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흙속의연꽃

왜 “사두, 사두, 사두” 하지 않는가?

담마다사 이병욱 2023. 8. 1. 20:13

왜 “사두, 사두, 사두” 하지 않는가?
 
 
슬픔은 함께 할 수 있어도 기쁨은 함께 할 수 없다는 말이 있다. 자애의 마음(metta)을 내고 연민의 마음(karuna)을 낼 수 있지만 기쁨의 마음(mudita)은 내기 힘들다.
 
기쁨의 마음은 무엇인가? 타인의 성공과 번영을 진심으로 축하해주는 것이다. 그래서 “축하합니다.”라는 말을 한다. 그러나 대부분 무덤덤하다. 때로 시기하거나 질투한다.
 

 
매일 블로그에 글을 쓴다. 동시에 페이스북에도 올려 놓는다. 카톡방에 올려 놓을 때도 있고 밴드에 올려 놓을 때도 있다. 그러나 공감하는 사람들은 드물다. 공감 아이콘 “좋아요”나 “최고에요”를 누르기가 쉽지 않음을 말한다.
 
이주일전 페이스북에 친구정리를 하겠다고 선언했다. 공감하지 않는 사람은 정리대상이 될 것이라고 했다. 이는 페이스북 계정을 다시 만들 때 일일이 공감버튼을 눌러 줄 것을 페이스북 메신저로 보냈기 때문에 그것이 근거가 된다.
 
연민할 줄 아는 사람이 친구이다. 필요할 때 도움이 될 수 있는 사람이 친구이다. 사이버 공간에서 공감표현을 하지 않으면 알 수 없다. 친구로 등록 되어 있어도 한번도 공감해 주지 않는다면 친구라고 볼 수 있을까?
 
어떤 이가 댓글을 달았다. 농부는 땅을 탓하지 않는 법이라고 했다. 이 말의 의미는 무엇일까? 일단 부정적 의미로 받아 들였다. 이에 “유념하겠습니다.”라고 답글을 달았다.
 
목수는 연장 탓을 하지 않는다. 시원찮은 목수가 연장 탓을 할 것이다. 훌륭한 농부도 땅 탓을 하지 않을 것이다. 못난 자, 찌질 한 자가 남 탓 할 것이다. 그러고 보니 찌질한 자가 된 것 같았다.
 
페이스북에서 친구가 많으면 좋을 것이다. 그러나 페이스북 친구는 허수에 가깝다. 한번도 대면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어떤 사람인지 모른다. 오로지 올려진 콘텐츠로밖에 파악되지 않는다. 그나마 내용이 전무 하다면 그 사람을 알 방법이 없다.
 
페이스북에서 친구는 적으면 적을수록 좋을 수 있다. 공감할 수 있는 사람이면 친구 조건으로 충분하다. 그래서일까 어느 페친은 딱 50명으로 한정했다고 한다. 엄밀하게 조사하여 엄정하게 선정한 것이다.
 
페이스북에서 수많은 사람들의 글을 접한다. 공감 하는 것을 잊지 않는다. 특히 정성들여 쓴 글은 “사두, 사두, 사두”라고 해 준다. 이는 “훌륭합니다, 훌륭합니다, 훌륭합니다.”라는 뜻이다.
 
공감한다는 것은 무엇을 말할까? 당연히 친구 된 도리로서 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기쁨을 함께 하는 것이다. 상대방의 성공과 번영을 진심으로 축하하는 마음으로 공감 버튼을 누르는 것이다.
 
기쁨을 함께 하면 어떤 이점이 있을까? 그것은 다름아닌 공덕이다. 상대방의 성공에 대하여 “사두”라고 하면 상대방의 공덕이 내 것이 되는 것이다. 함께 기뻐함으로 인하여 쉽게 공덕 짓는 것이다.
 
매일 장문의 글을 쓴다. 주로 경전을 근거로 해서 쓴다. 사구게 하나라도 넣으려고 노력한다. 여러 시간 애써서 쓴 글을 인터넷에 공개한다. 다 가져가라는 것이다. 또한 공덕 회향도 된다.
 
인터넷에 글을 올리는 것은 공유하기 위한 것이다. 누군가 나의 글을 읽고 공감 했다면 그 사람 것이 된다. 내가 애써 작성한 것이 그 사람 것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공덕을 회향하면 줄어들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물질을 나누면 줄어든다. 그러나 정신적인 것은 아무리 나누어도 줄어 들지 않는다. 누군가 자신이 지은 공덕을 회향했을 때,  누군가 수희찬탄(隨喜讚嘆)한다면 그 공덕은 그 사람 것이 된다.
 
공덕은 아무리 나누어도 줄어들지 않는다. 오히려 들어난다. 정신적은 공덕은 나누면 나눌수록 커지는 것이다. 누군가 “사두”하거나, “좋아요” 라며 공감을 했다면 공덕 짓는 것이 된다.
 
글을 쓸 때는 혼신의 힘을 다해서 쓴다. 한번 쓴 글은 버리지 않는다. 나중에 책으로 엮어진다. 한번 쓴 글에 대해서는 무한책임을 진다. 날자와 함께 서명하는 이유가 된다.
 
올린 글에 공감 표현해 주는 사람들이 많다. 공감표현 하면 이름이 남는다. 매일 보다 보니 이제 이름이 익숙하다. 사진도 익숙하다.
 
오늘 이런 생각이 들었다. 공감해 주는 사람들에게 선물하는 것이다. 공감해 주는 사람들이야말로 사이버상에서 진정한 친구이다. 조만간 리스트를 만들어서 선물할 생각이다.
 
선물은 이전에도 했었다. 3년전에 백명 가량 되는 페이스북 친구들에게 이미우이 음악씨디를 선물했다. 지금은 그 때와 환경이 바뀌었다. 새로운 친구들이 많이 생겼다. 지속적으로 공감 표현 하는 사람들에게 선물하고자 한다.
 
슬픔을 함께 할 수 있어도 기쁨은 함께 하기 힘들다고 했다. 타인의 성공과 번영에 기쁨을 함께 할 수 있는 사람들이야말로 진정한 친구이다. 또한 수희찬탄하면 공덕은 자신의 것이 된다. 참으로 공덕 짓기 쉽다. 왜 “사두, 사두, 사두”하지 않는가?
 
 
2023—08-01
담마다사 이병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