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행기

시간에 쫓기듯이 앉아 있다 보니, 재가안거 21일차

담마다사 이병욱 2023. 8. 20. 08:07

시간에 쫓기듯이 앉아 있다 보니, 재가안거 21일차
 
 
평온한 일요일 아침이다. 오늘 아침에는 새벽부터 서둘렀다. 새벽 4시 반에 일어나서 명상준비를 했다. 집에서 방에서 할 수 있으나 환경이 좋지 않다. 가능하면 사무실 명상공간에 가서 하고자 했다.
 
의무적으로 하는 것이 많다. 우리나라 국민의 사대의무가 있는데 그 중에 근로의 의무도 있다. 아직 근로의 의무에서 자유롭지 않다. 일인사업자, 개인사업자, 자영업자이긴 하지만 생계유지의 의무는 있다.
 
의무적으로 하는 것 중에는 글쓰기도 있다. 매일 한 개 이상 글을 쓰는 것이다. 그것도 의미와 형식을 갖춘 글이다. 그것도 경전을 근거로 하는 글이다. 글을 써서 공유하고자 한다. 인터넷에 올려 놓는 이유이다.
 
의무적으로 하는 것 중에는 모임에 참석하기도 있다. 혼자 운둔형으로 살기 보다는 어울려 살고자 한다. 경전공부모임도 있고, 선원모임도 있고, 법회모임도 있고, 재가운동모임도 있다. 한가지 더 있다. 그것은 등산모임이다.
 
오늘은 등산가는 날이다. 매달 세 번째 주 일요일에 정진산행모임이 있다. 정의평화불교연대에서 산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모임이다. 벌써 3년 되었다. 전철이 연결되는 서울과 경기도에 있는 산이 대상이 된다.
 
정진산행을 앞두고 마음이 바빠졌다. 아침 8시에는 만남의 장소를 향해 출발해야 한다. 역순으로 계산해 보니 아침 6시 이전에 좌선을 해야 한다. 좌선을 하면 후기를 써야 한다. 후기 쓰는 시간 1시간을 감안한다면 집에서 5시 반에는 출발해야 한다.
 
새벽 4시 반에 일어났다. 일어나서 샤워를 했다. 하루일과를 상쾌하게 시작하기 위한 것이다. 산행을 하면 에너지가 대단히 많이 소모된다. 먹기 싫어도 아침밥을 먹어야 한다.
 
아침밥을 먹고 버스를 탔다. 그러나 버스를 잘못 탔다. 관악역에서 명학역으로 전철로 이동 했다. 시간은 이미 6시가 넘었다. 한시간 좌선을 해야 하는데 시간이 빠듯하다.
 

 
시간을 정해 놓고 역순으로 일을 하려다 보니 마음이 급하다. 한시바삐 앉아 있어야 한다. 그러나 시간은 자꾸 흘러간다. 시간상으로 한시간 앉기는 무리가 따랐다. 30분만 앉아 있기로 했다.
 
오전 6시 29분부터 좌선에 들어갔다. 시간이 없어서 행선도 하지 못했다. 급한 마음에 먼저 앉고 보는 것이다. 알람은 30분에 설정해 놓았다.
 
명상을 급하게 하면 어떻게 될까? 집중이 되지 않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한 것이다. 호흡도 잡히지 않는다. 무엇보다 소음이다. 차량 지나가는 소리가 요란하다. 전철 지나가는 소리는 천둥 치는 것 같다. 그러나 이런 것은 참을 수 있다. 주기성을 띠지 않기 때문이다.
 
소음에 민감하다. 냉장고 모터 돌아가는 소리가 불편해서 전원을 차단했다. 그러나 건물 전체에서 나는 미세한 기계음은 참을 수 없다. 여러모로 어제 등명낙가사에서 좌선한 것과 대조된다.
 
시간에 쫓기듯이 앉아 있었다. 집중은 전혀 되지 않았다. 단지 눈을 감고 앉아 있는 정도에 지나지 않았다. 그럼에도 앉아 있는 효과는 크다. 단지 가만 앉아 있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편안해지기 때문이다.
 
이 소음을 어떻게 해야 할까? 이틀간 자리를 비웠더니 이어실드(ear shild)가 도착했다. 인터넷으로 주문한 귀마개가 도착한 것이다. 반가워서 끼워 보았다. 그러나 한마디로 실망이었다. 소음차단 효과가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이어실드를 귀에 꼽고 가만 있어 보았다. 소음이 약간 차단되는 것 같다. 그러나 귀마개에 구멍이 뚫려 있어서 차 지나가는 소리는 여전하다. 건물 전체에서 나는 기계음도 여전하다.  
 
소음문제가 심각하다. 이어실드를 구매했으나 효과가 없다. 이럴 때 고전적인 수법이 생각났다. 그것은 담배필터를 사용하는 것이다. 대학교 1학년 때 문무대에서 M1 소총을 쐈을 때 경험한 바 있다. 그러나 지금 당장 담배가 없다.
 
다음 번 명상을 할 때는 담배꽁초필터를 갖고자 했다. 담배를 피우지 않지만 담배 한갑을 사서 필터만 떼어내서 사용하는 것이다. 솜으로 귀를 틀어 막는 것도 생각해 보았다. 인터넷에서 검색하면 솜도 구할 수 있을 것이다. 먼저 담배필터를 사용해 보는 것이다.
 
일 못하는 목수가 연장 탓하는 것 같다. 아무리 소음이 심해도 정신집중만 하면 명상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더구나 위빠사나 명상하는 것 아닌가? 사마타명상이라면 대상과 붙는 것이기 때문에 조용한 곳이 유리하다. 그러나 위빠사나명상은 관찰하는 것이기 때문에 소음이 있다고 하더라도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다.
 
어떤 명상이든지 집중을 필요로 한다. 위빠사나 역시 집중을 필요로 한다. 배의 부품과 꺼짐을 보라는 것은 배의 움직임이 대상이 됨을 알 수 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선원은 조용한 곳에 위치해 있어야 한다.
 
등명낙가사에서 이틀 명상했다. 소음이 차단된 이상적인 공간이다. 절에서 명상을 하면 명상이 저절로 될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명상센터가 사람들과 멀리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는 이유를 알 수 있을 것 같다.
 

 
도시에서도 얼마든지 명상할 수 있다. 차량 소음은 크게 문제 되지 않는다. 지속적인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마치 통증처럼 일어나고 사라짐이 있다. 문제는 시계 초침 같은 것이다. 주기성을 띠는 기계음은 명상에 치명적이다.
 
이제 일어날 시간이다. 아침 8시가 되었다. 등산모임 약속장소로 이동해야 한다. 의무적으로 해야 할 일이다. 오늘 못한 것 내일 하면 된다. 오늘 못한 것은 내일 더 잘 할 수 있다. 어제 보다 나은 오늘이 되어야 한다.
 
산행하면서도 수행하고자 한다. 한발 한발 떼는 것도 수행이다. 이름하여 정진산행이다. 산행하는 것도 수행이다. 이 세상에 수행 아닌 것이 없다. 세상을 살아 가는 것 자체가 수행이다.
 
 
2023-08-20
담마다사 이병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