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그 길을 따라 갔다
새벽 2시 30분에 눈을 떴다. 너무 이른 시간이다. 이 시각에 무엇을 해야 할까? 에스엔에스를 하거나 유튜브를 봐서는 안된다. 명경지수와 같은 마음에 파문이 일 수 있다.
논서를 열어 보았다. 언제나 진리의 말씀이 있다. 그것도 실천적 진리이다. 당장 활용할 수 있는 것이다. 위빠사나 수행에 적용할 수 있다. 빨강 형광메모리 펜으로 칠하며 읽는다.
칠한 부분은 새기고자 한다. 한번더 읽어 본다. 현재 재가안거 중인데 후기 작성에 활용하기 위해 저장해 둔다. 구글번역기를 이용해 캡쳐한다음에 블로그에 저장해 두는 것이다.
아직도 시간이 많이 남았다. 이번에는 경전을 열어 보았다. 머리맡에 있는 상윳따니까야이다. 고급 인조가죽케이스로 된 통합본이다. 한국빠알리성전협회에서 발간 되었다. 한손에 쏙 들어 온다. 7권을 이렇게 압축해서 한권으로 만들 수 있다는 것이 놀랍다. 그렇다고 생략된 것은 없다. 이전에 출간 되었던 7권의 내용이 고스란히 들어 있다.
"붓다의 길따라"라는 말이 있다. 한국테라와다불교 사원 이름이다. 경주에 있다. 아직 한번도 가보지 못했다. 밴드가 있어서 소식을 듣는다. 왜 "붓다의 길따라"라고 사원의 이름을 지었을까?
머리맡에 있는 상윳따니까야가 있다. '도시의 경'(S12.65)을 읽었다. 부처님이 고대도시를 발견한 것에 대한 이야기이다. 이 경에서 "나는 그 길을 따라 갔다."라는 반복구문이 있다. '붓다의 길따라'라는 말은 아마도 이 말에서 유래 했을 것이다.
부처님이 발견한 고대도시는 어떤 것일까? 옮겨 보면 다음과 같다.
"수행승들이여,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광야의 숲 속에서 방황하다가, 옛날 사람들이 다니던 옛 길과 옛 거리를 발견하고, 그 길을 따라가다가 정원을 갖추고, 원림을 갖추고, 연못을 갖추고, 제방을 갖추고, 분위기가 좋은 옛날 사람들 이 살았던 옛 성과 옛 도시를 발견했다면, 그 때 수행승들이여, 그 사람은 왕이나 왕의 대신들에 게 이와 같이 '왕이시여, 마땅히 아셔야 합니다. 저는 광야의 숲속에서 방황하다가 옛날 사람들이 다니던 옛 길과 옛 거리를 발견하고 그 길을 따라 가다가 정원을 갖추고 원림을 갖추고 연못을 갖추고 제방을 갖추고 분위기가 좋은 옛날 사람들이 살았던 옛 성과 옛 도시를 발견했습니다. 왕이시여, 그 도시를 다시 세우십시오'라고 권유했을 것 이다. 그래서 수행승들이여, 왕이나 왕의 대신들이 그 도시를 다시 세웠다면, 그 도시가 나중에 번영 하고 부유해지고 사람들이 몰리고 인구가 많아져서 성장과 발전을 이루었을 것이다. 수행승들이여, 이와 같이 나는 전생의 올바로 원만히 깨달은 님들 이 거닐던 옛 길과 옛 거리를 발견한 것이다.
그렇다면 수행승들이여, 전생에 올바로 원만히 깨달은 님들이 거닐던 그 옛길과 옛 거리는 무엇 인가? 그것은 바로 여덟 가지 고귀한 길이다. 곧, 올바른 견해, 올바른 사유, 올바른 언어, 올바른 행위, 올바른 생활, 올바른 정진, 올바른 새김, 올바른 집중이다. 이것이 수행승들이여, 과거의 올바로 원만히 깨달은 님들이 거닐던 그 옛 길과 옛 거리 이다."(S12.65)
나그네가 길을 가다가 우연하게 고대도시를 발견했다. 이를 날란다로 말하기도 한다. 그런데 그 고대도시는 한때 번영했다는 것이다. 지금은 폐허가 되어서 가로와 붉은 벽돌 등 흔적만 남았다.
부처님이 발견한 고대도시는 과거 출현 했던 부처님들도 발견했던 것이다. 이는 연기법을 말한다. 그렇다면 고대도시는 왜 폐허로 변했을까? 그것은 정법이 오래 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부처가 출현하면 정법이 펼쳐진다. 그러나 후대로 내려갈수록 정법은 변질된다. 나중에는 가르침과 정반대로 되어 버린다. 부처님이 무상, 고, 무아, 부정을 말했는데 후대사람은 상, 락, 아, 정을 말하는 것이다.
정법은 변질되어 사라져 버린다. 다음 부처가 출현할 때까지 아득한 어둠의 세상을 살아야 한다. 마침내 또 다른 부처가 출현했다. 고대도시를 발견한 것이다.
고대도시를 발견한 부처는 옛거리를 걸었다. 그 옛거리는 과거 부처님들이 거닐던 거리이다. 경에서는 팔정도의 길이라고 했다. 어떤 길인가?
"나는 그 길을 따라갔다. 그 길을 따라가서 나는 늙음과 죽음에 대해 곧바로 알았고 늙음과 죽음 의 발생에 대해 곧바로 알았고 늙음과 죽음의 소멸에 대해 곧바로 알았고 늙음과 죽음의 소멸로 이끄는 길에 대해 곧바로 알았다."(S12.65)
십이연기에서 늙음과 죽음에 대한 것이다. 그런데 구조를 보면 사성제의 형식으로 되어 있다. 늙음과 죽음에 대하여 발생과 소멸과 소멸에 이르는 길을 설명한 것이다.
부처님의 근본가르침은 서로 맞물려 있다. 이는 '도시의 경'에서처럼 십이연기와 사성제가 맞물려 있다. 그런데 사성제에서 도성제는 팔정도에 대한 것이라는 사실이다.
팔정도에서 정견은 사성제에 대한 것이다. 사성제에서 도성제에 대한 것이다. 이처럼 사성제와 팔정도는 서로 맞물려 있다. 그런데 '도시의 경'에서 보는 것처럼 십이연기의 각 고리를 보면 사성제의 구조로 설명되어 있다. 십이연기와 사성제가 맞물려 있는 것이다.
흔히 부처님의 근본가르침을 사성제, 팔정도, 십이연기라고 한다. 바탕은 연기법이다. 그런데 세 근본가르침은 서로 맞물려 있다는 것이다. 머리가 꼬리를 물고 있는 것과 같다. 그래서 뗄레야 뗄 수 없다.
부처님은 고대도시를 발견했다. 그리고 폐허가 된 고대도시를 거닐었다. 고대도시를 옛날과 같이 번영하는 도시로 만들려면 길을 다시 내야 할 것이다. 그 길이 바로 팔정도라고 했다. 그리고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그것을 곧바로 알고 나서 나는 수행승, 수행녀, 재가의 남녀신자들에게 그것을 가르쳤다. 수 행승들이여, 이것을 하늘사람들과 인간들에게 잘 가르친다면, 이 청정한 삶이 번영하고 풍성해지고 널리 퍼지고 널리 알려지고 발전할 것이다."(S12.65)
부처님이 발견한 고대도시는 번영했다. 부처님의 가르침이 널리 퍼져서 정법이 유지될 때 고대도시는 번영한 것이다.
정법이 유지되는 데는 세 가지 조건이 있다. 부처님이 설한 가르침이 전승되어야 하고, 부처님의 수행법인 팔정도의 가르침이 살아 있어야 하고, 팔정도의 수행으로 열반을 실현하여 사향사과의 성자가 출현해야 한다.
지금은 정법시대인가? 부처님이 설한 빠알리삼장이 전승되어 왔기 때문에 정법시대이다. 부처님의 수행법인 팔정도가 위빠사나의 형태로 실천되고 있기 때문에 정법시대이다. 또한 위빠사나 수행으로 열반과 사향사과가 있기 때문에 정법시대이다.
새벽에 일찍 일어나 논서와 경전을 보았다. 그리고 엄지치기로 글을 작성했다. 경전을 인용할 때는 구글번역기를 활용했다. 텍스트에 카메라를 대면 복사된다. 이를 가져다 부치면 손쉽게 경전문구를 인용할 수 있다.
경전과 논서를 읽으면 마음이 충만된다. 진리의 말씀이기 때문일 것이다. 진리의 말씀은 아무리 읽어도 질리지 않는다. 이런 말씀은 새겨 두고자 한다. 그래서 이 새벽에 엄지치기 하는 것인지 모른다. 지금 시각 새벽 5시 2분이다. 잠시 눈을 붙여야겠다.
"그런데 수행승들이여, 과거의 어떤 수행자들이나 성직자들이라도 세상에서 사랑스럽고 즐거운 것을 영원하다고 보았고 행복하다고 보았고 자기라고 보았고 건강하다고 보았고 안온하다고 보았 다면, 그들은 갈애를 키운 것이다. 갈애를 키운 사람은 집착을 키운 것이다. 집착을 키운 사람은 괴로움을 키운 것이다. 괴로움을 키운 사람은 태어남과 늙음과 죽음, 슬픔, 비탄, 고통, 근심, 절망으로부터 해탈하지 못한 것이다. 그들은 괴로움에서 해 탈하지 못했다고 나는 말한다."(S12.66)
2023-08-15
담마다사 이병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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