 않았다. 창으로 들어 오는 자연 채광에 의지하고 있다. 마치 고요한 산사와 같은 분위기에서 자판을 신나게 두드리고 있다.
 
오늘 화분을 하나 만들었다. 식물이름을 잊어 버려서 ‘모야모’에 물어 보니 개운죽이다. 새로운 반려식물이 생긴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보리수이다.
 

 
보리수가 이제 본격적으로 새잎이 나는 것 같다. 보리수를 가져 온지 29일만에 처음 새잎이 났는데, 이어서 계속 나고 있다. 보리수 잎을 보면 마음이 충만해진다. 좌선을 끝낸 것만큼이나 충만된 마음이다. 오늘 오전이 다 지나간다.
 
 
2023-07-31
담다마사 이병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