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행기

오늘 좌선만 같아라, 재가안거 14일차

담마다사 이병욱 2023. 8. 13. 11:26

오늘 좌선만 같아라, 재가안거 14일차
 
 
오늘은 재가안거 14일차이다. 두 번째 맞는 일요일이다. 일요일이라 하여 안거는 쉬지 않는다. 선방에서 일요일이라 하여 참선을 쉬지 않는 것과 같다.
 
오늘 오전 9시 2분에 좌선에 들어 갔다. 좌선에 들어가기 전에 예비수행을 했다. 행선은 하지 않았다. 그 대신 빠다나경을 암송했다.
 
경을 암송하면 어느 정도 집중이 된다. 외운 것을 기억해내는 것 자체가 집중을요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뜻을 새기며 암송해야 한다. 뜻도 모른 채 암송한다면 공덕이 적을 것이라고 한다.
 
빠다나경은 부처님 성도과정에 대한 것이다. 악마와의 싸움에서 승리한 것을 노래한 게송이다. 빠다나경 25게송 중에서 마지막 게송을 보면 “따또 둠마노 약코 따떼반따라다야타티”라는 구절이 있다. 이 말은 “그만 그 야차는 낙심하여 그 자리에서 사라지고 말았다.”(Stn.451)라는 내용이다.
 
보살은 7년 전쟁에서 이겼다. 7년동안 추적한 악마 나무찌(namuci)를 물리친 것이다. 그런 악마는 어떤 존재인가?
 
부처님이 물리친 악마는 세상사람들이 생각하는 그런 악마가 아니다. 마음의 오염원이 악마인 것이다. 이는 빠다나경 12번과 13번 게송에서 극명하게 드러난다.
 
빠다나경 12번 게송은 “그대의 첫 번째 군대는 욕망, 두 번째 군대는 혐오라 불리고, 그대의 세 번째 군대는 기갈, 네 번째 군대는 갈애라 불린다.”(Stn.438)라고 되어 있다. 악마의 군대는 까마(감각적 쾌락의 욕망), 아라띠(혐오), 쿱삐빠사(기갈), 딴하(갈애)라는 오염원을 말한다.
 
빠다나경 13번 게송은 “그대의 다섯째 군대는 권태와 수면, 여섯째 군대는 공포라 불리고, 그대의 일곱째 군대는 의혹, 여덟째 군대는 위선과 고집이라 불린다.” 라고 되어 있다. 악마의 군대는 티나밋다(해태혼침), 비루(공포), 비찌낏차(의심), 막코탐보(위선과 고집)를 말한다.
 
부처님은 팔마군(八魔軍)을 무찔러 정각을 이루었다. 부처님이 정각을 이루기 위하여 정진한 과정에 대한 게송이 빠다나경이다. 그래서 한국빠알리성전협회의 수타니파타에서는 ‘정진의 경(Sn.3.2)’라고 번역되었다.
 
좌선에 임할 때는 전쟁에 나가는 것 같다. 앉기 전에 먼저 빠다나경을 암송한다. 부처님이 팔마군과 싸워 이겼듯이, 그 위신력이 나에게 미치기를 바라는 것이다.
 
좌선에 임하기 전에 예비수행을 해야 한다. 이는 사마타수행을 말한다. 마하시사야도의 위빳사나 수행방법론에서는 “부처님과 아라한 등의 거룩한 성자들께서 항상 가셨던 길인 이 위빳사나 수행을 노력해야 한다.”(2권, 54쪽)라며 숙고하고 마음을 격려해야 한다고 했다.
 
자리에 앉았다. 한시간 앉아 있기로 한 것이다. 한가지 더 결의한 것이 있다. 그것은 호흡을 놓치지 않겠다는 것이다. 배의 부품과 꺼짐을 말한다.
 
앉는 순간부터 호흡을 보았다. 마음을 배에 두었다. 마음은 늘 대상에 가 있는다. 마음을 코에 두고자 한다면 마음을 코에 두면 된다. 마음을 배에 두고자 한다면 마음은 배로 간다.
 
배의 움직임은 처음에 잘 잡히지 않는다. 그러나 가만 있으면 움직임을 느낀다. 이때 움직임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 치타가 폭발적 스피드로 먹이를 낚아 채면 숨통이 끊어질 때까지 먹이를 놓지 않는 것과 같다.
 
오늘 좌선은 크게 기대하지 않았다. 그저 한시간 채우면 나의 의무는 끝나는 것으로 보았다. 그런데 이렇게 기대하지 않은 것이 오히려 잘 되었다. 집중이 이루어진 것이다.
 
어떤 일이 있어도 호흡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 좌선 중에 호흡을 놓치면 운전 중에 운전대를 놓치는 것과 같다.
 
운전하는 자가 운전대를 놓치면 어떻게 될까? 어디로 갈지 모른다. 어디에 쳐박힐지 알 수 없다. 운전하는 자는 전방을 주시하면서 운전대를 놓치지 않아야 한다. 마찬가지로 좌선하는 자는 호흡을 놓치지 않아야 한다.
 
좌선하는 것에 대하여 운전하는 것과 같다고 생각한다. 이는 무엇을 말하는가? 새김을 놓치지 않는 것과 같다. 전방 주시 태만이 없는 것과 같다. 배에 마음을 두어서 부품과 꺼짐을 관찰한다면 전방을 주시하며 운전을 하는 것과 같다.
 
운전하다 보면 고속도로에 진입하기 전에 복잡한 도시를 빠져 나와야 한다. 마찬가지로 처음 자리에 앉았을 때는 마치 도심에서 아직 빠져 나오지 못한 것과 같다.
 
운전자가 도심을 빠져 나오면 고속도로를 주행하게 된다. 이때 운전하는 맛을 느끼게 된다. 더구나 고속도로가 뻥 뚫려 있다면 기분이 최고조에 달한다. 여기에 경치까지 좋다면 금상첨화가 된다. 좌선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배의 움직임을 계속 관찰했다. 어떤 때는 잘 잡히지 않아 움직임이 약하기도 하다. 그러나 지속적으로 관찰하다보면 분명해진다. 동시에 집중도 이루어진다.
 
좌선 중에 몸은 가벼워졌다. 몸이 있는지 없는지 모를 정도로 가벼워졌다. 마치 텅 빈 도로를 제한최고속도까지 질주하는 것 같다.
 

 
좌선한지 시간이 꽤 흐른 것 같다. 아마 이삼십분은 지난 것 같다. 이때쯤이면 슬슬 오른쪽다리 저림이 시작되어야 한다. 그러나 오늘은 전혀 그런 현상이 없었다. 몸은 깃털처럼 가벼워졌다. 집중이 된 것이다. 사띠가 확립된 것이다. 정상괘도에 진입한 것이다!
 
사띠가 확립되자 몸과 마음이 가벼워졌다. 몸도 마음도 편해졌다. 계속 이 상태로 머물고 싶었다. 그리고 뻥 뚫린 고속도로를 주행하듯이 이 상태로 계속 달리고 싶었다. 갈 데까지 가 보고 싶었다.
 
좌선 중에 몸과 마음이 편해지자 욕심이 생겼다. “나도 빛을 봤으면!”라는 마음이 생긴 것이다. 그러나 빛은 보고 싶다고 해서 보는 것은 아니다. 조건이 맞아야 보는 것이다.
 
좌선 중에 빛을 봤다는 이야기를 종종 듣는다. 이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나에게는 언제나 올까?”라고 생각한다. 배의 부품과 꺼짐을 새기는 것을 중단하고 감은 눈 앞에 환한 것을 대상으로 집중한다면 빛을 볼 수도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그만 두었다.

위빠사나 수행에서 빛은 열 가지 장애 중의 하나라도 했다. 또한 위빳사나 수행방법론에서는 "빛 등을 생각하고 있는 것은 잘못된 길이다. 단지 알 뿐, 끊임없이 새 기고 있어야 바른 위빳사나의 길이다'라고 결정하고 몸과 마음에서 실제로 드러나고 있는 물질과 정신만을 끊임없이 새기고 있으면 앎이 더욱 분명해진다."(2권, 92쪽)라고 했다.

 
한시간 좌선 중에 배의 움직임을 놓치지 않았다. 그렇다고 배의 부품과 꺼짐이 한시간 내내 선명한 것은 아니다. 어떨 때는 불분명하고, 어떨 때는 선명하다.
 
배의 부품과 꺼짐이 선명할 때는 마치 기어를 변속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시동을 켜고 앞으로 나아가고자 할 때 P에서 D3까지 기어를 이동하는데 “탁, 탁”하며 걸리는 듯한 소리가 난다. 마찬가지로 배의 부품과 꺼짐에 대한 새김이 분명하면 3-4단계로 “탁, 탁”걸리는 것 같다.
 
좌선할 때는 어떤 일이 있어도 배의 부품과 꺼짐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 집중이 되어서 평안한 상태가 되었을 때도 이를 즐기지 말고 배의 호흡에 계속 집중해야 한다. 이는 마하시사야도의 위빳사나 수행방법론에 따른다.
 
좌선 중에 집중이 좋으면 세상이 고요해진다. 일시적으로 차 지나가는 소리가 나지 않을 때 매우 고요해진다. 이렇게 고요할 때 전자제품의 모터 돌아가는 소리가 크게 들린다.
 
좌선 할 때는 눈을 감는다. 마음의 문 하나만 열어 놓는다. 그러나 도심에서의 좌선은 소음에 시달릴 수밖에 없다. 차 소리나 전철 소리가 날 때 그 쪽으로 마음이 간다. 이럴 때 어떻게 해야 할까?
 
좌선을 하다 보면 소리에 민감하다. 마하시사야도의 위빳사나 수행방법론에 따르면 “화 소리, 노랫소리, 매우 큰 소리, 개나 새, 닭의 울음소리 등이 분명하게 들릴 때는 ‘들린다, 들린다’하며 두 번이나 세 번 새기고 나서 원래 새기 던 대상만을 계속해서 새겨라.”(2권, 75쪽)라고 했다.
 
소음이 났을 때 “들림, 들림”하라고 했다. 그러다 보면 소음은 사라질 것이다. 그리고 본래 새기던 대상으로 가라고 했다. 배의 부품과 꺼짐을 새겼다면 배의 움직임으로 돌아 와야 한다. 배에 마음을 두는 것이다. 배가 베이스캠프가 되는 것이다.
 
도시에서 차량소음은 지속적이다. “들림, 들림”한다고 하여 사라지지 않는다. 연속해서 끊임없이 밀려 오기 때문에 소리에 마음을 둘 수 없다. 이런 경우 무시해야 한다. 그러나 한계가 있다.
 
차량소음을 방지하기 위해서 귀마개를 인터넷으로 주문했다. 2키로에서 10키로 사이의 고주파대역을 30데시벨 감할 것이라고 한다. 착용하면 마치 산중에 있는 것과 같은 효과를 보지 않을까 생각한다.
 
오늘은 재가안거 14일차이다. 이렇게 오랫동안 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어떤 일이 있어도 하루 한시간은 앉아 있겠다.”라고 결의했기 때문에 가능한 것 같다. 이번 안거가 끝날 때까지 계속 가는 것이다.
 
오늘은 좌선하는 맛을 보았다. 한시간 동안 행복했기 때문이다. 이제까지 다리저림에 따른 통증에 시달렸다. 그런데 오늘은 거짓말처럼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한시간동안 같은 자세를 유지했다. 오늘 좌선만 같아라!
 
 
2023-08-13
담마다사 이병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