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한때 저와 같던 때가
또 그 사람을 봤다. 이번에는 웃통 벗은 모습이다. 날씨가 더워서일 것이다. 그 사람은 비산사거리를 가로 질러 간다. 무단횡단한 것이다. 운전 중에 보았다.
더벅머리에 천막배낭을 메고 다니는 사람, 그 사람은 누구인가? 아직도 그 사람이 누구인지 모른다.
그 사람은 10년전부터 거리에서 포착되었다. 안양예술공원에서, 학의천 학운공원에서, 안양아트센터 앞에서 보았다. 수없이 목격 되었다. 가장 최근에는 이마트 비산점 앞에서 보았다.
몇주전 비산사거리 그 사람을 봤다. 신호등이 있는 건널목에 서 있었다. 그때 그 사람이 다가 왔다. 저쪽으로 건너기 위해 온 것이다.
그 사람을 피했다. 얼굴을 돌려서 못본체한 것이다. 지금도 후회 한다. 그때 왜 "안녕하세요?"라고 말하지 못했을까?
그 사람과 마주치면 말 걸겠다고 스스로 약속한 바 있다. 절호의 찬스가 왔었는데 그렇게 하지 못했다.
나는 왜 그사람을 피했을까? 아마 용기없음이 큰 이유일 것이다. 노숙자처럼 보이는 사람과 말을 한다는 것이 용기가 나지 않았다.
요즘 싫으면 손절하는 세상이다. 페이스북에서도 자꾸 귀찮게 하면 차단한다. 하물며 나에게 도움이 되지 않은 사람을 만날 이유가 있을까?
그 사람은 비산사거리를 무단 횡단했다. 차가 피해 준다.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그 사람에게는 가능한 것 같았다. 더구나 웃통도 벗었다. 천막배낭을 메고서 천천히 비산대교 방향으로 이동한다.
그 사람을 보면 남의 일 같지 않다. 나도 한때 저와 같은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시작을 알 수 없는 한량없는 윤회의 과정에서 나도 한때 저와 같은 사람일 때가 있었을 것이다.
그 사람은 나를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그 사람에게 돈을 주었기 때문이다. 안양로에서 그사람을 봤을 때 뒤 쫓아 갔다. 그리고 5만원권 두 장을 건넸다. 그렇게 해야만 할 것 같았다.
오늘 그 사람을 운전 중에 보았다. TV 특종 프로에나 나올 법한 모습이다. 소재에 목말라하는 프로에서는 좋은 먹이감이 될 수 있다.
그는 안양에 사는 것 같다. 안양 이곳저곳에서 본다. 아마 안양사람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봤을 것 같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말 걸지 않을 것이다. 기행하는 사람, 기인 정도로 알고 있을것이다.
나는 과연 그 사람과 말 할 수 있을까? 언젠가 마주칠 날 있을 것이다. 그때 꼭 "안녕하세요?"라며 인사하고자 한다. 나도 한때 저와 같던 때가 있었다.
2023-08-06
담마다사 이병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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