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행기

등명낙가사에서 정신과 물질을 새기며, 재가안거 19일차

담마다사 이병욱 2023. 8. 20. 08:54

등명낙가사에서 정신과 물질을 새기며, 재가안거 19일차

 


등명낙가사, 오래만에 듣는 절 이름이다. 언젠가 와 봤었다. 아마 2000년대 말 순례법회 때 왔었을 것이다. 기록을 찾아 보았다.

 


블로그 검색을 해보니 잘 검색되지 않는다. 블로그가 티스토리로 이동되고 난 후에 블로그내 검색이 크게 약화 되었다. 블로그 시스템이 진보하는 것이 아니라 갈수록 퇴보하는 것 같다.

블로그에 들어가서 카테고리로 확인해 보고자 했다. 국내성지순례 카테고리에서 과거 쓴 글을 찾아 내고자 한 것이다.

카테고리에는 200개가 넘는 글이 있다. 국내 사찰 순례한 것을 모아 놓은 것이다. 마침내 수작업으로 찾았다. 2007년에 쓴 글이다. 글 제목은 '등명낙가사(燈明洛伽寺), 바다와 하늘과 산이 어우러진 아름다운 도량'(2007-11-5, https://bolee591.tistory.com/m/13289674)'이다." target="_blank" rel="noopener" data-mce-href=" https://bolee591.tistory.com/m/13289674)'이다."> https://bolee591.tistory.com/m/13289674)'이다. 그때 당시 능인선원 37기 법회모임에서 순례법회 간 것이다. 무려 16년만에 다시 글을 보게 되었다.

 


세월은 가도 기록은 남는다. 그때 주지스님으로 부터 들었던 이야기를 사진과 함께 기록해 놓았다. 그때 주지스님은 청우스님이었다.

청우스님은 70년대 말부터 이 절에 있었다. 안내문을 보니 1981년부터 대웅전을 시작으로 불사가 이루어졌다. 40년 이상 불사를 해서 오늘날 여법한 사격을 갖춘 절을 만든 것이다. 등명낙가사 중창주라 할 수 있다.

2007년 당시 청우스님은 한시간 반동안 법문했다. 법문한 것을 메모해서 블로그에 기록해 놓았다.

스님은 감동적인 법문을 했다. 스님은 "산위에서 속세를 내려다 보니 사는 집이 개미집과 같고 거기에 사는 사람들은 마치 구데기와 같다. 하늘과 바람과 구름과 같이 걸림 없이 사는 것이 진정으로 사는 것이다."(2007-11-5)라는 취지로 말했다. 서산대사의 선가귀감을 인용하여 말한 것이다.

 


청우스님의 법문에 시간 가는 줄 몰랐다. 그때 당시 기록해 놓은 것을 보니 또하나 눈에 띄는 것이 있다. 그 것은 부부생활에 대한 것이다.

스님은 부부생활의 도에 대해서 이야기 했다. 부부간에는 도반처럼 생활하라는 것이다. 그래서 "부를 때도 거사님이나 보살님 하고 부르고 동안거나 하안거 할때 서로 번갈아 가며 참석 하고 놓아 주라고 한다. 왜냐하면 자신의 소유물이 아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2007-11-5)라고 기록해 놓았다.

스님은 왜 부부사이를 갈라 놓는 듯한 법문을 했을까? 그것은 남은 여생은 수행자로 살라는 말과 같다. 그래서 "그리고 항상 참회 하며 살아 가라고 한다. 내가 관심을 가지고 보았던 것과 행동 한 것은 모두 사진처럼 찍혀서 업으로 저장 된다고 한다. 그래서 다음 생에 반드시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반드시 참회 하라고 한다."(2007-11-5)라고 써 놓았다. 이런 법문에 감동 받았다.

 


16년만에 등명낙가사를 다시 찾았다. 이번에는 자연휴양림에 왔기 때문에 찾은 것이다. 강릉 동해안에 변에 있는 임해자연휴양림을 말한다. 등명낙가사까지는 3키로 거리이고  차로는 5분 거리에 있다. 좌선하기 위해서 찾은 것이다.

현재 재가안거중이다. 테라와다불교 재가안거를 말한다. 오늘로 19일차이다. 매일 사무실 명상공간에서 하루 한시간 좌선을 하고 있다. 그렇다면 여행지에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여행지라하여 재가안거를 중단할 수 없다. 단 10분만이라도 앉아 있어야 한다. 그리고 후기를 작성해야 한다. 그런데 이번 휴양림에서는 바로 옆에 등명낙가사가 있었던 것이다.

 


등명낙가사 대웅전 법당에 앉았다. 한시간 좌선은 일정상 무리로 보았다. 30분만 하기로 했다.

법당은 조용했다. 사무실과 여러모로 대조 되었다. 사무실 명상공간은 차량 지나가는 소리와 전철 지나가는 소리로 시끄럽다. 또한 건물 전체에서 나는 저주파의 기계음이 있다. 조용한 곳에서 좌선해 보기를 바랬는데 소원을 이루었다.

법당에서 차 소리는 나지 않았다. 다만 멀리서 새소리는 난다. 종종 알 수 없는 울음 소리도 난다. 오리소리 같은 것이다. 그러나 계속 되지는 않는다. 다만 참을 수 없는 것이 있다. 그것은 시계의 초침 돌아가는 소리이다.

시계 초침소리는 호흡과 같이 한다. 배의 부품과 꺼짐을 새기는데 방해가 되는 것 같다. 법당에 시계만 없다면 완벽할 것 같다.

 


소리도 새겨야할 대상이다. 새소리 바람소리는 빠라맛타라(실재)고 볼 수 있다. 생멸이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기계음이나 초침소리도 빠라맛타라고 볼 수 있을까?

기계음이나 초침소리는 소리이기 때문에 빠라맛타임에 틀림없다. 들리는 소리는 개념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주기를 가지면 빤냣띠(개념)이 된다. 주기에 마음이 딱 붙어 버렸을 때 사마타가 되는 것이다. 기계음이나 초침소리는 확실히 명상에 방해되는 것 같다.

배의 부품과 꺼짐에 집중했다. 호흡을 따라가며 새기고자 했다. 환경은 좋다. 소음이 거의 없어서 숨소리도 들린다. 이렇게 좋은 환경에서 망상으로 보낼 수 없다. 더구나 알람을 1시간이 아닌 30분으로 설정해 놓았다.

시간이 없다. 시간이 갈수록 초조했다. 빨리 새김의 확립에 들고자 하는 것이다. 일단 새김이 확립되면 망상에서 자유롭다. 설령 빈 틈으로 망념이 헤집고 들어온다고 할지라도 힘을 쓰지 못한다. 사념의 집을 짓지 못하는 것이다.

끝나는 시간이 10여분 남은 것 같다. "언제 끝나나?"라며 기다리는 것이 아니다. 남은 시간 동안 원하는 목표에 이르고자 했다. 더욱더 부품과 꺼짐을 새겼다. 정신과 물질을 구분하여 보고자 한 것이다.

 


좌선을 하다보면 일시적으로 환해질 때가 있다. 그렇다고 빛과 같은 니밋따 상태는 아니다. 조금 지나면 다시 어두워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일시적으로 밝아 졌을 때 몸이 깃털처럼 가벼워진다는 사실이다. 이런 때 좌선하는 보람을 느낀다.

마음의 평화를 이룩하고자 명상하는 것은 아니다. 빛을 보기 위해서 명상하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정신과 물질의 현상을 새기고자 한 것이다. 정신과 물질을 구별하는 지혜가 생기면 나라는 개념은 사라진다. 이번 안거에서 해야 할 일이다.

좌선이 끝났다. 30분 좌선을 한 것이다. 법당에서 좌선한 것은 좀처럼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대웅전은 절에서 가장 명당자리이고 절에서 가장 기운이 센 곳이다.

등명낙가사 대웅전 중앙에는 부처님상이 있다. 좌우에는 협시로 미륵보살과 제화갈라보살상이 있다. 또한 벽면에는 신중으로 가득하고 또한 영가위패로 가득하다. 천정에는 갖가지 소원등이 달려 있다. 이런 법당에서 정신과 물질의 현상을 새기고자 했다.

2023-08-18
담마다사 이병욱