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행기

자세를 바꿀 때도 새겨야, 재가안거 12일차

담마다사 이병욱 2023. 8. 11. 11:15

자세를 바꿀 때도 새겨야, 재가안거 12일차

 

 

삐리릭, 삐리릭알람이 울린다. 듣던 중 반가운 소리이다. 다리를 풀어도 된다. 마치 고행하는 자처럼 앉아 있었는데 이제 해방이다.

 

재가안거 12일차이다. 이렇게 오래 좌선해 본 적이 없다. 그날 이후, 즉 테라와다 안거 입재법회 이후 하루도 빠지지 않고 한시간씩 앉아 왔다. 내일도 모래도 앉을 것이다. 마칠 때까지는 90회 이상이 될 것 같다.

 

법구경 천의 품에 이런 말이 있다. “전쟁에서 백만이나 되는 대군을 이기는 것보다 하나의 자신을 이기는 것이야말로 참으로 전쟁의 승리자이다.”(Dhp.103)라는 말이다. 매일 한시간 좌선하는 것이야말로 자신과의 싸움이다.

 

좌선해서 무엇인가 얻겠다는 마음은 없다. 다만 습관 들이려 할 뿐이다. 매일 앉는 습관을 말한다. 매일 점심 때가 되면 밥을 먹듯이, 매일 아침이 되면 한시간씩 앉아 있고자 하는 것이다. 좌선을 생활화하기 위한 것이다. 좌선이 일상이 되기 위한 것이다.

 

오늘 좌선은 무척 힘들었다. 한시간 버텨내기가 벌 받는 것처럼 느껴졌다. 졸립기도 하고 무엇보다 힘이 부족했다. 암송을 하다가 힘이 들어서 도중에 그만 둘 정도였다.

 

기운이 부족할 때는 집중이 잘 되지 않는다. 집중이 되지 않으면 망상만 일어난다. 망상이 일어나 집을 지으면 피곤하기 그지 없다. 일각에도 만리장성을 쌓는다는 말이 있는데 그 짧은 순간에 엄청나게 큰 사념의 집을 짓는 것이다.

 

좌선 중에는 호흡을 보아야 한다. 마하시센터에서는 배의 움직임을 보라고 한다. 호흡을 보는 것과 똑 같은 효과이기 때문이다. 호흡보다 배의 부품과 꺼짐을 보는 데는 이점이 있을 것이다.

 

마하시에서는 왜 배의 부품과 꺼짐을 보라고 했을까? 어떤 이는 이에 대하여 수승화강으로 설명한다. 차가운 기운은 올라가게 하고 뜨거운 기운을 내려가게 하는 것을 말한다. 코의 호흡에 집중하면 상기병에 걸릴 수도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배의 움직임에 집중하면 그럴 염려는 없다고 말한다.

 

배의 부품과 꺼짐을 보는 것은 부처님 가르침과 맞는 것일까? 경전에 직접적으로 표현된 것은 없다. 그러나 마하시 사야도의 위빳사나 수행방법론 각주에 따르면 여러가지 경전적 근거가 있다.

 

배의 부품과 꺼짐을 새기는 데는 방법이 있다. 이는 부풀 때마다 꺼질 때마다 그 생겨나는 순간과 잘 일치하도록부푼다. 꺼진다, 부푼다, 꺼진다하며 끊임없이 새겨라.”(위빳사나 수행방법론 2, 63)라고 한 것으로 알 수 있다. 미얀마에서는 동사형으로 명칭붙여 말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 명칭에 대하여 마음으로만 새겨야한다. 소리를 낼 필요는 없다.”라고 했다.

 

좌선할 때 복부를 관찰한다. 처음에는 복부의 움직임이 잘 잡히지 않는다. 이럴 때는 손을 배에 대 보라고 한다. 손에서 부품과 꺼짐이 느낄 것이다. 확실이 부품과 꺼짐이 있는 것이다.

 

마음을 배의 부품과 꺼짐에 가져 가야 한다. 마음은 늘 대상에 가 있고자 하는 속성이 있기 때문이다. 마음을 눈으로 가져간다면 눈의 촉촉함을 느낄 것이다. 마음을 입으로 가져 간다면 입술의 촉촉함을 느낄 것이다. 마찬가지로 마음을 배로 가져간다면 부품과 꺼짐을 느낄 것이다.

 

배의 움직임을 관찰할 때 입으로 부품, 꺼짐하며 소리내지 말라고 했다. 마음으로만 새기라고 했다. 더구나 부품과 꺼짐을 분명하게 하기 위해서 일부러 호흡을 거칠게 해서도 안 된다. 호흡을 일부러 느리게 하거나 빠르게 바꾸어서도 안 된다.” (위빳사나 수행방법론 2, 64)라고 했다. 호흡을 인위적으로 하지 말라는 것이다.

 

호흡을 인위적으로 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이는 일부러 호흡을 바꾸면 머지 않아 피곤해져서 잘 새길 수 없게 된다.”라고 했다. 인위적 호흡을 하면 피곤하다는 것이다.

 

인위적 호흡은 한계가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호흡을 잘 할 수 있을까? 이에 대하여 마하시사야도는 그러므로 평상시 호흡하던 그대로 자연스럽게 숨을 쉬면서 대상과 잘 일치하도록 새겨 보라.”라고 했다.

 

호흡은 자연스럽게 하는 것이다. 호흡을 보기 힘들면 가만 내버려 두면 된다. 조금만 지나면 호흡이 올라 오는 것이 보인다. 이때 호흡을 잡는다. 마치 먹잇감을 놓치지 않는 것과 같다.

 

종종 동물의 왕국을 본다. 세렝게티 평원에서 치타는 폭발적 스피드로 먹이를 낚아 챈다. 강력한 이빨에는 먹이가 물려 있다. 한번 물으면 놓지 어떤 일이 있어도 놓지 않는다. 숨통이 끊어질 때까지 물고 있는 것이다.

 

좌선 중에 망상이 일어나면 어떻게 해야 할까? 마하시사야도는 친절하게도 방법을 알려 주었다. 이는 그 여러 가지 생각들을 그 현상 그대로 따라 새기 기만 하라.”라는 말로 알 수 있다.

 

좌선하다 보면 여러 가지 생각이 일어난다. 새김이 약하면 생각이 꼬리를 물어 집을 짓게 된다. 그러나 그 즉시 알아차리면 그것으로 끝난다. 그래서 그 현상 그대로 따라 새기 기만 하라.”라고 말한 것이다.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어떻게 새겨야 할까? 이에 대하여 마하시사야도는 다음과 같이 써 놓았다.

 

 

생각하면생각함하며 새겨라. 망상하면망상함하며 새겨라. 상상하면상상함하며 새겨라. 숙고하면숙고함하며 새겨라. 마음이 밖으로 달아나면달아남하며 새겨라. 어느 곳으로 마음이 도착하면도착함하며 새겨라. 생각 속에서 누군가와 만나면만난다하며 새겨라. 생각속에서 무언가를 보면본다. 본다하며 새겨라. 그 보이는 것이 없어질 때까지 거듭해서 새겨라. 생각 속에서 누군가와 말을 하고 있으면말한다하며 새겨라. 이렇게 새긴 후에 (다시) ‘부푼다. 꺼진다하며 원래 새기던 대상으로 돌아와 끊임없이 새겨라.” (위빳사나 수행방법론 2, 64-65)

 

 

 

지극히 당연한 이야기를 써 놓은 것 같다. 누구나 아는 이야기를 말하는 것 같다. 그러나 실천하기는 쉽지 않다. 마치 착하게 살아라!”라는 말을 실천하기가 어려운 밀과 같다.

 

망상이 일어났을 때 망상이라고 알면 망상이 사라진다. 알아차리면 사라지는 것이다. 알아차리지 못하면 집을 지을 것이다. 그런데 생각의 힘이 강력하면 한번으로 제압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럴 때는 없어질 때까지 거듭해서 새겨라.”라고 했다.

 

망상이 망상인줄 알고 새기면 망상이 사라진다. 그 다음에 해야 할 일은 본래 하던 일로 복귀하는 것이다. 그것은 다름아닌 배의 부품과 꺼짐을 관찰하는 것이다. 그래서 “‘부푼다. 꺼진다하며 원래 새기던 대상으로 돌아와 끊임없이 새겨라.”라고 했다.

 

좌선에 있어서 호흡은 어떤 것일까? 이는 베이스캠프와도 같은 것이다. 히말라야와 같은 고산을 등반할 때 메인캠프와도 같은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호흡은 또한 과 같은 것이다.

 

멀리 길을 떠난 나그네가 있다. 나그네가 마음 놓고 여행할 수 있는 것은 돌아갈 집이 있기 때문이다. 돌아갈 집이 없다면 어떻게 될까? 정처없이 떠도는 방랑자가 될 것이다. 마찬가지로 호흡은 베이스캠프와도 같고 집과도 같은 것이다.

 

좌선 중에는 항상 호흡에 마음이 가 있어야 한다. 마하시방법에서는 배의 부품과 꺼짐에 가 있는 것이다. 마치 전투를 치룬 군인이 원대복귀하는 것과 같다. 망상과 싸운 수행자는 호흡이라는 본래 새김의 대상으로 돌아와야 한다.

 

초보수행자는 좌선하는 것이 마치 고행하는 것과 같다. 몸에 익숙하지 않기 때문이다. 자주 방석에 앉아 있다 보면 마치 의자에 앉아 있는 것과 같을 것이다. 몸이 적응하기 전까지 앉아 있는 수밖에 없다. 이에 대하여 몸만들기라고 이름 붙여 보았다.

 

지금은 몸만들기 단계이다. 안거가 끝날 때쯤 되면 어느 정도 몸이 만들어질지 모른다. 그러나 앉아 있기가 쉽지 않다. 그날그날 컨디션에 따라 다르다. 또한 결의한 마음가짐에 따라 따르다.

 

오래 앉아 있다 보면 통증이 엄습한다. 이럴 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 이에 대하여 몸의 어느 부분에 뻐근함이 매우 분명하게 느껴지면 그 뻐근함에만 집중해서뻐근함, 뻐근함하며 너무 느리지도 않고 너무 빠르지도 않게, 잘 구분하며 자연스럽게 끊임없이 새겨라.”(위빳사나 수행방법론 2, 65)

라고 했다.

 

평좌했을 때 주로 오른쪽 다리에서 마비가 발생된다. 조금 지나면 묵직해진다. 피가 통하지 않는다. 이럴 때 자세를 바꿀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는 어쩌면 선물과도 같다. 분명한 대상이 나타났기 때문이다.

 

위빠사나 수행은 대상을 관찰하는 수행이다. 대상을 새기는 수행이다. 대상에 딱 붙어 버리면 사마타가 되어 버린다. 호흡이라는 개념에 붙어 버리면 사마타가 될 것이다.

 

위빠사는 개념을 보는 것이 아니라 실재를 보는 수행이다. 지금 여기에서 경험되는 느낌을 관찰하는 것이다. 배의 부품과 꺼짐은 실제로 일어나는 현상에 대한 것이다. 통증은 말할 것도 없다.

 

통증은 손님과도 같다. 손님이 왔으면 맞이 해야 한다. 불청객이라면 모를까 아는 손님이 왔으면 안으로 모셔야 할 것이다. 통증은 손님과 같아서 반가이 맞이 해야 한다.

 

통증처럼 강력한 대상이 없다. 제아무리 배의 부품과 꺼짐이 크다고 하더라도 통증과 비할 바가 아니다. 손님과 같은 통증에 대하여 뻐근함, 뻐근함하며 새기라고 했다.

 

어떤 위빠사나 수행지침서에서 본 것이 있다. 좌선을 하다 보면 어느 순간엔가 호흡이 사라질 때가 있다고 한다. 이럴 때 대상이 사라지는 것과 같다. 베이스캠프가 사라지는 것과 같고 집이 사라지는 것과 같다. 이럴 때 통증이라도 있었으면!”이라고 바란다는 것이다.

 

통증은 강력한 새김의 대상이 된다. 마치 고요한 바다에서 폭풍우가 몰아 닥치는 것과 같다. 폭풍우가 몰려 올 때 선장과 선원들은 바삐 움직인다. 배에 활력이 생기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통증이 찾아 왔을 때 생기가 도는 것 같다.

 

배의 부품과 꺼짐을 놓치면 망상이 치고 들어 온다. 이럴 때 다리저림이 시작되어 통증이 시작되면 강력한 새김이 대상이 생겨나는 것과 같다. 배의 부품과 꺼짐과 비교하면 메가톤급의 대상이다.

 

통증과 같은 강력한 새김의 대상이 발생되었을 때 몸과 마음이 긴장된다. 마치 잔잔한 바다에서 폭풍우가 휘몰아 치는 것과 같다. 느슨한 마음이 긴장된다. 마음은 온통 통증의 대상에 가 있다.

 

통증은 손님과 같은 것이다. 나태한 마음에 활력을 불어 넣는 것과 같다. 이럴 때는 통증관찰하는 것을 즐겨야 한다. 그러나 시간이 가면 갈수록 견디기 힘들어진다.

 

통증이 참을 수 없을 정도가 되었을 때 어떻게 해야 할까? 이에 대하여 마하시사야도는 참을 수 없어서 자세를 바꾸고 싶으면 그 마음을 바꾸려 함'하며 새기고, 자세를 바꾸는 여러 가지 동작들도 그대로 명칭 붙이면서 계속해서 새겨라.”(위빳사나 수행방법론 2, 65)라고 했다.

 

좌선 중에 자세를 바꿀 수 있다. 한시간 좌선은 긴 시간이다. 우리나라 선방에서는 50분 좌선하고 10분 몸 푸는 것으로 알고 있다. 외국인 수행자들의 관음선종에서는 40분 좌선하고 몸을 푸는 것을 보았다. 이에 비하여 마하시방식의 한시간 좌선은 매우 긴 시간이다.

 

한시간 좌선은 긴 시간이다. 초보수행자는 앉는 것이 익숙하지 않아서 20-30분만 지나면 다리가 마비된다. 이럴 때 참고 종이 울릴 때까지 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위빠사나 스승의 말에 따르면 참을 수 없을 정도가 되었을 때는 자세를 바꾸어도 좋다고 했다.

 

오늘 좌선 중에 다리가 마비되어서 자세를 바꾸었다. 그것도 세 번이나 바꾸었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 보니 아무 생각 없이 바꾸었다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는 위빠사나 수행한다고 말할 수 없다.

 

좌선 중에 자세는 얼마든지 바꿀 수 있다. 자세를 바꿀 때도 새겨야 한다. 그것도 명칭을 붙여서 새기라고 했다. 그래서 구체적으로 다음과 같이 새기라고 했다.

 

 

발이나 다리를 올리려 하면 올리려 함하며 새겨라. 올릴 때는 올리는 동작에 따라서 계속해서 움직일 때마다올린다. 올린다하며 새겨라. 펼 때는편다. 편다하며 새겨 라. 굽힐 때는굽힌다. 굽힌다하며 새겨라. 내릴 때는내린다. 내린다하며 새겨라. 급하게 하지 말라. 천천히 바꾸어라. 어느 곳에 닿으면닿음하며 새겨라.”(위빳사나 수행방법론 2, 66)

 

 

나는 위와 같은 방식으로 새겼는가? 그렇게 하지 않았다. 다리가 마비되어 피가 돌지 않아서 자세를 바꾸는 데에만 급급했다. 자세를 바꿀 때 새겨야 한다는 것은 꿈에도 생각해 보지 않았다.

 

오늘 좌선은 앉아 있는 데 급급했다. 한시간 억지로 채우는 것을 목적으로 두었다. 배의 부품과 꺼짐에 대한 새김도 불분명했다. 새김의 끈이 느슨하다 보니 갖가지 생각이 올라 와서 망상속에 있는 때가 많았다. 무엇보다 자세를 바꿀 때 아무 생각 없이 바꾸었다는 것이다.

 

좌선이 끝나면 후기를 작성한다. 후기 작성하는 시간이 행선과 좌선하는 시간 보다 더 많이 걸린다. 이렇게 수행기를 작성하고 나면 오전이 다 지나가 버린다.

 

오늘 후기를 작성하면서 마하시사야도의 위빳사나 수행방법론을 참조했다. 놀랍게도 자세 바꾸는 방법이 있었다. 자세를 바꿀 때도 색김을 유지해애 함을 말한다. 이 대목에 이르자 부끄럽고 창피한 생각이 들었다. 이제까지 아무 생각 없이 자세를 바꾸었기 때문이다.

 

위빠사나 초보수행자이다. 고수가 보았을 때 가소로울지 모른다. 도와주고 싶은 마음도 들 것이다. 그러나 그런 사람은 많지 않은 것 같다. 코치 해 주려 하는 것이 마음의 상처가 될 것을 염려해서 자제하는 것인지 모른다.

 

위빠사나를 접한지 10년이 넘었다. 그러나 여전히 초보단계에 머문다. 세월은 가고 나이는 들어간다. 조금이라도 건강할 때, 한살이라도 젊을 때 해 놓고자 한다. 이런 생각이 들자 마음이 다급해진다.

 

오늘 중요한 것을 하나 깨우쳤다. 그것은 자세를 바꿀 때 알아차리는 것이다. 이제까지는 아무 생각 없이 바꾸었다. 위빠사나 수행방법론을 읽고서 크게 잘못된 것이라는 것을 알았다. 마하시사야도의 위빠사나 수행방법론은 나의 스승이다.

 

 

2023-08-11

담마다사 이병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