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행기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스캔 하는 방법, 재가안거 9일차

담마다사 이병욱 2023. 8. 8. 11:36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스캔 하는 방법, 재가안거 9일차
 
 
항상 일이 잘 되는 것은 아니다. 날씨가 변화무쌍하듯이, 사람 컨디션도 변화무쌍하다. 또한 마음 상태도 다르다. 대개 외부적 영향을 받는다. 명상을 할 때는 주변정리가 잘 되어야 한다. 주변정리가 잘 되지 않은 상태에서 명상에 임하면 실패하기 쉽다.
 
주변정리를 어떻게 잘 해야 할까? 마하시 사야도의 ‘위빳사나 수행방법론’ 2권 초입을 보면 위빳사나 준비수행이 있다. 가장 첫 번째로 나오는 글은 “바로 이번 생에 도와 과, 열반을 증득하고자 진실로 열심히 수행하려 는 이라면 수행하고자 결정한 기간 동안 (우선) 걱정거리(palibodha)를 전부 없애야 한다.”(60쪽)라는 내용이다.
 
걱정거리는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걱정거리를 뜻하는 빨리보다(palibodha)는 빠알리사전에 따르면 ‘장애’라는 뜻이다. 열 가지 장애를 말한다. 청정도론에 따르면 “처소, 가정, 이득, 대중, 공사, 여행, 친지, 질병, 독서, 신통”(Vism.3.29)이 이에 해당된다.
 
명상을 방해하는 열 가지 장애는 대부분 현실적 삶과 관계가 있다. 생계를 유지하는 생활을 하고 있다면 명상에 장애가 되는 것이다. 현실적 문제를 안고서 명상에 임할 수 없을 것이다.
 
명상을 방해하는 열 가지 장애 중에는 독서도 있다. 우리나라 유명선사들이 한결같이 “책 보지 말라!”라고 하는데 5세기 스리랑카에서 붓다고사 당시에도 마찬가지였던 것 같다.
 
독서가 왜 명상에 장애가 되는 것일까? 청정도론에서는 “ ‘독서’란 성전구절의 연찬이다. 그것은 외우는 것 등으로 항상 바쁜 자에게는 장애가 된다.”(Vism.3.51)라고 했다.
 
경전을 외우는 교학승과 수행을 하는 수행승이 있다. 누가 더 빠르게 도와 과를 성취할까? 당연히 수행승이 더 빠르게 도와 과를 성취한다. 더구나 도와 과를 성취하면 경전에 있는 내용을 모두 이해하게 된다. 별도로 외우지 않아도 실참 수행으로 알 수 있음을 말한다.
 
명상을 할 때 걱정거리나 장애는 해결 해 놓아야 한다. 누군가를 비난해서 마음에 부담이 있다면 털고 가야 한다. 그것으로 인하여 마음이 걸렸을 때 명상에 방해가 될 것이다. 잘못을 범했을 때 당사자에게 찾아가서“용서해 주십시오.”라며 말하는 것이다.
 
명상을 방해하는 열 가지 중에 독서가 있다. 이는 오늘날로 말하면 스마트폰도 해당될 것이다. 길을 걸을 때도 스마트폰을 보고 밥 먹을 때도 스마트폰을 본다. 이런 행위는 명상에 장애요소로 작용된다.
 
오늘 아침 좌선이 잘 되지 않았다. 무려 세 번이나 자세를 바꾸었다. 그럼에도 스스로 약속한 한시간을 채웠다. 왜 이렇게 잘 하지 못했을까? 그것은 스마트폰 떄문이다. 스마트폰을 열어 보는 순간 격정에 휩싸이게 된다.
 
일은 벌어졌다. 그럼에도 한시간 좌선을 해야 한다. 마음을 돌려야 한다. 행선으로 돌리고자 했다.
 
행선대에는 모두 14개의 검정 테이프가 붙여져 있다. 30센티 간격으로 14보에 해당된다. 발을 떼어서, 들고, 밀고, 내리고, 딛고, 누르는 육단계 행선을 하면 약 40초가량 걸린다.
 

 
행선은 반드시 걷는 것만 말하는 것은 아니다. 방향전환할 때 멈추어야 한다. 이때 급하게 돌면 안된다. 잠시 멈추어서 서 있어야 한다. 가만 서 있는 것이 아니다. 가만 서 있으면 망념이 치고 들어 올 것이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서일까 ‘머리 끝에서부터 발 끝까지 느낌을 스캔하라’라고 위빠사나 스승들은 말한다.
 
스캔을 어떻게 해야 할까? 나름대로 방법을 발견했다. 정수리, 이마, 눈, 코, 입술, 목, 가슴, 윗배, 배꼽, 아랫배, 엉덩이, 허벅지, 장딴지, 발목, 발바닥 순으로 진행해야 한다.
 
눈, 코, 입은 알아차리기가 쉽다. 왜 그런가? 눈은 껌벅거리면 알 수 있다. 코는 벌렁거리면 알 수 있다. 입은 다문 두 입술의 감촉으로 알 수 있다. 알기 힘든 것은 정수리, 목, 가슴이다. 개념으로 알 수밖에 없다.
 
윗배에 이르면 호흡으로 인한 느낌을 알 수 있다. 윗배에서부터 꿀룩꿀룩 하며 아래로 향한다. 윗배와 아랫배를 여러 단계로 분절하여 새긴다. 이 여세를 몰아서 엉덩이로 가져 가고 허벅지로 가져 간다.
 
허벅지는 길기 때문에 여러 단계로 분절로 새긴다. 느낌이 무릎까지 왔다. 확실하게 느낌을 알려면 무릎에 힘을 주어 보면 알 수 있다.
 
배의 호흡에서 시작된 느낌을 꿀룩꿀룩 분절하여 계속 아래로 내려 왔다. 장딴지까지 내려 왔다. 장딴지도 길기 때문에 잘게 쪼개어 새긴다. 마침내 발목까지 내려 왔다. 그리고 발바닥에 이르렀다.
 
행선 하다 서 있을 때 머리끝에서부터 발끝까지 잘게잘게 나누어서 새긴다. 이렇게 단계적으로 분절하여 새기다 보면 40초가량 걸린다. 이를 세 번 하면 너무 길다. 스캔은 한번으로 제한 했다.
 
서 있을 때 스캔하면 집중이 된다. 눈, 코, 입 등을 새길 때 집중이 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새기는 도중에는 잡념이 일어날 수 없다. 이제 방향 전환을 해야 한다.
 
방향전환을 할 때도 새겨야 한다. 어떻게 새기는가? 의도를 새기는 것이다. 의도가 있어야 발이 움직이기 때문이다. 몸은 의도가 없다면 나무토막과도 같다.
 
의도는 행선할 때만 볼 수 있다. 좌선할 때는 의도를 볼 수 없다. 좌선은 가만 앉아서 지켜 보기만 하는 것이기 때문에 움직임이 없는 것이다. 그러나 행선은 계속 움직인다.
 
움직인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그것은 의도가 개입되어 있음을 말한다. 방향을 전환하는 것도 의도이고, 발을 드는 것도 의도이고, 발을 미는 것도 의도이고, 발을 딛는 것도 의도이다. 어느 것 하나 의도 아닌 것이 없다.
 
의도를 알아차리기가 쉽지 않다. 육단계 행선에서 의도는 항상 앞에 있다. 그러나 의도와 움직임을 따라갈 수 없다. 그래서 육단계 행선 전에 한번 알아차림한다. 이런 의도도 알아차림 하기 힘들다. 이럴 때는 의도만 별도로 알아차림 하는 행선을 해야 한다.
 
행선을 하다 보면 어느 정도 집중이 된다. 그러나 의도를 알아차림하지 않고 육단계 동작만 알아차림한다면 반쪽에 지나지 않는다. 발을 옮기기 전에 의도를 새기고, 옮길 때 새긴다면 잘 알아차림하는 것이다.
 
행선은 쉽지 않다. 단지 걷는 것, 몸푸는 정도로 생각하면 경행이 된다. 경행이 행선이 되고자 한다면 의도부터 동작 하나하나를 면밀하게 새겨야 한다. 하루이틀에 되지 않는다. 오늘 되지 않으면 내일 하면 된다. 평생 해야 할 것이다.
 
오늘 좌선은 만족스럽지 않았다. 스마트폰을 본 것이 큰 잘못이다. 주변정리가 잘 되지 않은 것이다. 독서하지 말라는 말이 이해가 된다. 말도 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그래서 선원에서는 묵언하라고 했을 것이다.
 
좌선 중에 배의 부품과 꺼짐을 관찰했다. 처음에는 잘 잡히지 않아 배에 손을 얹듯이 지켜 보았다. 현상을 보았을 때 낚아 채듯 유지하고자 했다. 부품과 꺼짐 사이에 닿음도 보았다. 그래서 ‘부품-닿음-꺼짐-닿음’ 순으로 리드미컬하게 진행했다. 어제는 엑스(X)자형으로 했는데 오늘은 십일자(11)형으로 한 것이다. 할 때마다 방법이 바뀐다.
 
명상을 어떻게 해야 잘 하는 것일까? 사람들은 명상할 때 어떻게 하는 것일까? 멍때리기 하는 것도 명상이라고 말한다. 마음은 늘 대상에 가 있기 때문에 멍때리기해도 멍한 상태는 아닐 것이다.
 
위빠사나 명상을 하고 있다. 이는 다름아닌 관찰수행이다. 대상과 붙여서 일치하는 것이 아니라 대상에 어느 정도 떨어져 있어서 관찰하는 것이다. 가장 쉬운 대상은 배의 움직임을 보는 것이다.
 
배의 움직임은 부품과 꺼짐으로 나타난다. 이를 새겨야 한다. 새기지 않으면 잡념이 일어난다. 그래서 “마음을 호흡이라는 기둥에 사띠라는 밧줄로 묶어라!”라는 말이 있다. 이렇게 마음을 부품과 꺼짐을 새기다 보면 잡념이 일어나지 않는다. 그러나 집중이 약하면 잡념이 들어와서 집을 짓는다.
 
세상에는 여러가지 명상이 있다. 위빠사나 명상은 열반에 이르기 위한 명상이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물질적 현상과 정신적 현상을 관찰해야 한다. 어떻게 관찰하는가? 분절분절 끊어지듯이 관찰해야 한다.
 
서 있을 때 머리 끝에서부터 발끝까지 스캔한다. 스캔을 잘하는 방법은 분절분절 끊어지듯이 내려 가는 것이다. 이때 몸의 감촉을 느껴야 한다. 눈은 눈을 껌벅거려 보는 것이고, 코는 벌렁거려 보는 것이고, 입은 입술의 축축한 감촉을 느껴보는 것이다. 이런 것 없이 스캔하면 개념적으로 스캔하는 것이 된다.
 
위빠사나 명상은 실제 또는 실재를 보기 위한 것이다. 위빠사나 명상은 관념 또는 개념을 보기 위한 것이 아니다. 개념이나 관념을 본다면 사마타명상이 된다. 대상과 딱 붙어 있는 것이다. 그러나 위빠사나 명상은 움직이는 것이 대상이 된다. 호흡도 움직이는 것이고, 통증도 움직이는 것이다. 움직이는 것을 따라가며 그때그때 관찰하는 것이다.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지 말고
미래를 바라지도 말라.
과거는 이미 버려졌고
또한 미래는 아직 오지 않았다.
 
그리고 현재 일어나는 상태를
그때그때 잘 관찰하라.
정복되지 않고 흔들림 없이
그것을 알고 수행하라.”(M131)
 
 
위빠사나 명상은 그때그때 현상을 관찰하는 것이다. 현상을 관찰해서 얻는 이익은 무엇인가? 그것은 집착하지 않는 것이다. 왜 집착하지 않는가? 내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단지 물질적 현상과 정신적 현상일 뿐이다.
 
부품과 꺼짐은 내가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다. 나의 의지와 관련 없이 몸에서 일어나는 대사 작용에 지나지 않는다. 좌선 중에 나는 지켜 보는 것 외에 아무것도 할 것이 없다. 이런 호흡을 나의 것이라고 할 수 있을까? 좌선 중에 통증 역시 나의 의지와 무관한 것이다. 이런 통증을 나의 것이라고 할 수 있을까?
 
 
명상을 어떻게 해야 잘 할 수 있을까? 이는 “수행하려는 기간 동안 자신을 부처님께 헌신하고 자신의 몸과 목숨을 맡기는 것이 좋다. ‘아끼지 말고 훈계해 주십시오’라고 스승님께 헌신하고 자신을 맡기는 것이 좋다.”(위빳사나 수행방법론 2권, 61쪽)”라는 가르침으로 알 수 있다. 부처님과 스승에게 자신을 맡기는 것이다.
 
수행은 멋으로 놀이로 하는 것이 아니다. 법을 증득하기 위해서 하는 것이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스승이 있어야 한다. 스승이 없을 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 경전이 스승이 될 수 있다. 또한 논서가 스승이 될 수 있다.
 
안거에 들어간지 9일이 되었다. 빤냐와로 대장로의 안거법문에 자극받아 안거를 시작하게 되었다. 이른바 재가안거이다. 그렇다고 멀리 떨어져 있는 사람에게 지도를 받을 수 없다. 이럴 때는 경전과 논서가 스승이 된다. 나에게는 위빳사나 수행방법론이 스승이다.
 
위빳사나 수행방법론을 읽어 보면 환희롭다. 명상을 하기에 충분한 동력을 제공한다. 이는 “‘물질·정신 무더기라는 모든 고통이 잠재워진 곳인 열반은 매우 거룩 하다’, ‘그 열반을 증득하여 알고 보아 번뇌들을 제거할 수 있는 도라는 법도 매우 거룩하다’, ‘그 도와 열반이라는 특별한 법을 이 위빳사나 수행에 의해 확실히 얻을 수 있을 것이다’라고 마음을 기울여야 한다.” (위빳사나 수행방법론 2권, 61쪽)라는 말로 알 수 있다. 도와 과, 그리고 열반을 이루기 위한 명상이 되어야 함을 말한다.
 
논서에서는 예비수행 네 가지를 소개하고 있다. 좌선이나 행선에 임하기 전에 네 가지 사마타 수행을 하는 것이다. 어떤 것인가? 다음과 같은 내용이다.
 

“‘
부처님과 아라한 등의 거룩한 성자들께서 항상 가셨던 길인 이 위빳사나 수행을 노력해야 한다’라고 숙고하며 마음을 격려해야 한다. 그 다음에 부처님의 공덕들을 아는 만큼 마음에 떠올리며 예경해야 한다. 정사를 지키는 천신들로부터 시작해서 모든 중생들에게 ‘건강하기를, 행복하기를’이라고 하며 자애를 보내야 한다. (몸에 대한) 더러움이나 죽음에 대해서도 가능하면 잠깐 동안이라도 마음에 떠올려 숙고해야 한다. 그리고 나서 결가부좌나 다른 어떤 자세를 취하고 앉아서 아래에 설 명한 대로 수행하라. 두 다리가 서로 누르게 하지 말고 편안하게 앉으면 더욱 좋을 것이다.”(위빳사나 수행방법론 2권, 61쪽)
 
 
네 가지 예비수행은 불수념, 자애관, 부정관, 사수념에 대한 것이다. 항상 부처님 공덕을 생각해야 하고, 모든 존재들에게 자애의 마음을 내야 하고, 이 몸은 더러운 것으로 가득 차 있다고 여기고, 오늘 죽을지도 모른다는 마음 각오로 명상에 임해야 한다. 나는 그렇게 하고 있는가?
 
 
2023-08-08
담마다사 이병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