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행기

현법(現法)에 살고자, 재가안거 15일차

담마다사 이병욱 2023. 8. 14. 10:50

현법(現法)에 살고자, 재가안거 15일차
 
 
오늘 좌선은 만족스럽지 않았다. 사실상 실패라고 볼 수 있다. 다만 한시간 채웠다는 데 큰 의미를 둔다. 극기훈련했다고 본다.
 
소리에 민감하다. 도심에서 좌선은 소리에 지배받기 쉽다. 도로 바로 옆에 사무실이 있어서 끊임없이 차량소리가 난다. 또한 전철1호선이 함께 달려서 전철 지나가는 소리가 요란스럽다. 여기에 오전 9시가 넘으면 냉방이 시작되는데 공조기에서 나는 소리가 거슬린다.
 
훌륭한 농부는 밭을 탓하지 않고 훌륭한 목수는 밭을 탓하지 않는다고 한다. 역시 훌륭한 학생은 환경을 탓하지 않는다. 수행자도 환경을 탓해서는 안된다. 그럼에도 소음은 참을 수 없다.
 
차 지나가는 소리나 전철 지나가는 소리는 그나마 견딜만하다. 지나가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실내에서 냉방 공조기 돌아가는 소리는 참을 수 없다. 끝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그 소리를 대상으로 새김 할 수 없다. 오전 9시 이전에 한시간 좌선을 마쳐야 하는 이유에 해당된다.
 
수행환경은 좋지 않다. 이럴 때 “고요한 곳이라면 얼마나 좋을까?”라며 생각해 본다. 새김이 확립되었을 때 고요함은 이 세상에서 최고의 행복이다. 이런 수행환경도 극복해야 한다. 귀마개를 인터넷 주문했는데 도착하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하루일과 중에서 오전은 수행으로 다 보낸다. 아침 일찍 일터에 나오는 순간부터 수행이 시작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좌선에 영향을 끼칠 수 있는 것은 하지 않는다. 뉴스를 보지 않는 것은 기본이다. 뉴스를 보면 속이 뒤집혀져서 격정적으로 된다.
 
아침에는 에스엔에스도 하지 말아야 한다. 카톡이나 페이스북을 열어 보지 말아야 한다. 갖가지 주장이 있는데 여기에 마음을 빼앗기면 좌선에 영향을 준다. 또한 주변사람들과 말도 하지 말아야 한다. 언어적 개념에 대한 것은 하지 말아야 한다.
 
 
“눈 있는 자는 오히려 눈먼 자와 같고,
귀 있는 자는 오히려 귀먹은 자와 같아야 한다.
지혜가 있는 자는 오히려 바보와 같고
힘센 자는 오히려 허약한 자와 같아야 한다.”(Thag.501)
 
테라가타에 실려 있는 게송이다. 수행자에게 딱 필요로 하는 가르침이다. 여기서 눈 있는 자는 봉사처럼 살고, 귀 있는 자는 귀머거리처럼 살아야 한다고 했다. 아마 이 말은 뉴스도 보지 말고 에스엔에스도 하지 말라는 말로 받아 들인다.
 
지혜 있는 자는 왜 바보같이 살아야 한다고 했을까? 아마 자신을 내 세우지 말라는 의미로 해석하고 있다. 이에 대하여 담마마마까선원에서는 “그대의 말이 웅변일지라도 벙어리처럼 행동하라.”라고 번역해 놓았다.
 
허약한자처럼 살아야 한다는 의미는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이는 아마도 허리아픈 환자처럼 행동하라는 위빠사나 지침서가 연상된다.
 
여러 종류의 위빠사나 수행지침서가 있다. 주로 미얀마 위빠사나 스승들이 법문한 것이다. 그 중에 우 쿤달라사야도의 법문집 ‘위빠사나 수행자의 근기를 돕는 아홉요인’이라는 제목의 수행지침서가 있다. 여기에 허리아픈 환자의 비유가 있다.
 
허리아픈 환자의 비유는 어떤 것인가? 이는 “위빠사나 수행을 할 때 마음을 현재에 두기 위해서는 병자와 같이 천천히 부드럽게 움직여야 한다.”라는 말로 알 수 있다. 이 말은 우 쿤달라사야도가 말한 것이 아닌 것 같다. 스승인 마하시사야도를 언급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어떻게 행동해야 할까? 다음과 같은 내용이다.
 
 
“허리가 아픈 사람은 일상적인 활동을 모두 할 수 있으나 허리의 통증 때문에
-아주 천천히 앉고
-아주 천천히 일어서며,
-물건을 잡을 때도 천천히 잡는다.
허리가 아플 것을 염려하여 그렇게 행동하는 것이다. 수행자도 허리가 아픈 사람처럼 천천히 움직여야 한다. 아픈 사람처럼 움직여서 현재의 움직임을 알아차리면 법을 볼 수 있다.” (위빠사나 수행자의 근기를 돕는 아홉요인, 78쪽)
 

 

 
허리환자는 천천히 움직일 수밖에 없다. 위빠사나 수행자도 그렇게 행동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하는 이유는 법을 보기 위해서이다. 법의 성품을 보기 위한 것이다.
 
아침에 일어날 때 의도적으로 천천히 일어나고자 한다. 그리고 새기고자 한다. 세수를 할 때도 밥을 먹을 때도 새기고자 하다. 그러나 초보단계라서 잘 잊어 먹는다. 그럼에도 항상 마음 가짐은 유지 하고 있다.
 
일터로 갈 때 걸어 간다. 걸어 갈 때도 새기고자 한다. 건널 목을 건널 때도 새기고자 하고 기다릴 때도 새기고자 한다. 이렇게 새기고자 하는 것은 마음을 현재에 두기 위한 것이다. 이를 “현법에 살고자”라는 말이 떠올라 스마트폰 메모앱에 써 놓았다. 오늘 수행기 주제가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현법(現法)이라는 말은 딧타담마(diṭṭhadhamma)를 한자어로 표기한 것이다. 법이 지금 여기에서 보여진 것을 말한다. 딧타담마는 문자적으로 ‘법을 보았다’라는 의미이다. 여기서 딧타(diṭṭha)는 ‘보다’라는 뜻의 ‘passati’의 과거분사형이다. 그래서 ‘지금 여기에서 보여진 현상’이 되는 것이다.
 
현법에 사는 것은 매사에 사띠하는 것을 말한다. 매사에 새기는 것이다. 이런 새김은 행선이나 좌선에서뿐만 아니라 일상에서도 실현 되어야 한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허리아픈환자처럼 행동해야 한다.
 
테라가타에서 장로수행승은 “힘센 자는 오히려 허약한 자와 같아야 한다.”(Thag.501)라고 했다. 미얀마 담마마마까 선원에서는 이 말에 대하여 “그대의 몸이 건강할지라도 환자처럼(천천히) 행동하라.”라고 하여 선원 규칙을 만들어 놓았다.
 
담마마마까선원은 우 쿤달라의 사야도의 제자 우 에인다까 사야도가 선원장으로 있다. 담마마마까는 한국의 혜송스님의 원력으로 설립된 국제선원이다. 한국의 스님들과 불자들이 십시일반 모금해서 불사한 것이다. 완공되었을 때 미얀마 상가에 기증되었다.
 
허리아픈 환자처럼 살고자 한다. 이렇게 살려면 무엇이든지 천천히 해야 한다. 걸을 때도 천천히 걸어야 한다. 일터에 갈 때도 천천히 걸어서 간다. “왼발, 오른발”하는 식으로 걷는다. 그렇다면 왜 천천히 행동해야 할까?
 
법은 매우 빠르게 생멸한다. 어느 정도인가? 이는 “정신과 물질은 번개처럼 빠르게 일어나서 번개처럼 빠르게 사라진다.”(위빠사나 수행자의 근기를 돕는 아홉요인, 77쪽)라는 말로 알 수 있다. 우리 몸과 마음에서 일어나는 현상은 번개보다 더 빨리 생멸함을 말한다.
 
번개처럼 빠른 법을 보기 위해서는 천천히 움직여야 한다. 이는 관찰이 세밀해야 함을 말한다. 그래서 “현재를 정확하게 알아차리기 위해서는 몸을 섬세하고 차분하게 움직여야한다. 수행을 할 때, 일상생활에서처럼 움직이면 움직임이 너무 빨라 집중이 약해지므로 현재 몸에서 일어나는 움직임을 알아차릴 수 없게 된다.”(위빠사나 수행자의 근기를 돕는 아홉요인, 76쪽)라고 했다.
 
오늘도 한시간 좌선을 했다. 만족스러운 결과는 얻지 못했다. 그러나 한시간 버틴 것으로 만족한다. 오늘의 좌선이 내일 좌선에 밑바탕이 될 수 있다. 오늘 행선한 것이 만족스럽지 못하더라도 내일은 더 잘 할 수 있다.
 
자동차는 한번 시동을 걸면 주행하게 되어 있다. 재가안거라는 초유의 일에 도전하고 있다. 일생일대에서 이런 일은 없었다. 나는 과연 안거가 끝날 때까지 주행할 수 있을까?
 
어떤 일이 있어도 한시간 앉아 있고자 한다. 수행결과에 연연해 하지 않는다. 지금은 수행결과를 따질 때가 아니다. 길들이듯이 몸을 만들 때이다. 수행습관을 만드는 것이다.
 
남들이 보기에 행선이나 좌선은 아무 의미없는 행위처럼 보인다. 시간이 아깝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아무런 의미 없이 보이는 일이 사실 가장 가치 있는 일이다.
 
사람들은 돈 보는 일에 올인 한다. 돈 버는 재주가 있는 사람이나 없는 사람이나 돈벌기선수가 된다. 그러나 사람들은 돈이 되지 않는 일에는 관심 두지 않는다. 한발 한발 옮기며 행선하거나 한시간 좌선 하는 것에 대하여 의미를 두지 않는다.
 
오늘도 내일도 사람들이 보기에 의미 없어 보이는 일을 한다. 아침에 행선과 좌선을 마치고 후기를 작성한다. 이렇게 하다 보면 오전이 다 간다. 이제 업무를 해야 할 시간이다. 이메일을 열어 보는 것으로 생업을 시작하고자 한다.
 
 
2023-08-14
담마다사 이병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